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망의 세월’ 통해 야망을 배우다
문화예술 분야 핵심 측근 유인촌씨
서울시가 버스체계 개편 문제로 홍역을 치르고 있던 2004년 7월. 유인촌 당시 서울문화재단 대표에게 서울시장 비서실에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이명박 시장이 매일 집무실에서 도시락으로 식사를 때우고 있으니 “시간 있으면 오늘 모시고 나가 점심이라도 함께 하시라”는 권유였다.
두 사람은 시청 인근 북엇국집에 마주 앉았다. 무거운 분위기를 풀어보겠다며 유 대표가 농반 진반 먼저 말을 꺼냈다.
“대통령 하시겠다는 분이 무슨 일을 그렇게 많이 벌이세요. 이젠 욕 안 먹게 일 좀 덜 하시죠.”
이 시장은 숟가락을 탁 내려놓았다. 그리고 한참 동안 유 대표를 빤히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봐, 우리 욕 먹어도 할 건 하자.”
서울 광화문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유인촌씨는 “나는 체질적으로 정치 쪽은 잘 안 맞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창 밖에는 그가 타고 온 스쿠터가 세워져 있었다. 서울시내를 돌아다닐 때는 승용차 대신 스쿠터를 탄다고 했다. 교통체증을 참지 못해서다. 그만큼 자유를 사랑하는 그가 행정·정치 쪽에 반 발짝이라도 들여놓게 된 것은 “순전히 이명박이라는 사람에게 반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1980년대 유씨가 드라마 ‘전원일기’에 출연할 때 시작됐다. 이 드라마의 열성 팬이었던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이따금 출연진을 불러 밥을 샀다. 현대 임원들과 배우들이 배구시합을 한 적도 있다고 했다. 이명박 후보는 당시 센터를 맡았는데 실력이 제법이었다고 한다. 90년 유씨가 드라마 ‘야망의 세월’에서 이 후보 역할을 맡으면서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가까워졌다. 이후 정계에 입문한 이 후보가 선거에 출마할 때마다 유씨는 홍보 영상에 출연하며 그를 도왔다.
둘의 관계가 연예인과 팬, 정치인과 지지자의 관계에서 한걸음 더 나가게 된 것은 이 후보가 서울시장에 당선된 이후다. 유씨는 서울시장직 인수위원으로 일하며 주로 문화예술 분야에서 이 후보를 도왔다.
2003년 7월 청계천 복원사업 기공식 사회도 유씨가 맡았다. 이 후보는 당시 행사를 며칠 앞두고 유씨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행사 사회를 볼 사람 좀 찾아보라”고 했다. 이 후보의 속내를 눈치챈 유씨가 “지금 와서 누굴 찾겠느냐. 그냥 제가 하겠다”고 하자 껄껄 웃으며 “그래주면 좋지”라고 했다고 한다.
유씨가 2004년 서울문화재단 초대 대표가 되면서부터는 아예 문화예술 분야에서 이 후보의 준참모 격이 됐다. 이번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도 이 후보의 문화예술 정책자문단에 이름을 올렸다. 유씨는 “문화예술 분야는 자유로운 창작 여건을 만들어 주고, 전통을 보존하고,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노력하면 다 잘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 후보가 만일 당선될 경우 문화관광부 장관 유력 후보로까지 거론되는 인물이다. 그의 발언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李 후보 만남 계기로'인생 리모델링'
이명박·유인촌 두 사람의 관계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드라마 ‘야망의 세월’이다. 촬영팀은 당시 현대건설의 해외 고속도로 건설 장면을 말레이시아에서 찍었다. 유씨는 마침 다른 일로 이곳에 왔던 이 후보와 어울릴 기회가 있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유씨는 옆자리에 앉은 이 후보에게 “대기업 회장도 하고, 어마어마한 건설 사업을 많이 했으니 이제 꿈을 다 이룬 것 아니냐”고 물었다. 이 후보는 씩 웃더니 “내 꿈은 시베리아를 개발해서 그곳의 석유·천연가스를 파이프라인을 통해 부산 앞바다까지 끌고오는 것”이라고 답했다.
유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그때만 해도 소련이 건재할 때였는데 그런 발상을 한다는 데 입이 떡 벌어졌다”고 말했다. “항상 배우가 최고의 직업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그 뒤론 그게 전부는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도 했다. 잘나가는 탤런트였던 유씨를 연극·문화 행정 등의 다른 분야에 도전할 수 있도록 만든 계기는 이 자리에서 만들어졌다.
유인촌 ■1951년생(56세) ■서울 출생 ■한성고, 중앙대 연극영화과 ■문화방송 6기 공채 탤런트 /극단 유 대표 /중앙대 연극학과 교수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
김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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