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로와 어머니
겨울은 추위의 수다가 심한 계절이다. 홀연히 찬바람이 불거나 때론 눈이 오거나 혹은 땅과 물이 한 몸처럼 얼어붙곤 한다. 사람들은 겨울이라는 말만 들어도 몸을 움츠리게 된다. 올 겨울은 추위가 유난하여 북방 러시아에서는 동사한 사람이 많다고 한다. 연일 계속되는 영하 섭씨 30도 이하의 강추위에는 평소 얼음날씨에 단련된 사람들도 견디기 힘든 모양이다.
내가 사는 남해도는 겨울에도 대부분 영상기온이다. 어쩌다가 수은주가 영하로 내려가기라도 하면 오금부터 졸인다. 잔뜩 움츠리며 두꺼운 외투 속에 단단히 몸을 숨긴다. 겨울이 오면 가장 사랑받는 것이 난로다. 창고 속에서 잠만 자던 난로, 사람들의 관심 밖에서 관심 안으로 그가 돌아오는 날이면 모두가 부산하다. 비좁은 사무실의 책상과 탁자도 자리를 내어주고 조금씩 옮겨 앉는다. 심지어 유리창까지도 살점을 아낌없이 뚝 떼어내어 숨구멍을 만들어 준다. 아침 출근 직후나 점심시간 때면 동료들은 삼사오오 난로 주변에 모여들어 엉덩이가 노곤노곤 해질 때까지 수다를 떤다.
우리 사무실에는 한동안 창고 속에서 사람들의 관심밖에 있다가 어느 날 특별한 존재로 모습을 드러낸 난로가 있다. 여름 내내 잊혀졌던 난로다. 그러나 개의치 않으며 꼭 필요한 도움을 거절하지 못한다. 오늘도 사무실 난로는 덩그렇게 앉아 추위를 쫓고 있다. 예외 없이 봄날 추위의 진퇴가 분명해질 때까지 사람들의 수다를 들어 주면서 자리를 지킬 게다.
가끔 나는 그로부터 어머니의 냄새를 맡곤 한다. 가만히 다가서 보면, 난로는 약간 기력이 쇠해 보이지만 제 몸으로 달군 열을 쉼 없이 밖으로 뿜어내고 있다. 신체 일부가 상하는 것쯤이야 조금도 염려하지 않는다는 듯 오직 따듯한 열기만 사무실 공간 깊숙이 전염시키고 있다.
한 때 어머니의 몸도 저러했을 게다. 돌이켜보면 어머니에게서 내게로 옮겨온 그 사랑의 열기는 어떠했던가? 지금은 차가운 몸을 다시 데울 수 없는 어머니. 당시에는 치유의 마법도 지니고 있어 어떤 상처 입은 몸도 어머니의 가슴에 안기면 깨끗이 나음을 입곤 했었다. 그것이 신체적 손상이거나 정신적 충격이라 할지라도 따듯한 가슴으로 안아주면 분수같이 솟던 피도, 폭포수 같던 눈물도 멈추곤 했다.
그 때 그 어머니, 세상을 훌쩍 떠난 지도 벌써 10여년이 지났다. 세월 탓일까? 아등바등 산다고 그런 어머니를 잊고 지내는 날이 더 많은 요즘이다. 그러나 겨울만 되면 어머니의 기일처럼 찾아오는 저 난로로 인하여 가슴에 아련한 그리움의 불덩이가 이글거리곤 한다.
한 때 나도 장성하면 어머니를 위로하는 난로가 되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어머니를 생각하면 할수록 현재의 나는 절망하고 만다. 어머니가 누워계신 무덤 속 한 칸 방도 데울 수 없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아플 때나 괴로울 때나 언제나 나의 피난처였지만 정작 당신을 위해 못다한 효심을 다할 길이 없다. 그래서 엄동을 간병하는 난로 옆에서 가끔 내가 속으로 운다. 울면서 저 난로의 연통처럼 늘어진 기억의 오솔길을 따라가 보면 만감이 교차된다.
난로의 불꽃 속에 어머니의 애간장이 타고 있다. 희생, 고독, 인내, 슬픔, 고통, 가난 그 찌들림의 불씨마저 꼭 껴안고 사셨던 어머니. 가장 이기적이고 탐욕스런 불꽃을 다스리셨던 어머니가 난로 속에 있다. 자기 몸의 화와 고난의 불꽃을 다스려 제 몸 밖의 세상을 데울 수 있는 분이 세상에 어머니 말고 또 있을까.
어머니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사무실 난로 곁으로 다가서 본다.
일명 화레이(FARAY) 히터라고 명명된 난로가 서 있다. 40평 남짓한 공간의 난방을 홀로 책임지고 있다. 그 모습이 영락없이 생전 어머니를 쏙 빼 닮았다. 나이 열아홉에 시집와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8남매를 책임진 모습에서 그렇다. 구조물의 모양새가 붕어빵이라서 더욱 그러하다.
화레이 난로는 내부가 훤히 다 보인다. 어머니의 뱃속 같은 창자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 ㄹ 자로 굽었다가 ㄴ 자로 휘었다가 다시 ㄱ 으로 꺾어지며 끓고 있다. 곡각의 주름까지도 활활 태우고 있다. 또한 속은 늘 쿵덕쿵덕 뛰고 있고 바깥으로 향하는 긴 목의 끝은 언제나 창밖에서 한숨을 토하고 있다. 슬프고 아픈 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기 싫은 게다. 어디 그뿐인가? 쭈글쭈글 주름진 신체 구석구석마다 추위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달궈져있어 60년대 보릿고개를 간신히 건너던 어머니의 아픔으로 다가온다.
지독하게 충격적인 어머니의 사랑이 느껴진다. 죽어서도 우리의 삶을 구속하는 단 한 분, 어머니는 곤고한 인생길의 큰 위안이었다. 저 난로는 그것을 내게 알려주고 있다. 내 어머니의 영혼의 닻처럼 견고하게 터 잡고 우리의 근심을 미리 알고 타오르고 있는 것이다. 창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추위와 대립하고 있는 우리들의 어려움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집 밖에서나 안에서나 자식의 모든 근심을 꿰뚫어 보시는 어머니 같이.
오늘도 사무실 난로는 내 몸의 추위를 털어내고 있다.
마치 어머니 같은 그가 내 앞에서 활활 타고 있다. 부끄러운 내 마음도 타고 있다.
첫댓글 난로의 불꽃 속에서 어머니를 그리는 글 잘 읽었습니다. 어머니! 하면 가슴부터 짠~하니 고생 인내 인고의 글귀가 떠오른 것이 지난간 세월처럼 안타까움입니다. 이제는 내가 어머니처럼 엄마의 자리에 있으니 먼 시간 후에 자식들이 지금처럼 그렇게 그려워지는 엄마가 될수 있을까 잔소리쟁이 엄마는 아닐까 되돌아봅니다.
윤영님은 훌륭한 어머니로 남겠지요. 물론 며느리를 구박하는 시어머니만 아니 된다면~~~~~~ "모진 년의 시어미 밥 내 맡고 들어온다."는 옛말이 문득 상기됩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어떤 것보다 더 훌륭한 이는 "어머니!!"인 듯.
좋은 글은 그냥 읽고 넘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읽으면서 내 어머니를 생각하고 글로서 어떻게 표현 할까 그리고 자기자리도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 여운이 남고 향기로운 글을 쓰고 싶은데 갈수록 힘이 듭니다.
난로를 통한 어머니의 사랑이 한 편의 글에서 아름답게 타오르고 있군요. 잘 감상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