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외국을 가다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 촌놈이 서울에 가듯이 처음으로 외국이라는 곳을 가게 되었다. 그 동안 많이 망설이고 고민하고 했다. 부모님에게는 출발 2일 전에 말을 했다. 다들 놀라는 표정이었다.
제발 안 갔으면 하는 부모님을 뒤로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그때까지만해도 내가 정말 호주에 가는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행기를 기다리며 생각하고 고민하고 한편으로는 이제 펼쳐질 호주 생활이 정말 기대가 되었다. 호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멀어지는 공항과 대한민국을 보면서 이제 가면은 1년 후에나 돌아올 수 있는 나의 집 내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브리즈번 공항에 도착 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 수속을 하는데 나를 불렀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민성 직원이였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 떨렸는지 뭐가 잘못되었는지 불안했다. 영어도 잘 안되는데 다시 한국으로 가라고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말이다. 사실은 이민성을 찾아가서 비자 라벨을 받으라고 주소가 적힌 안내문을 주었던 것이었다. 짐 검사까지 마치고 의자에 앉아 물을 마시면서 한숨을 돌렸다. 이제 무엇을 해야하나? 생각해 보았다. 그래 시내로 들어가자. 우선 Information Center에 가서 시내 지도를 하나 얻어야지? 안내소로 가서 이렇게 말을 했다. city map please. 직원이 city map하더니 지도 한 장을 주었다.
처음 외국에 와본지라 길 이름도 모르고 이떻게 시내로 들어가야 할지도 몰랐다. 이제야 실감이 났다. 여기가 외국이고 호주야.. 한국이 아니야. 아무리 주위를 돌아보아도 한국사람은 없고 다들 머리는 노랑색에다 눈은 파란색 코는 크고 거기다 키는 얼마나 큰지 나보다 작은 사람은 없었다.
처음에는 시내로 들어가서 오늘은 방까지만 구하자는 마음으로 전철을 탔다. 전철이 지나가는데 아무리 지도를 보아도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아무역에서나 내렸다. 그래서 거리 이름을 찾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에는 시티 외곽의 역에 내린 것 같았다. 그래서 거리이름을 보고 backpacker를 찾기 시작했다. vip 책에 나온 숙소를 찾아 걸어가기 시작했다. 속으로는 거리이름이 나와 있으니까 쉽게 찾을 수 있을거야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생각만으로 끝나고 말았다. 같은 곳을 몇 번이나 지나고 나서야 근처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그것도 그때 뿐이고 방이 없다는 것이었다. 날씨도 덥고 아침은 먹지도 못하고 힘들었다. 그래서 택시를 불러달라고 했다. 또 택시를 타고 아무말도 못하고 그저 주소를 보여주었다. 그래서 도착한 숙소는 그래도 방이 있어 다행이었다. 우선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나서, 먼저 이민성부터 가자는 생각으로 이민성에 갔다. 비자 라벨을 받는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래고 근처 은행에 그냥 들어갔다. 그리고 여권을 보여주면서 통장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내가 영어를 잘 못해도 직원이 대충 알아 듣는 모양이다. 그리고 TAX Office에 가서 TAX 파일 넘버를 신청 했다. 별로 어렵지않게 하루만에 모든 일을 해결 했다.
자! 이제는 돈 버러 가볼까?
브리즈번에서 하루만에 모든 것을 해결한 나는 이제는 돈을 벌러 농장으로 가기로 했다. 한국에서 처음 떠날 때 먼저 농장생활을 하기로 결정 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번다버그로 가기로 결정 했다. 버스표를 보니 A4용지 한장을 주면서 버스표라 했다. 시간을 보니 6시간 정도를 차를 타야된다. 6시간이면 서울에서 부산 가는 거리인데.. 내 눈에는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길가에 보이는 사람, 차, 그리고 한국과 다른 교통제도, 신호등도 보행자가 버튼을 눌러야 바판불이 들어왔다. 호주에서 본 것 중에서 제일 신기한 것이었다. 그리고 가끔씩 보이는 한국자동차, 그리고 한국 가전제품 회사들의 간판이 내 눈에는 정말 자랑스러워 보였다. 저녁 6시가 넘어서야 번다버그에 도착했다.
힘들었다. 아니 지쳤다. 이런 망할놈의 나라 무슨 작은 도시 하나가는 데 6시간 씩이나 걸려..하고 말이다.그래 호주는 넓은 나라야.. 버스 터미널에서 BACKPACKER에 전화를 해서 Pick up을 부탁 했다. 무조건 전화를 해서 Pick up Please 이렇게 말했다. 그랬더니 조금 있어 백발의 할아버지가 봉고차를 몰고 나왔다. 그렇게 숙소에 도착 했다. 이제 시작이다. 호주생활 열심히 하자... 이런 마음으로 숙소에 들어가서 1주일분 돈을 내자 할아버지가 뭐라고 하면서 한국사람을 데리고왔다. 바로 통역을 하기 위해서였다. 할아버지 왈 "너 일을 원하니?" "예" "그럼 여기에 여권번호를 적어라"라고 한국사람이 말을 해주었다. 그리고 너 TAX FILE 넘버는 있느냐? 물었다. 나는 TAX FILE 신청할 때 직원이 준 영수증 같은 것이 생각 났다. 그래서 그것을 보여주었다. 다행히 아무말 없이 시트와 베개 커버를 주면서 9인실 방을 주었다. 처음이라 분위기 파악도 아직 안된 상황이었다. 다행히 내일은 일요일이어서 일이 없었다. 나는 월요일부터 일을 하기로 했다. 통역을 해준 한국사람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짐을 들고 방으로 갔다.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다들 한국 사람들이었다. 서로 그냥 형식적인 인사를 했다.
다음날 나는 음식을 사기 위해 수퍼마켓으로 가야만 했다. 그래서 일하는 직원에게 지도 하나만 달라고 했다. 물론 영어로 해야했다. 수퍼마켓을 찾는데도 30분이 넘게 걸렸다. 그래 처음에는 다 시간이 좀 걸리고 어려운 거야.. 나중에는 10분도 안걸릴거야..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숙소로 돌아왔다. 저녁이 되었다. 저녁을 먹고 드디어 내일 일을 나갈 Work List 라는 것이 나왔다. 어떻게 보는건지 한국사람에게 물어보고는 내일 아침에 먹을 빵과 우유를 준비 하고 잠을 잤다. 내일 기상시간이 새벽 5시였다. 그래 빨리 자야지..
드이더 호주에서의 첫 일을 하는 날이다. 일을 나가는 모습을 보니 한국에서의 아침 인력 시장을 보는것 같았다. 다들 허름한 작업복에 모자를 쓰고 가방을 하나씩 메고 바로 그 생각이 났다. 여기가 한국의 인력시장이야.... 시간이 되면 차가 Pick up을 해준다. 내가 처음 간 농장은 토마토가 잘 자라도록 철사로 토마토 줄기를 묶어주는 작업(여기서는 와이어링 이라고 함)이었다. 하여튼 차로 1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끝이 없이 넓은 토마토 농장이었다. 이곳에서 무엇을 하라는지... 나는 처음이라서 철사를 잡아주는 역할을 했다. 보통 2-3명이 짝이 되어서 하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능력제이다. 자기가 일을 한 만큼 벌 수 있는 곳이다. 그것도 2-3명이 나누어 갖는다. 내가 처음 일을 나가서 번 돈은 $30이다. 그리고 조금 숙련된 사람은 하루에 $100도 번다. 솔직히 부러웠다. 처음에는 말이다. 그리고 그 날 마침 비가왔다. 하루 종일 비를 다 맞으면서 일을 했다. 정말 싫었다. 이렇게 해서 첫날 일을 마치고 숙소로 왔다. 정말 힘들었다. 그래도 놀란 사실은 한국 여자들이 정말 일을 잘한다는 것이었다. 남자인 나보다 더 잘한다. 사실 많이 숙련이 되어서 그런거 같았다. 하지만 너무 잘해... 이렇게 토마토 농장을 3주 정도 다녔다. 그리고 나를 다른 농장으로 보냈다. 사실 나는 여기에 온지 얼마 안되어 여기농장, 저기농장 보내달라 할 위치도 아니였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영어도 잘 안되었다. 그래서 그냥 Work list에 나와있는 데로 갔다. 그래서 다음으로 간 농장이 타이완 사람이 경영하는 새우농장 이었다. 여기서 새우를 양식하다니 나도 처음에는 놀랐다. 여기 새우는 우리가 말하는 조그마한 새우가 아니라 한국의 대하 정도의 크기이다.ㄷ 새우 농장도 커서 차를 몰고 다니며 먹이를 줄 정도의 크기였다. 하기야 여기의 농장이 다 차를 몰고 다니며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토마토 농장에서 이미 알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2달 정도 보냈다. 돈이 정말 안 모였다. 누군가 말을 했다. 이런 Saving이 안되는군 빨리 여기를 떠야지.. 그래도 나는 여기서 조금 더 있기로 했다. 아직 돈이 많이 모자랐다. 그래서 다른 농장을 알아보려고 노력중이다. 그런데 그것이 잘 안된다. 좋은 곳에는 이미 사람들이 들어가서 나오려고 하지 않는다. 5월 중순 정도 되었다. 어느날 갑자기 여기에서 일하는 직원이 나한테 와서 피망 농장에 갈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Good Money(Pay 가 $12/Hours 정도 하루 8~9시간, 주 6일)라고 했다. 계산을 해보니 돈이 될 것 같아서 바로 Yes라고 말을 했다. 그런데 직원이 아니라 바로 할아버지 둘째 아들이었다. 이 숙소는 가족이 운영하는 곳이었음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래서 피망 농장에 가게 되었다. 나를 제외하고 영국여자, 캐나다남자, 뉴질랜드 남자, 이렇게 4명이서 가게 되었다. 처음 농장에 도착하자 보스 바로 밑에 있는 수퍼바이저가 나에게 왔다. 큰 통을 하나 주면서 여기에서 피망을 따라고 했다. 무슨 말을 영어로 하는데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가만히 있으니까 Red라고 말을 해주었다. 빨간색의 피망만 따라고 했다. 정말 힘들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궁금하시죠? 보스가 트렉터로 연결된 콘베이어벨트를 몰고 갑니다. 8명 정도가 일렬로 서서 허리를 90도로 굽히고 고랑으로 들어가서 양쪽으로 있는 피망을 따죠.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통을 다 채우면 바로 벨트에 올립니다. 그때야 비로소 한번 허리를 펼 수 있지요. 나중에는 허리가 아파서 모두 무릎을 구부리고 따거나 아니면 앉아서, 또는 옆으로 앉아서 땁니다. 심지어는 오리걸음으로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이런 천삽 뜨고 허리 펴기 운동도 아니고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한국말로 했습니다. 다행이 알아듣는 사람이 없더군요. 이렇게 70-80m 정도 갑니다. 솔직히 중간에 좀 쉬었으면 하는데 보스는 계속 트랙터를 몰면서 소리를 지릅니다. 빨리빨리 하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하루 8시간 정도 일을 하고 숙소에 돌아오면 허리가 아파서 맨소래담로션을 바르고 침대에 누워 1시간 정도 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일을 나갈 때는 맨소래담로션을 바르고 갑니다.'
이렇게 3주 정도 피망 농장에서 일을 했다. 얻은 것은 솔직히 친구들을 사귄 것하고 돈을 조금 Saving한 것뿐이었다. 중간에 캐나다 남자 친구는 허리를 다쳐서 그만 두었다. 솔직히 몸이 많이 안 좋아졌다. 이제는 무슨 일을 할까 며칠을 쉬면서 생각하기로 했다. 그동안 허리가 너무 아팠다. 그래서 며칠 DAY OFF 하기로 했다. 그런데 고구마 농장에서 사람이 부족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고구마 농장에서 일을 하기로 했다. 이런 돈에 미쳤군, 아직 허리도 아픈데 말이야. 그래도 나중에 영어 공부 하려면 돈이 필요하니깐 그냥 고구마 농장에서 일을 하기로 했다. 이 농장은 이름이 그리마 농장이다. 여기는 Pay는 %12.5/hours 이고 주 5일 근무를 하는 곳이다. 역시 이 농장을 잠깐 소개하자면 이 농장은 한국 남자들만 7명 정도 일을 한다. 가끔 인원이 많이 필요할 때가 있다. 바로 고구마 순을 심을 때이다.(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설명하자면 어느정도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처음에는 고구마를 picking해서 바구니에 담고 그 바구니를 트랙터에다 싣는 일이다. 이 일이 농장에서 제일 힘든 일이다. 1시간 정도 트랙터에 바구니를 싣고 그 다음에는 작은 창고에서 고구마를 크기별로 선별하는 작업을 한다. 작은것, 중간, 큰것 등으로 선별 해서 박스에 포장하는 작업이다. 보통 아침 6시 정도에 시작을 해서 오후 3~4시에 끝나는데 중간에 휴식시간 20분, 점심시간 30분 정도이다. 휴식시간은 pay에 포함이 되고 점심시간은 pay에 포함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비가 많이 내리면 이 농장은 day off를 한다. 트랙터가 흙에 빠지기 때문이다. 2~3일이 지나 땅이 마르고 나서 다시 일을 해도 간혹 가다가 트랙터의 바퀴가 빠져 실어놓은 고구마 상자가 다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이 농장을 마지막으로 나는 농장생활 7개월을 마치고 드디어 번다버그에서 쉐어를 구해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번다버그의 농장에서 일하면서 여러작물을 재배하는 일을 해 보았다. 지금 생각하면 한국에서 내가 농사를 지어도 될 정도로 농장에 대한 지식이 늘었다. 마지막 고구마 농장에서 4개월을 일을 하면서 고구마 재배 방법, 선별, 포장, 출하까지 고구마 농사에 대한 처음부터 끝까지의 지식을 알았다. 그리고 한국에서 고구마, 토마투만 보아도 그때 그 농장에서 일을 했던 생각이 난다.
호주 여자 친구와 단 둘이 살다.......
7개월 간의 농장생활을 마치고 나는 쉐어를 어렵게 구해 번다버그에서 4개월 동안 영어공부를 하면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호주여자 친구를 알게 되었다.
잠깐 이 여자친구를 소개하자면 이름은 donna 나이는 당시 28세 그리고 결정적으로 채식주의자 우유도 안마시고 계란도 안 먹는다. 물론 고기는 더 안 먹고 냄새도 맡기 싫어한다. 그리고 나는 이 집에 주당 $75, 먹는것이 일주일에 $30정도, 다 합해서 주당 $100 조금 넘게 든다. city에서 주당 방값만 $100 넘게 드는 것에 비하면 정말 싼값이다. 그리고 방은 독방에다, 더블룸. 호주여자 친구와 같은 집에 살지만 방만 따로 쓴다. 내가 생각해도 참 잘한 결정이었다. 다른 city에 가서 방을 구하면 한국인, 일본인 이렇게 같이 사는데 나는 여기 현지인하고 같이 살면서 영어도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리고 여기에 살면서 여자친구 가족과도 많이 친해져서 danna 언니 집에도 놀러ㅏ고 donna 조카들과도 아주 많이 친해졌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경험을 한번 했다. donna 조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 내가 가서 우리나라에 대해(영어가 서툴러서 잘 설명해 줄 수는 업었지만)1시간 정도 설명을 해줄 기회를 가졌던 것이다. 나에게 정말 다시 올 수 없는 기회였기에 학교 설명회가 끝나고 나서 donna 에게 정말 고맙다고 말을 해주었으며, 조카에게도 고마움의 말을 잊지 않았다. 또다른 좋은 경험은 운전면허 시험을 본 것이다. 내가 쉐어 생활을 4개월째 하던 달 조금 지루함을 느껴 여기서 운전면허 시험을 보겠다고 했다. 무슨 이유인지 너는 이곳에서 국제운전면허증으로 운전을 해도 아무 지장이 없다고 했다. 나는 그래도 운전면허 시험을 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그날 바로 필기시험을 보았다. 그런데 바로 불합격. 당연한 결과였다. 공부도 안하고 갔는데 어떻게 합격을 할 수 있겠나? 그래서 그 다음날 운전면허에 대한 책을 구입을 해서 공부를 하고 다음날 또 갔다. 당연히 불합격. 다 영어라 해석하기가 어려웠다.
그 다음날 또다시 갔다. 불합격. 그 다음날 또 갔다. 이번에도 불합격. 집에 오니 donna가 매우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너 이 시험을 왜 보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그저 경험 삼아 본다. 그리고 한번 도전해 보고 싶어서 보는 거다라고 했다. 그래서 다음날 또 갔다. 그리고 이번에는 합격을 했다. 합격을 하는 과정이 아주 우숩다. 문제가 A, B, C, D 형이 있는데 맨 처음에는 A형 문제를 보았다. 답안을 채점하고, 답을 보여주면서 직원이 당신이 틀린 것을 확인해 보라고 답지와 문제지를 나에게 주었다. 당연히 답을 다른 메모지에 적었다. 그래서 그것을 집에서 외웠다. 그리고 다음날 또 갔는데 다른 형의 문제지가 나와서 불합격. 4번째 가니 A형 문제지가 나왔다. 그래서 외운 답을 문제도 보지 않고 작성을 해서 100점으로 합격을 했다. 안 그러면은 10번을 봐도 다 불합격이었다. 그래 이제는 실기 시험만 보면 돼 하는 생각으로 실기시험을 접수했다. 여기서는 실기시험을 보려면 자기 차나 친지한테 아니면, 학원에서 차를 빌려와서 봐야한다는 것이었다. donna에게 차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 필기시험을 보면서 거의 $100 정도 썼다. 내가 생각해도 한심한 일이다. 내가 뭐 때문에 이런 일을 했는지..... 참, 아무리 경험삼아 보았다지만 그래도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실기시험은 포기했다.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무슨 일에 도전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리고 쉐어생활을 마치고 떠나기 며칠 전donna 가족과 함께 모여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참 나아게 잘 해주었다. 생전 한 번 보지도 못했던 외국인을 쉐어 메이트로 받아준 donna, 그리고 내게 많은 영어를 가르쳐준 조카들, 지금도 사진을 보면 그때 모스들이 떠오른다. 내게 정말 소중했던 시간 말이다.
영어야! 나하고 한 번 놀아봐
내가 쉐어를 시작하고 1주일이 지나 여기서 튜터를 구했다. 물론 free school도 구했다. 튜터는 시간당 $15 목, 금 2시간씩 말이다. Free School은 화요일 오후 2시간 정도이다. Free School은 작은 교회였고, 학생도 나를 포함해서 3명뿐이어서 정말 개인 교습을 받는 기분이었다. 튜너를 구해서 영어의 처음부터 시작했다. 중요한 발음부터 시작해서 특히 한국인이 잘 안되는 v, f, r, th를 비롯해 한국인들이 잘 혼동하는 발음 등을 중심으로 발음공부를 하고, 문법은 시제부터 시작해서 화법까지 공부를 했다. 뭐 크게 공부에 대한 노하우는 없었다. 투터에게 부탁하여 발음을 MP3에 녹음해서 매일매일 듣는 방법으로 발음 공부를 하였다. 문법은 frammar in user 기초편을 구입 해서 튜터와 같이 공부했다. 그리고 집에 와서 내가 공부를 한 후 모르는 부분을 다음날 튜터에게 질문을 하는 식으로 공부를 했다. 듣기는 조금 힘든 부분이었다. 발음이 혼동이 되어서 이 소리가 이 소리 같았다. 그래서 우선 tv를 많이 보고 주말에 호주 여자친구와 같이 dvd 영화 감상도 하공 했다. 듣기 연습도 하고 우정도 쌓기 위해 말이다. 읽기 역시 힘들었던 부분이엇다. 발음이 아직 완전하지 않고 모르는 어휘가 많았기 때문에 읽기 연습을 하면서 어휘 공부를 많이 했다. 읽기 역시 호주 여자친구가 많이 도와주었다. 매일 저녁마다 30분 정도 읽기를 했다. 여기서는 어린 아이들이 읽는 동화책을 구해서 같이 읽어가며 발음도 교정하고, 어휘공부도 하고 읽기 연습도 했다.
말하기가 내가 영어공부를 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부분이다. 솔직히 호주 여자친구가 있었지만 친구도 자기 일이 있어서 많은 시간을 같이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튜터를 하는 동안이라도 말을 많이 하려고 애를 썼다. 지금 와서 제일 후회 되는 부분이 말하기를 많이 하지 않은 부분이다. 그리고 시간이 나는 대로 교회 모임 같은 데에 참석을 해서 현지인들하고 많은 이야기를 하며 우리나라에 대해 말을 해 주려고 노력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내가 영어를 조금 더 잘 했다면 많은 것을 알려주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렇게 4개월 정도 영어공부를 했다. 그러자 대화를 해도 조금 더 고급어휘를 많이 쓰게 되고 내가 몰랐던 단어가 들리는 것이었다. tv를 보거나, 신문을 볼 때에 그런 것을 많이 느꼈다. 나중에 여행을 했을 때, 곤란을 겪고 있는 한국 사람들을 가끔 도와 줄 수 있어서 정말 그 때 내가 영어공부를 한 보람을 느꼈다.
가자! 호주의 대자연 속으로.....
이렇게 4개월 간의 쉐어와 영어공부를 끝내고 여행을 시작했다. 브리즈번을 처음으로 골드코스터, 루사, 시드니, 블루마운틴, 와인농장, 다시 브리즈번 이렇게 1개월 동안 여행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할 수 있었다. 쉐어가 끈나고 나는 번다버그에서 다이빙을 했다. 기초 과정이었지만 나에게는 좋은 경험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내가 다시 호주로 와서 해야 할 일이 다이빙이라는 것을 일깨워 준 경험 이었다. 처음으로 들어가 본 바다 속은 나게게는 너무 신기할 뿐이었다. 물 밖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나는 처음으로 경험 했다. 조금 힘든 경우도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나는 물속에 있을 때 가장 편안함을 느꼈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다이빙이 가장 좋다. 우선 브리즈번으로 와서 여행 계획을 세웠다. 돈도 많이 없고 해서 더 좋은 곳은 나중에 가보기로 하고 골드코스트로 갔다. 역시 말대로 일본인들이 많은 곳이었다. 보이는 곳마다 일본상점들이었다. 솔직히 골드코스트에서는 별로 좋은 경험은 하지 못했다. 다음으로는 누사. 누사는 지역 전체가 숲으로 쌓여 있어서 멀리서 보면 그냥 나무들 하고 산 밖에 안 보인다. 그래도 누사에 가면 정말 멋진 바다와 꼭 가보라고 추천하는 누가국립공원이 있다.
그리고 다음으로 간 곳은 바로 시드니. 호주에 오면 한번 가봐야 할 곳이 바로 시드니이다. 이곳은 버스로 24시간이 걸리지만 비행기로 가면 1시간 30분 정도면 간다. 나는 오래 걸리는 것을 싫어하는 스타일이라 바로 비행기를 탔다. 1시간 30분 만에 간 시드니, 그 말로만 듣던 곳에 내가 와 있었다. 그 유명한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 브리지 그리고 시드니 타워. 관광은 2일 걸렸는데 내가 시드니에 있었던 기간은 2주 정도였다. 그동안에 블루마운틴과 와인농장에 가 보았다. 시드니에서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 브리지 외에 추천할만한 곳은 블루마운틴이다. 산맥이 아름답고 특히 3자매 바위는 꼭 봐야한다. 강추! 그리고 내가 여행을 하면서 한 가장 큰 경험은 바로 시드니 게이 축제였다. 마침 내가 있는 동안 열려서 가 보았다. 역시 보지 않고서는 어떻게 말로 표현을 할 수 없을 만큼이나 큰 축제였다. 관광객, 시민, 남여노소 할 것 없이 시드니 시내에 모여 서로 보려고 애쓰는 모습과 사진 한 장이라도 더 찍으려고 애쓰는 기자들이 서로 뒤엉켜 있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렇게 1년을 호주에서 보내면서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호주 생활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었는지, 호주를 떠나기 전에 나 나름대로 시간을 가져보았다.
이제 한국에 가면 무엇을 할지 과연 이 나이에 내가 한국에 가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왜냐하면 나는 한국에서 어느 정도 사회생활을 하다가 여기에 왔기에 어느 정도 생각을 하고 들어가야 했다. 다른 친구들이야 학교를 휴학하고 온 학생들이 대부분이라서 한국에 가면 다시 학교생활을 하지만 나는 달랐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생각한 것이 여기에 다시 와서 다이빙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격증도 따고 여기에서 아에 직업을 구해볼 생각이었다. 지금은 그 과정에 있지만 내 목표를 위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다.
여러분도 망성일 필요 없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것도 없습니다. 한번 도전해 보세요. 지금 여러분의 나이에는 아무거나 해도, 도중에 실패를 해도 누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젊음이란 무기가 있기에 가능합니다. 그리고 도전하세요. 도전하는 분만이 성공을 할 수 있고 이룰 수 있습니다. 그리고 희망을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