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의 무더위가 지나고 제법 날씨가 시원해지는 초가을 들어서면서
우리 아이들의 하교길 발걸음은 더욱 신이 난다.
학교에서 점심 도시락 까먹고 오후 1시간 (5교시) 수업이 끝나면 바로 집으로 갈 수 있으니 얼매나 좋으노. (청소 당번이 아닌 날)
빨리 집에 가질 않고 더 놀다가 가고 싶은 게지.
집에 가봐야 어른들이 일만 시킬 테니까 …
육학년 언니들은 공부한다고 바빠서 놀 틈이 없지만 아직 5학년인 우리들은 시험 걱정이 없다. 그래서 하교 길에 4학년, 3학년들을 불러 모아 놓고 ‘할배 좆잡기’ 놀이를 시작한다.
초등학교가 있는 연덕에서 삼동으로 가는 길에 새로 신작로가 생겼으며,
새로 생긴 길은 벌판을 가로질러서 꼬불꼬불 한 참 가다가 남천내 강을 건너면 그 신작로는 다시 ‘남산’서쪽 허리를 감싸고 돌아서 ‘삼동’까지 이어지는데…
이 신작로는 요새 말로 지방 도로라서 국도(월림- 창곡-연덕-속구로 이어지는 길)와는 달리 차가 거의 다니지 않고 어쩌다 구루마나 리어카가 다닐 뿐이라, 우리들이 뛰어 놀기에는 정말 안성맞춤인 길이다.
그 신작로 중에서 좀더 넓은 곳을 골라서 놀이를 할 수 있는 본거지로 삼고,
우리들 20여명은 모두 가방을 한곳에 모아 쌓아두고는 대충 키대로 줄을 서서 홀짝으로 편을 가르고 양팀으로 나누어 공격과 수비의 게임을 하는데, 그 놀이 형태가 상대방을 넘어뜨려야 내가 사는 것이므로 그 격렬하기가 거의 레슬링 수준이라…
놀이를 하기 전에 우선 땅에다 금을 그어서 경계선 표시를 해야 하는데,
신작로 중에서 가장 넓은 곳에서 양팀의 본부를 그리는데…
양 날개가 크게 휘어져 나있는 금붕어 어항 모양으로 금을 그은 다음에 어항에 물이 고이는 부분(가운데 부분)이 수비 진영의 영역이고, 어항의 양 날개의 안쪽에 해당하는 부분이 공격팀의 영역이다, 항아리 입구가 좁아서 공격팀은 양족 날개 사이를 뛰어넘어 건너다닐 수가 있고 그 길목을 지켜면서 수비팀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지킬 수 있는 곳이며, 수비팀은 이곳을 어떻게 하든 빠져 나와야 바깥으로 나와서 공격팀과 맞붙어서 싸워볼 수가 있으며, 나중에 만세 부르러 가는 공격 요원을 공격 통행로 밖에서 공격하여 죽여서 수비할 수가 있다.
계속해서 금을 더 그어야 하는데,
항아리의 바닥 부분에 해당하는 곳에서 수비진의 영역을 연장하는데, 연 꼬리 모양으로 두 줄로 길게 연장하여 신작로를 따라서 50~60미터 정도 나란히 금을 끗는다 (폭은 약 60cm 정도). 그 두 줄의 연장선의 마지막 부분이 만세 부르는 곳으로, 그 마무리 부분을 우리들 손톱 모양으로 해두고, 공격팀원은 반드시 그 손톱 안에서만 만세를 불러야 그 한 판을 이기는 것이다.
한편, 이 연꼬리 부분의 군데 군데에는 공격수가 만세 부르러 가다가 수비팀의 공격을 피해서 쉴 수 있게 작은 방들을 둥그렇게 그려 놓았는데, 그 방들의 모양과 만세 부르는 곳의 모양(손톱모양)이 어우러져 꼭 할아버지 그 것 닮았다 하여 우리는 이것을 ‘할배좃잡기’라고 하여 신나게 놀았었지…
그 유래는, 우리 동네에 대감이라고 불리는 한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그 당시 우리 마을에서는 제일 연세가 높다고 하여 (그 당시 80세가 넘은 것 같음) 그분을 존경하여 마을 사람들이 그렇게 대감이라고 불렀는데,
이 할배는 항상 대문간에 있는 방에서 기거를 하셨는데, 그 문간방의 봉창문이 바깥으로 나 있으며, 그 봉창문의 높이가 그리 높지가 않아서 우리들의 눈높이로 옅 볼수가 있는데, 여름 철이면 할배는 아랫도리에는 삼베 바지만 걸치고스리 낮잠을 곧잘 주무시는데, 우리는 대감 할배의 그것이 어떻게 생겼나 궁금하여, 봉창문을 살며시 열거나 아니면 창호지 문을 침으로 발라 구멍을 뚫어서 주무시는 할배의 아랫도리 속옷 속을 열심히 드여다 보곤 했는데…
우리가 하는 놀이의 만세 부르는 구간의 모양이 꼭 그 대감 할배의 그것과 같이 생겼다고 우리 중에 누군가가 우겼으며, 그래서 그 이후로 우리는 이 놀이의 이름을 ‘할배 좃잡기’라고 하였다 (믿거난 말거나 편)
애기가 잠깐 엉뚱한 곳으로 흘러 갔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놀이 방법은, 공격조와 수비조의 양 진영으로 나뉘어서 서로간에 공격/수비하는데
1.자기 진영에서 상대방의 진영으로 손을 뻗어서 상대방을 나꿔채서 끌어당겨 경계선을 넘게 되면 그 끌려온 사람은 죽은 걸로 한다.
그러므로, 경계선에서 서로간에 힘겨루기가 대단하다.
아니면, 상대방이 좁은 통로를 지날 때 그를 밀쳐서 경계선을 넘게 만들면 그는 죽은 것이 된다.
2.양 팀 모두 지정된 출입구를 통하여서만 출입이 가능하며,
어느 경계선이든 간에 경계선을 넘어설 경우에는 그 사람은 죽는다.
3.일 대 일로 싸워도 되고,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을 공격해도 되고,
떼거리로 싸워도 된다. 그러므로, 안 죽고 살아있는 떼거리가 많은 팀이 유리하다.
4.양 진영 밖에서 서로 간에 싸울 때는 먼저 넘어지는 사람이 죽는다.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을 공격해도 되고 떼거리로 싸워도 된다.
공격조/수비조 상관없이 넘어진 사람은 모두 죽는다.
5.양 진영 경계선 바같에서 싸울 때, 힘에 밀려서 어떤 경계선을 넘게
되거나 밟게 되는 그는 죽은 것이된다.
6.양 진영 안에서 싸울 때는 넘어지는 것에 상관없이 경계선 눈금에 걸리거나 넘어서는 사람이 죽은 것이다.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을 공격해도 되고 떼거리로 싸워도 된다.
7. 죽은 것으로 인정된 사람은 더 이상 싸울 수 없으며, 별도 대기 장소에서 그 한판의 승부가 끝날 때까지 결과를 기다린다.
8.공격조 중에서 누구라도 만세를 부르게 되면 그 한판을 이기게 된다.
9.공격조가 다 죽을 때 까지 만세를 부르지 못하면, 수비조가 수비 성공하여 승리하게 되며, 공격과 수비가 교대한다.
이렇게 해서 놀이를 하는데,
각 진영의 대장은 작전을 잘 짜서 적재적소에 적절한 인력을 배치해야 하고
수비와 공격의 균형을 맞추어서 최종적인 승리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 동네의 우리 또래는
고춘규, 최재일, 명순주, 남상훈, 명춘식, 손종규, 박경진, 임외택, 김형만,
명형철 등이고 (어떤 친구는 옷 떨어지고 더럽혀진다고 잘 어울리질 않았음…) 상당수 후배들 (4학년, 3학년 동생들)을 데리고 신나게 놀다보면
해지는 줄도 모르고, 소 풀먹이러 가야 하는 것도 잊고, 소풀 떧어러 가야하는 것도 잊고, 참새떼 훛으러 가야 하는 것도 잊고 …
울 어매가 대문간에 서서 큰 소리로 ‘충구야, 저녁 먹으러 온너라~~~!’하고
부를 때까징 놀았지롱...
때로는 놀이하다가 서로 싸우고 우기고 억지부리고 하여 깽판이 되버려서,
서로간에 패를 갈라서 한 동안 말도 하질 않고 지나기도 하고 …
그래서, 그 때는 ‘하늘이 두쪽이 나도 다시는 너희들과 말 하나 봐라’ 하고 다짐을 하고 또 하고 했는데…
첫댓글 아직 순수함이 남아 있고, 어린시절을 떠올리게 하니 옛날이 그립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