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포말 일으키는 메밀꽃 바다 ‘강원도 봉평’

[고은희]

하얀 포말 일으키는 메밀꽃 바다 ‘강원도 봉평’

산허리까지 이어지는 꽃 향연, 순수의 절정시대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중에서).
가을 들녘을 하얗게 수놓는 메밀꽃의 고장 강원도 봉평은 꽃이 절정을 이룬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메밀꽃 바다 강원도 봉평을 향해 달이 기울기도 전에 길을 나섰다.
뿌연 안개를 뚫고 질주하는 동안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고 여행의 감흥때문인지 우리의 산야가 이국적으로 다가온다.
계속된 질주로 예상보다 빨리 봉평에 닿을 수 있었다. 산허리를 하얗게 휘감은 메밀꽃의 아름다움에 취해 가슴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
봉평(蓬平) 땅은 향기로운 풀들이 자라는 고랭지였던 곳으로 예로부터 ‘쑥(蓬)의 뜰(平)’이라고 할 만큼 쑥과 약초가 풍부해 이름이 붙여졌다.
지금도 변함없이 약초가 풍부한 곳이기도 하지만 메밀로 인해 본래의 뜻이 무색해 졌다.
봉평이 내세우는 메밀은 씨를 뿌린 후 석 달 안에 수확할 만큼 성질이 급하다.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서 한 해 농사를 망친 경우 구황작물로 비탈 밭에 7월 말부터 말복 무렵까지 씨를 뿌려서 급하게 거둬들일 수 있다. 질긴 생명력이 예전 우리 어머니의 모습을 그대로 닮았으며, 쌀 대신 사용한 서민의 애환이 서려 있는 작물이다.
하지만 이젠 옛말이다. 먹기 위해서만 키우는 메밀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게 만드는 상품으로서 꽃을 피운다. 때마침 가산 이효석 선생의 문학 혼을 기리는 효석문화제(9월6일부터 15일까지)가 진행되고 있다.
이효석 생가터가 있는 ‘효석문화마을’에는 소설에 등장하는 물레방아와 주막 등을 재현해 놓았다. 키 큰 돌배나무가 서있는 초미니 ‘가산 공원’에도 사람들이 제법 모여 있다. 허생원이 별 재미를 못 봐 허탈해 했던 봉평장은 아직도 서고 있는데, 축제기간동안 전국 각지에서 상인들이 몰려들어 생동감이 넘친다.
이곳 행사는 섶다리 건너기와 종이배 띄우기, 수수깡 체험, 봉숭아물들이기 등이다. 1930년대 소설 속의 모습을 재현한 2천평 규모의 전통 재래장터에는 40여개 전통 먹을거리 코너와 전통민속놀이 체험마당도 마련돼 있어 소설 속에 등장하는 한 인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물 맑은 흥정천에 세워진 섶다리가 운치를 더한다. 파란 가을 하늘, 초록 숲 등 선명한 배경으로 더욱 새하얗게 도드라지는 메밀꽃이다. 콩알이 터지듯 펑펑 피어나는 메밀꽃에 반한 사람들은 어린아이처럼 그 사이 길을 걷거나 뛰어다닌다.
원두막에서 보는 메밀꽃은 색다른 묘미를 느끼게 한다. 흐린 날 안개라도 뿌려지면 몽환적인 매력에 휩싸여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다.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라는 효석의 기막힌 표현대로 메밀꽃의 아름다움에 현기증이 날 정도다.
소설에서처럼 허생원과 성씨처녀가 사랑을 나누었던 물레방아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
물레방아가 있는 초막 뒷산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이효석문학관이다. 이곳은 효석의 생애와 유품, 작품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꾸며져 있고 한켠에는 메밀에 대한 궁금증이 해소될 만큼 메밀에 대한 자료가 풍부하다. 문학관인지 자료관인지 잠시 혼돈이 되기도 한다.
문학관 정원에는 집필하고 있는 효석의 브론즈 상이 세워져 있다. 브론즈 상 옆 자리가 비어져 있는데 그 빈자리 주인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다. 마치 효석의 혼이 담겨있는 듯한 브론즈상 옆에서 대화를 시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문학 정신이 느껴진다.
문학관에서 내려와 자동차로 5분 거리에 메밀밭을 정원 삼아 아담한 집 한 채가 자리 잡고 있다. 강원도 산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덩그런 외딴 집이 이효석이 태어난 생가다. 이 집은 효석이 태어난 터이기는 하나 지금은 다른 집안의 사람에게 소유권이 넘어가 내부를 들여다 보지 못한다. 이 터 옆에는 2개의 큰 식당과 찻집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어 생가의 이미지가 흐려지는 느낌이다. 집 입구에 효석의 비가 놓여 있는 게 전부이며, 마당 앞 연보랏빛 비비추만이 효석의 문학정신처럼 아름답게 비칠 뿐이다.
'금강산도 식후경?'
봉평에서 먹어보는 메밀음식은 일품이다. 때로는 탄탄대로의 길보다 척박한 길을 택하기도 하고 미끈한 음식보다 까칠한 음식을 즐길 때가 있다. 메밀은 까칠한 음식이라 여겨진다. 입안에서 매끄럽게 구는 음식이 아니라 자존심을 세우면서 거친 숨소리를 내는 음식이다.
열을 가하지 않고 물레방아를 이용해 빻은 메밀가루로 만든 음식들로 요기를 채웠다. 메밀 묵사발, 비빔 메밀, 메밀전병, 메밀 묵사발, 메밀묵 등에다 이곳의 특산품인 메밀꽃술까지 어느 하나라도 놓칠 수 없는 맛이다.
울산에서 가는 길은 경부고속도로로 북대구를 지나 4km 쯤 우측으로 춘천방향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제천, 신림 남원주 지나서 만종터널을 통과하면 2km 쯤 우측으로 영동고속도로 강릉방향이다. 원주ㆍ새말ㆍ둔내ㆍ면온을 지나 장평IC로 나오면 봉평으로 가는 길이다.

고은희기자 gogo@newsis.com

사진설명 :

메 : 가산 이효석 생가터

메1 : 봉평땅에서 본 조

메2 : 문학관에 전시된 소설 속 허생원과 동이

메3 : 봉평 섶다리

메4 : 메밀 꽃길을 달리는 어린아이

메5 : 허생원과 성씨처녀의 사연이 깃든 물레방앗간

메6 : 메밀모듬요리

메7 : 물레방아를 이용한 메밀 빻기

메8 : 현기증을 일으키게 하는 아름다운 메밀꽃

메10: 봉평의 색깔 고운 코스모스

메11: 물레방아의 힘

[태청인]

정말 좋은 곳이군요 한번두 가보지못했구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