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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바,탱고,쿠에가의 뒤안길에서
-남미 3국과 한국이민 디아스포라-
멋진 탱고의 나라 아르헨티나(Argentina), 열정의 삼바와 카니발의 나라 브라질(Brazil)과 쿠에카 춤의 나라 칠레(Chile)는 거대한 남미 대륙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인구는 상대적으로 적다. 이들 국가들은 서로 인접해 있음으로 서로의 자존심을 내세우며, 암투하며, 경쟁한다. 또한 남미의 공통점인 쿠데타, 부패, 빈부격차에서 오는 사회불안 속에서도 자원의 풍요함과 축구의 함성, 열정적 춤의 리듬 속에 삶의 낭만이 흐르는 곳이기도 하다.
이 나라들과 지구 정반대에 있는 아주 작은 나라 대한민국인(Korean)이 이 나라들에 이민이 시작 된 것은 5.16 군사 혁명 이후로 한국이 산업화 시작과 더불어 적국적인 해외 진출을 위해 정책적으로 가족 단위 대단위 집단 해외 농업이민이 장려됨으로 본격적인 남미 이민이 시작된 것이다.
한국 이민의 성격은 세계로 뻗은 유대인 디아스포라(Diaspora; 민족 분산)와 유사성을 가져 이주된 지역에 유대인의 회당 같이 한인교회가 세워지고 이곳이 신앙공동체 이지만 이민자들의 인적교류와 정보교환에 매체로 역할을 하여 신자이던 불신자이던 한국인 정체성의 핵심 역할을 한 것이다.
한국인이 잘살아보자는 강한 의욕, 높은 교육 수준, 근면성이 짧은 이민 생활 속에서 성공 요소 이지만, 한국인의 구심점이 된 교회가 공언한 바도 큰 것이다. 또한 주말 교회에서 한국 이민 1.5세대와 2세대에 가르치는 한글학교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일깨워 준 것이다.
A) Argentina(아르헨티나;Argentine)
전 세계적으로 8위의 면적(2.788.241km2)을 가졌지만 인구는 2008년 기준으로 40,677,034명이다. 역사적으로는 16세기부터 스페인 식민지로 시작하여 1810년 독립한 후 19세기 초반에는 광활한 농장과 목장이 있어 세계 곡물시장을 지배하고, 육류를 유럽에 수출하여 국민소득(GNP) 세계 8위로 당시 이태리, 스위스 국민보다 잘 살아 이 나라를 “남미의 진주”라 했고 남미의 알파벳 순위와 같이 A라 했다.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는 화려하고 고색창연한 유럽풍의 건물들이 있고 “백호주의”로 유럽인만 이민 받아 유럽의 한 부분 같아 “남미의 파리”라 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에 곡물과 육류, 기타 자재들을 수출하여 미국을 위시한 연합국과 반목이 생기고 미국 주도하에 곡물시장에서 미국에 주도권이 뺏기고, 높은 임금과 생산 산업 구조에서 브라질에게 밀려 하양곡선을 걷기 시작하였다. 1946년 대중영합 포퓰리즘으로 도밍고 페론이 대통령되어 페론이즘(Peronism): 사회정의, 경제적 독립, 정치적 주권(국유화)을 외치며, 반미를 조장하고, 지나치게 퍼주는 서민정책으로 국고는 바닥나고, 의욕적 산업화 정책으로 인해 오히려 외채가 1.400억불로 불어나 경제적 파탄으로 이어졌다. 파탄의 심충에는 잦은 군부의 쿠데타, 부정부패, 노동자들의 격한 데모, 좌파적 경제체제, 국민들의 근면성 부족 등이 국제경쟁력 상실로 이어졌다.
아르헨티나의 결정적 실수는 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 민심 전환을 위해 1982년 아르헨티나 남쪽 앞 바다에 에 있는 작은 영국령 섬(Falkland Island)을 자국령이라고 점령함으로 야기된 영국과의 전쟁이다. 이에 강력 대응으로 영국의 철인 대처수상의 명령으로 영국의 항공모함을 위시한 전 함대가 미국 인공위성에 의한 정보제공과 2만 마일에 긴 항행 중에 미국의 급유와 보급물자 지원을 받으며 목적지에 도달하여 아르헨티나 함대와 항공기 전투기를 전부 격추시키고 격침시킴으로 아르헨티나의 국위는 땅에 떨어지고 경제는 파산에 이르게 되었다.
세계인의 천사와 악녀로 상국된 평가를 받는 페론의 애첩인 ‘에바’ 여사가 노동자, 시민들의 환호 속에 페론이즘으로 다시 잠시 정권을 잡지만 길가에서 우유와 빵을 무상으로 주는 식에 지나친 좌파적 경제 체제로 인해 경제 빈국으로 추락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국민소득(GNP) 6천불로 되었다. 그리고 남미의 순위는 잘 사는 순서로 C, B, A로 바뀌었다.
아르헨티나의 한국 이민은 이 나라가 국가 발전을 위해 백호주의를 포기함으로 아시안 이민이 이루어졌다. 한국 이민자들은 주로 의류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흥망과 쇠태에서 보듯이 지나친 포플러이즘의 사회주의, 반미, 지나친 노동운동, 부정부패, 국민들의 브르잡 기피와 넥타이 매기 선호가 얼마나 나라를 망치는가? 한국 국민에게 교훈이 되는 예가 될 것이다.
B) Brazil (브라질: Brasil):
세계 산소 공급의 1/3을 담당하고 있다는 지구의 허파격인 아마존의 밀림과, 엄청난 각종광물의 보고와 광대한 농경지를 보유한 브라질은 한반 면적의 43배(남한의 78배)이며 남미의 대부분 48%면적(8.514.877Km2)이다. 인구는 1억8천7백만(2008년 기준)으로 세계 5번째 큰 나라이다.
브라질은 놀라운 지리적, 문리적, 경제적, 다양성 있는 마법의 국가로 1500년 포인 포르트갈인 카브리엘에 의해 발견되었고 브라질이란 국호는 적색 연로로 쓰이는 브라질나무의 이름을 따서 브라질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1531년부터 유목, 반 유목으로 생활하는 원주민을 살상 하던가 북방으로 쫓아 버리고 그 대신 남부 아프리카에서 키가 다소 작은 흑인노예들을 수입하여 사탕수수, 면화, 코피 등을 재배하여 엄청난 부를 축적 하였다. 미나스 주 (광물의 뜻)를 중심으로 금, 다이아몬드가 엄청나게 나와 세계 제일의 금 보유국이 된 때도 있다. 한때 아마존 지역에서 고무채취 농장주들의 부는 상상을 초월해 아마존 강 유역 만하으스 도시에 오페라 하우스를 짓고, 내부 벽을 얇은 금박으로 덥고, 이태리에서 오페라 가수들을 불러와 즐기는 호화판 생활을 하였다. 브라질인 대다수는 카톨릭 신자들이라 부유한 부호들이 헌금을 많이 해서 일부 성당들은 내부에 황금 판으로 내부 장식을 할 정도였다.
브라질 근대화는 쿠비체크 전 대통령이 외국 자본과 기술로 공업화를 시도하고 사장되어 있는 민족자본을 활성화하고 육성 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브라질 내륙 깊은 북쪽 장굴 지대에 비행기 동체 모습을 한 수도이전 도시 계획을 세우고 브라질리아로 명명 하였다. 당시는 도로가 없어 거의 비행기 공수로 도시를 건립하다 시피 하여 브라질이 채무국으로 전락하기 시작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수도 이전 후 고급 공무원들은 주중에는 비행기로 나라가 근무하고 주말에는 가족이 있는 리오 데 자네로 시로 와서 사는 비능률적 수도 이전이 되었다.
브라질은 유일하게 남미에서 유혈 없이 독립한 나라로 포르트갈인의 관용성과 포용성은 고대 로마인과 같아 세계 각국에서 온 이민자를 정치 엘리트들에 의해 고도의 정치적 역랑으로 브라질화 하여 대국화 하였다. 브라질 육사에 입문은 장군의 아들이나 정치 지도자의 자녀만 제한 입문 시키고 정치는 브라질 명문 가족에 독식 무대였다.
그러나 현대 민주화의 바람으로 선거는 일인 일표 원칙이라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선호하는 일반 가난한 서민(80%)의 몰표로 초등학교도 못 마치고 시작한 직공출신 룰라(Luiz Inacio Lula da Silva)가 금속노조위원장으로 좌파 노동당(PT)을 이끌고 민선으로 2003년 1월 1일 브라질 대통령으로 되었다. 그는 브라질을 경제대국으로 만들어 중도선진국(BRICSO)에서 소련과 인도를 제치고 중국 다음의 2위를 유지하며 경제 모범국이 되었다. 중국과의 무역거래가 84억불에서 5년 만에 원자재 1천억불로 증가시키고 경제성장율 7%를 유지하고 있다.
지금도 70%이상의 인기를 유지하며 브라질 재건을 한 비결은 온 세계인의 예상과 달리 룰라 대통령이 당선되자 좌파적 이념의 상징인 노동복을 벗고, 멋진 신사복으로 갈아입고 여송연을 입에 물고 뉴욕의 월가로 달려가 브라질에 투자한 대자본가, 대기업 CEO들 앞에서 자유 민주의 체제하에 철저한 자본주의 경제체제로 갈 것을 약속하고 더 많은 미국의 자본과 기술을 투자하기를 바란다고 연설하였다.
그리고는 브라질에 와서는 미국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만 학파의 신자유주의 경제이론을 전수한 ‘시카고 보이’ 학자출신들에게 경제를 전적으로 위임하고 이미 시작된 화폐개혁 1레알(real)을 1달러를 계속 유지케 하여 살인적 인플레가 월 20%까지 갔던 것을 현재 1달러에 1.7레알 교환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고용창출 성공과 수출 호조로 더불어 외환 보유고가 2.000억달러가 되고 경제가 안정되자 1천억 기금을 조성해 빈곤층 생계수당 지급제도(Bolsa Familia)를 만들어 극빈자의 생계를 해결시켜 민심을 안정시켰다.
이를 관찰할 때 한국과 비교되며, 훌륭한 정치지도자는 학벌과 과거 이력과는 상관없이 천부의 재질로 원리원칙에 따르고, 국제 정세에 순응하는 용기와 경제는 경제전문가에게 위임하는 큰 그릇이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미주알고주알 일일이 간섭하고 지시고 포퓰리즘에 영합 하는 것은 국가가가 가야할 방향을 잃는 불행한 일이라는 것이다. 아르헨티나나 한국 지도자들이 배워할 예일 것이다.
이 나라에 한국이민 시작 된 것은 고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으로 “해외 이민 적국 추진 정책”이다. 1961년부터 브라질은 개발의 필요성으로 한국 농업이민을 허락하였다. 이는 전적으로 반세기 전부터 온 일본 농업이민자들의 성공적 사례 때문이다. 일본인들의 근면성과 정직성으로 브라질의 농업 특히 채소, 과일재배, 양계 축산이 발전 개선 된 것이다. 일본인과 한국인의 유사성으로 보여 한국 농업이민을 적국 받아들였다.
그러나 한국 농업 이민은 실패했다. 원인은 이민자들 대부분이 수도권에서 수돗물 마시던 도시인들로 농업의 농자도 모르고 의욕만 잇은 결과이다. 그리고 한국의 전 재산을 팔아 산 브라질의 농토들은 황폐하게 버러진 산성토양으로 농산물 재배 불가능 한 것으로 사기 당한 것 이었다. 더욱 가관은 이민자들이 가지고 간 것은 남대문 시장에서 구입한 삽, 굉이 등으로 코메디에 가까을 정도로 무지하였다. 브라질 농업은 기계화된 대농장 시스템 이며 유통과정은 이미 일본인들 것 이였다.
실패가 전화위복이라 한국인들이 도시로 진출하여, 새로운 도전으로, 유대인이 지배하던 의류산업에 진출하여 이들의 사업체를 인수하여 브라질 의류산업을 변화 발전케 하였다. 유대인 2세 3세대들이 전문직으로 진출하여 생긴 빈자리를 한국인이 대신 한 것이 한국 이민자들의 안정된 생활터전이 된 것이다.
한국 이민자 대부분이 고학력에 헝그리 정신과 잘 살아보자는 투지로 정말 온 가족이 한마음이 되어 주야로 뛰었다, 한국인 대부분이 대기업의 소꼬리보다 창조적 소기업에 닭 머리가 되는 심정으로 사장이 되어 현지인 노동자를 고용하고 사무직은 정직한 현지 일본인 2세들을 고용하여 사업을 확장해 나간 것이다. 한국인이 국제무대에서 그 우수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된 것 같다.
그러나 수 천 년의 역사를 가진 유대인 디아스포라보다는 한수 낮은지 건물주는 유대인이고 의류의 기본인 천 공급은 유대인 거상이고, 백화점등 유통과정은 유태인이 장악하고 있어 상당 부분의 이익은 그들이 가져가는 것이다. 한국인의 더 큰 성공기대는 한국인 2, 3세들의 몫일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한국인의 경제관념 변화가 필수이다. 유대인은 생산성이고, 이익 남는 상업용 건물부터 사는데 한국인은 돈 벌면 우선 훌륭한 저택과 고급자동차에 고급 골프채 사들고 골프장에 나가는 과도 소비성의 과시성을 자제해야 하는 문제점이다. 또 하나 유대인 디아스포라 회당은 우선 모금 금액으로 수익성 있는 건물을 사서 회당운영을 하고 서서히 큰 회당을 짓는데 한국인 이민자 디아스포라의 교회 일부는 처음부터 무리하게 대형화 하여 많은 무리를 자초하여 교회의 분쟁을 초래케 하는 것이다.
그러나 건전한 한국인과 교회가 더 많아 한국이민은 발전하고 성공적이다. 엄청나게 많아진 한국인 디아스포라들이 많은 시행착오 속에서도 꾸준히 발전하는 속도가 가시화 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이들이 대한민국이 세계화 되는 길에 초석을 다지는 것 갔다.
칠레(Chile):
남미 대륙에서 적도로부터 남국 가까운 최남단까지 뻗은 안데스 산맥 서편 태평양 해안을 따라 폭 175Km에 세계에서 가장 긴 6.435 Km 길이를 가진 국토(1.250.000 Km2)에 인구는 1천7백만 명(2008년 기준) 밖에 안 되는 나라이다.
역사적으로는 아르헨티나에서 민병대를 인솔해 스페인 식민지 왕당파를 격전 끝에 격퇴하고 독립케 한 영웅 산 마르틴 장군이 다시 칠레로 진군하여 왕당파 군대를 격퇴 시켜 칠레를 1818년 2월 12일 독립 시켰다. 그리고 남미에 스페인 식민지 근절을 위해 페루 수도 리마에 있는 왕당파를 마르틴 장군이 추격해 완전 섬멸시켜 페루도 스페인 지배로부터 독립 시켰다. 그는 남미의 전설적 영웅이 된 것이다.
남미 알파벳 순서 A, B, C 와 같이 19세기에는 제일 뒤떨어진 빈국이었지만 현재는 남미에서 국민소득이 제일 높은 년 1만 5천불(2008년 기준)이나 되고 남미 국가 중 최초로 OECD 가입되었다. 그리고 한국과는 최초로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 되었다. 어떻게, 이렇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1970년 4월 남미에서 최초로 칠fp에서 민주주의 선거 방식으로 공산당 당수 살바도르 아옌데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대통령은 세계 구리의 70%를 보유한 광산이 미국을 위시한 타국의 자본이며 소유라 이를 국유화하기 시작하였다. 구리는 전쟁무기 생산의 가장 필수적 광물이라 위협을 느낀 미국이 극우파인 피노체트 장군을 후원하여 군부 쿠데타를 일으켰다.
군부가 탱크를 몰고 대통령 관저에 가 포격을 함으로 아옌데 대통령은 권총으로 자살하고 피노체트장군이 정권을 잡고 17년간 악명 높은 독재를 하였다. 정적, 특히 공산 당원들 중 잡힌 3천여명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나머지 잔당은 인접 국가로 다 피신하였다. 이 사실을 할리우드에서 영화화하기도 하였다. 한때는 칠레에 수많은 생과부가 생겨 젊은 남성 여행자들은 이들의 유혹을 받았다 한다.
피노체트 대통령은 국가재건을 목표로 경제운영은 미국식 자유 자본주의로 시카고의 밀턴 프라드만 경제학자가 제시한 “신자유주의 정책” 이론을 추종하는 칠레의 경제학자(시카고 보이)를 요직에 앉히고 남미의 통속적인 높은 수입관세를 100%에서 10%로 내리고 기업도 적자생존 법칙으로 무한 경쟁시켜 경쟁력 없는 것은 도태시키고 경쟁력 있는 것은 후원했다. 당시는 엄청난 기업가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독재로 밀어 붙이고 남미의 고질적 노동운동은 철저히 봉쇄하여 국가 발전에 매진하였다.
칠레의 피노체트 대통령은 고 박정희 대통령을 가장 흠모하고 존경했다. 한국경제발전과 국민의식개조를 그대로 모방하여 반공을 국시로 하고, 칠레에 새마을 운동, 수출산업 지원(칠fp 포도주 수출 세계 4위, 풍부한 수산물, 광물, 개발 등등), 국민 자본 집약화에 힘썼다. 일관성 있는 시장개방, 기업 투명성, 필요시는 정부의 시장 개입 등을 통해 남미 경제 우등생으로 만들고 정치적으로는 인권을 탄압했지만 칠레 국가와 국민경제에 안정성을 확보했다.
당시 피노체트 대통령이 각국 대사들을 만찬에 초대되면 미국대사는 우편에 앉고 한국 장 대사는 좌편에 앉는 특전을 받았다. 그리고 한국 상품 수입에 무조건 우선순위를 주었다. 최초로 현대에서 만든 승용차를 세계에서 처음 수출한 나라가 되었다. 그리고 한국인 소수의 이민자도 환영 받았다.
이렇게 좋던 한국인 이미지가 무너진 것은 남미에서 가장 용맹한 칠레의 군대가 아르헨티나와 남미 최남단 국경지대에서 해협 사이에 섬 소유관계로 전쟁이 발발할 것 같아 예비병 소집이 났을 때이다. 전쟁에 제일 필수 조건이 군화, 군복 등 장비와 소총과 기타 무기라 한국 군수물자 세일즈맨들이 엄청난 주문을 받아 KAL 전세기로 주야로 한국에서 수송해 와서 무척 환영 받았다. 그러나 정작 아르헨티나 군대와 대치하고 보니 아르헨티나 군대도 한국 군수물자 업자들로부터 구입하게 되어 양쪽 군인이 똑같은 군복과 군화를 입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로써 한동안 한국인은 신의가 없는 민족으로 냉대를 감수해야 했다.
후진국에서 선진국 진입에는 국가관이 확실한 지도자가 나와 어느 정도 반대자들의 인권을 무시하고 국가 건설과 국민 경제를 향상 시켜놓으면 그 다음 세대는 자유 민주주의가 자연히 풍요로운 생활에서 더욱 빛나게 거듭나는 것을 볼 수 있다.
현재 칠레(chile)는 2010년 1월 18일 보수정권의 억만장자 피네르 대통령이 되어 남미에서 제일 잘사는 국가가 되었다. 역사의 아이러니인가?
남미는 과거 A, B, C 국가 순위에서 현재는 C, B, A, 국가 순위로 바꾸어진 현 상황에서 남미 여행은 새로운 도전 일 것이다.
남미인은 풍요로운 자연의 혜택으로 잘살던 못살던 운명에 거역하지 않고 주어진 운명 안에서 축구경기에 환호하고, 카니발에 온 정열을 붓고, 밤이 되면 남녀가 삼바 춤, 탱고, 쿠에카 춤을 추며, 먹고 마시며, 떠들며, 인생을 즐기는 낭만이 있는 곳에 사는 행복한 사람들이다.
(지종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