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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아침 7시 30분, 일행은 설악산 한계령에 이르렀다. 양양의 낙산 해수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나섰다. 설악산 일출을 보려고 기대하였으나 날이 흐렸다. 일기예보를 들으니 오후에 1cm~5cm 가량의 적은 눈이 내릴 것이라고 한다. 10cm 이하의 적은 눈이면 가능하겠으나 10cm 이상의 눈이 내리면 산행이 어려울 것이다. 설악산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등산객의 안전을 위해 입산을 금지시킬 것이다.
7시 40분, 이형, 조형, 어형과 함께 한계령 휴게소를 출발하였다. 한계령 휴게소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설악루를 출발하였다. 한계령에서 설악산 서북능선에 이르는 약 1.9km의 산길은 급한 경사를 이루고 있었다.
9시 30분, 일행은 서북능선의 갈림길에 도착하였다. 갈림길은 설악산 대청봉과 귀때기청봉의 중간에 위치한 갈림길이다. 이 갈림길에서 오른쪽 능선을 따라 걸으면 설악산 대청봉에 이르고 왼쪽 능선을 따라 걸으면 귀때기청봉에 다다른다.
일행은 대청봉을 향해 산길을 천천히 걸었다. 서북 능선은 설악산에서 가장 편안한 길이다. 한 눈에 들어오는 길 건너 가리산, 점봉산의 설경이 장관이다. 발 아래로 한계령을 오르는 구불구불한 길이 옆구리를 휘돌아 오른다. 맑은 날이었으면 좋으련만 가느다란 눈발이 날린다.
대청봉에 오르는 길에는 주목이 많았다. 주목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몇 장을 찍고 일행은 눈으로 다져진 산길을 여유있게 걸었다. 능선에 놓인 겨울나무들이 죽은 듯 고요하다.
산길에는 수명을 다하고 죽은 고사목이 많았다. 도한 이런저런 사고로 제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은 나무도 많았다. 가뭄과 수해와 폭설과 병해로 설악산 서북능선에 놓인 나무들은 고달픈 삶을 살아간다. 거기에 더하여 한 겨울에는 모진 바람에 시달린다. 그래서 서북능선에 서 있는 나무들은 저마다의 독특한 이력을 몸에 달고 있다. 서북능선에 놓인 겨울나무들을 보고 있으려니 ‘생로병사’의 사자성어가 생각난다. 나서 자라 쇠하고 병들어 죽는다는 자연의 이치가 저절로 생각난다. 여름철 설악산 서북능선의 나무들은 ‘희로애락’을 말하더니 겨울철 서북능선의 나무들은 생로병사를 말하고 서있다. 한 마디로 인생무상이다
자연의 이치는 모든 사물에 적용된다.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삶과 죽음의 과정이다. 문득 ‘세 가지의 가르침’이라는 중국 고사 하나가 생각난다.
상용(商容)이 자리에 누웠다. 노자(老子)가 문병하며 물었다
스승님! 제자에게 남기실 가르침이 없으신지요?
고향을 지나거든 수레를 내리거라.
고향을 잊지 말라는 말씀이시군요.
높은 나무 아래를 종종걸음으로 가거라.
노인을 공경하라는 말씀이시군요.
내 이가 있느냐? 내 혀가 있느냐?
부드러운 것은 남는다는 말씀이시군요.
천하의 일을 다 말했느니라.
상용은 비로서 돌아누웠다.
11시 30분 경, 끝청봉을 지나 중청봉에 이르렀다. 작은 알갱이의 눈발이 날려 대청봉을 가린다. 대청봉에 오르는 길에 누운 잣나무를 찾아보았다. 여름에는 푸른 비단과 같은 모습이더니 겨울에는 자취를 숨기고 있었다. 누운 잣나무는 산기슭에 누워 하얀 눈을 이불로 덮고 있다. 모진 눈보라를 견디려면 차라리 눈을 덮고 누워 있는 것이 현명하다.
대청봉에 올라 내설악으로 불리는 화채능선과 천불동 계곡을 내려다본다. 날씨가 흐려 풍경이 반감된다. 대청봉 정상에서 대간의 마루금을 따라 약 100m 내려오면 헬기장이 있다. 이곳에서 등산로 아님의 철조망을 넘어 비탈길을 내려가면 바로 희운각이다. 희운각 대피소의 무너미 고개는 천불동 계곡과 가야동 계곡이 나뉘는 대간 상의 분수령이다. 그런데 대청봉에서 공룡능선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길은 철저히 통제 되어 있다. 지난해의 폭우로 인한 산사태로 대청봉에서 무너미 고개로 이어지는 산비탈은 속살이 벌겋게 드러나 있다. 천재인가 인재인가?
중청산장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빵과 캔 커피로 간식을 먹었다. 국립공원 관리공단 직원들이 햇반과 캔 커피 등의 간단한 먹거리를 팔고 있다. 12시가 되자, 직원들이 1일 근무르 마치고 임무 교대를 한다. 오늘 12시에 출근해서 내일 12시에 퇴근이다.
대간을 우회하여 중청봉에서 소청봉을 거쳐 희운각으로 행하였다. 소청봉에서 잠시 일행과 떨어져 소청산장으로 향하였다. 소청산장에서 내려다보이는 용아장성의 겨울 풍경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사람이 없는 소청산장은 조용하고 발아래로 보이는 용아장성의 암봉들은 당당하다.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의 모습으로 봉정암을 장군처럼 호위하고 서있다. 일견 불국사 석굴암에 암각되어 있는 십일면관음상의 모습이기도하다.
다시 소청봉으로 올라와 희운각으로 내려갔다. 오늘 희운각에는 오고가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토요일인 내일 밤에나 일요일에는 설악산을 찾는 등산객으로 법석일 것이다. 희운각 산장지기에게 하룻밤 묵어 갈 것을 말하니 숙박료는 5천원, 담요는 2천원이라 한다.
희운각의 뜨락에는 낮으막한 야외용 식탁과 의자가 대여섯 개 설치되어 있다. 그곳에 앉아 쉬려니 아기 주먹보다 작은 박새들이 우리 주변을 포르르 포르르 날아다닌다. 무슨 일인가?하였더니 먹이를 내어 달라는 신호라는 것이다. 배낭에서 건빵을 꺼내어 식탁에 놓았더니 잽싸게 날아와 먹이를 물어간다. 그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여 서너 번을 반복하며 카메라에 담았다. 대담한 놈은 손바닥 위에 놓은 건빵도 물어간다. 산장지기의 말을 들으니 먹을 것을 주지 않을 때에는 사람을 쪼기도 한다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사흘 굶어 도둑질 안하는 사람 없다’고 한 말이 생각났다.
오후 3시경, 저녁 겸 늦은 점심으로 떡라면을 끓여 먹었다. 소주도 서너 잔 씩 나누어 마셨다. 산장지기와 이형의 대화가 이어졌다. 대부분 설악산에서의 조난 사고에 대한 것이었다. 30년 전, 대학 산악회 동아리 시절의 추억담과 최근 설악산에서의 조난 사고였다. 지난해에는 사진을 찍다 실족하여 추락사한 사건, 눈보라에 길을 잃어 동사한 사건이 있었다고 하였다.
자가 발전기를 돌려 켜는 전깃불인 탓에 져녁 8시에 일찍 소등하였다. 장판 마루에 담요 한 장을 깔고 덮고 초저녁잠을 청하였다. 인천에서 온 여성 셋과 산악 캠프에 참여한 남녀 대학생 둘, 그리고 우리 일행 4명이 함께 잤다. 석유난로를 피워 온기는 있었으나 계곡에 널린 돌을 쌓아 단열재 없이 지은 희운각 산장은 추웠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하지만 깊은 잠에 들지 못한다. 겨울에 설악산에서 1박 하기에는 지하에 방을 꾸민 중청산장이나 백담사가 오히려 좋을 듯 하다.
아침 7시 40분경, 공룡능선으로 출발하였다. 컵라면을 먹고 막 출발하려는데 대청봉을 거쳐 희운각으로 내려오는 등산객이 있었다. 시작 지점을 물으니 한계령에서 오는 길이라고 하였다. 새벽 4시에 출발하였다니 3시간 40분 만에 주파한 것이다. 대단한 주력을 가진 그는 산머루 산악회 표지를 매달고 있었는데 나와 비슷한 50대의 나이로 보였다.
신선봉을 지나 1,275봉으로 향하였다. 천화대로 이어지는 공룡능선의 뼈대가 또렷하다. 한 여름에는 숲에 가리고 가을에는 구름 안개에 가려 제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런데 한 겨울인 지금 천화대는 바위 알몸을 그대로 들어냈다. 범봉은 하늘을 찌를 듯하고 천불동 계곡을 이루는 작은 봉우리는 아름답다. 그러나 역광을 받고 있는 서북능선은 그늘에 들어 그 모습이 불투명하다.
오전 9시경, 1,275봉을 향해 가는 길에 뒤통수가 근지러웠다. 무슨 일일까? 궁금하여 무심코 뒤돌아보았더니 일출이었다. 동지를 갓 지난 지금 해는 아직 남회귀선에 걸려 있다. 남쪽이라고 생각한 신선봉에서 붉은 해가 돋다니 신기하기만 하다. 구름 위로 솟은 때 늦은 태양이지만 서둘러 신선봉 일출을 카메라에 담았다. 전혀 예기치 못하엿던 장면이었던 것이다.
1,275봉 아래 돌벽에 책받침 크기의 동판 하나가 붙어 있었다. 아마도 범봉을 우회하려다가 등반 사고를 당한 산꾼을 추모한 표지였다.
10시 30분경, 노인봉과 나한봉을 지나 마등령에 이르렀다. 당초 4시간을 예정하였으나 3시간 만에 주파하였다. 앞서 지나간 산꾼들이 내린 눈을 다져 놓았기로 길이 좋아 시간이 단축되었다. 그런데 목이 말랐다. 아침밥이 아닌 컵라면을 먹은 때문이었다. 마등령에서 식수를 구하려면 곰골의 급경사를 10분 정도 내려가야 샘터가 있다. 그리고 오세암으로 가려면 1시간 쯤을 내려가야 한다. 작은 물병에 담은 물을 아껴 먹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마등봉에 올랐다. 마등봉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내설악의 풍경이 장관이다. 화채능선 아래의 작은 봉우리들이 흰 눈과 계곡의 음영으로 메 山자를 그리고 있다.
일행은 마등봉에서 황철봉을 향해 들어섰다. 마등령에서 1249.5m봉을 지나 저항령까지는 도상거리 6km이다. 그렇지만 이곳은 무릎 관절을 괴롭히는 너덜지대가 있어 주의해야 한다. 여기저기 입을 벌리고 있는 난코스로 보행 속도를 떨어뜨린다. 특히 1249.5m봉을 지난 너덜지대는 돌과 돌 사이의 구멍이 깊고 넓어서 발밑을 주의해야 한다. 일행은 산행 안전을 위해 천천히 통과했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저항령에는 왼쪽 길골로 내려서면 샘터와 막영지가 있어 한 여름에는 야영이 가능하다고한다. 신흥사가 바라다 보이는 문바위골을 통해 설악동으로 탈출할 수 있으나 계곡이 험하고 비가 오면 갑자기 수량이 불어 위험할 수 있어 장마철에는 주의해야 한다.
저항령에서 미시령까지는 도상거리 4.7km였다. 여기저기 널려 있는 너덜지대를 통과해 황철봉을 오르면 또다시 내리막 너덜지대가 나왔다. 바위틈에 매달린 고드름을 따서 우두둑 우두둑 깨물어 먹었다. 갈증 해소에 다소 도움이 되었다.
오후 3시경, 황철봉을 지나는데 구름안개가 몰려왔다. 구름 안개는 외설악인 동해안에서 올라왔다. 동해 바다의 따뜻한 습기를 머금은 공기가 상승하여 공룡능선에 닿았다. 내설악의 찬 기운과 만나 순식간에 구름이 만들어졌다. 구름은 내설악과 외설악으로 구분하는 공룡능선을 따라 하얗게 퍼져 오르다가 수직으로 상승한다. 구름이 생기는 까닭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니 신기하기만하다. 운무는 내설악과 외설악이 태극으로 만나는 공룡능선을 경계로 발생하였다. 구름은 일행이 지나온 설악산 공룡능선을 사이에 두고 음양의 이치로 변화무쌍하다.
마등령에서 황철봉을 지나 미시령에 이르는 구간은 길었다. 허벅지까지 쌓여 내린 눈을 헤집고 가려니 시간이 많이 걸린다. 4시간을 예상하였으나 8시간이 걸렸다. 눈길이어서 1.5배, 너덜 길이어서 1.5배 도합 2배의 시간이 걸렸다.
미시령에 가까이 오니 먼빛으로 바다가 보인다. 동해 바다 쪽으로 그 유명한 울산바위가 노을빛으로 들어온다. 그러나 이미 어두운 햇빛이어서 카메라에 담기는 어려웠다.
미시령휴게소의 불빛이 보이는 산길에서 헤드라이트를 꺼내 썼다. 미시령휴게소는 백두대간을 깔고 앉아 있었다. 동해 바다와 속초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곳은 조망이 뛰어나다. 멀리 오징어잡이 배의 집어등이 밤바다를 등대처럼 밝히고 있다. 그 앞으로 설악산과 동해 바다를 찾는 관광객을 맞는 속초시의 불빛도 찬란하다.
454번 국도 미시령은 해발 767m로 눈이 오면 제일 먼저 통제되는 고개였다. 과거 군사도로였던 것을 2차선으로 확장하고 포장하였다. 그러나 미시령 터널이 뚫린 후로 미시령을 넘는 차량은 별반 눈에 띄지 않는다. 눈이 많은 지역이어서 스키장으로 적합하겠지만 대도시로부터의 거리가 멀다.
6시 30분경, 어둠을 뚫고 도로에 내려서니 이형의 가족들이 환호성을 올려 일행을 맞이한다. 11시간의 다소 힘든 겨울 산행이었다. 산행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었으면 자칫 무모한 산행으로 치부될 수도 있는 산행이었다.
일행은 서둘러 설악산 백담사 입구의 용대리로 향하였다. 이곳에는 설악산 관광객을 맞는 맛있는 식당들이 있었다. TV 방송에 맛있는 집으로 소개된 순두부 백반 식당에서 산채 비빔밥과 순두부 백반으로 허기를 달랬다.
첫댓글 설악산이 보여줄게 많은가 봅니다.일박까지 하시며 산과 호흡한 시간은 잊혀질수 없겠죠.약간은 무모해야 스릴도 맛볼수 있는거 같기도 하고..지친 근력만큼 배가된 성취감을 느꼈으리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