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
[南海 觀音浦 李忠武公 遺蹟]
경상남도 남해군 고현면 차면리에 이순신의 우국충정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유허.
내용
사적 제232호. 이순신(李舜臣)이 전사한 관음포 앞 바다를 배경으로 조성되었다.
관음포는 이락파(李落波)와 노량(露梁)을 연결하는 해역(海域)으로 정유재란
때 이순신이 최후의 해전을 치른 곳이며, 달아나는 왜장 소서행장(小西行長)를
추격하다가 이순신이 유탄에 맞아 장렬한 최후를 마친 곳이다. 후대의 사람들은
이곳을‘이순신이 순국한 유서깊은 곳’이라 하여 ‘이락파’라고 불렀고, 돌출한 작은
곶도(串島)를 이락산(李落山)이라 하여 이순신의 충성을 추모하였다.
1598년(선조 31) 11월 9일에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과 명나라 수군은
소금도(召今島)를 출발해 남해안의 왜적을 완전히 소탕하면서 동진하다가
동년 11월 19일 아침에 이곳 관음포에서 최후의 결전을 벌였다.
왜적은 서둘러 퇴각을 하다가 뱃길이 막히는 관음포로 쫓겨났는데,
여기서 그들은 남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하였다. 결국 관음포
전투는 근접전으로 벌어지게 되었다. 이 때 이순신은 한 척의 왜적 전선도
돌려보내지 않으려고 친히 진두에 나서 군사들의 사기를 북돋워 왜선
200여척을 침몰시켰다. 그러나 이 치열한 전투에서 이순신은 적의 유탄을
맞아 전사하였다. 그는 죽기 전에 아군의 사기를 위해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에는 앞 바다를 바라보는 연안에 이순신을
제향한 이락사(李落祠)가 있다. 이것은 순국한 지 230년이 경과된 1832년
(순조 32)에 그의 8대손 이항권(李恒權)이 통제사로 부임하면서 왕명에 따라
단을 설치하고 제사를 지내던 사당이다. 이곳에다 높이 1.9m, 너비 0.73m
되는 충무공유허비(忠武公遺墟碑)를 세웠다. 또한 이락사 경내에는
‘큰별이 바다에 지다(大星殞海)’라는 현액(懸額)이 붙은 충무공묘비각
(忠武公墓碑閣)이 있다. 그 외에 순조 때 홍문관대제학 홍석주(洪奭周)가
세운 이충무공 유허비를 비롯해 근래에 세운 이충무공 사적비도 함께 있다.
이처럼 이곳은 순국한 이순신의 공적과 충성을 기리고 있는 역사적 유허이다.
참고문헌
『경상남도지』(경상남도지편찬위원회, 1978)
『문화유적총람』-경상남도편-(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재대관』-사적편 하-(문화재관리국, 1976)
문화재청(www.cha.go.kr)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6-03-14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