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숙부인 월성이씨 시인 선덕비(淑夫人 月城李氏 施仁善德碑)
고려말 익재 이제현(益齋 李齊賢)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인환(寅煥)이고, 조부는 민철(敏哲)이며, 증
조부는 상윤(尙潤)이다. 또한 시부(媤父)는 풍기진씨(豊基秦氏) 진동주(秦東周)이고 남편 진경환
(秦京煥)과의 사이에 5남 3녀를 두었다. / 희규(喜葵)-희무(喜茂)-희태(喜泰)-희진(喜鎭)-희돈(喜
墩)-女(李玄瑢: 全義人)-女(徐相廈: 達城人)-女(李殷賢: 全州人)이다.
숙부인 월성이씨는 18대 국회의원을 지낸 진성호(秦聖昊)의 증조모가 된다.
▲거창박물관 입구를 들어가서 기와지붕으로 된 박물관 건물 왼쪽편에 있습니다.
▲여러 공덕비들이 있습니다.
▲거북이를 타고 있는 철비입니다.
▲소재지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김천리 216-5번지(거창박물관 비석군)
▲본래는 거창군 가조면 장기리 화곡마을에 아들 진희규 송덕비와 함께 세워져있었는데 거창박물
관으로 옮겨온 것이다. 신해 십월 일) > 1911년 10월에 세움
▲용 두마리가 놀고 있는 걸 새겼네요.
▲淑夫人 月城李氏 施仁善德碑(숙부인 월성이씨 시인 선덕비)
숙부인 월성 이씨『月城李氏, 1847년(헌종 13)~1886년(고종 23)』는 고려말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인환(寅煥)이고, 조부는 민철(敏哲)이며, 증조부는 상원(尙元)으로 어질고 덕이 높은 일을 많이해서 그녀의 덕행을 기념하는 비석을 세웠다.
현장 설명석에는 1916년(丙辰年)에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故 심충성 선생은 우측00十이란 표기를 辛亥 十月로 해독했다.
즉 辛亥 十月 日(신해 시월 일)은 >1911년 10월에 세운 것이다. 淑夫人(숙부인) : 조선시대 정3품 당상관 벼슬을 하고 있는 사람의 아내에게 주는 작위이다.
출처 > 옛님의 숨결. 그 정취를 찾아 ㅣ 글 : 닥밭공 심충성(2016.07.31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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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淑夫人 월성이씨 시인 선덕비
앞면
淑夫人 月城李氏 施仁善德碑
숙부인 월성이씨 시인선덕비
찬시
華閥豊基 狗其家實 履素戒敬 惟赤陳呢
화벌풍기 구기가실 리소계경 유적진니
所積能施 無儀有實 ○○湖金以鎔質
소적능시 무의유실 ○○호금이용질
[풀이]
풍기의 명망 있는 가문의 부인으로
소박하고 조심하고 공경으로 살며
오직 진심으로 베풀고 친근하셨다네.
쌓인 곡식을 적소에 능히 베풀고
격식에 얽매이지 않으며 내실을 다녔네.
○○가 갈라지지 않도록 쇠를 녹여 바탕 삼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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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벌풍기는 풍기 진씨(豊基 秦氏)를 말한다.
거창금석문에서 발췌하였다.
※풍기(豊基)는 오늘날 경북 영주시 풍기읍을 말한다.
辛亥 十月 日(신해 십월일)
1911년 10월에 세움
[해설]
거창박물관에 있는 비(碑)로 일반적인 선덕비와는 달리 여성 인물을 기린 비로서 특히 철로 제작된 보기 드문 비이다.
원래는 거창 가조면 장기리 마을 도로변에 아들 진희규(秦喜葵, 1878년 9월 3일~1959년 11월 25일) 송덕비와 함께 있었는데, 땅 주인의 이전 요구로 박물관으로 옮겼다고 한다.
비의 받침은 거북형이며 화강암으로 되어있고, 비수는 용을 새겼고 뒷면은 회오리 문양을 새겼다. 숙부인이라는 내명부 품계(內命婦 品階)는 남편 진(秦)씨의 벼슬이 당상관(堂上官)이었음을 말한다. 수리 시설이 빈약했던 당시 흉년이 잦았는데 이씨 부인이 선덕을 베풀었기에 소작인들이 감사의 마음을 모아 철비를 세웠다고 한다. <끝>
ⓒ한국의 철비(저자 이희득-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