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삶이 점점 복잡해짐에 따라 문학의 개념도 점차 분화되기 시작하여 차츰 학문이나 道에서부터 벗어나게 되었고, 드디어는 음악, 미술, 등과 함께 예술로서의 문학을 정립하기에 이르렀다. 문학은 언어를 표현매체로 하여 인생과 자연 (곧 현실)을 형상화한 미적 창조의 세계를 말한다. 결국 한국문학은 한국인이 한국인의 사상과 감정을 한국어로 표현한 문학이라 할 수 있다. 이 때의 한국인은 한국인이란 민족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가리키며, 한국어란 국문뿐만 아니라 한문의 음과 훈을 빌어쓴 향찰은 물론 우리식으로 사용했던 한문까지도 포함하여 가리키는 말이다.
한국문학의 범위는 음성언어와 문자언어의 표현적 구분에 따라 구비문학과 기록문학으로 나뉘며, 기록문학은 우리의 역사 속에서 통용 되었던 문자에 따라 신라 시대의 향찰문학, 한자 수입부터 현재까지도 존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한문문학, 그리고 정음창제 후부터 지금까지 존재하는 국문문학이 그것이다.
한국문학을 구비문학과 기록문학, 한문문학과 국문문학, 고전문학과 현대문학 등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일은 은연 중 서로 배타적인 관념을 형성시켜 주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의 연구 활동에서는 분야별로 나누어야 할 필요성이 있고, 그러한 때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것이 바로 장르가 아닐까한다.
또, 문학에서 같은 계열의 작품들을 하나로 묶고 갈래를 나누는 목적은 문학의 전체적인 것을 조감하자는 데에 있다. 어떤 학문이든 종합적인 데서 구체적인 데로 이해해 나가는 방법이나 또 부분을 먼저 알고 전체를 이해하려는 반대의 방법도 매우 유용한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결국 분류의 과정을 겪어야만 하기 때문에 갈래의 파악은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할 과제임에 틀림없다.
국문학 연구에 있어서 갈래 문제처럼 다양한 용어와 많은 의견이 개진된 분야도 그리 많지 않다. 외국어를 차용한 장르에서부터 형태, 양식, 갈래 등과 이밖에 부문, 부분, 분류 등의 용어까지 혼용되어 통일되지 못하고 각인각색으로 사용해왔던 것이다.
이러한 용어의 불통일 문제가 비단 갈래에 한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연구나 교육, 그리고 일반 교양인들의 국문학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이 되지 못한다면 분명히 바로잡아 두어야 할 일이다. 이 갈래라는 용어를 달리 쓴다고 해서 고려의 속요를 ‘長歌’라는 용어를 썼을 때나 ‘歌辭’를 ‘歌詞’로 썼을 때와 같은 심각한 혼란이 있는 것이 아니지만 용어의 통일은 선결되어야 할 과제임은 부인할 수 없다.
장르란 명칭은 프랑스어 genre에서 온 말이다. 본디는 라틴어 genus에서 유래한 것으로 프랑스의 문학사가인 브륜티에르(Ferdinand Brunetuere; 1849~1006)가 다윈의 『종의 기원』의 영향을 받아 생물학에서 동식물의 분류와 체계를 세우는 데 사용하던 용어였으나, 문학에 원용되면서 문학의 종류를 뜻하게 되었다. 종래, 문학의 종류를 뜻하는 우리말 용어로 「文體」「部門」「樣式」「形態」 등이 쓰였었다. 우리나라에서 예로부터 쓰이던 용어로는 「문체」가 있는데, <東文選>에서는 이를 辭․賦․詩․ 詔勅․敎 등 48종으로 나누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한문학에만 쓰일 뿐 오늘날의 문학 갈래론과는 맞지 않는다. 그리고, 「문체」라는 말은 오늘날 의미 변화를 거쳐 「스타일」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趙潤濟는 갈래의 상위개념을 「부문」, 하위개념을 「유형」 또는 「형태」라 했는데, 이러한 용어는 현재 두루 쓰이지 못하고 있으며, 高晶玉 등은 「형태」, 張德順 등은 「양식」이라는 말을 썼으나 이 용어들은 문학의 「형식」과 거의 유사한 개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문학의 종류를 뜻하는 용어로서는 적당하지 못하다. 그래서, 종래 주로 사용해 오던 「장르」란 외래어 대신 「문학의 종류」란 개념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갈래」란 용어는 이미 몇몇 학자에 의해 쓰인 바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장르라는 용어가 가장 널리 사용되어 왔다. 조윤제는 장르류를 ‘부분’, 장르종을 ‘유형’ 또는 '형태‘라고 하였고, 고정옥, 이능우, 김동욱, 이병기등은 ’형태‘, 장덕순은 ’양식‘이라 하였다. 그러다가 김수업이 ’갈래‘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이에 동조하는 학자들이 불어났다. 순수한 우리말로서의 친근감은 있지만, 이는 한자어의 ’종류‘와 거의
상통할 수 있는 용어로서 예술 일반의 표현양식에서 사용하는 장르라는 말과는 그 외연성이 거의 무제한하다는 면에서 아직은 그 적절성이 충분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에 특정한 개별문학의 전반적 윤곽을 파악하고 한국문학의 장르의 특수성에 관해 살펴보도록 하자.
2. 문학의 장르의 특수성
국문학 갈래론은 국문학 연구의 그 어느 분야보다도 혼란이 심하였다. 이렇게 된 것은 갈래구분에 대한 체계적인 이론이 부족했기 때문이며, 한편으로는 국문학의 몇몇 作品群이 지닌 특수성 때문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부터 趙東一에 의해 체계적인 갈래론이 전개됨으로써 국문학 갈래론은 획기적인 새로운 차원에 접어들게 되었다. 그러면, 지금까지 제기된 국문학 갈래론을 정리하고 각 갈래론의 문제점과 특수성을 검토해 보기로 한다.
(1) 시가․산문의 2 갈래설
李秉岐는 국문학을 시가문학과 산문문학으로 크게 갈래짓고, 시가문학은 다시 잡가․향가․시조․별곡체․가사․악장․劇歌로 구분했으며 산문문학은 설화․소설․내간․일기․기행․잡문 등으로 구분했다. 구분의 원리로서 「시가는 운율이 있고 정형이고 표현이며, 산문은 운율이 없고 散形이고 서술임」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운율 여부에 따라 갈래를 구분하고 말았기 때문에 국문학의 유기적인 체계를 보여주는 갈래론에 이르지 못하고 율격론에 머문 감이 있다.
金起東은 이병기의 갈래론을 계승하여 「율문 장르群」과 「산문 장르群」으로 나누었다. 「율문 장르群」은 시적 장르와 극적 장르로 나누고, 시적 장르에는 향가․속요․별곡․시조․가사․송시․신시가 있으며, 극적 장르에는 판소리가 있다고 했다. 또한 「산문 장르群」은 소설 장르․희곡 장르․수필 장르․평론 장르로 구분했다. 형식에 따라 구분하다 보니, 다 같은 극갈래인 극적 장르(판소리)와 희곡 장르가 하나는 「율문 장르群」에 속하게 되고, 다른 하나는 「산문 장르群」에 속하는 모순이 생기게 되었다. 「극적 장르(판소리)」를 율문 장르群에 소속시킨다면 판소리계 소설도 율문 장르群에 소속시켜야 할 것이다. 金俊榮도 이병기의 2갈래설을 따르고 있다.
(2) 시가․가사․문필의 3갈래설
趙潤濟는 <朝鮮詩歌史綱>에서 시가․산문 2분설을 택하였으나, <韓國詩歌의 硏究>에서는 「歌辭文學도 朝鮮文學의 특수성을 잊어버리고 그냥 형식론에 끌리어 詩니 혹은 歌니 하고 규정하여 버릴 수는 없을 것」이라 전제하고, 가사는 형식상 시가이지만 내용상으로는 문필이기 때문에 독립된 갈래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시가․가사․문필이라는 3분설이 나옴으로써 갈래론이 비로소 형식론을 떠나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다. 그러나, 조윤제의 3분설은 형식과 내용이라는 두 가지의 구분 기준을 적용함으로써 교차분류가 되고 말았고, 시가와 문필의 개념규정이 모호함으로써 그 外延 또한 불분명하게 되었다.
(3) 시․소설․수필의 3갈래설
李能雨는 가사를 수필로 보고서 시․소설․수필이라는 3분설을 내세웠다. 이능우가 말하는 수필은 시․소설․희곡 등 픽션적인 것을 제외한 문예작품을 총칭하는 것으로, 일기․기행․편지문․만필 등과 가사를 뜻한다. 이처럼 수필 갈래를 설정한 것은 조윤제의 체계를 계승 변형한 것인데, 희곡을 제외한 것은 큰 결함이라 하겠다. 한편, 이능우는 <국문학의 형태>에서 수필 대신 <漫錄>이라는 갈래를 설정하였다.
(4) 시가․가사․소설․희곡의 4갈래설
조윤제는 「문필」을 다시 소설과 희곡으로 구분하여 국문학의 큰 갈래를 시가․가사․소설․희곡으로 나누었다. 이 네 갈래를 4대부문이라 하고, 부수적인 부문으로 평론과 잡문을 들었다. 개념이 모호하던 「문필」을 소설․희곡․평론․잡문으로 나누어 보다 명확히 했으나, 소설과 희곡은 「4대부문」에, 평론과 잡문은 「부수부문」에 소속시켜 다른 차원으로 취급한 점이 특이하다. 「부수부문」이라 했지만, 문학인 이상 어디에 소속시키거나 아니면 독립된 갈래로 인정했어야 보다 포괄적인 갈래체계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가사」라는 큰 갈래가 작은 갈래 자체가 되고, 「소설」이란 큰 갈래 속에 「소설」이란 작은 갈래가 포함된다는 것은 갈래론의 근본 뜻에 어긋나고 있다.
시가 : 향가․장가․경기체가․시조
4대부문 가사 : 가사
소설 : 신화․전설․설화․소설
희곡 : 가면극․인형극․창극
부수부문 : 평론․잡문
(5) 서정․서사․극의 3갈래설
장덕순은 큰 갈래와 작은 갈래의 개념을 명확히 인식하고 서구의 갈래론을 원용하여 서정적 양식, 서사적 양식, 극적 양식으로 구분하여 국문학 갈래를 체계화시키려 하였다.
첫째, 서정적 갈래 : 고대가요, 향가, 고려속요, 시조 , 서정민요, 한시, 허두가, 신체시, 현 대시. 가사, 잡가
둘째, 서사적 갈래 : 설화(신화․민담․전설)․ 소설(전기적 소설․서사시)․ 수필(일기․내간․기행․잡 필․객관적 서사적 가사)
셋째, 극적 갈래 : 가면극․인형극․창극
가사를 양분하여, 주관적 서정적 가사는 서정갈래에 넣고 객관적 서사적 가사는 서사갈래에 넣은 점이 특이하고 일기․내간․기행․잡필과 객관적 서사적 가사를 묶어 수필이라 하고서 이를 서사갈래에 소속시킨 것이 또한 주목된다. 「수필문학은 엄밀한 의미에서 서사적 양식은 아니다」라고 스스로 말하면서 일기․서간․기행․평민가사 같은 데 다소 스토리가 개재되어 있다고 하여 수필을 편의상 일괄적으로 서사갈래에 넣었다는 것은 논리상 타당성이 없다. 가사도 서정적인 것과 서사적인 것으로 2분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러나 서정․서사․극이라는 큰 갈래를 설정함으로써 국문학의 갈래론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다.
한편, 金植은 문학의 큰 갈래를 「기본형」, 작은 갈래를 「변종형」이라 하고, 변종형을 다시 편의상 서구문학에서의 변종을 「변종 1형」, 비서구권 문학에서 전개된 각국의 변종을 「지방성 장르(vernacular genre0」 또는 「변종 2형」이라 하였다. 변종 2형에 속하는 국문학의 갈래를 다음과 같이 서정양식․서사양식․희곡양식으로 3분하였다.
첫째, 서정양식 : 향가․민요․시조․경기체가․가사․판소리․개화가사․근대시․현대시
둘째, 서사양식 : 민담․설화․신화․고대소설․개화기소설․현대소설
셋째, 극양식 : 인형극․가면극․신파극․근대극
수필은 구분에서 제외했는데, 왜 제외했으며, 이를 넣는다면 무슨 갈래에 넣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그리고, 늘 문제가 되어왔던 가사와 판소리를 서정갈래에 넣은 것이 특이하다.
(6) 서정․교술․서사․희곡의 4갈래설
조동일은 서정․서사․희곡이라는 종래의 3대갈래에 「교술」을 추가하여 서정․교술․서사․희곡이라는 4갈래설을 취하였다. 그는 갈래구분의 기준을 전환표현의 방식과, 인식과 행동의 주체인 자아와 그 대상인 세계의 대립 양상에 두었다. 전환표현의 방식에 따르면, 서정은 비특정 전환표현, 교술은 비전환표현, 서사는 불완전 특정 전환표현, 희곡은 완전 특정 전환표현이라 했다. 그리고 자아와 세계의 대립양상에 따라 서정은 작품외적 세계의 개입이 없이 이루어지는 세계의 自我化이고, 교술은 작품외적 세계의 개입으로 이루어지는 자아의 세계화이며, 서사는 작품외적 자아의 개입으로 이루어지는 자아와 세계의 대결이고, 희곡은 작품외적 자아의 개입이 없이 이루어지는 자아와 세계의 대결이라 했다.
이러한 견해에 따라 국문학의 갈래를 다음과 같이 구분하였다.
첫째, 서정 : 서정민요․고대가요․향가․고려속요․시조․잡가․신체시․현대시
둘째, 교술 : 교술민요․경기체가․악장․가사․창가․가전체․몽유록․수필․서간․일기․기행․비평
셋째, 서사 : 서사민요․서사무가․판소리․신화․전설․민담․소설
넷째, 희곡 : 가면극․인형극․창극․신파극․현대극
종래 관습적으로 개념화되어 오던 갈래구분과 서구의 갈래이론을 벗어나 국문학의 갈래구분을 체계적으로 시도한 것이다. 이 4갈래설은 우선 이론상으로 볼 때, 3갈래설에서 처리하기 곤란했던 가사와 수필, 기타 산문들이 교술갈래에 포괄적으로 수용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서정․서사․희곡에 대한 여러 가지 정의가 자아와 세계의 대결 양상으로 파악한 4갈래설의 개념규정에 포함되어 명확히 설명된다. 즉, 서정의 주관적인 성격은 세계의 자아화를 의미하고, 서사의 객관적 성격은 작품외적 세계의 개입에 따른 자아와 세계의 대결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는 서사와 같다는 것을 뜻한다. 서사와 희곡의 특징으로 지적되는 사건은 바로 이러한 자아와 세계의 대결을 뜻한다. 그리고 서사의 특징으로 지적되는 서술자의 개입은 작품외적 자아의 개입을 의미하고 희곡의 특징으로 지적되는 무대상연은 희곡이 작품외적 자아의 개입이 없는 자아와 세계의 대결이기 때문에 무대상연을 통하여 전달하지 않을 수 없음을 지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 4갈래설은 그 어느 갈래론 보다도 체계적이고 설득력 있는 이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점이 전혀 없다고는 볼 수 없다. 우선 갈래구분의 기초가 되고 있는 자아와 세계라는 용어의 개념이 과연 대립의 체계로 문학작품 속에서 이해될 수 있으며, 가사와 경기체가 등을 자아의 세계화라 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金學成은, 일반적으로 시에 있어서 세계라는 개념은 한 개인의 의식 속에 비친 전체로서의 우주를 포함한 경험의 대상을 뜻한다고 볼 때, 이러한 경험의 대상을 파악하는 의식의 주체를 자아라 한다면 시가는 본질적으로 경험의 대상에 대한 미의식의 선택에 의한 표현이므로 세계의 자아화이지 시가에 있어서 자아의 세계화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예컨대, 「元淳文 仁老詩 公老四六……」도 그 자체로서는 세계의 객관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듯하지만 「위 試場ㅅ景 긔 엇더니잇고」 이하로 이어지면서 그러한 세계의 객관성을 자아의 미적 감각에 의해 변형시켜 미적 구조물로 형상화시키고 있으므로 「자아의 세계화」가 아니라 「세계의 자아화」라는 것이다. 한 작품의 이해나 해명은 그 작품의 총체적 의미에서 규명되어야 하는 것이지 작품의 어느 특정 부분만을 놓고 전체의 현상인 양 확대해석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사작품에서도 선택된 세계는 결코 작품외적 세계에 대한 단순한 지식의 나열이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그들 나름의 미의식의 선택에 의해 구조된 세계의 자아화라는 것이다. 경기체가나 가사가 「자아의 세계화」냐, 「세계의 자아화」냐에 대해서는 앞으로 전작품의 면밀한 분석을 통하여 종합적인 결론을 얻어야 할 것으로 본다. 이밖에 교술갈래설의 일반화에 관해 다소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는 만큼 사실의 체계화를 위해 한층 더 많은 자료를 통한 논증으로써 보완해야 할 것이다.
(7) 노래문학․이야기문학․놀이문학․기타 문학의 4갈래설
김수업은 문학 일반의 갈래를 고려하면서 국문학의 특수성을 잘 드러내기 위하여 서구문학의 큰 갈래인 서정문학․서사문학․희곡문학을 순수 우리말 용어를 써서 「노래문학」「이야기문학」「놀이문학」으로 바꾸고, 이 3갈래에 속하지 않는 일기․수필․문학비평을 하나의 큰 갈래로 설정하였다. 물론 노래문학․이야기문학․놀이문학이라는 용어를 서정․서사․희곡과 꼭 일치하는 개념으로 쓴 것은 아니다. 노래문학은 「마음속에 생겨나서 나타내고 싶은 생각이나 느낌을 제 목소리 그대로 제 입을 통하여 자기의 것으로 토로해 내는 문학」이라 했고, 「이야기문학」은 「마음속에 생겨나서 나타내고 싶은 생각이나 느낌을 마치 자기의 것이 아니고 남의 이야기인 것처럼 꾸며서 자기는 단순한 전달자에 지나지 않는 듯이 표현하는 문학」이라 했다. 그리고, 「놀이문학」은 「마음속에 생겨나서 나타내고 싶은 생각이나 느낌을 남에게 시켜서 남들의 입으로 마치 그들 스스로의 것인 양 토로하게 하는 문학」이라 했고, 넷째 갈래의 문학은 「위의 세 갈래에 들지 않는 모든 문학을 다 싸잡아 넣은 것」이라 규정했다. 이 갈래론은 어떤 원리나 기준에 따라가기보다 국문학 현실에 확고한 바탕을 두고 문학 일반의 갈래론에 의지하여 설정한 것이다. 이 4갈래설은 넷째 갈래를 국문학의 큰 갈래의 하나로 설정함으로써 갈래 상호간 대립적이거나 체계적인 관계를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 넷째 갈래가 나머지 세 갈래와 유기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체계화하고 넷째 갈래를 나타내는 갈래 이름도 찾아야 이 4갈래설은 존립의 타당성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3. 나가며
위에서 검토한 국문학 갈래론의 문제점과 특수성을 바탕으로 해서 볼 때 갈래구분은 구분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유사한 특징을 가진 작품들을 한데 묶어 갈래를 지움으로써 문학의 질서와 작품의 구조를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고 체계화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갈래론의 출발은 작품적 사실에 투철해야 하며 체계적인 갈래구분을 하기 위해서는 갈래구분의 기준, 곧 구분원리가 합리적으로 모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구분원리의 모색은 문학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고려하여 큰 갈래의 구분에는 문학 일반에 두루 적용되는 원리 설정이 필요하고, 작은 갈래의 구분에는 지역과 시대의 특수성에 적합한 원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국문학 갈래론은 국문학 현실에 기반을 두고 큰 갈래를 체계화하는 데 더욱 논의를 활발히 해야 할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국문학 갈래론은 참으로 분분했으나 확고한 체계는 수립되지 못하였다.
현재, 국문학 갈래론으로 주목받고 있고 논의대상이 되어 있는 것은 서정․서사․희곡의 3갈래설과 서정․교술․서사․희곡의 4갈래설이다. 이 두 설의 논쟁은 교술갈래 설정의 필요성 여부에 있다. 즉, 교술은 서정의 한 갈래인가, 아니면 서정과는 구별되는 별개의 갈래인가 하는 문제와 수필․일기․기행 등의 산문은 문학의 범위에 넣어야 할 것인가, 제외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만약 3갈래설을 택하려면 가사․경기체가․창가 등을 서정갈래에 넣을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수필․기행․일기문 등을 문학의 범위에 포함시킨다면 어느 갈래에 소속시켜야 할 것인가를 분명히 해야 하고 문학의 범위에서 제외시킨다면, 이들의 비문학성을 명확히 설명해야 할 것이다. 아마도 이 두 가지 요건을 충족시키려면 혼합갈래를 인정하든가, 아니면 시타이거(E. Staiger)처럼 「서정적인 것」「서사적인 것」「극적인 」것 등으로 다소 포괄적인 갈래구분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4갈래설은 수필․기행․일기 등을 포괄할 수 있으며, 경기체가․가사․창가 등도「자아의 세계화」라 본다면 교술갈래에 포함시킬 수 있으므로 3갈래설에서 문제가 되던 것들이 일단은 해결된 듯이 보인다. 이런 점에서, 조동일의 4갈래설은 3갈래설보다 편리하고 합리적인 것 같다. 그러나, 이 4갈래설은 자아와 세계 및 교술갈래의 개념 등에 다소의 문제점이 없지 않다. 무엇보다도 경기체가나 가사를 「자아의 세계화」로 볼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앞으로 4갈래설이 폭넓은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교술갈래에 속하는 작품들에 대한 면밀한 분석으로 「자아의 세계화」란 이들의 작품적 질서를 찾아서 이들이 분명히 교술 갈래임을 명시해야 할 것이다. 만약, 이들이 오히려 「세계의 자아화」라 밝혀진다면 경기체가, 가사 및 창가의 갈래 소속은 제고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비록 서정갈래에 속한다 할지라도 교술 갈래는 그대로 존속시키는 것이 좋을 듯하다. 교술 갈래는 수필․기행․일기를 비롯하여 한국 한문학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기사문․철리문 등을 포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갈래소속이 불분명한, 이중적인 성격을 지닌 작품은 소위「명사적인 용어와 형용사적인 용어」를 써서 갈래 소속과 이차적 특징을 명확히 해줌으로써 교술 갈래의 문제점을 해소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 이 방향의 체계화와 심화에 중점이 두어져야 할 것이다. 4갈래설은 교술 갈래의 해명이 보다 명확히 된다면 국문학 갈래구분에 가장 합리적이고도 체계적인 이론이 될 것이다.
그리고, 큰 갈래의 설정이 완결될 때, 경우에 따라 완결되지 못한다 할지라도 작은 갈래에 대한 갈래적 성격규명에 보다 역점을 두어 작은 갈래의 체계화에도 힘써야 할 것이다. 역사적 인습적 갈래의식에서 벗어나 문학적 측면에서 재정리해야 할 것이다. 특히, 한국한문학의 갈래구분도 한글문학에 포괄시켜 체계화해야 할 것이라 본다.
첫댓글 늘
하시는 군요.....혼자 감당해내는 몫이 만만찮게 많으실텐데...다 열심히 하시는걸 보면 입이 쩍
벌어집니다. 부디 건강도 열심으로 챙기시길 바랍니다. 좋은자료 감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