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제대로 보고 한 점 놓치는 현상 있을 새라, 아님 누가 나를 해코지나 하지 않을까 얼굴 바짝 쳐들고 끊임없이 눈알 이리저리 굴려 보지만 어디 세상이 손 안에 든 듯 내 맘대로 되는 게 무릇 몇이나 있었을까.
그럴진대 차라리 눈을 감고 심연(深淵)에 빠져 들어가듯 고요의 경지에 들어 삶을 관조할 수 있다면 그로써 나를 알고 삶을 이해할 수 있을 터인데, 사람들은 무에 그리 끝 모르는 조바심으로 뒤도 옆도 돌아보지 못하고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을까?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Alice's adventures in the wonderland)』에서 붉은 여왕이 한 말 있었는감? 나 혼자만 눈을 부릅뜨고 정신 차린다고 남들조차 맹탕 그 자리에 머물고 있을까? 에궁! 그게 바로 지금 나의 자화상이려니...
잠시의 짬을 내어 스페인 출신 화가 구디올(Montserrat Gudiol)의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서, 숨가쁘게 달려온 나의 삶의 족적을 한 번쯤은 돌아다 볼 여유를 가지는 것 또한 의미있는 일일 터. 하긴 뭐 퇴직한 지도 오래인 내게 잠시의 짬을 낸다기보다는 하루 온종일 그녀의 그림을 들여다 보는 것도 스님들이 면벽좌선(面壁坐禪)하는 거랑 다를 바 없다고 보긴 하지만...
구디올은 젊은 시절 고화(古畵), 특히 나무와 종이에 그린 그림의 복원(復元)에 관하여 공부하였다고 한다. 그의 그림의 출발점은 상징주의와 더불어 세밀함에 가치를 두는 양식화(stylization)를 통하여 걸러진 광범위한 구상화의 전통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는 그림의 가장자리로 갈수록 색상을 희미하게 처리하는 방법을 통하여 얼굴 표현의 가소성(plasticity)을 탐색하고, 대상이 가지고 있는 개별적이고 차분한 후광(halo)뿐만 아니라 그러한 후광을 생성해 내는 분위기에서 나오는 영성(spirituality)을 탐구했다.
구디올이 그리는 인물의 감성은 그 인물들의 잘 생기고 약간은 기괴하며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얼굴들에서 발현되며, 따라서 그녀가 그린 여인들은 미묘하고도 상징적인 모습을 띄게 된다는 것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