(시작 기도)
주님,
요 며칠 주님께서 주신 은혜를 남편과 깊이 나누었습니다.
일상의 은혜요, 또한 특별한 은혜입니다.
몸이 빨리 회복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오늘도 말씀으로 인하여 주님 주시는 기쁨이 충만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33. 제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
34.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35. 곁에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보라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36. 한 사람이 달려가서 해면에 신 포도주를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고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 주나 보자 하더라
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38.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39.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40.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41. 이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따르며 섬기던 자들이요 또 이 외에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들도 많이 있었더라
42. 이 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
43.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44.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 지가 오래냐 묻고
45. 백부장에게 알아 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주는지라
46.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47.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
(본문 주해)
33~34절 :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는 시간이 오전 아홉 시이다. 그때부터 세 시간이 지난 열두 시에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된다.
이때 ‘어둠’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지 못하는 것을 나타낸다.
오늘날 예수님을 부르지만 다른 예수를 부름도 어둠이다.
오후 세 시에 예수님께서 크게 소리 지르며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외치시며 돌아가신다.
예수님은 이렇게 십자가에서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다.
그런데 이 버림받음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신 일이 되는지를 알고 믿는 것이 복음의 내용이다.(물론 알고 믿는 일은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진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들리심으로 이루실 일을 요한복음에서 미리 말씀하셨다.
그것은 영생을 주시는 것(요3:14~15)과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려 주시는 것(요8:28)과 예수님에게로 이끄신다는 것(요12:32)이다.
35~36절 :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엘리야를 부른다고 한다.
말라기 4:5절에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낸다는 말씀이 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엘리야로 알아들은 모양이다.
그러자 한 사람이 해면에 신 포도주를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한다. 이것은 고통을 들어준다는 자비이기보다는 오히려 목숨을 연장시켜 엘리야가 와서 구원하는지 보자는 조롱이다.
37~38절 : 예수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말씀(가상칠언)은 다음과 같다.
1.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2.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3.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요19:26~27)
4.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막15:34)
5. “내가 목마르다”(요19:28)
6. “다 이루었다”(요19:30)
7.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5)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다.
이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휘장이다. 지성소는 함부로 들어가면 죽임을 당한다. 그래서 일 년에 단 한 번 대속죄일에 제사장이 희생의 피를 들고 가서 언약궤 앞에 뿌리는 곳이 지성소이다.
그런데 이곳을 가로막고 있는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짐으로 예수님의 피로 하나님 아버지께 언제든지 나아가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10:19~20)
39~41절 : 이때 로마의 백부장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다.
자기가 처형하고 있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무력하게 죽어갔는데 이런 고백을 한다는 것은 백부장의 능력이 아니라 바로 십자가의 능력이다. 십자가로 다 이루심을 보여주는 사건 중의 하나이다.
또한 이때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멀리서라도 목격한 여인들이 있었으니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이들은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르고 섬기던 여인들이었다-가 있었고, 그 외에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들이 많이 있었다.
이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님을 따르는 그 믿음이 변치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자신들의 물질을 사용해서 묵묵히 주님을 섬겼던 여인들이었다.
42~47절 :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등장한다.
그는 산헤드린 공회원으로서(눅23:50), 예수 처형에 찬성하지 않은 자(눅23:51)이며 또한 부자(마27:57)이다. 그는 안식일에 시체를 나무에 달아두지 않는다는 율법을 잘 아는 자이다.
그런데 빌라도에게 가서 용감하게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하여 장례를 함으로 예수님의 제자임이 드러난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도 예수 믿는 것을 겉으로 숨겼던 사람이다. 그것이 드러나면 유대교에서 출교를 당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출교란 그 사회에서 이단으로 매장되는 일이다.
산헤드린공회원이고 존경도 받고 부자인데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날아가는 일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다는 고백이다.
그런데 이제는 예수가 죽어버렸다. 그러면 모른 척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죽고 나자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고 하는가?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죽으심의 능력, 그 십자가의 능력이다.
이 능력이 임한 자들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영원한 생명으로 인하여 넉넉히 감당해 낸다.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를 십자가에서 내려다가 세마포에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았다. 그 장면을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보았다.
그리고 안식 후 첫날 이들은 무덤으로 달려가 장례에 미진했던 향품을 바르려고 하다가 첫 번째 부활의 증인이 된다.
(나의 묵상)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지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다.
지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것은, 예수님의 피로 인해, 누구든지, 언제든지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10:19~
20)
지성소의 휘장은 예수님의 육체를 가리키며, 이 휘장이 찢어짐은 건물 성전 시대가 끝이 났다는 것을 말한다. 이제는 건물로서의 성전의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참 성전이신 예수, 또 그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사람들은 누구나 성전이 되기 때문이다.
지성소를 가로막고 있던 휘장은 죄로 인해 더러워진 인간과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를 의미한다.
그래서 일 년에 한 번씩 대속죄일을 통해 대제사장만이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던 날 그 모든 단절이 예수 그리스도의 찢겨진 육체로 인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새롭고 산 길이 열리게 되었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대속제물 되심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예수를 피를 힘입어 그의 생명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아보지 못하게 하는 어둠이 가득한 이때, 빛을 본 자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십자가의 죽음의 능력이 생명을 주는 일로 나타난 것이다.
첫째, 로마 백부장이 십자가에서 처형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사실이다.
무력하게 죽어 가시는 그 예수님을 보고서 이는 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것은 그 사람의 능력이 아니다. 이런 고백이 나오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능력이다.
주님께서 십자가로 다 이루심을 보여주는 한 사건이다.
둘째, 당시 사람의 수에 치지도 않았던 여인들이 예수님을 떠나지 않고, 죽는 순간까지 함께 한 사실이다. 큰소리치던 남자들이 다 줄행랑치고 난 그 자리를 여인들이 지키고 있었다는 것은 ‘약함’으로 승리하는 십자가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부활의 첫 목격자도 여인들이 된다.
셋째,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드러내놓고 예수님을 장례하는 사실이다.
그는 평소에 제자임을 숨겼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고 난 후 갑자기 빌라도를 찾아간다. ‘당돌히’는 ‘대담하게’(새번역), ‘용기를 내어’(공동번역)로 번역한다.
예수 믿는 것이 드러나면 출교를 당한다. 출교는 사회에서 매장당하는 것과 같다. 공회의원 자리는 물론 재산과 명예까지도 다 날아갈 것이 뻔한데 그의 담대한 용기는 어디서 나왔는가? 바로 예수님의 죽으심의 능력이 임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일어난 십자가의 다 이루심의 은혜가 내게도 임했다.
백부장의 고백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마16:16)이라고 고백한 베드로의 고백처럼 신기하다. 이는 베드로가 다 깨달아서 고백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알게 하신 것’(마16:17)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백부장에게도 그 은혜가 임한 것이었다.
비록 모르는 것투성이지만 내게도 이 은혜가 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게 된 것이다.
또 한결같이 주님을 따랐던 여인들의 은혜가 내게도 임했다.
그것은 나의 능력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과 이끄심이었다.
매일 말씀의 자리에 나아가 복음을 듣고 또 들음으로 십자가를 단단히 붙잡을 수 있도록 성령께서 인도해 주신 일이다.
마지막으로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은혜가 내게 임했다.
그에 견주면 잃어버린다는 표현을 쓴다는 것이 미안할 지경이지만, 기존에 누리던 세상 것들이 참으로 허망한 것임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과거에는 그것에 목숨을 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사랑하고 집착했던 세상 것들이 아닌가?
이 모든 은혜가 십자가의 능력이요, 죽으심의 능력인 것이다.
나는, 주님 죽으신 십자가 안에서 참 빛을 보았고, 참 생명을 얻었고, 참 안식과 평안을 누리는 자가 되었다.
(묵상 기도)
주님,
십자가의 능력, 그 죽으심의 능력을 묵상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에게도 그 능력이 임하여
백부장처럼 고백하게 하시고
여인들처럼 한결같이 주님을 따르게 하시고
아리마대 사람 요셉처럼 기꺼이 세상 것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옵소서.
이때껏 잘 알지 못하여 ‘능력을 주옵소서!’ 외쳤던 것이 생각납니다.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내기를 바라는 그 마음에는 자기의가 가득했음을 보게 됩니다.
이제야,
주님 주시는 진정한 능력이란 십자가의 능력, 죽으심의 능력임을 알게 됩니다.
와~~! 감사합니다.
약할 때 강함 되시는 나의 주님을 찬양합니다.
성령님, 이 은혜 안에 늘 머물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