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남 최부의 표해록[2007.8.24.인터넷전남일보]

[최윤영]

(7) 금남 최부의 표해록

나주사람 최부 항저우에서 文名 떨치다
풍랑만나 중국땅 도착, 왜적으로 몰려 한때 죄인취급
해박한 지식에 호의보여…훗날 중국사정 자세히 기록

항저우를 떠난 온 지 두 달이 지났으나 마음에는 항저우를 담아두고 있다.

많은 신라인과 고려인들이 살았거나 활약했던 강남.

수백 년이 지나 다시 찾은 우리는 조상들의 자취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아름다운 서호에 마음을 빼앗겨 풍광에만 취해 돌아오는 건 아닌가.

중국 강남과 우리나라 간의 교류를 살펴보면 신라시대에 가장 활발하였고 고려와 조선으로 갈수록 점점 소원해진 듯하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더욱 그러한 데 왜구가 날뛰어 그만큼 해상교통이 어려웠기 때문일 거다.

또 명나라의 정치ㆍ행정이 거의 대부분 베이징(北京)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육로를 통한 교류가 상대적으로 활발해진 영향도 있다.

게다가 한족이 세운 명나라는 정복왕조인 원(元)이나 청(淸)나라 때와 다르게 폐쇄적이었고 외국과의 교류에 제약이 많았다. 그래서 강남에서는 조선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게 되었던 것같다.

그러한 때 제주도에서 표류하여 중국 절강성 영파(寧波)부 영가(永嘉)현에 다다른 조선인이 있었다.

그가 바로 나주 출신 금남(錦南) 최부(崔溥 1454~1504)다.

그는 성종18년 1487년 9월 추쇄경차관(推刷敬差官)의 임무를 띠고 제주에 갔으나 이듬해 부친상을 당해 돌아오던 도중 풍랑을 만나 중국에까지 떠밀려갔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강남에서 많은 고초를 당하였다.

명나라도 왜구에 시달리기는 조선에 못지않아 최부는 왜적(倭敵)으로 몰려 죄인 취급 받았다.

그는 영파부에 도착하자마자 도적을 만나 가지고 있던 모든 물건을 빼앗기고 인신과 마패만 겨우 돌려 받았다.

그가 영파부, 자계현, 소흥부를 지나 항저우에 도착한 것은 1488년 2월6일이었다.

최부는 전당강에 이르러 강안을 따라 걸으며 서쪽으로 멀리 육화탑(六和塔)을 보았다.

지금도 항저우를 가면 전당강이 내려다 보이는 육화탑에 대개 가보는데 최부는 그 반대쪽에서 육화탑을 본 것이다.

그는 연성사, 절강역을 지나 항주성으로 들어갔다.

그는 이곳에서 13일까지 8일간 머문다.

중국 지방관원들이 최부의 일을 베이징에 상주하여 회보를 기다리느라 여러 날 체류한 것이다.

여러 가지로 조사한 끝에 왜적이 아니라 조선사신임이 점차 드러났으나, 완전히 자유로운 몸이 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중국 관리들은 점차 최부를 달리 대하기 시작했다.

시(詩)나 경서(經書)에 대해 중국인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번은 어떤 이가 명나라 급사(給事) 장영(張寧)이 조선에서 '김정시황화집(金亭詩黃華集)'을 지은 일을 상기시키며

최부에게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최부는 그 자리에서 황화집에 나오는 '한강루(漢江樓)'라는 시를 읊었다.

그는 감탄하며 그 장영이 사직하고 가흥부 해염현에 은거하고 있는데 장영이 항저우에 왔다가 조선 문사가 표해하여 왔다는 말을 듣고 조선사정을 알고 싶어 여러 날 기다리다가 하루 전에 돌아갔다고 했다.

특히 중국인 고벽(顧壁)은 최부와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그의 학식과 인품에 반해 진심으로 대해주고

최부 등에 관한 공문도 보여주는 등 호의를 베풀었다.

고벽의 친구는 최부의 시를 받고자 하였으나 거절당하기도 하였다.

최부는 조선 문사의 기개와 문명을 떨쳤던 것이다.

그는 특히 절강성 소흥부를 지날 때 수차(水車)를 이용하여 논에 물을 대는 것을 보고

이의 제작법과 이용법을 간청하여 배워왔다.

충청도 지방에 가뭄이 심해지자 그는 수차를 활용하여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훗날의 일이다.

고벽이 항주성 서쪽 팔반령에 고려사가 있는데 송나라때 고려 사신이 와서 건축한 거라며

"귀국 사람이 월경하면서까지 절을 짓는 것을 보면 불도를 숭상하고 있는 것을 가히 짐작할 수 있소" 라고 하였다.

최부는 "이 절이 고려 사람이 건축한 것이라 하였지요. 그러나 지금 우리 조선은 불도를 이단시하고 유도를 존중하고 있으며 국민들은 모두 입효출공(入孝出恭)하고 충군신우(忠君信友)하는 것을 직분으로 삼고 있소. 만약 중에 힘쓰는 사람이 있으면 군대로 보내오"하고는 더이상 관심을 갖지 않았다.

숭상하는 도가 다르다고 조상도 다르게 대하는 것인가.

일전에 항저우에서 만난 남도대 최한선 교수에게 고려사에 대해 이야기를 했더니 사진과 함께 메일을 보내왔다.

고려사는 서호 풍경구 중 관광지의 하나로 인가가 나

종교의례는 하지 못하고 '의천다회(義天茶會)'라 하여 유학생, 절강대학 차과 대학생과 대학원생, 항주주재 한국 기업인과 그 가족, 인근 한국인과 및 몇몇 조선족 등이 명보 스님을 중심으로 차에 관한 이야기며 조국의 상황, 서로의 고민 등을 나누며 돕고 정을 나누고 있다고 했다.

한 달 회비는 인민화 108원(元). 지난 20일에는 한국 조계종 원담 스님이 고려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항저우에 와 설법도 듣고 차를 마시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지금 고려사는 혜인고려사로 개창되어 한국 조계종이 임대하여 관리하는데

관광객 수입은 한달에 인민화 1000원에 불과해 운영비도 안되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중국 정부가 중창을 주도하여 관광지로서 개원한 탓인데

우리 정부가 조계종을 중심으로 종교시설로 인가를 해달라는 건의를 하여 잘 해결될 것이라 한다.

부속 건물 중에 윤장대는 14미터로 동양 최대라 하며 대웅보전 안에는 현세 불인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과거불인 연등불과 좌편엔 미래불인 미륵불이 장엄되어 있고 의천당이 따로 있는데 아직 개방하지 않았다.

오해가 완전히 풀려 항저우를 떠난 최부는 베이징을 거쳐 요동에 이르러

요동지방은 옛 우리나라 영토였음을 회고하고 요동이 고구려의 도읍지였다고 주민들을 일깨웠다.

반년 만에 한양으로 돌아온 그는 그후 왕명으로 '표해록(漂海錄)'을 찬술하여 바쳤다.

그는 제주를 떠난 연유에서부터 시작하여 중국에 도착한 이후 중국 연안의 해로(海路)ㆍ기후ㆍ산천ㆍ도로ㆍ관부(官府)ㆍ풍속ㆍ민요 등 당시 그가 지나왔던 중국 사정을 손에 잡히듯이 기록하였다.

치밀한 기록이나 내용으로 보나 여행문학의 백미요, 귀중한 자료이다.

흔히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높이 평가하나 표해록도 그보다 나으면 낫지, 못하지 않다.

최부가 500여 년 전 다녀온 행로를 따라 이 표해록을 들고 다시 가보리라.

어디 그것 뿐이랴.

항저우 임시정부청사, 앞으로 생길 함평 출신 독립투사 김철을 기리는 김철기념관 등 찾아볼 곳이 많이 남아 있다.

"이제 우리 한국인들은 황산, 장가계, 계림 등 단순한 풍경 위주의 중국 관광을 할 만큼 했으니

중국에서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알려진 등신불의 주인공 신라 김교각 스님과 관련한 안후이성의 구화산 천태사, 절강성 태주시 천태현에 있는 국청사, 장보고 유적, 정율성 그리고 최부 선생이 절강성 태주의 영해에 표류하여 북경까지 갔던 길, 박지원의 열하기행 또는 중국 및 조선 사신이 오갔던 절강성 상산의 석포항구 등, 진도 소치 선생이 존경하여 자신의 호를 '소치'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원나라 남종문인화 4대가의 수령인 대치 황공망 선생의 만년처요 무덤이 있는 절강성 부양시 등 이제는 유익하면서도 보람있는 관광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자존과 민족의 정체성을 다지는 중국 관광이 되길 바랍니다. "

절강성 항저우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최 교수가 쓴 편지가 오랫 동안 기억에 남아있다.

항저우는 '천상의 도시'라 한다.

이 말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나온다.

1271년 원나라에 건너와 세조 밑에서 추밀부사까지 지낸 마르코 폴로는 항저우를 '킨자이'이라고 기록하였는데

이는 '행재(行在)'를 음역하여 적은 것이 아닌가 추측한다.

남송의 도읍지로 번창하기 시작한 항저우는 마르코 폴로가 이곳에 방문하였을 때에도 번영을 구가하였다.

그는 번화한 거리, 수려한 절경, 호경기를 구가하는 경제 발전 등에 감탄을 금하지 못하고 견문록에 항저우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썼다.

서호에는 크고 작은 유람선이 무수히 떠 있고 호상의 즐거운 놀이는 어떤 즐거움보다 더 컸으며 호반에는 궁전, 별장, 절, 부호들의 저택 등이 숲과 함께 어우러져 말 그대로 '천상의 도시'라고 하였다.

동방견문록은 13세기 후반의 세계를 이해하는 귀중한 자료로 동서양에 널리 알려져 있고 고전으로 확고한 자리를 굳히고 있다. 하지만 최부의 '표해록'에 비하면 피상적이고 세밀하지 못하다.

중국에서 돌아와 '표해록'과 '동방견문록'을 다시 펼치며 '표해록'을 더욱 사랑하고 자주 읽고 널리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같은 것이 들었다.

너무나 귀중하고 인류의 자산인데 우리가 소홀히 하여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