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훼님 어지셔라! 그의 사랑 영원하여라!”(2역대 7,4)
신자들 가운데에는 적지 않은 이들이 ‘여호와의 증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과 조금은 곤혹스러운 만남을 가진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몇몇 가톨릭 신자들이 ‘여호와의 증인’이 되었다는 사실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한국 가톨릭 교회에서 말하는 ‘야훼’와 ‘여호와의 증인’만이 아니라 이땅의 개신교 전체에서 계속 쓰고 있는 ‘여호와’가 본디 같은 이름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본다.
‘야훼’ 또는 ‘여호와’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하느님의 이름이다. 그리고 이 이름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로서 한가지로 발음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지존하신 하느님의 이 존함을 두 가지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남의 성이나 이름을 틀리게 말하는 것은 실례이다. 하느님의 이름을 이처럼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끼리 달리 부르는 것은, 이유야 어찌 되었든, 당신의 이름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신 하느님께 커다란 결례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불행스러운 사태의 배경에는 긴 역사와 아직까지도 완전히 풀리지 않는 어려운 문제가 들어있다.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스물두 자로 된 알파벳을 사용하였다. 그런데 이스라엘인들이 사용한 히브리말 알파벳은, 예컨대 영어의 알파벳과 달리 자음으로만 되어있다.
전혀 다른 글씨 체계를 쓰는 우리로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글자를 자음만 가지고 썼던 것이다.
그래서 예컨대 ‘정의(正義)’에 해당하는 히브리말은 ‘ㅊㄷㅋ’ 식으로만 썼다. (이것도 우리와는 달리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썼다.) 그러고 나서 읽을 때에는 이 자음들에 ‘ㅓ, ㅏ, ㅏ’ 모음을 붙여 ‘처다카’라고 발음하였다.
구약성서 전체가 본디 이런 식으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구약성서의 히브리말을 바탕으로 해서 만든 현대 히브리말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쓰고 읽는다. 우리에게는 너무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익숙해지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런데 말, 그리고 말의 표기법이나 발음법은 시대가 흐르면서 변화하기 마련이다. 역사가 오랜 히브리말도 마찬가지이다. 기원전 6세기 후반, 메소포타미아에 들어선 페르시아 제국과 더불어 히브리말과 비슷한 아람말이 전 근동지방의 관용어가 된다.
그래서 (제2경전을 빼고) 히브리말로 쓰여진 성서에까지 아람말이 들어간다(에즈 4,8-6,12와 다니 2,4-7,28 등). 예수님 시대에는 그래서 유다인들이 벌써 아람말의 유다식 사투리를 일상어로 쓰고 있었다.
성서는 계속 히브리말로 봉독되었지만, 교육을 받지 않은 일반대중은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래서 회당에서 성서가 히브리말로 봉독되면, 곧바로 아람말로 통역을 하였다.
다른 한편, 기원전 587년에 예루살렘이 적군에게 함락되어 성전이 파괴되고 많은 국민이 바빌론 땅으로 끌려가면서, 유다인들은 점점 하느님의 이름을 발음하지 않게 되었다.
하느님의 지존하심, 그리고 그토록 큰 불행을 끌어들인 것이 바로 자기들이라는 자책감과 함께 자기들의 부당함을 뼈저리게 느껴, 감히 하느님의 존함을 그대로 부르지 못한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구약성서에 6000번 이상 나오는 하느님의 이름을 (때로는 우물우물 넘어가거나) ‘아도나이’라고 읽었다. ‘아도나이’는 ‘나의 주(인)님’을 뜻하는데, ‘나의’는 많은 경우 그 의미를 상실한다.
그런데 기원후 750년경에서 1000년경까지 유다인 성서 전문가들이 구약성서와 관련해서 큰 작업을 한다. 그 가운데 중요한 것이, 히브리말 모음 체계를 확립해서 자음으로만 쓰인 성서 본문에 모음 부호를 붙이는 일이었다.
하느님의 말씀인 성서를 틀리는 일 없이 정확히 봉독하게 만들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이마 오랜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옛날의 히브리말 발음과 이 작업을 할 때의 발음 사이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었을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이때 하느님의 이름과 관련해서 또 큰일이 일어난다. 하느님의 이름은 네 개의 자음으로 되어있는데, 영어 알파벳으로 쓰면 ‘YHWH’가 된다.
그런데 유다인 성서학자들은, 사람들이 성서를 봉독할 때에 혹시라도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까 염려해서, 이 이름에다 ‘아도나이’ 또는 ‘엘로힘(=하느님)’의 모음들을 붙였다.
그런데 ‘아도나이’의 모음을 붙이면, ‘야호봐’ 또는 ‘야호와’로 발음되어, 첫 자가 ‘야훼’의 ‘야’와 같아짐으로써, ‘야훼’를 연상시키게 된다. 그래서 ‘아’ 모음을 붙여야 할 자리에 히브리말에서 색깔이 없는 반모음을 붙였다.
이렇게 유다인들은 사람의 입에 담을 수조차 없는 거룩한 하느님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발음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선입관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은 달랐다.
그래서 유다인 성서학자들이 모음을 붙인 허브리말 성서를 읽고서는, 하느님의 이름이 ‘여호봐(Jehovah)’라고 믿게 되었다. 기원후 1100년대부터 이러한 발음이 시작되었으리라고 본다.
그러나 이 발음을 널리 퍼뜨린 사람은 정작 가톨릭 신부이다. 곧 16세기 초반 레오 10세 교황의 고해신부였던 갈라티누스(Petrus Galatinus)이다.
그런데 문제는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느님의 이름을 어떻게 불렀는지 지금으로서는 명백하게 밝혀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유다인들이 지금까지 2천 몇 백 년 동안 발음해 오지 않아서 하느님 이름의 원발음이 상실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의 연구 끝에 ‘여호봐’ 또는 ‘여호와’라는 발음이 위와 같은 과정을 통해 생겼음을 알게 되었다.
이 발음이 틀렸다는 것은 이제 분명하다. 현재로서 원발음에 가장 가까운 것은, ‘야붸(Jahweh/ Jahveh)’ 또는 ‘야웨(Yahweh)’이다. 우리가 쓰는 ‘야훼’도 이 범위에 들어간다.
그래서 하느님의 이름을 꼭 불러야 할 때에는(이 문제는 다음 달에 다룰 예정이다.), ‘예수님’ 하듯이 ‘야훼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서양에서는 하느님의 이름을 ‘여호봐’나 ‘여호와’로 발음하지 않는다. 명백히 틀리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 개신교에서는 아직도 ‘여호와’를 쓴다. 이 전통은 1901년에 출판된 “미국 표준 번역 성서(American Standard Version)”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이 번역본의 공식 수정판인 1952년의 “개정 표준 번역 성서(Revised Standard Version)”에서는, 하느님의 이름을 ‘Jehovah’로 옮긴다는 잘못된 원칙을 버렸다.
고 임승필 요셉/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