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설쳐 새벽에 눈을 떴다가 잠이 안와 거실에 홀로 앉아 TV를 켜니 마침 케이블 방송에서 "장승업"의 생애에 관한 영화 "취화선"을 방영하고 있었다. 전에 본 영화지만 다시 보는 재미도 솔찮았다. 그 영화로 인해 "임권택" 감독은 칸 영화제에서 최고감독상을 받은 것으로 기억한다. 위에 보이는 그림 미인도가 손예진을 닮아 손예진이 케스팅 되었다는 것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고...
내가 장승업에 대해 아는건 단지 안견(安堅), 김홍도(金弘道)와 함께 조선시대의 3대 거장으로 일컬어진다는 것과 1843년생이고 1897년 55세로 소풍길 끝냈으니 올해는 그 분이 서거하신지 110주년 되는 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터넷에서 그분의 그림을 찾아 서거 110주년을 기리는 뜻에서 블로깅을 시작한다.
장승업은 일체의 세속적인 일을 돌아보지 않고 진정한 예술가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에게는 금전도, 권력도, 심지어는 가정도 하찮은 것이었고, 오직 예술과 그 예술적 영감을 북돋아주는 술뿐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술과 여자를 몹시 좋아하여 미인이 옆에서 술을 따라야 좋은 그림이 나왔다고 하였으며, 또한 아무 것에도 얽매이기를 싫어하는 방만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고종(高宗)임금의 어명을 받아 궁중에서 한 작업도 그에게는 구속이었고, 그림의 대가로 받은 금전도 간수하지를 못했으며, 어쩌다 얻은 부인과의 가정생활도 꾸려가지 못했다. 장승업은 일평생을 그의 그림을 구하는 후원자들의 사랑방이나 술집을 전전하며 뜬구름같이 보냈다.
그는 호가 취명거사일 정도로 술을 좋아하여 잔만 들면 삽시간에 말술을 마시며, 또 몇 달은 계속 취해 있는 수도 있었다고 한다. 돈이 손에 들어오면 그것을 죄다 술집에 맡겨놓고 매일 마시되, 술값 계산은 하지 않았으며 술집 주인이 돈이 다 떨어졌다고 하면 그러냐고 고개를 끄덕이고 그저 술만 내놓으면 되지 셈이 얼마나 되었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뜬구름 같은 생애와 수수께끼 같은 죽음은 일체의 세속적인 것을 거부했던 진정한 예술가의 삶의 한 전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