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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경대에서 내려다보는 전주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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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 들어 전북은 지역출신 장관과 차관이 한 명도 없는 무장관, 무차관 시대가 계속되고 있어 도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지지율이 20%대로 추락한 박근혜정부에 이명박 회고록이 출간되어 전.현 정부가 충돌하고 있어 가관이다'는 뉴스를 들으며 동서학동 교육대학교 앞을 지나 남고산성을 찾았다. 남고산성은 경치가 빼어나서 예로부터 해질녘에 들리는 남고사의 저녁 종소리를 '남고모종(南固暮鐘)'이라 하여 전주팔경의 하나로 꼽았다. 남고산성에서 내려다보면 전주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이 모두 발아래에 펼쳐진다. 시민들의 편안한 휴식처가 되고 있는 완산칠봉의 봉우리들도 한눈에 들어온다. 남고산성은 견훤의 이루지 못한 꿈이 곳곳에 서려있다. 남고산성의 삼봉(三峰) 중 만경대에 오르면 전주시향토문화유산 제1호로 지정된 「만경대 암각서」안내문이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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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경대 정몽주 우국시 안내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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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뜻밖에 고려 말 충신이며 시인이었던 정몽주의 우국시(憂國詩)와 전라도 관찰사 이서구의 시를 만나게 된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여말삼은(麗末三隱)으로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를 배웠다. 만경대의 바위벽에 ‘만경대’라는 큰 글씨가 새겨져 있고 바로 아랫부분에 정몽주의 시가 새겨져 있어 700여 년 전의 그 날을 생각게 한다.1360년 정몽주는 3년 시묘살이를 마치고 다소 늦은 24세의 나이로 과거 3장에 연달아 장원급제를 한다. 홍건적의 침입으로 고려가 온통 어수선할 때 고만고만한 라이벌들인 이성계, 정몽주, 그리고 정도전이 출현하여 대권을 향한 근육들을 만든다. 정몽주가 28세에 함흥방면에 여진족을 막으러 종사관이 되어 출정을 하나 지휘부가 신통치 못해 고전을 하게 된다. 그러자 30세의 이성계가 투입되어 여진족을 박살내버린다. 이성계와 정몽주의 첫 만남이다. 허수아비 같은 왕권에 바람 잘 날이 없다보니 정몽주 출세가도에 먹구름이 일기도 한다. 귀양생활을 하기도하고 목슴을 걸어야하는 일본사신으로 떠나기도 한다. 그러나 정몽주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데 탁월한 재주와 능력을 타고 났다. 원만한 성품과 대인관계 능력을 가졌기에 누가 이끌어 주지 않아도 스스로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었다. 1380년 라이벌인 이성계와 정몽주는 지리산 부근에 집결하여 약탈과 살육을 일삼고 있는 10만 여명의 왜구를 소탕하기 위해 함께 참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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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경대 암각서 탁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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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이성계는 전신을 철갑으로 무장한 아지발도의 투구 끈을 활로 맞춰 벗기고 그사이 다른 장수가 활로 머리를 맞춰 죽인다. 이 전투에서 이성계는 일약 영웅이 되고 세계를 제패한 한국 양궁 실력의 확실한 기틀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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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경대 암각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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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발도 무리를 순식간에 궤멸시켜버리는 이성계장군을 향해 정몽주는 존경과 감격의 거수경례를 올렸다. 저 멋진 이성계라면 망조가 든 국권을 다시 세울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해 9월 왜구를 몰아낸 이성계가 개선장군이 되어 목에 콘크리트 깁스를 하고 조상의 고향인 전주에 들른다. 오목대에서 종친들을 불러 전승 잔치를 베푸는데, 한잔 한 김에 자신이 무능한 고려를 전복시키겠다는 속내를 내비친다. 승전의 축배에 거나해진 정몽주는 이 말을 듣고 귀를 의심하다 열을 받아 그만 뚜껑이 열려 버린다. 당장 자리를 박차고 나오자 “야~ 몽주 아우야! 어디 감메? 2차 가야디~ 고럼” 거친 이북 사투리의 이성계가 부르지만 대꾸도 않고 말에 오른다. 개성에 처자식 본지도 오래고 가을이 물드는 남고산성의 만경대에 올라 한탄하는 우국시를 짓는다.
'천길 바위머리 돌길로 돌고 돌아/ 홀로 다다르니 가슴 메는 시름이여/ 청산에 깊이 잠겨 맹서하던 부여국은/ 누른 잎은 어지러이 백제성에 쌓였도다/ 구월의 소슬바람에 나그네의 시름이 깊은데/ 백년기상 호탕함이 서생을 그르쳤네/ 하늘가 해는 지고 뜬 구름 덧없이 뒤섞이는데/ 하염없이 고개 들어 송도만 바라보네'
1390년 최영을 제거하고 이성계를 정점으로 하는 권력구조가 재편이 된다.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세력가 최영이 하루아침에 목슴을 잃는 일이 요즘 김정은 3대 세습에서 장성택 처형되듯 간단한일이었다. 정몽주는 이성계를 이용하여 고려를 지키려 온몸을 던질 무렵, 의외의 복병이 등장하는데 26세의 혈기 방장한 이성계의 다섯째아들 이방원이다. 칼잡이 이방원은 붓잡이 정몽주보다 30년이나 후배인데 <하여가>로 시인 정몽주에 도발을 한다. 정몽주가 즉석에서 '단심가'로 멋진 승부를 겨뤘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이 시조는 국민의 시조가 되어 시조 형식의 틀을 만들어 준 작품이다. 정몽주의 시는 소재를 확대하고 참신한 수법을 사용하였으며 바른길을 굳게 지키고 대의명분을 분명히 하고자 하는 철학적인 시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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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경대에서 바라본 남고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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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주가 ‘단심가’가 아니라 ‘OK가’로 답했더라면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뒷날 건국공신 정도전을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되기 위해 형제를 죽이고 아버지도 끓어 내린 이방원을 애송이로만 여기다가 일국의 재상인 정몽주는 선죽교에서 56세의 생을 마감하고 3개월 뒤 이성계는 조선의 태조가 된다. 최규하 시절 정승화와 전두환처럼 역사가 바뀌는 갈림길에 별들의 전쟁은 늘 비슷하다. 복잡하게 꼬여가는 정국을 보며 정몽주 우국시 한 구절을 읊어본다. '하늘가 해는 지고 뜬 구름 덧없이 뒤섞이는데 하염없이 고개 들어 청와대만 바라보네'/시인. 전라북도문학관 사무국장
출처: http://www.sjb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81983
첫댓글 잘읽었습니다
오랜만에 들어오니 인증절차까지 치르고 들어왔네요
1월1일 삼체계이후 카페방문과 금연을 스스로 약속햇는데 오늘까지 금연은 성공적으로
이어오는데 카페방문은 너무 늦었습니다
앞으로 노력하겠습니다
그동안 카페 유지 및 활성화에 노력하신 흔적들 앞에 머리 조아립니다
성문의 새해 약속 두가지 꼭 실천있길 빋다.
나는항상 너는 할아버지의 개척정신을 이어받은 것같아서 흐뭇하게 생각하고 있단다.
여러제종반이 다들 보수적이여서....
하는 사업 더욱 잘 되길 바란다.
오랜만에 저근댁 성문이 방문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제종반이 많이 있는데 좀처럼 카페 방문을 안하니 앞으로 본이되여 열심히 방문하여
좋은 정보또는 집안 안부도 알수있서 자주방문을 권하고싶다,
항상건강에 조심하고,
얼마후면 대명절 설인데 그때 만나자,
능계아제의 격려와 정동형님의 환영에 깊은감사의 말슴을 올립니다
설날 반가운 모습으로 뵙길 바랍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