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강의 장편소설
因 緣
<제1편 세상 문>
⑰ 양지호라는 사람-9
그녀는 멈칫 서서 열린 문으로 눈을 키우고, 방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넌지시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미친 듯 치마끈을 목에 걸어놓고, 두 손을 마구 허우적거리면서 자신의 목을 끈으로 졸라매려는 경산과, 아이를 등에 업은 채로 치마폭을 움켜쥐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정희의 모습이 정녕 생시에 일어난 일이라고는 볼 수가 없었다.
정숙은 참으로 해괴망측한 악몽과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도시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으나, 정숙은 방안의 이러한 광경을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는 안 되겠다 싶어지었는지 느닷없이 방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녀는 먼저 경산이 인사불성으로 두 손을 모아 잡고 있는 치마끈을 단번에 낚아채 빼앗았다.
“경산 님! 대체 어찌된 일이옵니까?”
“......”
그렇지만, 경산은 묻는 말에는 대꾸하지 아니하고, 정숙이 빼앗은 치마의 한 끝만을 거머쥐고는 막무가내로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마구 끌어당기면서 몸부림을 칠뿐이었다.
“어서 말씀이나 해보세요. 어서 요. 경산 님!”
정숙은 하도 기가 막히어서 이렇게 다그치었으나, 경산은 아직도 제정신으로 돌아가지 않고, 백짓장처럼 질린 얼굴로 이를 갈고 있었다.
“난, 마땅히 죽어야 해요. 이걸 놓아주세요. 죄 많은 년이 살아서 무엇 한답디까. 어서 이걸 놔주세요. 어서-요.”
경산은 속으로 울먹이면서도, 겉으로는 분노의 화염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낯빛이 역력해보였다.
정숙은 그런 경산의 일그러진 표정을 마주 보자, 숨이 막힐 듯이 답답하기만 하였다. 왜 갑자기 이러한 일이 벌어지었는지 사연이나 알았으면 좋겠으나, 경산은 줄곧 무서운 눈빛으로 당장 죽겠다고 만하면서 버티고 있으니, 실로 가슴을 칠 노릇이었다.
그다지 바른 품위와 고아한 태도를 금 쪽 같이 여기었고, 총명하기가 그지없었으며, 기필코 사바세계의 모든 흙탕물을 바로잡겠다고 다짐을 수없이 되뇌더니-. 더욱이 스스로 이미 죽을 기회를 몇 번씩 노리고서도, 그때마다 고비를 넘기었고, 가까스로 새로운 삶을 무던히도 갈망하면서 의욕에 차있었는데, 이제 와서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겠다니, 별일이었다.
경산은 마치 실성하였거나, 미친 사람임에 틀림없어 보이었다.
정숙은 스치는 생각으로 경산이 오늘 집들이를 잘못한 것 같다는 예단이 들기도 하였다.
“경산님! 제가 여기 있는 이상은 그렇게 못하십니다. 경산님이 정히 그러시다면, 저도 경산님을 따라 목을 매고 말겠어요! 어서, 이 끈을 놓으시고, 자결을 하시더라도, 자초지종 말씀이나 해보세요. 경산님!”
정숙도 갑자기 머리끝에서 미열이 치받치어 냉정하고, 격한 어조로 말을 토해내었다.
그러자, 경산은 잡았던 자락끝을 갑자기 놓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무릎을 꿇는가 하더니, 어줍지않은 동작으로 방바닥에 엎디는 게 아닌가.
그것을 본 정숙은 경산이 혀를 깨물어 자결하려고, 그리한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아차리었다. 그러자 그녀는 경산이 몸을 낮추려고 하는 틈을 아예 주지 않고, 무작정 끌어안았다.
그런데 경산은 어느새 혀를 빼물고 눈을 뒤집었다. 그러자 정숙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서 재빨리 치마폭을 움키어다가 경산의 입을 틀어막아버리었다.
그리자 경산은 갑자기 입이 틀어막히었고, 한동안 몸을 버둥거리더니 급기야는, 성을 못 이긴 채, 제풀에 몸이 가무러지고 말았다.
첫댓글 혀를 깨무는 경산이나
치마폭으로 재갈을 물리는 정숙이나
참 대단들 합니다
경산이 제남편을 저지경으로 만든걸 알면
이유불문하고 기분이 좋진안을텐데요
그렇지요. 정숙이 곧 마당에 피투성이가 남편이란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때 정숙의 태도와 경산의 태도가 어떤지는 자못 궁금합니다. 만일 여기서 정숙이 토라진다면 모든 것은 괴멸되고 말지요. 그래도 절밥을 5년이나 먹은 정숙이고 시집에서의 핍박도 당해보았고 본디 착한 여자라서 마음씀씀이 되레 경산보다 너그럽다고 봐야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