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성지순례 제4화
[엘로라 석굴사원]
[2009년 12월 02일, 제2일]
[2009년 12월 2일 수요일]
16시 10분, 우리는 첫 번째의 순례지인 엘로라의 석굴사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엘로라 석굴 사원은 오랑가바드에서 서쪽으로 26km 정도 떨어진 고원지대에 있다. 데칸고원(Deccan Plat) 바위들의 특징인 거무스레한 암벽들이 병풍처럼 펼쳐진 서쪽에 석굴 34개가 2km에 걸쳐 조성되어 있는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현재까지 발견된 인도 불교석굴의 수가 대략 1,200여개 정도이며, 데칸고원 서부를 남북으로 달리는 서(西)가츠 산맥의 고원 절벽에 900여개의 불교석굴이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인도 석굴이 뭄바이가 속한 마하라쉬트라주(州)에 있는 셈이다. 석굴사원을 조성하기 시작한 것은 대략 기원전 2세기 말엽 혹은 기원전 1세기 초엽으로 보며, 기원후 9세기까지 계속되었던 것으로 본다.
엘로라 석굴사원을 참배하는 것은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머무셨기 때문이 아니다. 엘로라가 있는 오랑가바드는 부처님께서 활동하셨던 북동부인도에서 아득히 먼 곳에 있다. 엘로라의 불교석굴사원은 대략 5~8세기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기에,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세상에 머무시던 때로부터 대략 900년 쯤 뒤에 형성된 것이다.
오랑가바드에 불교가 전파된 것은 인도 최초의 통일국가인 마우리아왕조 제3대 왕이었던 아소카왕(재위 B.C. 269~B.C. 232년경)의 불교홍포에 힘입었을 것으로 학자들은 본다. 아소카왕이 통치하던 인도는 이미 로마나 중국 등지와 광범위한 교역을 하고 있었고, 그들과 더불어 스님들은 전도의 여행을 떠나기도 했던 것이다. 당시 남인도지역도 효과적인 통치를 위해 도로망이 구축되고 상인들이 오갔으며, 그들과 더불어 스님들도 남인도로 교화의 길을 떠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스님들은 처음에 천연 바위굴을 수행처로 삼았을 것이지만, 점차 인공적으로 석굴사원을 만들어 수행하였을 것으로 본다. 스님들이 스스로 굴을 조성하기도 했겠지만, 그보다는 새로 부자가 된 대상들이 긴 장삿길의 안전을 기원하면서 자신들도 쉴 수 있는 기도처를 만들어 스님들께 드렸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전통은 이후 오랜 세월동안 이어지면서 실크로드 선상에 엄청난 석굴사원을 조성하기에 이르렀다고 보이는 것이다.

[드디어 엘로라 석굴사원을 마주 대하게 되다]
석굴에는 번호가 매겨져 있는데, 보이는 곳의 가장 오른쪽(남쪽)에 제1호굴이 있고 가장 왼쪽(북쪽)에 제34굴이 있는데, 전체적으로는 서쪽을 향하고 있다. 불교의 석굴사원은 제1호굴에서 제12호굴까지이다. 우리는 가장 오른쪽의 제1호굴부터 참배하기로 했다.
석굴 입구로 가까이 다가가니 석굴사원의 안으로부터 나오는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석굴에 들어서면 왜 석굴사원이 필요했는지를 금방 알 수 있다. 엄청난 더위와 우기의 계속되는 비로부터 안전하게 수행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환경이 곧 석굴이다. 암벽을 파고 들어간 정교한 입구를 들어서니 캄캄했다. 한참을 기다리니 사방이 눈에 들어왔다.

[불교석굴사원부터 참배하기 위해 제1굴로 향하고 있다]

[제1굴로 향하는 도중에 지붕위로부터 떨어지는 시원한 물을 만나게 되다]
제1굴은 비하라(畏訶羅, vihāra)이다. 엘로라의 불교석굴은 제10굴을 제외하고는 모두 비하라 즉 승원(僧院)이다. 다시 말해 스님들이 거주하며 수행하는 장소를 말한다. 비하라는 정사(精舍)라고도 번역하는데, 부처님 당시 기증된 기원정사나 죽림정사도 비슷한 성격이다. 비하라에는 사리탑이 없다.
정형화된 형식의 석굴사원(窟院)에는 네모진 큰 방이 가운데 있고, 세 방향에 작은 방들을 조성했다. 큰 방은 스님들의 집회에 이용되었고, 작은 방들은 개인 공간으로 사용된 것이다. 방 안엔 돌침대와 작은 감실, 사물함 등이 있다.
석굴들은 천정이 될 부분부터 파 내려가는 방식으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천장과 지붕이 완성된 뒤, 작업은 아래쪽을 진행된다. 작업은 이대 삼대에 걸쳐 이뤄지는 것이 보통이었다고 한다. 하나의 석굴이 완성되려면 적어도 100년은 걸렸을 것이다.

[이윽고 제1굴에 도착하여 설명을 경청하고 있다]

[큰방에 접하고 있는 삼면에는 이런 개인방이 만들어져 있다]

[불상이 모셔졌음직한 작은 감실]
제1굴을 나와 제2굴로 들어갔다. 거대한 돌기둥들이 천장을 받치고 있는데, 제1굴에 비해 규모가 엄청나다. 입구의 맞은편 가장 안쪽 한 가운데 작은 방이 있다. 그 안에는 걸터앉은 형태의 부처님이 모셔져 있고, 좌우에 연화수보살과 문수보살이 시봉하고 있다. 각 기둥마다 정교한 조각을 한 것이 얼마나 깊은 신심으로 조성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제2굴은 예불당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셈이다.

[제2굴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굴 입구에 서 있다]

[석굴의 입구에도 이처럼 정교한 조각들이 조성되어 있다]

[제2굴의 내부는 엄청 넓은데, 그 때문인지 천정을 받치는 기둥이 많다]

[방의 가장 안쪽에는 다시 굴이 만들어져 있고, 안에는 부처님과 대중들이 조각되어 있다]

[옆의 작은 굴에 모셔진 부처님도 걸터 앉은 모습이다]

[옆굴에 있는 설법하시는 부처님 상]

[기둥의 모양이 정교한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쪽에 문이 있어 햇빛이 가장 많이 들어오고 있을 때의 밝기이다]

[작은 감실에 조성된 조각]

[설법하시는 부처님상과 보살상등이 조각되어 있다]

[기둥의 아래에 조각된 형상]

[각 석굴로 통하는 통로도 장엄하게 조성되어 있다]
첫댓글 시원한 낙수가~
시공을 초월한 법비처럼 내리는 엘로라 석굴사원!
깨달음을 향한 장엄한 신심과 법열에~
저절로 합장공경하게 되는 ~ 감사합니다!_()()()_
그 옛날의 수행자들 처럼 그렇게 기쁨 가득하시길---- ^^
" 위법망구 "
스승님들 계셔서, 이만큼이라도 행복합니다.
행복이 가득한 곳 !! ^^
부처님을 향한 신심의 손끝으로 돌을 부수고 쪼아 장엄한 사원.
시대를 초월한 그 공간에 마음으로 거닐며, 부처님의 법의 비 속에 흠뻑 젖어 봅니다. ._()()()_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법의 비라고 할 수 있지요. ^^
먼 발치에서 바라본 석굴사원은
여느 시골 뒷동산처럼
아늑해 보였습니다.
... 오후 햇살이 따갑긴 했지만
청량한 공기가
사원 앞에 서있는 이들을
투명하게 만들었지요.
.. 완성된 하나의 석굴이
적어도 100년의 시간을 품고 있다는 말씀에
참-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무언가가 제 모습을 들러내기 위해선 참으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요. ^^
수행자가 일생을 통해 석굴 사원에 조각을 하는 것은,
불심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불보살님께 합장으로 예를 올립니다.( )( )( )
수많은 불자들이 한평생 수행하는 것도 예삿일은 아니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