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 성수는 공룡을 좋아한다.
집에서도 주로 공룡만 가지고 놀고 공룡 동화책, 공룡 비디오는 수십 번도 더 보았다.
놀이 치료실에서도 공룡만 꺼내 싸움놀이를 전개한다.
치료실에 없는 공룡이 필요하면 대신 사자를 들고서 “이건 가짜로 스마일로돈(빙하시대에 살았던 동물)이에요”하고, 작은 칠면조를 들고서는 “이건 가스토니스(육식새)라고 해요”라고 설명한 뒤 싸움을 시작한다.
성수는 언제나 ‘힘이 센’ 것에 관심을 갖고 논다.
여섯 살 정민이는 마이트 가인이라는 로봇을 아주 좋아한다.
상담센터에서도 자기가 마이트 가인이라며 로봇처럼 흉내내고 힘을 발사하는 포즈를 취한다.
칼을 들고는 마이트 가인 칼이라고 할 때도 있다.
그러면 상담자는 악의 무리가 되어 마이트 가인과 대결해야 한다.
상담자가 마이트 가인의 공격을 받고 죽었다고 하면, 정민이는 “팔은 떨어졌지만 다시 붙는다”고 하면서 다시 공격하라고 한다.
금방 죽으면 시시하니까 계속 살려주면서 싸움을 연장한다.
그러나 결론은 악의 무리가 죽는 것으로 끝난다.
성수나 정민이처럼 한가지 장난감이나 물건에 과도한 집착을 보이는 아이들이 있다.
이런 경우 집착하는 물건이 아이의 마음을 대변해준다.
공룡이나 로봇은 힘의 상징이다.
센 힘을 가지고 싶은 힘에 대한 동경이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다.
성수나 정민이는 둘 다 친구 사귀는 데 어려움이 있다.
친구들을 좋아하지만 조금 놀다가는 각자 놀기 십상이고, 특히 정민이는 자기보다 약하고 착해서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아이와는 오래 놀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과는 어울리지 못한다.
이에 대한 불만감이 강한 힘을 원하게 하여 공상속에서 센 힘에 대한 욕구를 풀어내는 것이다.
또 센 힘을 강조하는 아이들은 센 힘으로 제압 당한 경험이 있는 아이들이다.
성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각별히 예뻐하시고, 아빠는 놀아줄 시간이 부족하니 물질 공세로 잘 대해준다.
집안에서 악역을 맡는 것은 엄마뿐이다.
엄마는 시댁 스트레스도 있는 데다 아이 버릇이 나빠질까봐 일부러라도 엄하게 대한다.
이 과정에서 아이가 엄마를 무서운 사람으로 인식하여 자기도 엄마와 같이 센 힘을 가지고 싶어한다.
정민이는 어느 날 장난감 사달라고 자꾸 졸라서 아빠한테 크게 혼났다고 하면서, 아빠는 악의 무리보다 더 세다고 말했다.
집에서는 누구 말도 안 듣지만 아빠만 오면 고분고분하게 말을 들으며 무서워한다.
이처럼 공격적인 장난감에 집착할 때 부모들은 크게 걱정하며, 장난감을 갖고 놀지 못하게 하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이가 센 것에 집착하는 원인을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당분간은 부모의 무서운 이미지를 벗는 게 좋다.
혼내는 강도를 낮추고 아이와 즐거운 놀이를 하면 차츰 마음이 누그러지면서 강한 것에 대한 집착이 풀리기 시작한다.
또 친구도 사귀게 도와주고 놀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 주면 혼자만의 공상세계에서 벗어나면서 차츰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다.
(원광아동상담센터 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