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을 코앞에 두고 요즘 행정당국은 조잡하고 저급한 고민에 빠져 있다. 기념식전에서 어떤 노래를 부르게 할 것인가 하는 논란이 그것이다. 30여년을 수없이 불러오던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노래가 식전의 행사에 금지곡으로 몰려있는 형국이다. 그동안 잘 불리어 오던 노래가 색다른 정부가 들어서면서 불온가요로 지목되더니 지금까지 심심치 않게 금지, 유보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노래 말고 다른 노래로 대체하자며 내놓은 곡이 「방아타령」이었다는 것을 듣고 사람들은 이제 웃지도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불러왔던 이 노래의 가사는 우선 이렇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이 노래는 가사에 사용된 시어의 선택이나 비유, 소절의 반복이나 어조가 자연스럽다. 노랫말이나 곡 모두 품격을 갖추고 있으며 「맹세」「동지」「깃발」로 표상되는 민중들의 일체감이나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라는 애국 민주항쟁을 향한 비장한 각오도 잘 드러나 있다. 집회나 식전 행사에 부르기에 어울리지 않은 대목은 보이지 않는다. 가령 프랑스 국가의 “영광의 날이 왔다! 압제에 맞서/피 묻은 깃발을 올려라”와 같은 다소 극렬한 표현, 미국 국가의 “포탄의 붉은 섬광과 창공에서 작렬하는 폭탄이/밤새 우리의 깃발이 휘날린 증거”라는 대목과 비교해도 무리가 없다. 중국 국가의 “일어나라/노예가 되기 원치 않는 사람들아!/ 우리의 피와 살로/우리의 새로운 장성을 건설하자!”와 같은 전투적인 모습도 덜하다. “고귀한 우리의 여왕이 만수무강하게 하소서”라는 영국 국가나, “왕의 치세가 천대나 계속되어 영원히 이어지리”라는 일본국가,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라는 우리 국가의 한결같은 기원과 다짐들 보다는 강건한 기상을 담고 있을 뿐이다. 국가도 아니고 민중적 연대나 시민적 자각을 도모하는 민중가요로 분류된 노래임에도 다른 나라 국가의 어떤 노래에 못지않은 격조와 세련된 구조를 보이고 있다.
이른바 민중가요 혹은 노동가라고 불리우는 노래들은 어차피 저항적인데 그 특성이 있으며, 그러한 사회운동에서 요구하는 집단적 정서나 가치, 일체감 형성을 위한 수사적 장치 또한 하나의 덕목으로 치부된다. 무엇보다도 어떤 노래는 그 노래가 불리어질 당시의 상황과 시대적 코드를 담고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당연히 그 노래가 생성되지 않으면 안 될 역사 사회적 배경을 상황으로 간직하고 있으며, 바로 이러한 이유로 프랑스 국가는 시민혁명기의 열기를 그대로 담아냈던 것이다.
그렇다면 새삼스럽게 ‘임을 위한 행진곡’이 금지곡의 위기에 처한 다른 이유란 무엇인가. 그 이유가 그 노래를 부르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싫어하는 부류의 사람들인 때문이라는 점은 놀라운 일이다. 어떤 노래가 가창자에 따라 금지곡이 되고 애창곡이 되는 상황이다. 같은 노래를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부르면 괜찮고 군중이나 시위대가 부르면 안 되거나, 같은 노래를 A정부 진영이 부르면 되고 B정부 진영이 부르면 안 되는 상황은 코미디이다. 가창자에 따라 노래의 위상이 바뀌는 사례는 노래마저 통제되었던 저 통금시대의 문화정치를 떠올리게 한다.
우리의 금지곡의 역사를 보면 요즘의 사태는 이미 예고된 것이라 하겠다. 아리랑을 못 부르게 한 것은 차라리 이민족의 탄압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태양이 “묘지” 위에 “붉게” 떠올라서 안 되고 고래사냥은 포경수술이 연상되어 안 되고 거짓말이야 라고 외치는 것은 독재자의 거짓말이 연상되어 안 되고 물좀 주소는 고문이 연상되어 안 되더니 지금은 도서관 로비에서 춤을 추는 잰틀맨은 필요 없다는 수준이다. 넥타이를 가위로 자르고 피아노 건반을 부수었던 예술가의 기념관이 남아있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이다.
애국가를 부르면서 마침내 울어버렸던 일을 우리는 한두 번쯤은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나라의 건국이념이나 국민적 기상을 담고 있어 이 노래들을 부를 때의 우리들의 마음가짐은 '비내리는 영동교'를 부를 때와는 판이하게 다를 수밖에 없다. 각종 기념행사에는 거기에 부합되는 집단적 정서나 기상을 담은 노래로써 함께 울고 웃고 새날을 다짐하게 해야 할 것이다. 노래에 정치적 이어폰을 끼워 듣는 촌티의 문화를 이제는 벗어나야 할 때이다. 내일신문 2013.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