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집 부록 제2권
용문서원(龍門書院) 봉안문 임오년(1642, 인조20)
생각건대 한 기운이 있어 / 曰維一氣
지극히 정대하고 순강하니 / 至正純剛
이 기운 혹 사람에게 모여 / 或鍾於人
강상을 수립하는 것이라네 / 樹之綱常
사람이 생겨난 지 오래건만 / 天下生久
남아가 진정 몇이 있었던가 / 幾箇男兒
문산의 노래가 끝난 뒤로 / 文山歌罷
이제 오백 년이 지났도다 / 五百年玆
하늘이 우리나라를 위하여 / 天爲我東
우리 선생을 내려 주었으니 / 畀我先生
선생은 태어나실 때부터 / 先生之生
옥과 금처럼 밝고 빛났네 / 玉輝金晶
이정에서 시례를 배웠고 / 鯉庭詩禮
준헌처럼 연원이 있으니 / 準軒淵源
진심으로 효도하며 우애했고 / 因心孝友
남는 힘으로 글을 배웠네 / 餘力學文
기량을 감추고 때를 기다리니 / 藏器以待
나라에 반드시 소문이 났네 / 在邦必聞
임금을 속이지 않고 범했으니 / 勿欺而犯
바로 공자를 배우려는 것이고 / 乃願孔子
임금을 도에 맞게 인도했으니 / 引當於道
맹자를 스승으로 삼은 것이네 / 我師孟氏
나라가 위급하고 어지러워서 / 邦昔危亂
국사가 말할 수 없을 지경이라 / 事不可謂
선생께서 만약 말하지 않았다면 / 先生不言
인륜의 기강이 어떻게 되었을까 / 奈何人紀
형벌을 받음도 달갑게 여겼고 / 茅鑕甘心
해외로 유배되어 죽을 뻔하니 / 鄒海能死
하늘이 옥처럼 완성시키기 위해 / 天俾玉成
십 년 동안 곤액을 겪게 함이네 / 十年困阨
귀양에서 돌아올 때의 모습에서 / 涪江髭髮
곧 학문의 힘을 알 수 있었네 / 乃知學力
성대한 시대를 다시 만나게 되자 / 洎乎昌辰
대각에서 준엄한 말을 쏟아 냈으니 / 峻之臺閣
성스러운 임금이 없어서가 아니라 / 非無聖主
임금이 성스러워 신하가 충직함이네 / 主聖臣直
마음에 품은 말 반드시 진달했으니 / 懷則必達
진실로 나라에 유익했기 때문이지 / 苟利於國
청나라가 우리를 침범하려 할 때 / 淮戾于天
원헌처럼 방비책을 절실히 아뢰었고 / 袁切忠規
복의가 온 조정을 가득 메웠을 때 / 濮議盈庭
범순인처럼 잘못을 따르지 않았네 / 范不詭隨
남한산성이 포위되었을 당시에는 / 圍城當日
한 목숨을 어찌 오래 유지하리오 / 玉貌何久
만 번 꺾여도 반드시 동으로 흐르니 / 萬折必東
생선을 버리고 웅장을 취할 것이고 / 熊掌吾取
대장부 남아로서 죽음을 택할 뿐이니 / 男兒死耳
임금의 욕됨이 이와 같기 때문이네 / 主辱如此
흰 칼날이 뱃속에 꽂혀 있으니 / 白刃在腹
푸른 하늘이 그 충성을 비추었고 / 蒼穹照誠
뒤집어지는 사직을 혼자서 막다가 / 顚危隻手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왔네 / 骸骨故鄕
수목을 기둥 삼아 집을 만들었고 / 有屋因樹
수레를 거처로 삼아 생활했으나 / 有車爲席
진퇴를 막론하고 나라를 근심했고 / 進退惟憂
시종일관 변함없이 학문을 닦았네 / 終始亦學
전일한 마음으로 도에 뜻을 두니 / 專專志道
저녁에 죽어도 괜찮다 할 것이고 / 夕死可矣
버려진 거친 땅을 깎고 김매니 / 剗鋤抛荒
옛사람이 경작하던 전지였네 / 昔人田地
학문에는 계제가 필요한 것이니 / 學要階梯
주서 한 부를 책상 위에 두었고 / 朱書一部
공부는 직방을 유지해야 하니 / 工存直方
경의 두 자를 떠나지 않았네 / 敬義二字
군자는 재주가 많아야 하는가 / 君子多乎
수양을 위해 학문할 따름이니 / 爲己而已
아아 우리 선생께서는 / 猗我先生
이 점에 부끄러움이 없었네 / 庶幾無愧
행실은 효경을 본보기로 삼고 / 行則孝經
말은 태사씨처럼 강직했으니 / 言在太史
대장부 큰 사업을 잘 끝내었고 / 一大事了
세 가지 달존 갖추어졌네 / 三達尊備
진실로 대장부라 이를 만하고 / 誠大丈夫
옛날 사직을 위한 신하이리니 / 古社稷臣
성인이 다시 태어난다 해도 / 聖人復起
반드시 인을 이루었다 하리라 / 必曰成仁
평소에 수양함이 있지 않다면 / 不有素養
어찌 이러한 경계에 이르리오 / 曷能臻此
명성은 한 시대에 우뚝 높고 / 名高一代
공훈은 천 년을 덮을 것이라 / 功被千祀
사람은 누구나 덕을 숭상하니 / 人同尙德
응당 보답의 예를 행해야 하리 / 禮合報事
씩씩한 우리 문헌공께서는 / 莊維文獻
동방 오현 중의 한 분이네 / 五賢其一
우러러볼수록 더욱더 높으니 / 仰之彌高
학문과 덕행이 얼마나 우뚝한가 / 龍門幾級
살아서는 선생께서 사숙하였고 / 生吾私淑
죽어서는 선생께서 귀의하였네 / 歿吾依歸
지금 이 서원에 배향되었으니 / 今配乎是
유학이 이곳에 있지 않겠는가 / 文不在玆
더구나 함께 제향되는 분들은 / 況一二同
도덕을 성대하게 지닌 분이니 / 道德之林
실추된 서업을 높이 찾아내어 / 高尋墜緖
아름다운 덕을 함께 계승했네 / 共接徽音
이 고을에 군자들이 없었다면 / 魯無君子
어디에서 이 덕을 취했으리오 / 斯焉取斯
덕산은 바위가 높고 가파르며 / 德山巖巖
덕수는 물결이 맑고 아름답네 / 德水漪漪
동우는 예전 모습 그대로나 / 棟宇仍舊
제향은 오직 새로워졌네 / 俎豆維新
의관을 갖추고 달려온 선비 / 于于襟珮
구름처럼 수없이 모였는데 / 其會如雲
영령을 모시고 제물을 권하며 / 以妥以侑
어느덧 위패를 봉안하였다오 / 於焉揭虔
선생의 덕과 선생의 공적이여 / 維德維績
날이 오랠수록 더욱 빛나리니 / 日遠彌章
원컨대 대대로 길이 흠앙하여 / 願歆世世
아아 선생을 잊지 못하리라 / 先生不忘
<끝>
[註解]
[주01] 문산(文山) : 송(宋)나라 충신 문천상(文天祥)의 호이다. 덕우(德祐) 연간 초에 원(元)나라가 침입해 오자 가산(家産)을 털어 군사
를 일으켜 근왕(勤王)함으로써 신국공(信國公)에 봉해졌고, 그 후 원나라 장군 장홍범(張弘範)에게 패하여 3년 동안 연옥(燕獄)에
수감되었으나 끝내 굴복하지 않다가 죽음을 당하였다. 그가 원나라 병사에게 잡혔을 때 정기가(正氣歌)를 불러 자신의 뜻을 보였다
고 한다. 《宋史 卷418 文天祥列傳》
[주02] 이정(鯉庭)에서 시례(詩禮)를 배웠고 : 가정에서 부형에게 배웠다는 말이다. 공자의 아들 이(鯉)가 뜰에서 공자 앞을 빠른 걸음으
로 지나다가 공자로부터 시례에 대하여 배웠느냐는 말을 듣고 그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일에서 유래한다. 《論語 季氏》
[주03] 준헌(準軒) : 도맥(道脈)의 계통이 분명한 사람인 듯하나 자세하지 않다.
[주04] 임금을 …… 범했으니 : 자로(子路)가 임금을 섬기는 도리를 묻자, 공자가 말하기를, “속이지 말고 안색을 범하며 간해야 한다.
[勿欺也 而犯之]” 하였다. 《論語 憲問》
[주05] 임금을 …… 인도했으니 : 맹자가 말하기를, “군자가 임금을 섬김은 힘써 그 임금을 이끌어 도에 합하게 하여 인에 뜻을 두게 할 따
름이다.[君子之事君也 務引其君以當道 志於仁而已]”라고 하였다. 《孟子 告子下》
[주06] 귀양에서 …… 있었네 : 이천(伊川) 정이(程頤)가 부릉(涪陵)으로 유배 갈 때 염예퇴(灩澦堆)를 지나는데 파도가 사나우니, 배 안
의 사람들이 모두 놀라 몸 둘 바를 몰랐으나 이천만 태연히 동요하지 않았고, 귀양지에서 돌아왔을 때 기모(氣貌)와 용색(容色)과
수염이 모두 평소보다 나아졌기에 문인이 어떻게 하여 이렇게 되었느냐고 묻자, “학문의 힘이다.” 하였다. 《心經附註 卷2》
[주07] 성대한 …… 되자 : 인조반정 이후에 다시 등용됨을 이른 말이다.
[주08] 원헌(袁憲)처럼……아뢰었고 : 원헌은 진(陳)나라의 직신(直臣)이다. 첨사(詹事)로 있을 때에는 태자의 과실을 간하였고, 복야(僕
射)로 있을 때에는 수(隋)나라가 수춘(壽春)에 회남행성(淮南行省)을 설치하고 진나라를 공격하려 하자, 요충지에 정예병을 배치
하여 침략에 대비하기를 주장하였다. 《資治通鑑 卷167》 동계는 병자년에 올린 차자(箚子)에서 청나라 침입 시의 대비책을 상세히
진언한 바 있다.
[주09] 복의(濮議)가 …… 않았네 : 인조의 생부모에게 시호를 추존하여 종묘에 배향하려 하자, 동계는 이를 반대하는 부묘시봉사(祔廟時
封事)를 올려 송(宋)나라 때 복의가 일었났을 때의 범순인(范純仁)처럼 잘못된 주장을 따르지 않았다는 말이다.
송나라 인종(仁宗)이 후사(後嗣)가 없이 죽자 복안의왕(濮安懿王) 윤양(允讓)의 아들 월서(越曙)로 뒤를 잇게 하니 그가 영종(英
宗)이다. 영종이 즉위한 이듬해에 조칙을 내려 생부(生父) 복안의왕의 숭봉(崇封) 문제를 의논하도록 함으로써 일어났던 논의를 복
의라 한다.
이때 여회(呂誨)ㆍ범순인(范純仁)ㆍ여대방(呂大防)ㆍ사마광(司馬光) 등은 인종을 황고(皇考)라 부르고 복안의왕을 황백(皇伯)이
라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한기(韓琦)ㆍ구양수 등은 복안의왕을 황고라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주10] 만 …… 흐르니 : 중국의 강물이 아무리 굽이 돌아도 끝내는 동쪽 바다로 들어가듯이 어떤 경우에도 의리로 향할 뿐 변치 않는다는
말이다.
[주11] 생선을 …… 것이고 : 목숨을 버리고서 의리를 택한다는 말이다. 맹자가 말하기를, “생선도 내가 바라는 바이고, 웅장(熊掌)도 내가
바라는 바이지만, 이 둘을 다 가질 수 없다면 생선을 버리고 웅장을 취하리라. 삶도 내가 바라는 바이고 의(義)도 내가 바라는 바이
지만 이 둘을 다 가질 수 없다면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하리라.” 하였다. 《孟子 告子上》
[주12] 수목을 …… 만들었고 : 초야에 은거함을 이르는 말이다. 후한(後漢)의 신도반(申屠蟠)이 당고(黨錮)의 화를 예견하고 자취를 감
추었는데, 뽕나무를 기둥으로 삼아 집을 만들고 스스로 품팔이하는 사람처럼 살았다 한다. 《後漢書 卷53 申屠蟠列傳》
[주13] 수레를 …… 생활했으나 : 전날의 비통함을 잊지 않기 위해 수레 위에서 괴롭게 생활하면서 평생을 마친 사람의 고사를 인용한 것이
다. 출전은 미상이다.
[주14] 전일한 …… 것이고 : 공자가 말하기를,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괜찮다.[朝聞道 夕死可矣]” 하였다. 《論語 里仁》
[주15] 공부는 …… 않았네 : 경이직내(敬以直內), 의이방외(義以方外)의 공부를 통하여 내면의 곧음과 외면의 방정함을 항상 유지했다
는 말이다.
[주16] 세 가지 달존(達尊) : 천하에 두루 통하는 세 가지 존귀한 것으로, 마을에서의 나이[齒], 조정에서의 벼슬[爵], 세상을 돕고 백성을
기를 때의 덕[德]을 말한다. 《孟子 公孫丑下》
[주17] 문헌공(文獻公) :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의 시호이다.
[주18] 오현(五賢) : 조선 초중기의 유현(儒賢) 다섯 분으로,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 정암(靜菴)
조광조(趙光祖),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퇴계(退溪) 이황(李滉)을 말한다. 1610년(광해군2)에 오현을 문묘(文廟)에 종사
(從祀)하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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