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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진안 馬耳山(♀ 686m, ♂ 680m)을 가다.
글 쓴 이 旲 熀 高 達 五
12월27일 반월당, 반고개, 서남시장, 성서홈플러스를 거쳐 칠곡IC에서 최종 출발하니 앉을 자리가 많이도 모자란다.(49명) 수고는 임원(任員)들이 다 하시는데~ 임원들은 모두 다 서 서 갑니다.
자기 주머니 돈을 써 가면서 까지 봉사(奉仕)하는 분들이 계시기에 우리 사회가 요만큼이라도 아름다운 것이 아니겠는가! 모든 임원님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 잠시 차창(車窓) 밖을 내다보니 멀리 다가오는 山川의 모습들은 황량(荒凉)하다 못해 을씨년스럽기 까지 합니다.
절기(節氣)는 소설(小雪) 대설(大雪)을 지나 동지(冬至)가 지났건만 날씨는 포근하여서 백설(白雪)은 온데 간데 없슴니다. 인류(人類)의 산업발전과 문명의 발달이 가져다 준 결과는 지구온난화(地球溫暖化)로 이어져서~ 오늘 날 기후변화가 세계인의 화두(話頭)로 논의되고 있으니... 불가(佛家)에서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하시드니 과시(果是) 변하지 않는 것이 없슴니다 그려!
논공 휴게소에서 간단히 조식(朝食)을 한 후 시원하게 뚫린 “광주~대구(광대)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리니, 그간의 불편했던 도로사정이 한꺼번에 보상을 받는 느낌이 듬니다. ‘88올림픽 고속도로’가 개통한지 31년만이요, 4차선 확장공사 7년 여만에 총공사비 2조1천23억을 투입해 완공했다 하니... 조국의 번영발전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냄니다.
함양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한 후 줄곧 내달아 ‘마이산 남부주차장’에 도착하니 시계는 10시를 조금 지나있다. 단체로 간단한 기념촬영을 마치고 이정표를 따라 고금당(古金堂) 방향으로 모두들 열지어 진행하니~ 어찌나 대열이 긴지 선두와 후미간에 끝간데를 모르겠슴니다.
계곡의 등산로를 따라 200여 미터를 나아가니~ 우측 밭 언저리에 부도(浮屠) 한기가 외롭게 모셔져 있다. 자세히 보니 ‘처사 원강희(處士 元康喜)’라 새겨져 있으며, 사각지대석에 연화좌대 위에 원형의 몸돌이 2층으로 되어있고 그 위에 8각지붕돌을 덮어 비교적 안정감 있게 세련됀 조각으로 모셔져 있다. 주위 환경으로 봐서는 부도를 모시기에 어울리지 않는 곳인데~ 일반적인 통념을 뛰어넘는 발상이다. 선채로 간단한 예를 드리고 뒤따르니~ 회원님들은 어디까지 가셨는지 보이질 않는다.
10여 분을 더 오르니 광대봉(廣臺峰)과 비룡대(飛龍臺)로 가는 갈림길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일부는 비룡대 방향으로 가시고 대부분의 회원님들은 본래 계획대로 광대봉 방향으로 접어들어 20여 분을 등산하니 경사가 심한 벼랑 끝에 “고금당(古金堂)”이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작은 개울 옆에는 ‘부식운반용 모노레일’이 설치되어 있으며, 보호철책을 따라 한참을 더 오르니 천길 낭떠러지 위에 나옹암(懶翁庵)의 석굴(石窟)이 나온다. 입구는 탑모양의 지붕을 만들어 미려(美麗)하게 장식하였고 내부는 제법 넓어서 작은 법당을 꾸며 놓았는데, 석벽의 틈새 틈새 마다 오색찬란한 ‘동자석불’을 모셔 놓았다.
간단한 예를 드리고 문밖으로 나오니 안내문에 고려말 나옹선사(懶翁禪師 1320~1376)가 수도했던 곳이라 전해지며 옛 금당사(金塘寺)가 있던 자리라 한다.
나옹선사는 20세에 출가하여 양주 회암사에서 득도하였으며, 그 후 당나라로 건너가서 인도승 지공화상(指空和尙)으로부터 법을 이어받아 1358년 귀국하여 1371년에는 공민왕의 왕사(王師)가 되었고, 보우(普雨), 무학(無學) 등 뛰어난 제자를 배출하였으며 여주 신륵사에서 입적(入寂)하였다.
몇 몇 회원님들에게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 잠시 주위를 둘러보니, 암반(巖盤)은 온 통 시멘트와 모래 자갈을 섞어서 부어놓은 콩크리트 같은 “역암층(礫岩層:자갈이 진흙이나 모래에 섞여 굳어진 퇴적암)”이 분포되어 있다.
연하여 암반 주위에는 여러 곳에서 “타포니[taffoni : 역암에서 자갈 사이를 메우고 있는 물질인 메트릭스(metrix)가 자갈보다 빨리 풍화되는 차별침식으로 자갈(礫)이 빠져나가면서 생기는 구멍이다.]”가 형성되어 있으며, 필자가 짐작컨대 이 작은 석굴(나옹암)도 거대한 바위가 빠져나간 “타포니”가 아닐까 여겨집니다.
자료에 마이산 일대의 역암층은 전북의 임실(任實)까지 이어져서 “마이산역암층(馬耳山礫岩層)”이라 불리워지고 있으며, 마이산의 지질 형성 시기는 약 1억년 전에 ‘중생대백악기’에 형성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사진 언덕길을 몇걸음 더 올라서 나옹암 뒤로는 여러 곳에 크고 작은 ‘타포니’가 즐비하게 많으며, 어떤 곳에는 호랑이 등을타고 있는 ‘산신령 조각상’을 그 속에 모셔놓아서 귀엽기도 하고 또 익살스럽기도 합니다.
고금당에 들어 간단히 참배한 후 안산(案山)을 바라보니 그야말로 산 첩첩(疊疊) 물 겹겹이다. 왼편(靑龍쪽)으로 지근한 거리에 나봉암(527m)의‘비룡대(飛龍臺)’가 촛불을 켜 놓은 듯... 우주를 밝히고 있으며, 그 동쪽 능선에는 ‘암(♀)馬耳峰’이 연화봉(蓮花峰)의 모습으로 다가오니 한 순간에 가슴이 뻥 뚫림니다.
연하여 백두대간에서 뻗어나온 ‘호남정맥’의 연봉(連峰)들이 겹겹이 에워싸고 있어 참으로 장관(壯觀)이라, 이만하면 대장부 한살림을 꾸릴만한 자리가 아니겠는가! 한~참을 넋을놓고 바라보는데... 고금당의 주인은 간데없고 ‘검둥이와 누렁이’ 두 마리가 꼬리를 치면서 온 몸을 흔들어대고 있슴니다.
초면인데도 사람을 반겨주는 인정이 따사로와서 발길을 돌리기가 여간 아쉬운 것이 아님니다. 손을 흔들어 주면서 작별을 하고 다시 나아가니 주위에는 여러기의 무덤들이 보이는데 봉분에는 풀 한포기 보이지 않는다.
마사토(磨砂土)에 비교적 습기가 많은 지대라 유택(幽宅)을 모시기에는 적당치 못하며, 언덕 밑에는 조그마한 지붕 아래 뚜껑덮인 우물(샘)이 있고 그 옆에는 용왕님을 모셔 놓았는데, 아마도 고금당에서 사용하는 것이리라.
오늘도 황까페지기님, 김해진님은 후미에서 사진촬영에 분주하시고, 갈림길에서 기다리시 던 박태옥부회장님을 비롯하여 홍현문님, 금복주님, 이원우님, 김서방님 등 20여 명과 다시 합류하여 비룡대로 향합니다.
20여 분을 걸어 비룡대 주위에서 여러 회원님들에게 기념촬영을 해드리고 다시 철계단을 올라 정자에 오르니, 암마이봉(686m) 일대의 풍광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멀고 가까운 암벽에는 커다란 구멍들(타포니)이 숭 숭 뚫려서 마이산의 진풍경을 가감없이 보여주심니다.
여기서도 숫마이봉(680m)은 완전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그저 수줍은 듯... 담 너머로 고개를 갸웃하게 내미는데, 21C는 음(陰:여성상위 시대)의 시대라 대자연도 예외는 아닌가 봅니다.
마이산(686m)은 백두대간의 영취봉(1076m) 부근에서 서남으로 한줄기가 뻗어나와 장안산, 신무산, 팔공산, 성수산을 거쳐 이 곳 마이산에 이르고 다시 그 여맥은 주화산(조약봉) 부근에서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으로 나뉘어져서 호남정맥은 담양 추월산, 광주 무등산, 보성에 사자산 제암산을 거쳐 승주군의 조계산을 지나 광양 백운산에서 남해바다에 그 맥을 드리우고 있으며, 금남정맥은 대둔산을 거쳐 공주의 계룡산을 지나 부여의 부소산에서 그맥을 금강에 떨구고 있다.
아울러 마이산의 동 북쪽으로 흐르는 물은 금강(錦江)으로 흘러들고, 서 남쪽으로 흐르는 물은 섬진강(蟾津江)으로 흘러드니~ 신무산(神舞山) 아래 “무룡샘”이 금강의 발원지요, 팔공산 아래 “데미샘”에서는 섬진강의 발원지가 있으니, 영취봉에서 주화산(조약봉)까지는 ‘금남호남정맥’이 겹치는 곳으로 전라남북도와 충청남도 일원의 생명수(生命水) 발원지이기도 합니다.
천지(天地)는 넓고도 무한(無限) 한데
하늘은 무슨 뜻이 있어 馬耳山을 이 땅에 주셨는가
우주와 세상의 소리를 경청(敬聽) 하여서
미래 세계에 인류만방의 주인 되라 하시네
아~ 대한의 아들 딸 들이여 부디 명심하소서!
아쉬운 발걸음으로 봉두봉(535m)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후미에 홍현문님은 등산길에 불편한 ‘나무그루터기’를 톱으로 정리를 하면서 가느다란 지팡이 하나를 다듬어 주신다. 오르막 내리막길에 짚으니 한결 수월합니다 그려!
세월을 이길 장사가 있는가? 청춘(1994년)에 시작한 남산산행이 어느 덧 20여 년이 지났으니...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여여(如如)하건만 겉사람은 많이도 변했제! 홍현문님에게 감사를 드리면서 봉두봉 주위에서 어머니봉(암마이봉)이 잘 보이는 곳에서 여러회원님들과 함께 점심을 드심니다.
점심 후 바지런히 걸어서 마이산 ‘탑사(塔寺)’에 이르니 등산들객과 답사객들이 어우러져서 그야말로 인산인해(人山人海)입니다. 마이산은 가뜩이나 신비한데 입구에는 많은 돌탑들이 빽빽하게 쌓아져 있어 그 신비감을 더 해 주십니다.
우리 남산님들에게 차례 차례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 이 곳 저 곳 둘러봅니다. 신비한 돌탑 사이에는 오석(烏石)으로 됀 “도사 이갑룡선생 사적비(道士 李甲龍先生 事蹟碑)”가 세워져 있으며, 그 왼편으로는 조그마한 인공석굴을 만들어 “탑 축조자 이갑룡처사 본영”이 모셔져 있다.
안내문에 이갑룡(1860~1957)은 본명 이경의(李敬議), 자(字) 갑룡(甲龍), 호(號) 석정(石亭), 전북 임실(任實)에서 조선 태종의 아들 효령대군의 15대손 이성우씨의 차남으로 출생하여 25세에 유불선(儒彿仙) 삼교(三敎)에 바탕을 둔 용화세계(龍華世界)의 실현을 꿈꾸며 이 곳에 들어 왔다고 한다.
인하여 중생들의 죄를 빌고 억조창생(億兆蒼生)을 구할 목적으로 30여 년을 하루같이 낮에는 돌을 나르고 밤에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탑을 쌓았다고 한다. 당시에도 하도 신비하여 많은 사람들이 탑 쌓는 광경을 보려고 했으나, 언제 어떻게 쌓는지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고 한다. “도정석불자신령(道精石佛自神靈)이라” “도가 정미로우면 석불도 저절로 신령스러워진다.”는 옛 말이 사실인 것 같슴니다.
선채로 처사님의 본영에 간단한 예를 드리고 조심스럽게 탑 사이를 지나 돌계단 옆에 이르니, “섬진강 발원지 용궁”이라 새겨진 샘이 있다. 섬진강 발원지는 호남정맥이 지나는 줄기마다 있으니... 참으로 많기도 합니다 그려!
여러 계단을 올라 대웅전(大雄殿) 입구에 오르니 출입문 위에는 “비례물경(非禮勿勁:예를 갖춰서 출입하시오)”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고, 그 옆에는 “탑사(塔寺)”의 편액이 나란히 매달려있다.
법당에 들어 참배를 마치고 잠시 산천을 둘러보니 주산(主山)은 숫마이봉(680m)이요, 암마이봉(686m)은 백호(白虎)에 해당되며, 주산에서 뻗어나온 청룡(靑龍)의 기세가 더 우람하고 힘차게 에워싸고 있으니, 전체의 지세(地勢)는 배가 나아가는 형국이다.
이갑룡처사께서 용화세계(龍華世界)를 구현(具現)하기 위해 쌓아놓은 작은 돌탑들은 배에 적당한 짐을 실어 안전한 항해를 염원하였고, 또 많은 탑들은 억조창생의 중생들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며, 아울러 풍수적으로 깊은 계곡 앞마당의 허(虛)함을 비보(裨補)하는 역할도 하고 있슴니다.
연하여 대웅전 뒤의 가장 웅장한 ‘천지탑(天地塔)’은 배의 돛대에 해당하며, 당시 일제치하에서 고통받는 ‘대한제국(大韓帝國)’의 백성들을 구하고 나아가서 인류세계를 평화의 길로 인도하는 원대한 뜻이 담겨있다고 봅니다.
신비감에 젖어서 한참을 넋놓고 바라보니 크고 작은 돌탑에서 아름답고 영롱한 기운들이 하늘로 뻗쳐 오르는 것을 느끼겠슴니다. 하여 탑사의 돌탑들은 ‘전라북도 기념물 제35호’이며, 마이산은 도립공원이자 ‘전라북도 기념물 제66호’로 지정되어있다.
도량 전체를 한바퀴 휘~돌아 나오니 남산님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다시 5분여를 걸어서 은수사(銀水寺) 입구에 도착하니 그 신비한 ‘역고드름’이 사진으로 전시돼있다. 이는 마이산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으로 과학적인 원인은 아직 알 수 없다 하시니... 아마도 이 곳의 기운이 하늘로 강열하게 솟구치기 때문인가 봅니다.
또 ‘馬耳山’과 ‘銀水寺’는 조선의 태조 이성계와도 인연이 깊어서~ 고려 우왕6년(1380)에 이성계는 전라도 운봉의 황산전투에서 왜구를 크게 무찌르고 귀경(歸京)길에 올랐는데, 마이산 근처를 지나다가 그가 꿈에서 신선에게 “금자(金尺)”를 받았던 곳과 너무나 닮아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신선이 그에게 금자를 주면서 “이것을 가지고 나라를 바르게 다스리시오!”하는 내용이었는데, 마이산 모양이 금(金)자를 묶은(束) 모습과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 “속금산(束金山)”이라 했다고 한다.
인하여 정도전(鄭道傳)은 그 꿈을 소재로 태조의 공덕을 칭송하기 위해 악장(樂章)을 하나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몽금척(夢金尺)”이며, 그 것을 춤으로 꾸며 조선왕조 내내 궁중에서 행사 때 연행(演行)되었고 마이산이 몽금척의 무대가 되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신라시대는 서다산(西多山), 고려 때는 용출봉(湧出峰), 돛대봉, 용각봉(龍角峯), 문필봉(文筆峰) 등 끝이 없으며 마이산이라는 이름을 얻게됀 것은 조선 태종 때라고 하니... 사물은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다양하게 보이는 것이라!
지금도 태극전(太極殿)에는 당시에 금척을 받는 “몽금척수수도(夢金尺授受圖)”와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가 모셔져 있으며, 당시에 기념으로 심은 “청실배나무”가 천연기념물(제386호)로 지정되어있다. 또 경내에는 신라 때부터 제사를 지내던 소사(小祀)터의 기록에 근거하여 매년 군민의 날(10/11) 전야(前夜)에 산신제(山神祭)를 모시는 제단이 숫마이봉 아래 있다고 한다.(안내자료 참조)
도량(道場)내 전각의 수는 무량광전(無量光殿), 대적광전(大寂光殿), 산신당(山神堂), 태극전, 요사채 와 종각(鐘閣) 등으로 비교적 단촐하며, 종각에 법고(法鼓)를 보니 2004년 11월에 왔을 때는 북(鼓) 한번 치는데 1000원을 내고 마음 껏 두드렸던 기억이 나서 웃음이 절로 남니다.
가까이서 본 ‘숫마이봉’은 우람하고도 장엄하여 하늘을 떠 받치고 있는 거대한 기둥 같기도 하고, 달리보면 코끼리 코가 드리워져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며, 또 야릇하게 보면 꼭 거시기가 축 늘어져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예로부터 아들을 점지해 달라고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드렸다고 전해오는 것을 보면 숫마이봉의 상징성(象徵性)을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슴니다. 무량광전에 들어서 예를 올리고 잠시 주위를 둘러보니 은수사(천태종)의 터는 연꽃이 반쯤 피어있는 “연화반개형(蓮花半開形)”이다.
더는 시간이 여의치 못해 도량을 한바퀴 돌아 나오면서 다시 암수마이봉을 자세히 올려다 보니, 여러군데 대형 타포니(taffoni)가 생겨있는 모습이 마치 대형 스피커를 여러개 달아 놓아서 대자연의 부처님이 우매한 중생들에게 무언(無言)의 장광설(長廣舌)을 하고 있는 것 같슴니다.
나무 대자연불! 나무 대자연불!을 되뇌이면서 108계단을 올라 고갯마루에 오르니, 암마이봉은 “입산통제”라 오르지 못하고 숫마봉의 “화엄굴(華儼窟)”도 무속인들의 환경오염으로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아쉬움이 커서 살짝 월장(越牆)을 하여 화엄굴 앞에 이르니 석벽(石壁) 사이로 물이 흘러내려 상당한 깊이의 맑은샘이 고여 있으며, 주위는 꽤 넓어서 서너사람 정도는 수도(修道)할 수 있는 공간이다.
안내문에 화엄굴은 옛날에 한 이승(異僧)이 수도하면서 “연화경(蓮花經)”과 “화엄경(華嚴經)”을 얻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하며, 화엄굴에서 바라보니 맞은편의 암마이봉과 이 곳 숫마이봉이 서로 뒤바뀐 느낌을 받슴니다.
좁은 굴(窟) 틈사이로 잘 생긴 암마이봉의 모습이 서로 오버랩(overlap)되어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다시 수 백개의 계단을 내려와서 북부주차장에 당도하니 모두들 하산주를 들고 계신다.
필자도 후미의 꼬추까루(서경철)님, 금성(황재덕)님, 매산(김해진)님 등과 함께 간단히 하산주(오댕떡가래탕)를 들고는 지근한(약250m) 거리에 ‘마이산 전망대’가 있다하여 함께 오름니다.
전망대에 오르니 김광남님, 금복주님, 홍현문님, 서부장님, 김해진님, 김서방님, 황까페지기님, 안언니 등 많은 분들이 와 계신다. 예상한 대로 마이산의 진면목(眞面目)이 여기서야 다 뵈나다!
신비하다 못해 경이롭기 까지 합니다. 감개무량(感慨無量)한 이 심정을 필자(筆者)의 필력(筆力)으로는 다 표현키 어려우니, 일찍이 마이산의 경치를 읊은 시(詩)들이 많이도 있어 간단히 옮겨봅니다.
突兀雙尖馬耳峰(돌올쌍첨마이봉) (우뚝 쌍으로 솟은 마이산의 두 봉우리)
雲端擎出碧芙蓉(운단경출벽부용) (구름 끝에 높이 걸린 푸른 연꽃 두 송이)
何當揷得沖天翼(하당삽득충천익) (어찌하면 하늘 오를 날개를 얻어)
飛上峯頭一盪胸(비상봉두일탕흉)(봉우리에 날아올라 한번 마음을 씻어볼까)
조선 성종임금 때 매계(梅溪) 조위(曹偉 1454~1503)선생의 시(詩)이며, 이 밖에도 점필재 김종직(佔畢齋 金宗直 1431~1492)과 중종임금 때 영의정(領議政)을 지낸 만보당 김수동(晩保堂 金壽童 1457~1512) 등의 시가 더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실려있다.
아름다운 두 봉우리를 카메라에 담아 나려오니 시계는 15시를 조금 지나있다. 이제 乙未年 한 해도 저물어 나흘 남았슴니다. 올 한햇동안 남산의 발전을 위해서 수고하신 구회장님을 비롯하여 벽송대장님, 윤총무님, 김미소총무님, 능선운영위원장님, 윤상복대장님, 박태두대장님 등에게 깊은 감사를 드림니다.
저물어 가는 을미년 한햇동안의 추억들이여!
이제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병신년 새해를 맞이 합니다.
가까이 멀리 있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면서
남산의 벗님들이여! 무궁 무궁 발전(發展) 하소서!
단기 4348년(서기2015년) 12월 27일
전북 진안 마이산(馬耳山. 陰.686m, 陽.680m)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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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문님 산행후기를 쓰시느라 정말 노고가 크십니다.저희들은 그냥산만오르고 보고 즐기고 에 그치지만 고문님의 세심하신 산행후기를보고 저희들의 산행기록을 훤히알수있답니다.정말고맙고 감사합니다.고문님말씀하셨지만 임원진들께도정말깊은감사를드립니다.그분들이 있기에 모든회원들은 즐건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새해복많이받으세요^^.
경숙님 고맙슴니다.
졸문에 댓글까지 달아주시니 감사하구요~
병신년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시고 가내 행복을 기원합니다.
마이산에 다시 가보고 싶은 마음 뿐 ...
항상 후기를 쓰느라 수고 많았어요.
잘 보고 갑니다.
황까페지기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언제나 자상하게 알뜰히 챙겨 주셔서 감사드리며~
올 한해도 늘 건강하시고 가내 만복을 기원합니다.
고고문님 마이산의 역사의 유래를 소상하게 올려주셨군요,
긴장문의 산행후기 쓰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남산의 애정과 회원님한분 한분 소중이 모시는 마음 늘 고맙게 생각합니다.
벽송대장님 그 바쁘신 중에도 다녀 가셨군요!
병신년 새해에도 늘 건강하시고 ~
하시는 일마다 소원성취하세요!
보잘 것 없는 장문의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산님들이여! 병신년(2016년) 새날이 밝았슴니다.
지난 한햇동안 남산의 발전을 위해서 수고하신
모든분들께 다시한번 깊은 감사를 드리며~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시고 모든님들! 가내 만복을 기원합니다.
아울러 김해진님, 김서방님, 황까페지기님의 사진자료를
활용했슴에 감사를 드리면서~
앞으로도 좋은작품 많이 올려주시길 바람니다.
고 고문님의
산행후기는 옛날 야사를 읽는듯 흥미진진 하고
너무재미있고
많은걸 배우고 갑니다.
병신년 새해에도 건강 하시고
많은 예기거리를 들려 주시길 바랍니다.
김선생님! 병신년(2016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늘 카페에 좋은 자료를 올려주셔서~
요긴하게 잘 활용하고 있슴에 감사드림니다.
변변찮은 장문의 글을 읽어주시고 또 댓글까지 달아 주시니~
감사 감사 드리오며, 늘 건강하시고 좋은작품 많이 올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