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국수집 20주년 이야기
세월이 쏜살처럼 흘렀습니다. 어느새 저도 늙은이가 되었습니다. 제가 민들레국수집을 2003년 4월 1일에 열었습니다. 그때 나이가 마흔 아홉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예순 아홉이나 되었습니다.
20년 전에 민들레국수집을 시작하면서 네 가지만은 꼭 지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다. 기부금을 얻기 위한 프로그램을 하지 않는다. 생색내는 돈을 받지 않는다. 조직을 만들지 않는다.’ 였습니다. 오로지 하느님의 섭리에 의지하면서 착한 개인들의 희생으로 나누는 도움으로 민들레국수집을 운영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민들레국수집은 오로지 착한 개인들의 후원으로 운영됩니다. 처음에는 하루하루를 겨우 보냈습니다. 돈을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오죽하면 식사하러 온 손님이 반찬값에 보태라면서 몇 천 원, 만 원을 내놓았습니다. 그날 하루 번 돈을 몽땅 내어놓습니다. 점점 세상에 알려지면서 후원금이 많아졌습니다. 덩달아 유혹이 커집니다. 좀 더 많은 노숙 손님들에게 좀 더 대접을 잘 하려면 돈이 필요해서 어쩔 수없이 광고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또 많은 상들이 건방지게도 했습니다. 꾹 참고 작게 나누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이라는 이름은 2003년 3월 어느 날 예수살이 공동체에 조카의 민들레 서원식에 참석했다가 지었습니다. 그리고 예수살이 공동체가 추구하는 “소유로부터의 자유,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기쁨,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투신”을 민들레국수집의 기본 정신으로 삼았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을 시작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사람대접’이라 우리 손님들이 눈칫밥을 먹지 않게 무료급식이라는 표시를 내지 않았습니다.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간판도 달았습니다. 하얀색 바탕에 노란 글씨를 썼습니다. ‘안 보이는 광고’를 만들어서 자본주의의 특징인 나눌 줄 모르는 금기를 깨고자 했습니다. 손님들께 잘 살라거나 기도하라는 잔소리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천주교 신자라는 표시로 벽에 십자고상 하나만 걸어놓았습니다.
처음에는 여섯 명이 앉을 수 있는 식탁 하나를 놓고 시작했습니다. 손님은 점점 늘어나는 데 식탁 하나는 터무니없이 모자랐습니다. 식탁을 늘일 방법이 없어서 시간을 늘렸습니다. 여섯 명이 앉을 수 있는 식탁 하나뿐인데도 하루에 사백 명 가까이 식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2008년 12월에 MBC 사회봉사대상 본상을 받았습니다. 상금이 천만 원입니다. 그 상금으로 민들레국수집 옆 가게를 얻어서 식당을 넓혔습니다. 네 명이 앉을 수 있는 식탁 여섯 개를 놓았습니다. 한꺼번에 스물 명의 손님을 대접할 수 있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이 알려지면서 점점 손님들이 늘었습니다. 돈도 더 필요해졌습니다. 후원금도 늘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민들레국수집을 키우기보다는 작게 나누었습니다. 민들레국수집 식탁 하나에서 여섯 개로 늘였습니다. 민들레의 집을 열었습니다. 민들레 꿈 공부방을 열었습니다. 민들레희망센터를 열었습니다. 민들레 옷가게를 열었습니다. 민들레 진료소를 열었습니다. 민들레 책들레를 열었습니다. 어린이 밥집을 열었습니다. 어르신 민들레국수집을 열었습니다. 필리핀 민들레국수집을 시작했습니다. 필리핀 어머니를 위한 다문화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려운 일이 생겨 돈이 없으면 처음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하느님은 언제나 최소한의 도움으로도 놀라운 기적을 보여주십니다. 꿈은 꾸지만 욕심을 내지 않습니다. 그저 기다립니다. 민들레국수집 20주년 감사미사를 드린 요즘에는 동네가 어수선합니다. 아마도 마을이 철거되고 고층 아파트가 들어설 모양입니다. 그러면 어디론가 떠나야합니다. 어디일지는 모르지만 가난한 우리 손님들이 쉽게 올 수 있는 그런 곳으로 옮기면 됩니다.
코로나 때문에 삼 년 동안이나 감사미사를 드리지 못하다가 이번에야 VIP 손님들을 모시고 감사 미사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천교구 김영욱 신부님과 지성용 신부님, 전주교구 최종수 신부님, 베네딕도회 김현규 신부님, 꼰솔라따 선교회 이명호 신부님, 성 바오로회 서영필 신부님이 오셔서 함께 미사를 집전해 주셔습니다. 수녀님들과 후원 은인들도 오셨습니다. VIP 손님들도 미사에 참석했고, 늦어버린 식사시간을 참아주었습니다.
멀리 전라북도 무주에서 오셔서 민들레국수집 20주년 감사미사에서 `축가를 불러 주시고 재미있는 율동도 해 주신 시인이신 최종수 신부님의 시를 아래에 옮겼습니다.
너무 좋아
–민들레 국수집 20주년 축하곡
1
민들레 국수집 20주년을
축하 하는 좋은 날
너무 좋아 너무 좋아 너무 좋아
2
나누고 베풀고 보살피는
이십 주년 좋은 날
너무 좋아 너무 좋아 너무 좋아
3
생명과 사랑을 실천하는
이십 주년 좋은 날
너무 좋아 너무 좋아 너무 좋아
민들레 국수집 20주년
감사미사에 함께 했습니다.
민들레 국수집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민들레처럼 민중 속에 함께 할 때 교회라는 걸요.
민중, 가난한 사람들이 없는 건물이 교회가 아니라는 겁니다.
밥을 얻어 먹는 사람이 없어서
민들레 국수집이 문을 닫아
20주년 미사가 없는 세상이 되어야 하기에
20주년 미사는 축하의 자리가 아니라
감사의 자리입니다
민들레 국수집은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 신비를 깨닫게 합니다
성부, 손님을 하느님처럼 모시고 밥을 대접하는 환대의 아버지 사랑을 보여 줍니다
성자, 나누고 베푸는 성찬. 예수님의 참사랑을 보여 줍니다
성령, 생명을 살리는 밥을 퍼주는 국수집을 통해 도움의 손길을 주시는 후원자들을 통해 하느님 백성과 하느님 사랑과 생명의 공동체를 보여 줍니다
국수집에서 밥을 나누는 일은
쉽지 않는 일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행복하지 않는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행복하지 않는
밥 퍼주는 일을 행복하게 하시는,
서영남 대표님과 베로니카님과 모니카님 가족, 봉사자와 후원자들이 만들어 가는 이 땅의 하늘나라입니다
서영남 대표님 한 말씀입니다
ㅡ4월 1일 국수집을 열고 국수를 삶아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데, 한 사람도 오지 않았습니다. 해질녘에 이일훈 건축가 선생이 첫 번째 손님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먼저 천국에 가셨습니다.
둘쨋날 동인천역에서 손님을 모셔왔습니다
그 첫 손님은 국수집을 일곱번 들랑달랑 했고
지금은 암으로 투병 중입니다.
그 다음 우리 식구 중에 덕남 친구가 있습니다
'교도소 왜 안 가냐?'
'밥을 맛있게 많이 먹는데 왜 가요'
청년 때 교도소에서 가서 40년 옥살이하는 친구가 감사편지를 보냈습니다
옥살이 하고 있지만 100가지 감사를 담아 보내주었습니다
교도소 안에서 봉사할 수 있어 감사하다는 것이 100가지 감사 중에 하나입니다
인천에서 무주로 오는 길
잠시 쉬어가는 길가에
민들레 두 송이가
어깨동무 하듯 피어 있습니다
두 송이 민들레,
민들레 국수집 20주년 감사의 꽃입니다.
*/(^^)/* 오늘 하루가 웃음으로
시작하고 웃음으로 끝맺을수 있어
너무나 감사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모두에게 아름다운 매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바로 '민들레 국수집'안에서
소망이 이루어 집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수사님의 말씀안에서 찾아갑니다.
사랑이 꽃피는 민들레 국수집 가족분들과
손님들 께서도 희망잃지 마시고
늘 건강과 행운이 주님의 평화와 은총이
늘 함께하길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