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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혁은 규린을 마지막으로 만났던 골목 어둠속에서 서 있었다. 잠시 후 뒤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그가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함정이면 쏠 거야.”
“활과 화살에서 총으로 바뀐거야?”
점점 다가오면서 규린이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손에는 소음기가 달려있는 총이 들려있었다.
“그들이 혜영이를 찾아냈어?”
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혜영이는?”
“안전한 곳으로 피했어. 믿을 수 있는 사람이랑.”
“안전한 곳이 어딘데?”
“우리 쪽 사람들도 모르는 곳이야.”
규린이 숨을 내쉬었다.
“우리가 널 보호해 줄게.”
규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네가? 어떻게? 다들 내 목숨을 원하고 있어. 내 몸과 피로 부작용을 없애고, 목숨을 살릴 수 있는 약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그들이 왜 너를 찾으려는 거지? 14년 전에 약을 찾았었는데.”
“그건 완전하지 못한 약이었어. 그들이 연구소를 급습해서 약을 가져갔다는 걸 알고.. 나에게
급하게 스타푸룻을 주사했어. 죽을 뻔했지만 잘 이겨낸 덕분에 내가 스타푸룻이 된 거야. 징
표로 어깨에 자연스럽게 타투가 생기고. 그 기록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
데, 그들이 유일하게 남겨진 비밀금고에 있는 연구문서를 발견한 거야. 14년 전에 그 약을 먹
었다면.. 그들은 지금 고통 속에 있을 거야.”
규린의 설명에 도혁의 눈이 커졌다.
소진이 욕실에 들어가 욕실장을 열어 약병을 찾았다. 그녀의 손에 피가 묻어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약병을 열어 한 알을 입에 넣고 수돗물을 마셨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거울을 바라보
았다. 손을 들어 코에서 흐르는 피를 닦았다. 천천히 뜨거운 물이 가득한 욕조에 몸을 담갔다.
뻣뻣한 몸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그렇게 욕조 안에서 비명을 삼켰다. 다른 방의 사람들도 비슷
한 증상으로 약을 먹고 뜨거운 샤워기 아래에 섰다.
한적한 시골집에 도착한 미수가 버튼을 누르자 차고 문이 열렸다. 차고 안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혜영도 내려 미수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여긴..”
미수가 방긋 웃었다.
“엄마~.”
안에서 나이가 지긋하신 아주머니가 나오셔서 미수를 안았다. 혜영이 놀라 숨을 들이마셨다. 아주머니가 고개를 들어 혜영을 바라보며 인자한 미소를 지으셨다.
“친구?”
“응. 며칠 있으려고. 아빠는?”
“주무시지. 어서 와요.”
“안녕하세요.”
“들어와요.”
"들어가자."
혜영이 미수의 손을 잡아세웠다.
“언니..”
“괜찮아.”
“안 괜찮아요. 저분들까지 위험해지시면 어떻게 해요.”
“여긴 아무도 몰라. 비밀장소도 있는 걸?”
미수가 방긋 웃고는 그녀를 집으로 끌어당겼다. 혜영이 한 숨을 내쉬며 천천히 따라 들어갔다.
도혁이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원성과 진혁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잘 만났냐?”
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혁 뒤로 규린이 모습을 드러냈다. 진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가.. 가발이야?”
그녀의 오렌지색 머리를 보며 말했다. 규린이 싸늘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서 와요.”
원성을 바라보며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도혁을 따라 집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에 들어간 규린
이 숨을 들이마시다가 다시 총을 꺼내 도혁에게 겨누었다. 원성이 그녀에게 달려들려고 하자
도혁이 고개를 저었다.
“이유는?”
“보호하라고 했지, 집으로 데리고 오라는 소리는 안 했는데?”
도혁이 피식 웃었다.
“어떻게 알았지?”
“사귀는 거야?”
“총부터 내리고 하지? 너 없는 동안 보호해 줬으면 고맙다고는 못 할망정 이게 무슨 짓이야!”
진혁이 그녀에게 말했다. 규린이 천천히 총을 내리자 도혁이 몸을 돌려 규린을 바라보았다.
“사귀는 거냐고.”
“응.”
“왜?”
“사랑하니까.”
규린이 도혁을 바라보았다.
“그러지 말라고 했잖아.”
“마음대로 되나?”
“혜영이는.. 혜영이도 같은 생각이야?”
“나중에 직접 물어 봐. 일단은 우리들이 해결해야 할 일이 있잖아?”
규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 친구는?”
진혁이 묻자 규린이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잘 못되면 세상에 모든 걸 알리기 위해 준비 중이지.”
“쯧.. 그래?”
진혁이 조금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규린이 소파에 앉으며 물었다.
“안전하게 있는 거 확실해?”
“응.”
“좋아. 어떻게 할 생각이야?”
원성이 그녀 앞에 앉았다.
“우린.. 너를 죽일거야.”
규린이 입가에 미소를 살짝 띄우며 고개를 약간 옆으로 기울였다.
솔희에게 다진과 그 무리들이 물었다.
“혜영이는 왜 출근 안 했어?”
“모르겠어. 전화도 꺼져있고.. 집에 갔더니 이사를 갔다고 하더라고.”
“뭐야..”
“설마.. 에반스랑 영국으로 간 건가?”
“솔희한테 한 마디 말도 없이?”
“그러게..”
“나 같아도 친구한테 말하지 않고 사라질 수 있을 정도로 멋진 남자던걸? 안 그래?”
“그거야.. 너는 그렇겠지만 혜영이가?”
“맞아. 혜영이가 그럴 아이는 아니잖아.”
“너희들 지금 뭐하는 거야?”
다진이 날카롭게 그녀들을 바라보자 그녀들이 움찔했다. 솔희가 기운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먼저 일어난다.”
“응.”
솔희가 사무실로 들어가고 소진이 사무실에서 나와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귀에 핸드폰을 대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에 오른 소진이 닫힘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싸늘한 표정의 소진이 앞을 바라보았다.
미수 아버지를 도와 길에 쌓인 눈을 치우고 들어왔다. 미수 어머니가 따뜻한 차를 내미셨다.
“춥지 않아요? 너는 손님한테 일을 시키고 그래.”
“뭘~. 하지 말라고 했단 말이야.”
“제가 하고 싶어서 부탁했어요. 여긴 눈이 정말 깨끗한 것 같아요.”
“아직 이 근처에는 개발이 안 되었으니까요.”
“말씀 편하게 하세요.”
“그래요..”
“엄마~.”
“그래.”
혜영이 미수 옆에 앉았다.
“부러워요.”
“뭐가?”
“좋은 부모님이세요.”
“응. 그 사람도 부럽다고 했었어.”
“아저씨가요?”
“응. 평범하다고 생각하고 살았거든. 가끔은 답답하다고 생각했었고.. 그 사람이랑 살면서 평범하게 부모님 사랑, 그늘 아래에서 살았다는 것이 큰 축복이라는 걸 알게 됐지.”
“맞아요..”
미수와 혜영이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그러다 혜영의 얼굴이 어두워지자 미수가 바라보았다.
“언니 걱정?”
“여러 가지요. 언니랑 잘 만났을까, 그 사람은 괜찮을까.. 솔희한테 말도 없이 회사에 출근도 안 했는데.. 마음 상하지 않았을까..”
“하여간 오지랖은.. 여긴 기지국도 없어서 전화가 안 돼. 그러니까 바깥 세상 걱정은 접어두고 앞으로 네 걱정이나 해.”
“네?”
“이 일이 잘 해결되면 도혁씨랑 결혼 할 거야?”
혜영의 얼굴이 붉어졌다.
“둘이 침대 같이 쓰는 것 같던데.. 잘해?”
“네?”
혜영이 눈을 크게 뜨고 미수를 바라보았다. 미수가 그녀의 얼굴을 보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얼굴 봐.. 미스 홍당무네. 귀와 목까지. 이 모습을 도혁씨한테 보여주고 싶은데? 잠깐 기다려. 핸드폰으로 사진 찍어야지.”
미수가 핸드폰을 들자 혜영이 그녀를 말렸다.
“언니~!”
“하하하...”
두 사람을 바라보며 미수 부모님이 미소를 지으셨다.
도혁의 집 앞에 소진이 서 있었다. 모니터를 확인한 진혁이 입을 벌리자 입에 물고있던 막대사탕이 바닥에 떨어졌다.
“형~! 영감~!”
원성과 도혁이 아래층으로 내려와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내가 나갔다 올게요.”
도혁이 코트를 집어 들어 입으며 현관을 나섰다. 정원을 가로질러 대문을 열자 소진이 그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등 뒤로 문을 닫은 도혁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반가워.”
“그래.”
소진이 미소를 지우고 싸늘한 표정으로 도혁을 바라보았다.
“어디에 숨겼어?”
“뭘?”
한 쪽 입꼬리를 올리며 소진이 미소를 지었다.
“뭐긴.. 스타푸룻이 되어 버린 여자 동생. 신혜영.”
“다른 나라로 보냈어. 우리 싸움에 다칠까봐.”
도혁을 바라보는 소진의 미간에 주름이 만들어졌다.
“김규린을 찾아내려는 우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여자를.. 진심으로 아껴?”
도혁이 소진의 어깨를 잡았다.
“그래? 그.. 여자 같지도 않은 것한테.. 마음이 움직였어?”
“그녀는..”
소진의 눈에 눈물이 고였고, 턱 근육이 긴장했다. 소진이 팔을 들어 자신의 어깨를 잡고 있는 도혁의 손을 치웠다. 다시 도혁을 바라볼 때에 그녀의 눈에 눈물은 사라져 있었다.
“상관없어. 내가 찾아 낼 거야. 그 여자. 미끼로 삼아서 스타푸룻을 찾아 낼 거야.”
“나도 도와줄게.”
소진이 도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네가 어떻게 도와?”
“하지만 그 전에..그 여자를 찾으면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할 거라고 생각해?”
“범죄자도 아니고, 그녀를 해칠 이유가 없어.”
소진의 입가에 슬픈 미소가 어렸다.
“당신 말 들을 걸. 하지만 늦었어. 우린.. 그 여자가 필요해. 그러니까 말해. 신혜영 어디에 숨겼어!”
“두 사람이 주고받던 암호가 있어. 그걸로 그 여자를 유인할 수는 있어.”
“그럼 그렇게 해.”
“해치겠다고 하면 도와줄 수 없어.”
“그 여자 피.. 가 필요해.”
“내가 그 여자를 만나서 피를 달라고 할게. 그리고 너만.. 너에게만 줄게. 다른 사람은 안 돼. 그렇게 많은 피를 주면 그녀는 살 수 없으니까.”
소진이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조건이 있어.”
“뭔데?"
“같이 만나. 당신이 준 게 그 여자 피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
도혁이 생각에 잠겼다가 소진에게 말했다.
“좋아. 연락 할게.”
“그래.”
“조심해서 가.”
소진이 몸을 돌려 자신의 차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몸을 돌려 아직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도혁을 바라보았다.
“신혜영이라는 여자가.. 특별해?”
“너도 나한테 특별해.”
소진이 씁쓸한 미소를 짓고는 차에 올라 출발했다.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도혁의 어깨에 원성이 손을 올렸다.
“내일 저녁 9시 도착하도록 오라고 하세요.”
“응.”
원성이 자리를 옮겼다. 진혁이 도혁을 바라보았다.
“잘 될까?”
“그러길.. 바래야지.”
도혁이 눈을 감았다.
****
다음 날, 저녁 도혁과 규린이 만나던 그 건물 옥상에서 규린과 찬모. 소진, 도혁이 만났다.
“당신이 스타푸룻이라는 걸 내가 어떻게 믿지?”
소진의 말에 규린이 왼쪽 어깨까지 옷을 내리고 불을 비추어 타투를 보여주었다.
“이제 믿어?”
“피는?”
도혁의 말에 규린이 주머니에서 피가 담진 유리병을 던졌다. 소진이 받아들었다. 차가운 작은 유리병 안에서 붉은 액체가 출렁거렸다.
“그 정도면 당신은 치료될 수 있어.”
“두고 봐야 알겠지.”
소진이 약병에 주사기를 꽂아 피를 주사기에 담고 자신의 혈관에 주사바늘을 꽂아 피를 주입했다. 잠시 후 소진은 눈이 커지면서 바닥에 쓰러지듯 앉았다. 심장을 부여잡듯 그녀가 가슴을 잡고 주먹으로 쳤다. 한 차례 폭풍같은 고통이 지나갔다.
“괜찮아?”
도혁이 소진 옆에 앉아 그녀를 바라보았다. 소진의 얼굴에 땀이 맺혔다.
“기분이.. 이상해..”
“좀 쉬어야 해. 내가 집까지 데려다 줄게. 저 사람은 보내주는 거야.”
소진이 미소를 지었다.
“미안해.. 당신을 속일 생각은.. 처음부터 있었어..”
그녀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단추를 눌렀다.
멀리에서 헬리콥터가 다가오고 있었다.
“피해!”
도혁이 외치자 규린과 찬모가 건물 아래로 뛰어 내렸다. 도혁이 일어나려고 하자 소진이 잡았다.
“가지.. 마..”
“미안해. 난 저들을 보호해야 해. 그게.. 약속이야.”
“당신은.. 못 가..”
소진이 그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도혁이 그녀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손을 떼어냈다.
“쉬어..”
도혁이 소진에게서 벗어나자 바닥으로 뛰어내려 그들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원성과 진혁이
차를 세우자 그 차에 올랐다. 멀리에서 규린과 찬모가 달리고 있었고, 공중 헬기의 불빛이 그
들을 비추었다. 골목에서 오토바이를 탄 자들이 나타나 그들을 쫓았다.
“총 쏘면 안 돼. 생포해야 해.”
규린과 찬모가 골목으로 사라지자 헬리콥터가 불빛을 여기저기 비추었다.
“어디로 사라진 거지?”
“얼른 찾아!”
도혁과 원성이 차에서 내려 그들이 사라진 골목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주차가 되어 있는 차 중에 하나의 문을 따고 있었다. 잠시 후 차 문을 열고 차가 출발했다.
붉은 색 차가 움직이자 헬리콥터가 불빛을 비추었다.
“찾았다.”
오토바이들이 그들의 뒤를 쫒았고, 원성과 도혁이 그들의 뒤를 달렸다. 잠시 후 차가 다리 아
래로 난 길을 향해 달렸다.
“저긴 완공되지 않은 도로라서 막다른 길이야. 쫓아!”
오토바이들이 뒤를 쫓았다. 다리 아래에 잠시 차가 멈추었다. 오토바이들이 속도를 더 냈다.
“잠깐.. 저게 뭐지?”
헬리콥터에서 들렸다. 멈춘 차가 다시 출발하고 다리 아래를 지나 아직 공사가 완성되지 않은 곳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멈춰!”
오토바이들이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들의 뒤를 따랐다. 잠시 후 그들이 공사장 안으로 들어가
고 먼지가 나더니 잠시 후 폭발이 이어졌다. 달리던 원성과 도혁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오토
바이들도 넘어지고 사람들이 날아갔다. 연속적인 폭발과 불길속에서 자동차가 불탔다. 잠시
진혁의 차가 원성과 도혁 뒤에 멈추었다.
“괜찮아?”
그들을 일으켜 차에 태운 후 진혁이 차를 돌려 집으로 향했다. 지붕 위에 누워있던 소진이 고
개를 들어 멀리서 보이는 불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눈을 감고 다시 누웠다. 헬리콥터에서
노하가 사다리를 내려주었다.
“타.”
소진이 일어나 사다리를 타고 헬리콥터에 올라갔다. 그들을 태운 헬리콥터가 사라졌다.
“어때?”
노하가 소진에게 물었다.
“기분이 이상해.”
노하가 주사기를 들어 그녀의 팔에서 피를 뽑았다.
“가서 조사해 보자.”
“응.”
소진이 뒤로 기대어 눈을 감았다.
집에 돌아오자 혜영이 달려와 먼지투성이인 도혁을 안았다.
“미안해..”
그가 손을 들어 품에 안긴 혜영을 끌어안았다. 혜영이 울음을 터트리며 그를 더욱 꼭 끌어안
았다. 미수가 다가와 원성에게 안겼다. 원성이 착찹한 표정으로 미수를 안았다. 혜영의 울음소
리가 집안을 울렸다. 그들의 뒤로 보이는 컴퓨터 모니터에는 아직도 불타고 있는 자동차가 보
였다.
****
불에 타고 남은 뼈를 수습해서 한 항아리에 담았다. 그리고 규린과 찬모의 합동 장례식을 치
루었다. 혜영은 파리한 얼굴로 장례식장 안에서 도혁, 진혁, 원성, 미수와 조촐한 장례식을 진
행했다. 납골묘에 항아리를 넣고 돌아오는 길에 혜영은 도혁의 품에 안겨 있었다. 집에 도착
하고 혜영을 2층 침대에 눕힌 도혁이 그녀의 머리를 쓸었다. 혜영이 눈을 감자 눈물이 흘러
베개를 적셨다. 그의 손을 혜영이 잡았다.
“옆에 있어주고 싶은데.. 원성이 형이랑 본부에 가서 보고를 해야 해.”
혜영이 눈을 떠서 도혁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먹고.. 좀 자.”
“그게 뭔데요?”
“수면제.”
혜영이 고개를 저었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처럼 자면서 나를 기다려. 금방 다녀올게.”
혜영이 기운없이 웃었다.
“난 미녀도 아니고.. 약 같은 건 싫어요. 미수언니도 있고.. 진혁씨도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요.”
도혁이 마른 침을 삼키며 힘겹게 말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미안해.”
혜영의 눈에서 눈물이 다시 흘렀다. 울음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가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아랫입술을 쓸었다.
“당신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킬 거야.”
혜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혁이 고개를 숙여 그녀의 이마에, 눈물을 흘리는 두 눈에 입을 맞추었다. 고개를 든 그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형. 가야 해.”
아래층에서 진혁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요..”
혜영이 말하자 도혁이 그녀의 입술을 만졌다.
“가기.. 싫다.. 당신이 제일 힘들 때.. 옆에 있고 싶은데..”
“얼른 다녀 오기나 해요.”
그녀가 코맹맹이 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그가 그녀의 입술에 짧은 입맞춤을 하고 다시 그녀의 입술을 찾았다. 그가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진혁이 눈을 흘겼다.
“얼른 갔다 오지. 10분 늦게 가면.. 뭐가 좀 나아?”
도혁이 미수를 바라보았다.
“살펴 봐 주세요.”
“응. 조심해서 다녀 와.”
원성과 도혁이 나가고 미수가 진혁을 바라보았다.
“뭐 좀 먹을까?”
“같이 만들까?”
“그럴래?”
두 사람이 주방으로 들어갔다. 위층에서 혜영은 이불로 입을 막고 눈물을 흘렸다.
실험실에서 소진의 피를 검사한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치료되었어.”
“젠장!”
노하가 소리쳤다.
“소진이만 치료가 되었다고? 소진이 피는.. 우리한테 아무 효과가 없나?”
“그렇지.”
노하가 눈을 감고 짜증을 참았다. 하지만 결국 참지 못한 그가 주위 물건을 던지기 시작했다.
원성과 도혁은 각기 다른 방에서 조사를 받고 있었다.
“자네가 보호하고 있던 신혜영이라는 여자의 언니가 스타푸룻이라는 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김규린이라는 자를 직접 봤나?”
“네.”
“그 자의 피가 그들을 치료한다는 것도 확인했나?”
“확실한 것은 모릅니다. 다만.. 그에게 이상 반응이 일어났다는 것은 목격했습니다.”
“신혜영이라는 여자는 이 일과 무관한가?”
“그렇습니다. 김규린이라는 자의 가족이었을 뿐. 이 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보여 준 자료가 사실인가?”
“네.”
“치료제인 김규린이라는 자의 시신을 확인했나?”
“검시관 자료에 의하면 30세 여성의 뼈와 32살 남성의 뼈로 확인되었습니다.”
“생포가 불가능 했나?”
도혁이 그들을 바라보았다.
“살리는 것이 저희들의 목표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생명을 포기하는 것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 추후 궁금한 것이 있으면 다시 부를 수 있네.”
“네.”
도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네는 이번 일이 가라앉을 때까지 대기하고 지시내리면 복귀하도록.”
“알겠습니다.”
도혁이 방을 나가자 그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도혁이 걸어가며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을 찾아내 처리하도록 하죠.”
“경찰에게는 레드 3. 인 자들이라고 통보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도혁의 턱이 굳어졌다. 원성의 차에 오르고 건물에서 멀어지자 도혁이 원성에게 말했다.
“그들을 처리할 생각입니다.”
“그래. 우리들을 이용해서 말이지.”
두 사람의 인상이 험악해졌다.
미수가 진혁을 노려보고 있었다.
“형수.. 이러고 싶어? 같은 여자가 해야지~.”
“뭐라고 해..”
“나는~!”
진혁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미수를 바라보았다.
“얼른 가서 밥 먹으라고 해. 어제 밤에도 안 먹었잖아.”
“형수가 하라고~.”
“이 자식이! 얼른 안 올라가?”
미수가 주먹을 쥐고 그에게 달려오자 그가 피했다.
“진짜.. 가서 밥 먹으라고만 말하고 온다.”
“응.”
진혁이 투덜거리며 위층으로 올라갔다.
“내가 왜 해야 하냐고.. 기왕이면 같은 여자가 하면 좋잖아? 쯧..”
진혁은 위층에 거의 올라갔을 때 침대쪽을 바라보지 않고 말했다.
“아침 먹어.”
몸을 돌려 내려오려던 그가 발을 멈추고 몸을 돌려 침대를 바라보았다. 누웠던 흔적은 있었지만 혜영이 보이지 않았다. 아래층으로 내려 온 진혁이 미수를 바라보았다.
“없는데?”
“어? 어디갔지? 여기로는 안 내려왔는데?”
진혁이 아래층으로 내려와 컴퓨터에 앉아 집안을 살폈다. 그러다 옥상에 쪼그려 앉아 있는 혜영을 찾았다.
“여기 있네.. 가 봐.”
진혁이 할 말을 미수가 했다. 진혁이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미수를 바라보았다.
“가서 밥 먹으라고 하고 와.”
진혁이 고개를 푹 숙였다.
“영감 오기만 해 봐..”
의자에서 일어난 진혁이 터덜터덜 옥상으로 향했다. 미수는 모니터 속 혜영을 바라보다가 주방으로 향했다. 그가 올라오는 소리에 혜영이 퉁퉁 부은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흐억! 얼굴.. 끝내주는데?”
혜영이 양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렇게 심해요?”
“흠.. 뭐.. 그렇지.”
“어떻게 찾았어요?”
“밥 먹어. 뭐라도 먹어야지. 형수가 걱정해.”
혜영이 피식 웃었다.
“여기에서 더 상해 있는 모습 형이 보면 속상해 할 테고.. 뭐.. 약속을 지키지 못했으니까 그 정도 벌은 받으라고 할까?”
혜영이 눈물을 다시 고이자 아랫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저었다. 진혁이 혜영 옆에 서서 정원을 바라보았다.
“손 내려. 아까 다 봤는데 뭘..”
혜영이 손을 내려 정원을 바라보았다.
“늦네요..”
“언제 올지 몰라. 형이나 영감이 잘 못한 것까지 보고하고 그들의 궁금증이 풀려야 집에 올 수 있어.”
진혁이 추위에 팔을 둘러 자신을 안으려다 혜영을 바라보며 어깨를 펴고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안 추워?”
“이대로 얼어 죽으면 좋겠어요.”
진혁이 놀란 표정으로 혜영을 바라보자 그녀가 피식 웃었다.
“무슨.. 살벌한 얘기를 하고 있어. 신성한 우리 집에서 그런 생각 하지 마. 알았어?”
혜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농담이에요. 죽을 것 같으면 이 모포를 왜 갖고 왔겠어요? 이거 엄청 따뜻한데.. 덮을래요?”
“됐어.”
“고집부리다 얼어 죽을지도 몰라요.”
혜영이 한 쪽 팔을 열어 그에게 들어오길 권하고 있었다. 진혁이 헛기침을 하며 그녀 옆에 앉아 모포로 등과 어깨를 감쌌다.
“으~. 추워.. 꼭 이런곳에서 생각해야 해?”
“그냥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언니가 곁에 없어도 살기는 했지만.. 이 세상에 내 가족이 아무도 없이 남겨진 적이 없어서..”
진혁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난 형 만나기 전까지 혼자였어. 살아남기 위해 도둑질도 하고..”
혜영이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나중에 찾았었어. 내 부모.”
“어떤 분들이셨어요?”
진혁이 씁쓸한 웃음을 터트렸다.
“벌써 죽었더라고. 원래부터 마약중독자들이었어. 태어날 때부터 난.. 혼자였어. 나처럼 길에
혼자 돌아다니는 녀석들에게 소매치기, 도둑질 같은 걸 시키고 빼앗아 가는 덩치들이 있었어.
어느 날부터는 훔친 걸 숨기고 안 훔쳤다고 거짓말을 했어. 그랬더니 때리더라고. 그렇게 맞
고 있는데 형이 나타났어. 형 같은 사람 처음 봤어. 피도 살도 하나도 안 섞였는데.. 그렇게
나를 챙기더라고.. 그 후로는 형이 내 부모고, 형제고.. 가족이었어. 뭐.. 지금은 영감이랑 형
수랑.. 너도 있지만.”
혜영이 눈물이 고인 눈으로 고개를 약간 기울여 진혁을 올려다보며 미소지었다.
“나도.. 가족으로 쳐 주는 거예요?”
진혁이 고개를 돌리며 헛기침을 했다.
“흠.. 형이 좋대잖아. 형이 좋으면.. 나도 좋아.”
혜영이 손을 들어 눈물을 닦으며 붉어진 진혁의 귀를 바라보았다.
“쑥쓰러워 하기는..”
“뭐?”
진혁이 붉어진 얼굴을 돌려 혜영을 바라보았다.
“삽사리푸들인 네 얼굴이 훨씬 더 웃기거든?”
“뭐라고요? 영락없는 양아치면서..”
“뭐?”
혜영이 그를 바라보며 웃었다. 진혁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형 보다 내가 먼저 봤으면 좋았을 텐데.. 난 늘 늦더라고.”
“네?”
“추워. 밥이나 먹자고.”
진혁이 모포에서 벗어나 일어나 그녀를 바라보며 머리를 까딱했다. 혜영이 벤치에서 일어나 그의 뒤를 따라 옥상에서 내려왔다. 하지만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아 입에서 한 참을 씹었다.
“힘들어도 먹어. 그래야 힘나.”
“네.”
혜영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문이 열리고 도혁과 원성이 들어왔다. 혜영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와서 밥 먹어요.”
미수가 말하면서 의자에서 일어나 도혁과 원성의 수저를 놓고 밥을 떴다.
“우린.. 나갈 거야.”
도혁이 혜영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혜영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다가와 혜영을 의자에서 일으켰다.
“우린 나가자.”
“어딜요?”
“어디든.”
도혁은 혜영을 데리고 밖으로 나와 차에 태웠다. 그들을 태운 차가 집을 나갔다.
“어디 가는 거야?”
미수가 원성에게 물었다.
“몰라. 맛있겠다.”
“쯧.. 형수는.. 어디 가겠어. 둘이.. 어?”
진혁의 말에 미수가 입을 벌렸다.
첫댓글 잘보고가요
감사합니다..
잘보고갑니다
감사해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