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안습지 순천만의 하루
어제 서울에서 살고 있는 누나한테서 전화가 왔었다,
서울친구들과 2박3일 기차여행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서울에서 목포까지는 기차로 내려가서 목포에 살고 있는 딸집에서 일박한 후
다음날 순천만을 구경할 수 있도록 나더러 승용차제공을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올해로 칠순중반을 훨씬 넘긴 다섯 사람의 초등학교 동창들이란다.
모두들 고향목포를 떠난 지 40년 넘는 이력을 가진 타인 같은 처지였다.
요즘이야 교통사정이 좋으니 크게 염려할 일은 아니지만 그 연세에 친구들과
함께 고향여행을 한다는 생각자체가 용기 있는 것이라 여겨졌다.
서울누나는 나에게는 셋째 누나다.
누나라기보다는 내 인생의 길잡이였고, 어머니였다.
6.25한국전쟁을 목포에서 어린나이에 부모님과 함께 겪었고,
일찍 부모를 여윈 나에 학창시절, 젊은 날의 방황, 가난했던 결혼생활까지의 모든
과정에서 어머님의 역할을 대신해주었다.
어머니 같은 당신
-팡팡-
하늘엔 빛나는 태양이 있고
땅위에는 뭇 생명들
삶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머리위엔 절대의 神이 있고
가슴속에는 어머니 같은
당신이 있습니다,
가난했어도 슬퍼하지 않았고
양심에 거울 보며 살아온 것은
당신에 눈빛 때문 이었습니다
어두운 뒷골목에서
용기를 잃지 않고 살아온 것도
당신에 손길이었습니다,
매 마른 세상에서
타는 목을 안고 울던
상처뿐인 내 무릎 만져주시던, 당신
당신눈물로 목 추겨 살아왔습니다,
내가, 머리 숙여 기도하는 것은
내영혼의 안식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 세상 모든 빛이 꺼져버린 날
말없이 촛불하나 켜줄
하나뿐인 당신,
당신을 위해서입니다,
머리위에는 절대의 神이 있고
내 가슴속에는
어머니 같은 당신이 있습니다.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섰다.
아내는 길치인 나를 걱정스럽게 쳐다보며 동행하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승용차정원이 초과하기 때문이었다)
최근자동차교통도로지도를 챙겼지만 얼마나 활용이 될지는 나도 모른다.
내비게이선이 장착돼 있지만 사용할 줄을 모르는 내가.
어떻게 운전을 하고 다니는지 생각해도 웃기는 일이고 차가 멍청해서 시키는 대로
한다고 아내는 내게 조크를 보낸다.
우선 주유소에 들려 기름을 가득 채우고 목포로 향했다.
광주-무안국제공항간도로가 개통되었고,
이 도로가 서해안고속도로와 연결되었기에 목포까지는 1시간이 못 걸렸다.
오전10시, 누나 일행을 태우고 고속국도를 따라 순천만으로 떠났다.
목포에서 영암-강진-장흥-보성-벌교-순천만까지 이어지는 고속국도는 도로
표지판이 잘 되어있어 별 어려움이 없었다.
가다가 의심나는 곳이 있으면 차를 세우고 사람들에게 묻기도 했지만
2시간 만에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길이 서툴러 우회해서 먼 길로 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날씨는 화창했고 기온은 따뜻했다.
고속국도는 4차선도로로 막힘이 없어 상쾌한 기분으로 달릴 수 있었다.
난생 처음 달려보는 남도의 길이였다.
신이 난 누나일행은 차안에서 노래도 부르고 살아온 세상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순천만이 처음이라는 누나일행은 습지와 갈대를 보고 탄성을 질렀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계유일의 온전한 연안습지(세계5대 연안습지중 하나)엔.
천연기념물 흑두루미가 정겹게 하늘을 날고 끝없이 펼쳐진 갯벌과 갈대가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순천만은 철새 도래지다.
학산里, 송학里, 학동, 황새골 등 주변에는 새와 관련된 지명이 많듯이 220여종의
새들이 순천만에서 월동을 하기위해 찾아들거나 중간기착을 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 전체조류의 절반가량이나 된다고 하니 그 유명세를 알 수가 있다.
이중 흑두루미, 노랑부리저어새, 고니, 재두루미, 검은머리물떼새 등 25종이 세계적
으로 희귀한 멸종위기 조류들로 순천만의 천연적 환경에 의존하여 살고 있다했다.
2003년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순천만은
저서생물들의 치어들과, 칠면초, 나문재 등 각종 염생식물(鹽生植物)들이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었다.
겨울철 진객인 흑두루미는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할 만큼 희귀종에 속한다했다.
갯벌생물도 그 다양성에서 월등했다.
농게, 밤게, 칠게 등 게 종류와 갯지렁이, 맛, 민챙이 등 갯벌표면의 개흙에서 먹이를
찾는 종류도 많았다.
특히 힘차게 뛰어오르는 짱뚱어는 그 생김새 만 큼이나 인기가 높았다.
순천만은 북으로는 빽빽한 갈대밭,
남쪽으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갯벌로 이루어져있었다.
특히 다대 포구에서 갈대숲탐방로를 지나 용산전망대에 오르면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S자형 수로는 사진작가들이 카메라에 담기위해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라 했다.
연안습지로는 2006, 1, 20일 전국 최초로 람사르협약에 등록되었으며,
세계자연유산등록을 추진 중에 있다고 했다.
연안습지 중 우리나라를 대표할만한 아름다운 생태경관을 보여주는 명승지로 생물학적
가치가 커서
2008, 6, 16일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41호로 지정된 곳이었다.
주차장은 관광버스와 승용차들로 가득 차 있었다.
누나일행은 그 연세에도 어린소녀들처럼 갈대숲 탐방로를 따라 전 과정을 구경했다.
순천만자연생태관, 순천만천문대, 공예공방(현재 설치작업 중), 람사르광장, 박 터널,
순천만쉼터, 갈대숲탐방로, 용산전망대, 장산갯벌관찰장 등 등.
순천만으로 흘러드는 잔잔한 물과 갈대사이 둑길을 따라 달리는 갈대열차(요금 1,000원)도 타보았고,
드넓은 갯벌과 갈대군락, 다양한 철새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으며 해설사의 이야기가
있는 생태체험선(요금 4,000원)도 탔었다.
제 몸 비운 갈대는 잠들지 못한다고
간밤을 뜬눈으로 샌 바다와 철새, 별과 사랑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회색갈대숲은 마치 수만 마리의 면양들이 운집해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했었다.
오늘은 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立冬), 입동 후 3개월을 겨울이라 한다.
물이 얼고,
땅이 처음으로 얼어붙으며,
꿩은 드물어지고 조개가 잡힌다고 하였으니,
늦가을을 지나 낙엽이 쌓이고 찬바람이 불면 단풍잎은 몸을 떨어뜨릴 것이고
山은 쓸쓸하게 될 것이다.
살은 다 발라내고 뼈만 남은 앙상한 몰골로,
그래서 눈이 내려 가지에 꽃이 필 때까지는 어정쩡한 풍경으로 남아있을 텐데,
도심의 나무들은 해충을 유인하기위한 볏 집을 허리에 두르기라도 하지만
山에있는 나무는 벌거숭이그대로 한겨울을 지내야한다.
물기 없이 거칠어진 껍질에 싸인 나목(裸木)을 품어보면 봄부터 쌓아온 나무에
내공을 느낄 수가 있을까.
그 곱던 누나의 얼굴에 세월의 연륜이 빽빽이 들어섰고 부쩍 가벼워 보이는 몸이
갈대숲사이를 비집고 내시야로 비친다.
가을을 붙잡고 싶은 간절한 이 마음을 누가 알아줄까!
(2009년 11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