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2월 13일 <호계교회/주일낮예배>
성경 : 창 37:1-4
제목 : 옷을 갈아입는 사람
사람의 생활을 위한 기본적인 요구사항이 衣食住입니다. 입는 것, 먹는 것, 거처할 곳입니다.
의식주 문제만 해결되면 사람은 누구나 사는데 문제가 없습니다. - 옛날에는 이 세 가지가 해결된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문명이 발달하고, 삶이 넉넉해지면서 의식주 문제는 그냥 입고, 먹고, 거처할 곳이라고 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떤 것을 입느냐? 어떤 것을 먹느냐? 어떤 집에 사느냐? 하는 것이 그 사람의 신분과 인격과 성격과 기호 등 다양한 내용을 나타내는 간접적인 방법이 되어졌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다 좋은 옷, 보다 좋은 음식, 보다 좋은 집에 살려고 하는 일종의 욕망에 이끌리는 현상이 생겨나게된 것입니다.
실상 옷의 처음 기능은 자신의 부끄러움을 가리는 것이었습니다. - 아담 하와, 처음엔 벗었거든요.
그리고 후에 홍수가 나고 자연의 기후가 바뀌면서 옷은 추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도구의 기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옷은 이제 입은 사람의 신분을 보여주는 역할도 하게 되었습니다.
중학생 교복을 입고 있는 학생은 본인이 나 중학생이요 말하지 않아도 중학생임을 알려줍니다.
군복을 입고 있는 남자는 군인입니다. 경찰복을 입은 사람은 경찰이라고 우리는 압니다.
뿐 아니라, 옷을 입은 것을 보고 거지라고 알기도 합니다.
ex) 지난 명절 중 전에 알던 청년 하나가 주택을 찾아왔어요. 멋처럼의 방문입니다. 그런데 옷을 입은 것을 보니 어째 영 깨끗치 못합니다. 머리도 그렇고, 냄새도 그렇고... 노숙자 생활을 했더군요.
- 이처럼 옷은 우리에게 단순히 추위를 가리거나 부끄러움을 가리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지 오래입니다. // 그런 의미에게 여러분들은 품위를 갖춘 옷을 입을 줄 아는, 입을 수 있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저는 요셉을 통하여 일생동안 입게되는 옷의 종류를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이것은 누구라고 입게 될 수 있는 옷입니다.
무슨 옷입니까?
1. 사랑의 채색옷입니다.
- 요셉은 사랑의 채색옷을 입었습니다.
요셉은 야곱의 11번째 아들입니다. 야곱의 가장 사랑했던 아내 ■라헬■이 낳은 첫째 아들입니다. 가장 사랑했던 아내가 낳은 아들이기 때문에 가장 이뻐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보통 가장 사랑을 받고, 오냐오냐하고 자라게되면 버릇이 없어지고, 말 않듣게 되기 십상인데 요셉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은 꼬박꼬박 순종하는 아들이었습니다.
심지어 양치러 나간 형들에게 도시락을 가져다주라는 말에 순종합니다.
창 37:14 이하를 보면, 아버지가 말합니다. “가서 네 형들과 양떼가 다 잘 있는 여부를 보고 돌아와 내게 고하라”하고 요셉을 헤브론에세 세겜으로 보냅니다.
버릇 없는 녀석은 가지 않겠다고 그때부터 거절하겠지요. 혹 간다고 하더라도 세겜에 가서 없으면 돌아와 아버지 형들 다른 데로 갔나봐요 하겠지요.
그런데 세겜 - 도단으로 찾아갔던 것입니다.
= 요셉은 아버지에게 순종할 뿐 아니라, 책임감도 알고, 성실함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요셉은 아버지의 마음에 쏙 들게 행동을 하고 살았기 때문에 열 두 아들 중에 요셉을 깊이 사랑하여 특별한 옷인 채색옷, 색동옷을 지어 입혔습니다.
그랬더니 그 형들이 요셉을 시기하고 미워했습니다.
“그 형들이 아비가 형제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으로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언사가 불평하였더라.”(창 37:4)
요셉은 남다른 효자였습니다. 우리는 부모님 마음에 쏙 들도록 살아야 하겠고, 우리 만복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께도 인정을 받도록 살고, 그를 기쁘시게 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삼상 2:6-8)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전능하신 하나님의 마음에만 들면 무엇이 부러울 것이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고 하셨습니다.
■ 세상의 대통령을 기쁘게 해도 수지맞는 일이 생기지만 잘못하면 패가망신 하거나 자살하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지만, 영원히 변치 아니하시는 우리 하나님 마음에 들면 그 사람, 그 축복은 영원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칭찬을 받으면 시기하고, 미워하고, 훼방하는 사람들도 생겨난다는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무서워서 적당히 이편도 아니고 저편도 아닌 회색분자가 되어서는 않됩니다.
특별히 시기, 질투를 사고 미움을 받는 사람이 될지언정 남을 시기하며 훼방하고 비방하는 저질적인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남이 칭찬들을 때 시기하지 말고 내가 칭찬들을 때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며 훼방하고 비방하는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면 마귀의 도구가 되고 저주받는 인간이 되고 맙니다.
특히 예수님을 잘 믿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면 사탄 마귀가 총공격을 해오고, 시기하고 넘어뜨리려는 사람이 많이 생기는 법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두려워서 적당히 마귀와 타협하며 살 수는 없습니다.
- 뱀이나 사자는 살아 움직이는 동물을 공격하지 썩은 것은 공격하지 않는 것처럼, 사자나 뱀 같은 마귀는 살아 역사하는 교회와 목사와 성도들을 공격하는 법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능력의 장 중에 붙잡아 지켜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요셉은 종의 옷을 입었습니다.
그렇게 부모에게 효도하고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축복을 받은 요셉인데도 자랑스러운 채색옷만 입은 것은 아닙니다. 다른 나라에 팔려가 종의 옷을 입고 오랜 동안 종노릇을 하였습니다.
애굽의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종노릇하면서도 워낙 근면 성실하고 정직했기 때문에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장군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겼습니다.
= 종살이를 하면서도 흔들림없이 성실하고, 정직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어려서부터 만들어진 그의 인격입니다. 절대 한 순간에 급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요셉을 누군들 이뻐하지 않겠어요? 질투하고 시기하는 사람들이나 미워할까?
그랬더니 보십시오!
창 39:5-6에,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주인이 그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하고 자기 식료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종의 신분이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근면성실하고 정직한 요셉 때문에 보디발 장군의 소유에, 농산물에 복을 내려주셨습니다.
창 39:3에,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고 했습니다.
종 요셉이 자기 집에 들어온 날부터 자기 집에 복을 받고, 또 예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는 것과 범사에 형통하는 것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 우리가 생각할 때 “그렇게 성실하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이라면 남의 종살이하는 고난을 당하지 말아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르는 사람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귀한 그릇이 될 사람일수록 큰 복을 받을 사람일수록 환난과 고통으로 연단시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높이시기 전에 반드시 낮추시는 연단을 먼저 주시는 것입니다.
bex) 모세를 보십시오. 그를 쓰기 위해 애굽의 왕자의 자리에서 끌어내려 광야의 먼지를 뒤집어쓰며 사는 목동으로 40년 낮추셨습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그를 쓰시기 전, 사울에게 쫓겨다니며 불행에 빠지도록 하신 것입니다.
벧전 5:6에,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했습니다.
신 8:2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에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높이시기 전에 먼저 낮추시고 복을 주시기 전에 먼저 복 담을 그릇이 되나 안되나 흔들어 보고 연단시키시는 것입니다.
욥 23:10에,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한 말씀과 같이 빛이 나고 값비싼 정금이 되려면 용광로 불과 같은 환난과 시련을 겪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장차 총리대신이 되어 자기 민족과 대애굽의 백성을 구원할 요셉을 고난 옷, 종의 옷을 여러 해 동안 입고 고생하게 하신 것입니다.
= 여러분! 고난을 옷을 입고 오랜 동안 종살이 한 요셉처럼 환난과 고통을 잘 참고 견디어야 하는 것입니다.
3. 억울한 죄수의 옷을 입었습니다.
요셉은 억울하게 죄수의 옷을 입었습니다. 보디발 장군이 남편 구실을 잘 못했던지 아니면 그 부인이 바람기가 있는 여자였는지 모르지만 준수한 청년 요셉에게 자꾸 윙크를 보내며 조용하기만 하면 “미스터 요셉, 아이 러브 유”하면서 추근대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아무도 없고 마침 머슴들도 다 바깥 일을 나갔고, 집에는 개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을 때 이 유부녀가 죄악의 손길을 요셉에게 뻗칩니다. 요셉의 옷을 붙잡고 동침하자고 간청하며 매달렸습니다.
혈기가 왕성한 20대의 청년에게 요염한 고관의 아내가 유혹해 올 때 뿌리치기가 정말 어려웠을 것입니다. - 남자가 먼저 유혹한 것도 아니고 여자가 먼저 육탄공세로까지 나오며 선제공격을 할 때면 정말 신앙과 말씀으로 무장한 사람이 아니면 다 넘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권세도 있고 돈도 많은 보디발 장군, 그 아내의 요청만 들어주면 돈도 벌 수 있고, 출세도 할 수 있고, 육신의 쾌락도 누릴 수 있었지만,
요셉은 “주인이 나를 믿고 모든 것을 다 맡기고 금한 것은 당신 뿐입니다.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하고 붙잡은 옷을 벗어 팽개치고 뛰쳐 나왔습니다.
그랬더니 사랑이 증오로 변한다는 말대로 그 여자는 소리소리 지른 다음 요셉에게 덮어씌웠습니다. 저녁에 남편이 퇴근한 다음에 “당신이 데려온 히브리 청년이 나를 겁간하고자 하길래 소리를 질렀더니 옷을 벗어던지고 도망갔습니다. 보시오. 요셉의 옷이 여기 증거물로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보디발 장군이 그 말을 듣고 대단히 노하여 요셉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때에 요셉은 억울하게 죄수의 옷을 입고도 꾸욱 참았습니다.
“억울하다. 분하다. 복수하겠다” 하지도 않았고, “네가 나를 유혹했지, 내가 언제 너를 겁간하려고 했느냐?” 그러지도 않았습니다.
/ 만일 그렇게 했다면 보디발 장군이 요셉도 목 베어 죽였을 것이고, 그 여자도 죽였을 것입니다. 요셉이 억울하지만 변명하지 않고 꾸욱 참고 기다렸기 때문에 바로 왕의 꿈도 해몽할 수 있었고, 국무총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억울하고, 분하고,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당해도 미워하거나 복수심을 갖지 말아야 하나님께서 화가 변화여 복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요셉은 국무총리의 화려한 옷 입기 전에 옷의 옷, 죄수의 옷까지 입고 고난을 당했습니다.
사 51:7-8에,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나를 듣고 사람의 훼방을 두려워 말라. 사람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그들은 옷같이 좀에게 먹힐 것이며 그들은 양털같이 벌레에게 먹힐 것이로되 나의 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훼방이나 비방을 잘 이겨내야합니다.
= 이런 경우를 견딜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만 바라보십시오. 하나님께 더욱 딱 달라붙으십시오. 하나님께서 풀어주시면 불행은 행복의 씨앗이 되는 것입니다.
4. 국무총리의 영광스러운 옷을 입었습니다.
요셉은 종의 옷을 입기도 하고 죄수의 옷을 입기도 한 다음에 대 애굽의 실권을 가진 애굽 나라의 총리대신의 옷을 입었던 것입니다.
그 옷을 입고 자기의 부귀영화를 누린 것이 아니라 자기 민족을 구원하고 대애굽의 국민을 기근에서 구원했습니다.
요셉은 사사건건 하나님의 은혜를 말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 이 옷은 그냥 입혀지는 것이 아닙니다. / 종의 옷, 심지어 죄수의 옷을 입어 본 후에 입은 옷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이 입고 있는 옷을 보십시오. 무슨 옷인가요?
만사가 잘 풀리는 색동옷입니까? - 교만하지 마시고, 언제든지 사람의 질투와 모함에 빠질 수 있음을 경계하며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혹 종의 옷입니까? = 하나님이 낮추시고 계심이라 믿고 원망과 불평을 겪고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혹 죄수의 옷입니까? = 당신이 하나님 앞에 올바로 살려고 하는 중심이 분명하다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곧 영광의 옷을 입게 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