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 설은 곳을 찾아 떠나는 여행도 있지만 익숙한 풍경을 찾아 그것을 느끼기 위해 떠나는 여행도 있다. 청도여행 일정표를 받았을 때 낯설음과 익숙함이 동시에 떠오른 것은 이 여행이 주는 특별함이었다.
다양한 주제와 테마 체험이 어우러진 청도여행. 나에겐 익숙함에 대한 갈망이 타인에겐 낯설음에 대한 새로운 열망으로, 또 나에겐 낯설음으로 다가오는 것이 누군가에겐 향수를 자극하는 것으로 다가올 수 있기에 동반자는 여행에서 제삼의 풍경이다. 제일 제이 제삼의 풍경이 어우러진 청도여행 ‘감빛을 닮은 사람들을 찾아서’ 떠난다.
청도여행을 간다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중국 청도(칭따오)에 가는 것으로 안다. 세계화 세계화 하는 지금 사람들의 눈이 밖으로만 쏠려 있는 것을 웃어야 할 지 울어야할 지 모르겠다.
서울시청 앞에서 7시에 출발한 하나강산의 버스는 강남 교대역에서 나머지 일행을 태운다. 대구 부산 간 직선으로 이은 신 경부고속도로로 인해 청도가 그 속내를 외지인에게 쉬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역전식당은 선입견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청도톨게이트를 빠져 나오자 버스는 곧 청도읍내로 들어선다. 인구가 오만이 채 안되는 청도군의 기관이 모여 있는 읍내는 톨게이트에서 멀지 않아 그 속살을 바로 드러내 외지인을 맞는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두 개의 천이 흐르는 청도는 그 이름 그대로 맑고 푸르른 느낌을 준다. 시간은 아직 12시가 안되었지만 새벽에 일어나 아침을 거른 일행에겐 점심을 먹기에 이른 시간은 아니다. 꿈을 찾아 청도를 떠난 사람들이나 영혼을 맑은 길에서 찾고자 들어오는 많은 사람들에게 청도의 기억 한 자락을 제공했을 역전식당엘 들어간다. 청도의 명물 추어탕과 미꾸라지 튀김이 이집 주 메뉴이다. 추어탕과 미꾸라지 튀김을 시킨다. 곧이어 나온 역전식당의 추어탕은 ‘추어탕은 어떻다.’라는 상식을 여지없이 뒤집어 버린다. 전라도 남원이나 그 외 지역에서 맛보아 길들여진 추어탕에 대한 인상을 통쾌하게 깨어버리는 역전의 맛 이것이 진정한 여행의 참맛 아닐까?
청도여행을 끝내고 후기를 쓰는 지금 가만히 생각하면 청도추어탕은 청도의 산과 내를 그리고 그속에 살다간 사람들을 그 대로 닮았다. 산이 첩첩이 둘러싸고 있지만 모나지 않은 봉우리 폭신폭신한 흙산의 부드러움은 청도를 흐르는 내에서 잡은 미꾸라지와 잡어를 삶아 내 채로 거르고 그 육수에 배추를 듬뿍 넣어 푹 끓여 민물고기의 비린 맛을 완벽하게 제거한 담백한 맛으로 나타냈으며, 중앙 정치에 염증을 느낀 수많은 선비들이 낙향하여 터 잡은 고고한 삶의 기풍은을 담백함으로 헤 풀어진 혀를 톡 쏘며 잡아채는 매운 맛에 배어있다는 느낌이다. 감의 고장답게 후식도 감식초를 요구르트에 타서 주니 이것도 청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풍경이다.
전통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식사를 맛나게 하고 찾아간 곳은 변숙현 선생이 개설한 한옥학교다. 한국에서 전문적으로 한옥을 짓는 기술을 가르치는 유일한 곳이라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기대가 컸던 체험여행지다. 청도군청 뒷길로 오르는데 버스는 차를 돌릴 곳이 없어 걸어서 올라간다. 오르는 길에 낙대폭포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있다. 폭포 밑에 들어가 물 맞으며 더위를 피하는 곳으로 가끔 텔레비젼에 나오는 곳이다. 한옥학교를 오르는 길가에는 접시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고 수주 변영로 시에 등장하는 강낭콩 꽃이 붉게 피어있다. 복숭아가 익고 있는 과수원 사이 길을 걸어 오르자니 시원한 조망에 마음이 절로 열린다. 한옥 집짓기 체험이 아니더라도 청도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조망지로서도 올라올 만한 곳이다. 한 구비 돌아 올라가니 한옥학교 일주문이 보이고 변숙현 선생님과 한옥학교에서 공부중인 학생들이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 선생님의 안내로 너와로 지붕을 인 전통한옥교실을 들어서니 기가 막히게 좋은 전망이 눈앞에 펼쳐져 절로 탄성이 나온다.
10년을 경영하여 초가삼간 지어내니
달 한 칸 나 한 칸에 청풍 한 칸 맡겨두고
청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송순
이 시 한 수가 비수처럼 가슴에 박혀 우리 한옥이 갖고 있는 장점을 연구하고 익히게 되었다는 변숙현 선생님의 말씀이다. 혼자만 알고 있기보단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위해 2003년 6월에 학교를 열었다. 지금까지 3개월 과정의 대목수(집짓는 목수)반에 450여명이 거쳐 갔다. 또 흙집을 짓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스스로 집짓기 과정’도 5기가 끝나고 6기가 곧 개강한다니, 전통을 잇고 발전시키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교육장이 되었다.
한옥에 대한 슬라이드 교육을 마친 후 밖으로 나와 못을 쓰지 않고 연결된 중요한 결구들을 해체 하고 다시 조립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둥위에 얹혀 지붕을 떠받치는 결구방식인 사귀맞춤을 직접 분해해 보니 틈이 있어 조금씩 놀고 있다. 그 흔들림의 여유만큼 집은 풍파를 흡수하고 되돌려 보내 지진이나 바람 등에도 견디는 한옥의 비밀이라는 말씀을 들으니 삶도 이와 같이 여백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든다. 앉아서 슬라이드로 들을 때는 졸리든 용어들도 직접 손으로 잡고 분해도 하고 다시 조립도 해보니 확실하게 이해가 된다. 몸으로 배운 것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더니 배움도 마찬가지 손으로 만지고 쥐어 보면서 하는 게 이해도 빠르다. 주춧돌 위에 기둥을 세울 때 쓰는 기법인 그랭이질에 대해서도 직접 시범을 보여주시니 그 어렵던 전통건축용어도 귀에 쏙쏙 들어온다. 마당 앞 언덕에는 각 기수별로 학생들이 졸업 작품으로 만든 정자들이 있어 여러 지붕형태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것은 거저 얻을 수 있는 덤이다. 그 정자들 사이 한 모퉁이에 아담하게 놓여 있는 개집이 눈에 띈다. 맞배지붕에 초익공 형식의 삼량집이니 대한민국 어디에 이만한 개집이 또 있겠는가?
짧은 시간을 아쉬워하면서 교장선생님과 조교분들과 같이 기념촬영을 하고 일주문을 나선다. 비탈길을 내려가는 발걸음이 가벼운 것은 단순히 내리막이어서는 아닐 것이다.
운강고택
운강고택에 가니 청도향토사 연구가이신 박윤재 선생님이 고택에 대한 설명을 위해 일행을 기다리고 계신다. 무려 한 시간 넘게 기다리셨다니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뿐이다.
버스에서 내려 고택으로 걸어가는 신작로 꽃길이 여유롭고 예쁘다. 주변에는 운강고택 말고도 고택이 여러 채가 있다. 신작로에서 운강고택으로 들어가는 골목길 돌담이 예쁘다. 때 맞춰 내리기 시작한 비가 고택 답사의 정취를 더해준다. 안채 툇마루에 앉아 비긋는 소리, 담을 타고 넘어오는 소 울음소리를 듣고 있자니 해설사의 설명은 귀에 들어오질 않는다. 하늘에는 여름철새인 후투티가 벌레를 물고 날아간다. 자연의 소리 외에는 어떤 잡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장마 비 긋는 한 여름날 고택은 적요하다. 며칠 머무르고 싶은 생각이 든다.
해설사는 고택과 이곳에서 살다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라도 더 전해줄려고 열심이다.
집의 크기를 화장실의 개수와 각각의 명칭을 들어 설명한다. 옆에 있어 측간, 뒤에 있어 뒷간, 아무나 와서 눈다고 변소 웬만한 집은 하나밖에 없는 것이 세 개나 된다. 그것도 아들들을 분가하느라 가세가 반으로 준 것이라니 안채 넓은 마당이 더욱 휑해 보인다.
여성들의 생활공간인 안채, 남성들의 전유공간인 사랑채로 나뉘어 생활하는 엄격한 주자학의 유별한 남녀를 내밀하게 연결해 주는 쪽문이 눈에 띈다. 며느리가 기거하는 방으로 대청을 통하지 않고 들어갈 수 있는 쪽문도 철저히 지켜진 부부유별의 규율에도 숨통이 트여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조건 억누르지 않는 선인들의 생활에 지혜가 느껴진다. 안채의 후원에는 칠성신앙이자 거석신앙의 영향을 받아 일곱 개의 돌이 놓여있다. 이른 새벽 정한수 떠 놓고 빌었을 어머니의 정성이 느껴진다. 사랑채에서 안채로 연결되는 벽에는 길할 길자와 깨진 기와를 이용한 꽃무늬담이 눈길을 끈다. 안채에서 나와 석류나무가 후원에 많이 이름 지은 백류원 중간채를 둘러보고 고택을 떠난다.
임당리 임씨고택
임당리 버스정류장 앞에서 내려 고택 가는 길은 감의 고장 청도답게 길옆 여기저기에 감나무가 가로수처럼 자라고 있다. 유난히 튼실하고 커다란 감잎은 비가 오는데도 싱싱함으로 반짝이고, 타일을 붙인 듯 갈라진 나무껍질은 비에 젖어 신령스런 거뭇함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꽃보다 더 아름다운 잎과 줄기에 눈을 뺏기며 걷다보니 고택이 나온다.
이 집은 건물의 구조도 구조지만 그 집에 살다간 사람들의 내력 때문에 흥미롭다. 양자를 들여 계속하여 17대 동안 내시가계를 이어 온 내력이 주자학이 만든 남녀유별의 시대적 질곡을 그대로 보여준다. 시대의 희생양이 된 그 남자들의 여자들은 남자가 갖는 열등감과 열패감을 평생 떠안고 살아가야만 했으리라. 안채는 그 남자의 여자가 언제든 소문의 주인공이 될 수 있기에 더욱 철저히 외부와 격리되는 구조로 만들어졌다. 안채와 바깥을 연결하는 곳에는 감시의 눈길이 주어져 안채로 들어가는 문은 아파트 경비실에 딸린 창으로 내다보는 풍경처럼 중간사랑채의 바라지창 앞으로 지나가야만 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이 집에서도 아들이 사는 중간 사랑채와 안채의 며느리 방을 연결하는 은밀한 구조가 눈에 띈다. 남당고택의 쪽문에서 느끼던 해학이 같은 구조라도 내시와 남자구실을 못한다는 상상과 결합하니 음탕한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안채가 들어앉은 방향이 북서향이라 임금이 계신 한양을 바라보고 지었다고 하나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남자들이 거처하는 사랑채는 남동방향으로 자리했으니 일관성이 없다. 혹시 서울로 일하러 간 남편을 바라보면서 외로움을 달래라는 암시라면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이다. 여성은 북서향을 바라보고 남성은 남동향을 바라보며 엇갈려 자리를 잡았으니 돈으로 이어진 잘못된 만남은 그렇게 비껴앉은 집으로 나타난 것일까? 건물이 앉은 좌향에서 시대의 질곡이 느껴진다. 집터를 산이 빙 둘러 싸고 있어 연꽃의 꽃술 쯤 되는 자리라는 명당인데 어떤 산을 주산으로 삼아 배산했다면 일관성이 있어야 할 텐데 그렇지도 않으니 집 지은 사람의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 것인가? 산세가 둥실한 것이 여성적인데다 여근곡과 같이 생긴 산 형태도 있으니 어설픈 풍수가 보기에 음기가 세어 보이는데 그 속에 자리한 고택에는 고자만 있으니 청도 감에 씨가 없는 이치도 여기서 찾아야 함인가?
첫 번째 방문지인 청도 장은 4일과 9일장이라 내일로 미루는데 장마 비가 계속이라 파장이지 않을까 걱정을 안고 이제 오늘의 여정을 풀 운문사 절 밑에 형성된 관광단지의 숙소로 이동한다.
흰색의 3층인 ‘후레쉬모텔’은 새로 지은 듯 깔끔한데, 계단과 복도 벽에 걸려 있는 작품들이 예사롭지 않아 업소의 품격을 높인다. 짐만 부리고 식사를 하러 간다. 저녁식사는 모텔에서 가까운 ‘하얀집’에서 버섯전골로 하기로 했다. 관광단지는 아직도 조성중인 듯 빈 터가 많은데 이 집 역시 깔끔하다. 일인분에 7000원인 버섯전골에 딸려 나온 도토리묵이 입맛을 돋우고 참나물 반찬도 인공감미료를 전혀 쓰지 않은 무공해 맛을 선사한다. 버섯전골은 조금 싱거운 듯 밍밍하지만 한 끼 식사로는 손색이 없다. 대구 막걸리 업자와 지역분쟁까지 일으킬 정도로 맛나다고 해설사님이 침이 마르도록 자랑한 동곡막걸리는 입에 짝 달라붙는 맛이 일품이었다. 막걸리의 텁텁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깔끔하게 넘어가고, 인공적인 단맛이 없어 와인을 마시고 있다는 느낌이다. 침이 마르도록 칭찬도 마다않던 해설사님은 식당에 전화해서 막걸리 값까지 계산을 하셨으니 막걸리 맛에 인심까지 더해 즐겁게 취하는 밤이다. 운문사 새벽예불에 참여하려면 일찍 일어나야 돼 아쉬운 자리 일찍 파하고 잠자리에 들러 간다.
첫댓글 "달 한 칸 나 한 칸에 청풍 한 칸 맡겨두고 청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 절절히 가슴에 와닿네요...
청한님 여행기 읽고나니 청도에 가고 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