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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두둑!!......
이른 아침부터 빗줄기가 제법이다.
올해 여름의 비는 순서가 없고 예의도 없다. 그저 오고 싶을때 오고, 싫으면 또 금새 사라져 버린다. 그렇다...이럴땐 비라는 놈처럼... 가고 싶을 때 가고, 쉬고 싶을때 쉬면 그만이다. 그리 살아 본지가 얼마나 되는지....아니...그리 살아 본 적이 있기는 한지.. 선배형님과 갑자기 죽이 맞아 월차를 내고 훌쩍 서울을 떠버렸다. 오랜만에 타 보는 호남선 무궁화호 열차는 아침이라 한적한 듯 하지만 빈자리가 그리 많지 않다. 바쁜 민초들의 수 많은 이야기들이 저마다 눈밑 그늘을 지나 저 멀리 허공에 뿌려지고 있었다. 서울서 시작 되었던 빗방울은 중간 어디쯤인가 부터 없어지고 맑은 하늘과 넓은 평야가 전라도로 접어 들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홍길동의 캐릭터는 장성역부터 낮선 방문객들을 반갑게 맞아 준다. 그래서인가....처음 오지만 그리 낮설지가 않다.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장성역 앞에서 찾아 들어 간 궁전해장국집의 암뽕순대는 옛날 맛을 기억하게 해주는 부드러움으로 정성스레 만들어져 내 왔다. 첫동네의 첫식사가 만족스럽기가 쉽지 않음을 잘 알기 때문에 무척 반가운 느낌이 든다. 식당 바로 앞에서 택시를 올라 타고 축령산으로 향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축령산이다. 방송에서 계속 떠들어 대던 편백을 보고 싶었다. 택시 안에서 기사님께 설명을 들어 가며 추암저수지를 지나고 추암계곡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택시 기사님의 설명을 들으며 추암으로 올라 가다가 문득... 동양학자이자 컬럼니스트인 청운(靑雲) 조용헌(趙龍憲)선생이 지은 '백가기행(百家紀行)'에서 본 축령산자락에 있다는 휴휴산방(休休山房)이 떠올라 여쭈었더니 그 앞까지 올라가서 내려 주신다. 내친김에 청운(靑雲) 선생이 지은 다른 책 '고수기행'에 나온 '변동해 선생님'을 아시냐고 물었더니 함께 군청에서 근무 하신 인연이 있다며 전화번호를 알려 주셨다. 세상에 이런 인연이 있는가....... 청운 선생님의 글방인 휴휴산방 앞에서 바로 청담 변동해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전화를 받자마자 추암쪽으로 오시겠다고 했다. 큰 인연이 될려고 이런 일이 생기는 모양이다. 축령산 입구에서 위로 올라 보지도 않고 그대로 발길을 돌려 다시 밑으로 내려오기 시작 했다. 어느새 차를 가지고 변동해 선생님이 데리러 와 주셨다. 황송하게 차를 얻어 타고 온 곳이 바로 '휴림'이었다. 휴식이 있는 숲....숲이 인간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 아니던가... 그곳에 휴림이 있었다.
축령산 꼭대기에 소담스럽게 앉은 휴림(休林)....말 그대로 휴림이다.
건너편 언덕에서 바라 본 휴림은 그대로 자연이었다.
금곡에서 올라 세심원을 지나 언덕 정상에 서 있는 이정표.
모암리쪽에서 올려다 본 휴림의 전경.
소박한 장독대와 잔뜩 준비해 놓은 나무장작들..
편백과 황토를 발라 정성 들여 지은 통나무 황토집들이 산자락에 그대로 묻혀 있다.
낮은 담을 폐기와로 쌓으니 운치는 물론이고 내집 앞마당을 거저 얻은 듯 하다.
옆문을 걸어 닫는 문걸이인지.....명찰이 있다.
"나를 보고 반추하고 있습니다"...
나는 나를 반추하고 있는가......??
앞만 보고 정신 없이 달리고 있지는 않은가.....??
무엇을 반추 하기 위해 이곳에 왔는가.....??
자꾸 일깨워 준다....
'心공부중'도 그러하다.
마음공부도 언제 해 보았는가....
바쁜 세상이라는 핑계로 눈길 조차 주지 않았던 마음공부 아닌가.....
이제라도 마음공부를 할 생각은 있는 것인가.....
스스로에게 자꾸 반문하게 만든다.....
창피함에 괜히 혼자 얼굴이 붉어진다....
객실들 앞엔 발을 쳐 놓은 곳도 있다.
각 객실 토방에 놓인 섬돌을 딛고 올라서면 툇마루가 있다.
오래된 마루의 푸근함이 그대로 전해지는 작은 툇마루는 팔벼개를 하고 누워 종일 바람을 쐬기에도
아주 좋은 곳이다.
작은 방은 4-5명이 눕기에도 충분한 공간이다.
커다란 창으로는 축령산이 내다 보이고 시원한 바람을 방안 가득 들일 수 있다.
화장대와 다기 선반 까지 주인장의 세심한 배려가 느껴지는 방이다.
도마처럼 보이는 다반이 재미있다.
오밀조밀 액자들과 창호문을 열면 현대식으로 지은 깨끗하고 넓은 화장실이 있다.
안채의 아늑함과 선반마다 가지런히 놓인 다기, 도기들이 아주 인상적이다.
마치 커다란 나무속에서 구멍을 뚫어 창을 내고 그 안에 들어 앉은 느낌이다.
그만큼 자연스럽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안채이다.
청담 선생께서 직접 덖어 만든 차를 내 주시는데
테이블로 사용하는 감나무의 수백년에 걸친 작품이 눈에 들어 온다.
하지만 작품들을 다 보려면 아직 멀었다.
한쪽으로 차분하게 다소곳이 앉아 있는 다기들과 장구, 문갑의 편안한 조화로움이 시선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앙증 맞은 선반과 올라 앉은 다기들이 주인의 깔끔한 성격을 보는 듯하다.
천정의 서까래 사이로 폐절에서 가져 온 단청이 그려진 나무판들이 보인다.
새 것을 사용하지 않고 역사를 그대로 사용한 느낌이 주인의 역사 의식까지 엿보게 해 준다.
"달과 별을 노래하는 이곳은 자연을 닮은 순수한 사람의 안식처"
단기 4341년 6월 4일 서기 2008년7월 6일...
상량식에 지붕을 얹으면서 순수한 사람들이 모이길 기원 한 주인의 애틋함이 전해 진다.
서고에 가득 쌓인 인문학 서적들이 객들의 발길을 잡고 오래 머물고 싶게 해 주는 듯하다.
난고득락(難苦得樂)...
석송(石松) 조성종(趙成鍾) 선생은 국제미술작가협회 자문위원에 심사위원이시며
한국현대서각협회 부 이사장이시기도 한 분이다.
이 난고득락은 신라 흥덕왕때 자장법사가 창건한 충남 천안에 있는 광덕사에 보물로 지정 되어 있는
고사경(古寫經)에 나오는 말로 서사의 공덕이 지닌 것 중에 하나로서,
죄멸복생(罪滅福生), 국조영륭(國祖永隆), 안민안락(安民安樂), 난고득락(難苦得樂) 등
현실에 대한 복리증진을 위한 것으로 쓰여졌다.
이분이 청담 선생님의 애지중지 장자인데 젊은 나이에 산방을 지키고 앉아 나름의 꿈을 키우고 있는
보기드문 젊은이로 한두시간의 이야기로 좋아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지녔다.
노트북을 배경으로 한 뒤편의 땡감나무는 말그대로 수백년간 스스로의 몸안에 멋진 그림을 그렸다.
「天地人으로 인한 아픔을 아름답게 승화시켜
"나도 화가야"의 작품을 남긴 큰 화가 선생님 감나무로
전남 함평 월야의 땡감나무가 작가이다.
제작기간만 1705년부터 2005년까지 300년간 그린 그림이다.」
'5대를 이어 온 화로'
휴림지기인 아들 변성천의 고조부 때부터 이어 온 정신적인 화로로 '재'는 그때부터 보존 된
뜻이 있는 화로이다.
안채는 그대로 갤러리이며 사랑방이며 문화공간이다.
도기와 서각과 시화(枾畵)뿐 아니라 보기 드문 그림들도 꽤 있다.
청운(靑雲) 조용헌(趙龍憲)선생이 글방으로 사용하는 휴휴산방(休休山房)을 직접 지으셨던
탱화를 그리시는 일지(一止)거사 이홍기 님이 그리신 그림이 유독 눈에 들어 온다.
세속을 초탈하는 선의 경지가 느껴지는 그림이다.
이 개구리 그림도 일지(一止)거사 님의 그림이다.
정교한 개구리들이 휘영청 댓가지에 매달려 장난스레 튀어 나와 '개굴' 할 것 같은 느낌이다.
휴림은 전시장이다.
호남의 역사와 문화와 기개를 느끼게 해주는 물건들로 가득하다.
주인장의 욕심도 그러한 것 같다.
주차장에서 안채로 오르는 돌계단이 유난히 눈에 들어 왔다.
그저 돌 사이를 흙으로 메꾸고 잡풀이 자연스레 나게 해도 좋은 걸 왜 시멘트를 발랐을까...
곧 깨달았다.....아......그림이구나........
청담 선생님 마음속을 흐르는 정열과 문화의 향기가 흘러 내리는 물줄기처럼 그림을 그리셨다.
자유분방하되 돌 위로는 넘치지 않는 절제와 그 사이를 흘러 내리는 열정이 보이는 그림이다.
바로 유심석계(流心石階)이다.
저녁상이다.
늦은 저녁에 사모님과 따님을 뵙지는 못했지만 휴림지기 변성천 님이 차려 놓으신 상엔
산사에서나 먹음직한 나물들이 그득했다.
잡다한 조미료가 들어 가지 않고 직접 만든 식초로만 무친 나물들의 깊은 맛이
잠자고 있던 미각을 확~ 깨우고 지나간다.
하루밤을 지내고 다음날 아침에는 연잎밥을 내 놓는다.
밥통에 넣고 쪄낸 연잎밥은 잘 보관 했다가 찌기만 해도 훌륭한 별미가 된다.
만든이의 정성도 느껴지지만 아침부터 쪄서 내어 놓는 이의 정성이 더욱 고맙다.
맑은 배추장국으로 덜 깨어난 위장 속을 풀어 준다.
간자미 찜은 잘 말린 반축이로 쫀득하게 쪄 냈다.
유정란이란다.....
글쎄....서울에서는 유정란을 먹어 본 적이 거의 없는 터라......
소중하게 닭 한마리를 먹는 느낌으로 받아 본다.
오이소박이도 천일염으로 적당이 절이고 소도 그리 많지 않아 정갈하게 내어 놓으셨다.
무침들이 다 그러하다.....
전라도의 짜고 쎈 간이 아니다.
그저 심심한 듯, 필요한 만큼만 세월을 묵힌 깊은 초 맛이 전체를 감싸고 있다.
고추와 양파, 마늘까지....장아찌의 섬세함까지 느낀다.
.....?? 사진이 더 이상 올라가질 않는다.....50장이 한도란다....
암튼.....휴림 이야기에 빠지다 보니 시간 가는줄......사진 한도 초과 하는 줄도 모르고
단숨에 풀어 내 자랑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다.
그동안 바쁜 핑계를 대며 어찌 참았을까 싶지만
시간이 지나니 더욱 그립고 생각 나는 휴림의 스토리텔링과
마음속 깊숙히 자리 잡는 영양분의 효과까지....
느끼시라......그리고 누리시라.....
그곳에서 건강하게 반추하고 마음공부 하시라고 권하고 싶다.
첫댓글 안녕하세요 휴림지기입니다. 잘지내시죠 너무 멋진글 감동이었습니다 ^^ 가족분들과 꼭 한번 찾아주세요. 감사합니다
자세한 정보 감사합니다~~ 몇명이 잘 수 있는지 궁금했거든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