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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이 호정 : 진용호
연산군(10대 임금) 이후 명종(13대 임금)에 이르는 시대는 사대사화(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와 훈구, 사림 간 세력다툼으로 국력이 쇠퇴한 틈을 타서 왜군이 선조25년 1592.4.13.일 부산항을 중심으로 침략한 전쟁을 임진왜란이라고 한다.
전쟁이란 수많은 군사와 양민이 목숨을 잃고 많은 재물이 파괴 되는 것이기에 인재로는 인류 최악의 재난이다.
당시 동래부사 송상현, 부산 첨사 정발, 다대 첨사 윤흥신 공이 장열한 전사를 하였으나 송상현공과 정발장군의 전적은 후세의 귀감으로 삼아 동래 충렬사에서 송상현, 정발 두 장군의 제사만 지내고 동상을 건립하여 후세에 전하고 있으나 다대 첨사 윤흥신 공은 같은 전란에 개전 초일 왜군을 무찔러 예봉을 꺾고 왜장들의 간담을 서늘케하며 격퇴하였으나 다음날 수륙 양면에서 처 들어오는 왜군을 맞아 끝까지 고군분투하다가 장렬한 전사를 한 충신임에도 이분의 충절을 기리는 단이나 동상하나 세워지지 않아 전공은 잊혀 진채 지금까지 방치되고 있다.
영조33년 동래 부사로 부임한 조인영 대감의 송상현, 장발 장군과 차별 대우는 부적합하다는 질타가 들림직 하고 윤홍신 공 충절비가 249년만에 겨우 비석이 세워 졌다니 그 나마도 다행이다.
치적과 전공을 과대 포장하면서 만인의 추앙을 받는가하면 묵묵히 맡은 업무에 목숨 바쳐 충성한 충신의 억울한 사연 뉘라서 외면하랴.
비천한 신분의 각설이인 주제지만 너무나 통분하여 들은 풍월 다 모아서 진상을 밝혀보자.
어 시구 시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 않고 또 왔네
전란의 폐허 속에서도 한강의 기적이룬 위대한 대한민국 세계만방 사람들이 경이롭다 칭찬하여 덩달아 기분 좋네.
산 좋고 물 맑아서 꽃피고 새가 노래하니 역마살 기질 있는 각설이 좀이 쑤셔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다대포에서 동래까지 부산 시내 둘러 보다 볼 것을 못본 것이 이렇게 마음 아파 비분강개 외쳐 본다.
임진왜란 왜군 침략 몸으로 막아내다 장렬히 전사하신 송상현공, 정발 장군 늠늠한 동상들이 왜놈을 노려보며 역사를 되새기는 데 다대 첨사 윤흥신 장군의 동상은 어디에도 없는 구나 .
다대 첨사 윤홍신 장군의 파란만장의 생애를 내가 한번 알아보련다.
내 비록 천한 몸 사연이나 알고 싶어 역사책 열어본다.
아득히 먼 옛날 연산군 때로 돌아간다.
조선왕조 9대 왕인 성종이 12명의 후궁 중 미모가 출중한 윤씨를 “숙의”로 계급을 상승시켜 주었는데 “숙의”란 종2품관으로 왕의 후궁인 내관이다.
성종의 어린 부인 공혜왕후가 한씨가 1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숙의 윤씨가 마침내 왕비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는데 숙의 시절에 낳은 아들의 이름이 “융”이고 후일 폭군 연산군이다.
1506년9월 역사에 오명을 남긴 연산군이 자기의 어머님 파평 윤씨 (윤기무 의 딸)가 성질이 흉악하고 사악하여 폐비를 시키고 사약을 내려서 사사했다는 사록을 접하고 이제 까지 궁금했던 어머님의 죽음에 대하여 알고 난 후 성종 때 폐비를 주장한 중신들을 능지처참 멸문지화로 피로 물들인 폭정이 12년이나 이어지니 우국충정으로 대의를 위해 칼을 잡고 일어선 사람들이 있었으니 전 경기 관찰사 박원종, 이조 참판 성희안, 유순정 이었다.
주지육림과 계집의 품에 안겨 정사를 돌보지 않아 결재 받을 서류가 산더미 같이 쌓이고 지방으로 임명을 받은 관원들도 왕에게 부임 인사를 위해 대궐 문밖에 기다려야 했으니 하나님의 심판도 있음 직 하다.
박원종을 필두로 경복궁을 에어 싼 군중들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하였다.
박원종 : 이제는 참을 수 없습니다. 국사는 거들 떠 보지 않는 연산군을 몰아내고 새로운 왕을 추대 합시다.
군 중 : 몰아내자 !! 몰아내자 !! 폭정에 못 살겠다. 몰아내자 연산군 !!
박원종 : 함부로 덤비지 말라 날이 밝으면 거사한다.
(그러나 연산군은 밤이 늦도록 술을 마시고 두 계집을 불러들여 음탕한 놀음으로 지 새다가 새벽녘에야 잠이 들어 있었다.) 창밖의 함성에 잠이 깬
왕비 신씨 : 김 상궁 밖이 왜 이리 소란한고?
김 상궁 : 지충추부사 박원종이 진성대군(11대 중종)을 옹립하고 반정을 일으켰다 하옵니다.
왕비 신씨 : 아이구 (울면서) 마침내 올 것이 왔구나. 상감마마는 지금 어디서 뭘 하고 계시냐?
김 상궁 : 늦게 침소에 드셔서 아직도 모르고 계시는 모양입니다.
왕비 신씨 : 어서 앞장서라. 침전으로 가리라.
(김 상궁이 앞장서고 왕비 신 씨가 따라서 침전으로 가는데 군사들의 함성이 광화문 쪽에서도, 건춘문, 영추문. 신무문, 쪽에서도 들려오고 경복궁을 완전히 포위 되었지만 연산군은 꿈나라에서 거드름을 피우며 걷고 있을 것이었다.)
왕비 : 마마 정신 차리시옵소서 지충부사 박원종이 거사를 하였다 하옵니다.
연산군 : 뭣이 박원종이가 거사를 . . . . . .
왕비 : 마마 경복궁을 겹겹이 에어 싼 반정군의 함성이 천지를 진동하듯 합니 다.
연산군 : 천 겹으로 에어 싸든 만 겹으로 에어 싸든 무슨 상관이야 내 호령 한마디면 모두 풍비 박신 이오. 거기 아무도 없느냐? 입 직승지 없느냐?
입직승지 윤장 : 예 마마 여기 조계형 과 이 우 세 사람 대령 했습니다.
연산군 : 빨리 밖에 나가서 동정을 살펴보고 진상을 보고하여라.
(수직 군사와 환관은 물론 대궐을 지키는 총 책임자인 도총관 민효종 도 피신 한 지 가 오래였다.) 한참 있다가
연산군 : (벌컥 화를 내며) 왜 이리 소식이 늦는고?
왕비 : (울면서) 겁에 질려 도망친 게 분명 합니다.
연산군 : 감히 왕명을 어기고 도망을 쳐 쾌심한 놈들 ! 김 상궁 누가 있 는지 살펴보고 오너라.
김 상궁 : 대궐 안은 아무리 살펴봐도 한 사람의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습니다.
연산군 : (와들 와들 떨면서 ) 중전 이 노릇을 어찌해야 하오?
왕비 : 이제는 천명인가 하옵니다. 대궐 안에 남아 있는 사람이라곤 마 마와 신첩, 김 상궁 뿐입니다.
연산군 : 어찌 할꼬? 이럴 어쩌면 좋아 (부들부들 떤다.)
(박원종이 힘 쎈 군사 20 여명을 거느리고 침전으로 나아온다.)
박원종 : 전하!! 박원종입니다. (연산군 앞에 무릅을 꿇고 절을 한다.)
연산군 : 엇!! (깜짝 놀란다.)
박원종 : 전하!!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천명을 따라 순순히 옥새를 내어 놓으십시 옵소서.
연산군 : (겁에 질린 왕비를 돌아보며) 중전 이 노릇을 어찌하면 좋겠소? 옥새를 내어 놓으라니 말이요.
왕비 : 마마 천명을 따르십시오. 어서 옥새를 내어 주시옵소서.
연산군 : 아아 이 노릇을 어찌 할꼬? 안 된다. 절대 못내 놓겠다.
박원종 : 전하 ! 다시 한 번 생각 해 보옵소서. 다시 한 번 . . . . .
연산군 : 안 된다. 그럴 수 없다.
박원종 : 애들아 폭군 연산을 방 밖으로 끌어내어라.!
(명령이 떨어지자 칼을 뽑아 든 군사들이 파랗게 질린 연산과 왕비를 끌어낸다.)
연산군 : 이 놈들아! 감히 누구를 이렇게 하느냐? (발버둥 친다.)
박원종 : 12년 동안 행적을 돌아보시오. 포악무도한 지난날의 학정을 생 각하면 무딘 칼로 난도질 하여도 한이 풀리지 않을 것 이오 . . . .
연산군 : 그럼 12년 동안이나 임금 자리에 있던 나를 죽이겠단 말이요 !
박원종 : 죽이지는 않겠소. 그러니 여러 말 말고 옥새를 내어 놓으시오. 어서 옥새를 내어 놓으시오.
연산군 : “숙옹정”에 있으니 사람을 보내어 가져 오게 하시오. ( 나이 20에 왕위에 올랐던 연산은 보령31세였으니 폭군으로 군림 한 것이 햇수로는 12년 이었고, 쫓겨나 강화도 교동에서 세상 을 떠났다.)
연산 임금의 뒤를 이어 성종의 둘째 왕자이며 연산 임금의 이복동생으로 연산군의 학정 밑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이어온 19세의 진성대군 (중종)이 등극하였으니 박원종 일파의 연산군 축출 반정거사가“ 기묘사화 ”이다.
중종반정의 주축은 박원종, 성희안, 유순정, 유순, 김수동, 홍경주, 윤형로, 신윤부, 박영문, 장정 김안국, 안당, 김감, 유자광이었고, 조정의 인사 개편에서 3 공신에 영의정에 유순, 좌의정에 박원종, 우의정에 김수동이 제수 되었다.
그러나 모든 실권은 나이 40의 기골이 장대하고 혈기 왕성한 반정의 최고 실력자인 박원종이 행사하였고 뜻하지 않게 박원종의 덕분으로 왕위에 오른 주상 중종의 힘은 미미한 형편이었다.
모든 일들은 일사천리로 진행 되었으니 연산군의 처남 신수근, 임사홍, 강정, 김효손, 심금손, 전동, 신수영등이 반정군의 칼 아래 죽음을 당하였고 중종의 중전 신 씨가 역적 신수근의 딸이라서 국모로는 모실 수 없음은 아비와 삼촌을 잃은 중전이 틀림없이 반정 인사들에게 원수를 갚을 것이기에 후환을 없기 위하여 중전 신 씨를 폐비 시켜야 한다는 중론에 의하여 폐비 시켰다.
다음으로 반정거사의 논공행상을 하였는데
1등 공신에 : 박원종, 성희안, 유순전 등 8명
2등 공신에 : 유순, 김수동, 심순경 등 13명
3등 공신에 : 심경, 정용경 등 30명
4등 공신에 : 윤여필, 윤임, 신수린 등 53명을 봉 하였는데 윤여필, 윤임(윤여필의 아들)이 천거 된 것은 반정거사에 참여도 하지 않았음에도 윤여필이 박원종의 매부가 되어서 합류시켰다.(박원종의 권력 유지를 위한 후원군으로 포석)
또 중전 폐비로 인하여 언제까지나 국모의 자리를 비워 둘 수만은 없음은 물론 중종이 허탈하여 정사에 혼신 할 수 없다는 중론으로 새 중전을 뽑기로 하였는데 가래색을 설치하여 간택을 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우선은 서너 사람의 잉첩을 맞아 들여서 그 행실을 살펴서 주상께서 적임자를 간택 힘이 좋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박원종 : 한두 사람도 아닌 여러 잉첩을 맞아 들여야 하는데 어느 집안 규수를 맞아야 할지 의논해 주시오.
홍경주 : 어느 집안이라니요?
성희안 : 하하하 . . . . 죽 쑤어서 개를 줄 수는 없다 이거요.
홍경주 : (무릅을 탁 치며) 그렇다면 이 자리에 모이신 대감들 가운데 딸 을 두신 분이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니 오이까? (좌중 그렇지요. 그렇다 마다 요.)
좌중은 들뜨기 시작했다. 중전을 조건으로 하는 잉첩이라면 마다할 까닭이 없었다. 천거된 잉첩으로는 홍경주의 소실 딸 (희빈 홍씨), 박수림의 딸(경빈 박씨=박원종의 수양 딸), 윤여필의 딸 (장경왕후 윤씨 = 윤임의 누님이고 박원종의 조카, 후일 인종의 어머니)로 결정되었으며 박수림의 딸과 윤여필 딸은 권력 유지를 위한 박원종의 천거였으며 가문의 영광이었지만 명종 때 대윤 윤임 이 소윤 윤원형의 모함으로 을사사화의 소용돌이에 말려 멸문지화를 당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윤흥신의 기구한 생애를 더듬어 보자.
윤홍신은 고려 대원수 윤관 장군의 후손으로 고려조 공양왕 때 판서를 지낸 판도 윤승례 공을 증시조로 하는 파평 윤씨 판도공파에 속하는 양반의 후손이다. 조선에 와서도 조부 윤여필이 연산군을 축출한 중종반정의 정국공신이고 아버지가 수군 절도사를 거쳐 찬성을 지낸 윤임이며 고모가 중종의 계비로써 인종을 낳은 장경왕후로 지체가 높고 부유한 공신의 자손 이었다.
중종의 첫 번째 비인 장경왕후 윤씨 소생의 세자 호 (인종)를 왕위에 앉치려는 외척 윤임 일파의 대윤과 문정왕후 소생의 세자 환(명종)을 즉위 시키려는 윤원형 일파의 소윤 사이에서 왕위 계승을 둘러 싼 암투는 중종 말년부터 전개되었다.
장경왕후는 세자 호(인종)을 출산하고 6일 만에 돌아 가셔서 계모 문정왕후의 멸시와 질투, 저주 속에서 자란 비운의 세자 였지 만 외삼촌 윤임의 보호 하에 장성하여 중종이 승하하자 곧 1544.11 에 29세의 보령으로 조선12대 임금(인종)에 즉위하였으나 불행하게도 재위 9개월(윤정월 포함)만에 승하하셨는데 어떤 역사가는 문정왕후의 남동생 윤원형의 독살 설도 있다고 했다.
인종이 승하 하시자 즉시 13대 임금(명종)이 즉위하였는데 그의 보령 겨우 12 살 이었기에 “눈물의 왕”이라하였으며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면서 남동생 윤원형 등 소윤 일파가 대윤 윤임 이 그의 조카인 봉성군(중종의 여덟째 아들)을 왕위에 올리려는 역모를 한다고 누명을 씌어 이를 구실삼아 윤임, 유관, 유인숙 등을 죽이고 멸문지화의 “을사사화”의 악행을 저질렀다.
이 때 윤임 에게는 6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위로 3명은 아버지 윤임과 함께 사약을 받았고 6세의 윤 흥신 등 어린것들은 노비로 전락하였다.
서기 1567년 명종이 재위 22년 만에 후사 없이 승하하자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선조는 즉위 첫해에 을사사화 때 화를 입었지만 살아남은 노 수신, 유 희춘 등에게 사면복관 조치를 취하였고, 노수신이 승진하여 영의정이 됨에 따라 선조 10년 서기1577년 12월 윤임이 복관 되면서 윤흥신도 32년간의 노비에서 풀려나 자유의 몸이 되었고 3년 후 선조 13년 과거에 급제하여 충청도 진천 현감에 부임하였으나 8개월 후에 글을 몰라서 업무 추진에 문제가 있다고 하여 부득히 파직을 당하였다.
나이 40에 이렇게 생을 이어갈 수 없기에 살길을 찾는 중 당시 우의정 류성룡 대감을 찾아 갔다.
류성룡 : 누구시오? 무슨 일로 나를 찾아 왔는지요 ?
윤흥신 : (예를 올리고) 을사사화 때 참변을 당한 윤임의 아들 윤 홍신 이라고합니다. 제가 대감을 찾아 뵈 온 것은 저의 신상에 대한 부탁을 드리려 함입니다. 대감께서는 대사헌과 병조판서를지 내시어 저의 이력에 대해서는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이제 저도 나이가 쉰을 넘었고 지나 온 풍상으로 여생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의 관원 생활이 평탄치 않은 이유를 잘 알기로 탄액과 추고가 없는 먼 벽지로 보내 주시면 이복 동생 흥제와 함께 조용히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 다.
류성룡 : 그래요. 선친이 수군절도사를 지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까지의 무장 경력으로 보아 수군 진영에 적당한 자리가 나면 청을 들어드리는 쪽으로 일을 해 보겠습니다.
그 후 선조 23년 10월 어전회의에서
선조임금 : 지금 일본의 정세가 수상하니 대마도와 가까운 부산 지방의 방비를 튼튼히 할 때라 생각되오. 경들은 수군 전문 무장 독 진인 다대진에 누구를 보내야 할지 의견을 말 해 보시오.
(이에 우의정 류성룡이 지체 없이)
류성룡 : 예 품계에 맞고 무장으로써 경력이 많은 사람으로는 나이가 좀 많기는 하지만 윤흥신이 적임자로 생각 됩니다. 전하 . . . .
선조임금 : 그래요 지금 나이가 얼마나 되었소?
류성룡 : 예 쉰하나입니다. 전하 무인으로써 장재가 있고 품계가 당상 절충에 이런 사람은 윤흥신 밖에 없습니다. 정국공신 윤여필 의 손자라 충절 또한 믿을 수 있어 말씀 드립니다.
선조임금 : 아 그래요? 류 대감이 적임자라면 틀림없는 사람일 것입니 다. “ 윤흥신을 당상 절충장군으로 하여 다대 첨사에 명하노 라.”
이방 : 아뢰오 영의정께서 어명을 전달하신다. 윤흥신은 어명을 받으라
윤흥신 경상도 다대 첨사에 임명하노라 즉시 부임하라.
윤흥신 : 예 – 이 어명을 받겠습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부인 : 여보 ! 너무너무 좋아요. 원하던 대로 발령이 났군요.
윤홍신 : 그렇게도 좋아요 당신이 좋다니까 나도 너무 좋소.
부인 : 좋아요. 그곳에서 여생을 나라에 충성하고 헌신하면서 지냅시다.
윤흥신 : 그럽시다.
지나간 내 삶을 뒤 돌아보면 눈물이 앞서고 슬픔만 더 합니다 만 사색당파와 왕궝찬탈 사리사욕의 탐관오리들로 인하여 당한 “을사사화” 관노생활 32년 고생 끝에 풀려나와피니는 노력을 하여 무과에 합격해서 진천 현감이 되었지만 글 모른다는 구실 로 파직 당하였으나 류성룡 대감의 천거로 2차 발령을 받았자 만 눈물이 나는 구료.
부인 : 이제 신세타령은 그만 합시다.우리가 잘못해서 일어난 일이 아니 잖아요.
윤흥신 : 임자말이 맞지만 그래도 억울해서 그럽니다. 내가 서른여덟살 에 노비에서 풀려나 마흔이 넘어 임자를 만났고 마흔둘에 아들 “성”을 보아 이제 나이가 열살인데 먼 외지로 떠나려니 얘비로 써 걱정이 많구려. 대를 이을 유일한 자손이니 아무쪼록 잘 보 살펴 주시오. 내가 임지로 떠나는 경상도 동래 의 다대진은 여 기서 천리 밖 땅끝이고 왜구가 날뛰는 위험한 곳이니 이렇게 당부를 하는 것이니 명심하고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키우도록 부탁하오 아 – 가련한 내 신세 . . 그래도 절망하지 않고 희 망을 가지고 무술을 연마 쉬지 않고 또 연마하여 대장부 포부 를 이루겠다는 신념이 결실을 맺어서 남쪽땅 경상도 부산 다대로 떠나가려하니 걱정이 앞섭니다.
부인 : 여보오 저도 당신을 떠나 보내려니 억장이 무너집니다.
식사며 잠자리며 일가친척도 없는 그곳에서 혼자 어떻게 지내시렵니까?
윤흥신 : 여보 나 개인에 대하여 걱정 마세요. 용감하게 나라를 위해 이 한몸 바쳐 충성을 다 할것이오.
부인 : 당신의 팔자가 왜 이리 험 한지요 정승집안에서 태어나
을사사화로 집안이 다 망하고 8형제 중에서 겨우 당신 혼자만 살아남 아서 이 고생이오. 위험한 곳이라니 부 디 몸조심 하세요.
(막내 동생 홍제와 함께 가족을 뒤로 하고 경상도 다대로 떠나다)
(부인이 큰 나무 밑에 촛불을 밝히고 두손 모아 빈다.)
부인 : 큰 절을 하면서 손을 모은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조상님께 비나이다. 성의 얘비 흥신이가
천리 타향 다대 땅에 홍제[와 떠났으니. 조상님께서 굽어 살펴 성공하고 살아서 돌아오게 보살펴 주옵소서.
비나이다 비나이다 산신령님께 비나이다 우리낭군 천리길 가고오는 길목마다 산신령이 보살펴서 위험에서 구하셔서 가족함께 살고지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나님께 비나이다 신령중에 으뜸이신 하나님께 비나이다. 왜놈들이 노략질 할 때 가차없이 응징하여 나라를 지키시고 조선사람 잘 살도록 오래오래 대대손손 추앙받게 하옵소서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나님께 비나이다.
(일본국. 탁자를 사이에 두고 장수들이 둘러앉아서 원숭이 같이 생긴 얼굴에 가느다란 실눈을 뜨고 꼬장꼬장한 목소리로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부하 장수들에게 출정 준비를 한다)
토요토미 : 각자 맡은 부서와 그 예하 병력을 보고하라
무네(선봉대장 대마도 주) : 병력 5000명
토요토미 : 그 다음
고니시유끼나까 : 병력7000명
(이렇게 차례대로 점검을 끝낸 왜병의 총수는 15만8천명나 되었다. 그들은 우선 대마도에 집결하여 조선국에 잠입해 있는 첩자들과 내통하면서 침략의 시기를 재고 있었다. 그 시기 조선에서는 율곡의 간절한 구국 양병설을 선조에게 간 하였으나 파당 없애기에 전념하고 국방을 소흘히 하였다. 1952년 4월12일 왜군의 선발대가 대마도를 떠났고 4월13일 새벽 안개가 자욱한 부산포 항구에 첫발을 내 디뎠다.)
부산포 대전
(부산성을 지키던 정발 장군은 사냥을 나갔다가 안개 때문에 돌아 오지못하고 다음 날 새벽에야 돌아오는데 갑자기 부하 장수가 소리쳤다)
장수 : 사또! 저기 저게 뭡니까? 사또 !
(다급하게 외친다)
정발 장군 : 아니 저건 . . . . .
(배가 몰려오는 방향은 한쪽만이 아니었다. 동쪽에도 남쪽에도 배 온 바다가 배로 뒤 덮혀 다가 오고 있었다.)
정발장군 : 속히 배를 몰아라 빨리 빨리 . . .
(발을 동동구르며 호령을 한다.)
정발장군 : 성문을 꼭꼭 잠그고 민병들을 소집하라. 왜군의 습격이다.
(곧 나팔소리가 고요했던 새벽 하늘에 퍼지자 부산성을 지키던 3000명의 군사와 민병들은 모두 성 위로 집결하였다.
(왜병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상륙작전을 감행 하였고 성 주위에 파 놓은 못을 흙덩이와 돌맹이로 메운 다음 사다리를 놓고 성벽을 기어 오르며 조총을 쏘아 대니 그 소리가 콩 볶는 듯 하였다 성 밑에서 왜군 선봉이 소리를 질렀다.)
고니시(소서행장) : 부산 성주는 들으시오. 우리는 일찍이 원나라가 규슈 우를 침략했던 지난날의 원한을 씻으려 명나라를 치 고 져 하니 우리에게 길을 터주시오. 만약 불응하면 모조리 도륙하겠소.
(그러나 정발 장군은 마음이 단단한 사람이었다.)
정발장군 : 터무니없는 오랑캐 놈들아 길을 비키라고 어림 없는 수작 말아라.
(위급한 사정을 장계를 써서 파발로 한양에 띄우고 손수 선두에서서 활을 당기고 칼을 휘둘러 장병들의 사기를 북 돋았다.)
<장 계>
<전하! 부산첨사 신 정발 삼가 이 글을 올립니다.
임진년 4월 임인 일 묘시에 부산포 앞 바다에 모습을 들어 낸 왜적의 함선 수천척은 부산포 앞 바다를 완전히 메우고 들어 닥처 명 나라를 치겠으니 길을 비키라고 신에게 강요하고 있습니다. 화급히 취할 바를 조치하시고 15만 8천이라는 왜군을 대치해서 싸울 수 있도록 구원병을 보내 주소서 .>
그러나 정발장군은 최후까지 항전하였으나 파발이 한양에 도착도 하기 전에 개전 초일에 왜병들의 총 공격에 온 몸에 총알을 맞아 벌집처럼 되어 적진 속으로 떨어졌고 나머지 병사들도 무수히 전사하고 부산성은 함락되었다.
윤흥신 다대진에 부임 한지 2년 다대진 군사 훈련장
윤흥신 : 동래부 다대진을 지키는 장병 여러분 나 윤홍신이는 장병 여러분과 이 곳에서 생사를 같이 할 거요 우리 이렇게 만난 것 도 인연인데 조상님과 나라를 위하여 이 한 몸 바쳐서 나라 위해 충성합시다. 지금부터 훈 련을 합시다.
(다대진 4월13일 병방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다급하게 보고한다)
병방 : 사또! 큰일이 났습니다. 구평에 있는 서평진이 왜구에게 합락 당했다 합니다.
(병방의 화급한 보고에 놀란다.)
윤흥신 : 뭐? 무엇이라고 어찌된 일인지 자세히 보고하라.
병방 : 예 방금 서평진을 탈출하여 도망쳐 온 수졸이 말하기를 구서평 안쪽 감천 길목에 상륙한 왜구가 서평진을 단숨에 점령하고 다대 진 쪽으로 오고 있다고 합니다.
윤흥신 : 길목을 막고 진을 점령 한후 노략질을 하지 않고 육 로를 따라 다른성 점령에 나섰다면 이것은 도둑이 하는 왜구가 아니고 어떤 작전 계획에 따라 움직이 는 군대가 아니겠는가? 이것은 전쟁하는 왜군이다.
(병방에게 묻는다.)
윤흥신 : 적의 수가 얼마나 되어 보이더라고 하드냐?
병방 ; 황망하여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함선 50척정도의 배에 1000여명 미만의 수로 어림 된다고 하였습니다.
윤흥신 : 길목이 막혔으니 원군은 없고 독자적인 전투를 할 수 밖에 . . . 병방 전쟁이다. 시간이 급하다 징을 쳐서 군병을 소집하고 군관들과 관원들은 전부 내 앞에 모이게 하라
병방 : 예 사또
(병방이 자리를 뜨며 얼굴빛이 창백해 진다. 모두가 모이자 작전 지시를 한다.)
윤흥신 : 윤부장
윤부장 : 예 사또
윤흥신 : 전 병선을 소집하여 주사 관리아래 병사 300씩을 나 누어 태우고 지금 바로 화준구미로 나가서 가덕진에 연락하여 합세 하도록 하고 다대진 쪽으로 오는 적선이 있으면 접근을 못 하도록 하시오. 내 예감에는 큰 난리가 난 것 같소 . 왜군 이 서평진을 점령하고 다대진과 부산진 간의 통로를 먼저 차 단한 것을 보면 부산진 쪽에도 일이 난 것 아닌가 생각 되오 서평진 길목이 막힌 지금 바다 쪽에 방어선을 구축하여 퇴로 를 확보 해 놓지 않으면 우리에게 죽음 밖에 다른 길이 없소 명심 하시오. 그리고 해가 저서 어두워지면 후에는 별일 없 을 것이오.
윤부장 : 예 사또
(윤부장은 황급히 선소로 뛰어가고 첨사는 다시 이 군관에게 작전 지시를 내린다)
윤흥신 : 이 군관!
이 군관 : 예 사또 !
윤흥신 : 왜군이 서평진을 점령하고 우리 쪽으로 행 했다고 하 니 이는 적들이 두송산 길을 가로 질러 나포를 거쳐 야망대 쪽 안산 아랫길을 택할 것이 분명 하오.
이 군관 : 예 그러 할 것 같습니다.
윤흥신 : 이 군관은 성에 남아 수성 준비를 단단히 하고 수하 군사 두명을 골라 신호 깃발을 들려 빗돌산 꼭대기 망루 근 처에서 전방을 감시하게 하시오. 왜군이 접근하면 안산 언덕 마루 아래에 매복해 있는 나에게 수기로 신호를 보내게 하 시오. 신호 방법은 평소 훈련받은 대로 하면 됩니다.
이 군관 : 예 사또
윤흥신 : 지금 날이 어두워 오기 때문에 시간이 없소. 적을 맞 아 수성 전을 펴면 밤을 새워야 하니 시간이 오래 걸리고 우 리의 전력 소모도 클 것 같소. 기습전을 펼 생각이니 병방은 궁수 200명을 데리고 빗돌산 중턱 소나무 우거진 숲속 길 옆 에 매복 해 있다가 내가 신호를 하면 궁수를 총 동원하여 앞 을 통과하는 적에게 집중 사격을 가하시오. 왜병들은 우리가 수성을 하고 있거나 준비가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방심하고 접근 할 것이니 절반은 통과 시키고 중 후미를 노리오. 나는 병사 200명을 이끌고 안산 아래에 매복 해 있다가 왜병이 공 격을 받아 우왕좌왕 하면 그때를 노려서 육박으로 들이쳐 적 을 패퇴 시키겠소. 적은 매복 기습에다 정면 육박 공격을 당 하면 겁을 먹고 꽁무니를 뺄 것이니 혼전 중 우리 편이 다치 지 않도록 주의 하시오.
병방 : 예 사또
영상(병방은 궁수 200명을 인솔하고 빗돌산을 향하여 출발한다.)
다대진 4월13일 오후 6시
(왜군은 윤홍신 첨사가 예상 했던 대로 두송산을 가로 질러 안산 앞 아랫길로 접근한다. 첨사는 왜군의 수가 기백명 정도여서 기습으로 단숨에 해 치울 수 있다고 판단하여 옆에 있는 군관에게 지시한다.)
윤흥신 : 군관
군관 : 예 사또
윤흥신 : 병방에게 사격 신호를 보내라.
영상(사격 시호가 떨어지자 화살이 왜군 후미를 향하여 빗발치듯 날아간다. 왜병은 산기슭에 길게 늘어 선 매복조에 완전히 노출되어 공격을 받고 우왕좌왕 하는 사이를 놓치지 않고 첨사는 계속 공격 명령을 내린다.)
윤흥신 : 들어 닥쳐 도륙하라.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말라.
(왜군은 측면에 이어 정면 공격을 받고 왜장은 승산이 없음을 알고 전원 후퇴 명령을 내린다.)
왜장 : 전원 후퇴하라. 매복이다. 전원 후퇴하라.
(잘 훈련 된 왜병은 퇴로를 따라 재빨리 후퇴 한다.)
군사들 : 와아 ! 와아 ! 왜놈들이 도망간다. 죽여라 죽여라. 와 아! 우리가 승리했다. 다대군 만세 만세 !!!
(윤흥신 첨사의 주도 면밀한 작전 계획에 따라 1 차 전투는 통쾌한 승리 로 끝났다.)
윤홍신 : 장병 여러분 잘 싸웠습니다. 다대진으로 가면 술과 고기도 있습니다. 한잔 하고서 내일을 준비합시다.
장병 여러분 정말 잘 싸웠습니다. 내일은 더 많은 왜군이 쳐 들어 올 것입니다. 호방은 아녀자와 노약자를 피신시키시오.
(다대진 4월14일 이른 새벽)
윤흥신 : 윤부장
유부장 : 예 사또
윤흥신 : 오늘은 많은 왜군이 다대진에 몰려 올 것입니다. 윤 부장은 가덕군과 합세 해 두송산과 솔섬 사이의 해협을 왜 적이 넘지 못하도록 철저히 막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남 해 수군 정진영 운명도 걸린 문제요. 원군도 없으니 힘든 싸 움이 될 거요. 병선을 잘 독려하여서 어두워 질 때까지 만 싸우고 있으면 우리에게 유리합니다. 어두워지면 왜선이 물 러 갈 때 배후를 치시오.
윤부장 : 예 사또 지시대로 하겠습니다.
윤흥신 : 그 때에 내가 나갈 것이오. 내가 섬 사이에 매복 해 있다가 징 소리가 나면 왜군을 치세요.
(다대진 4월14일 오후 4시)
병방 : 사또! 오목 고개 쪽으로 왜병 1000명이 몰려옵니다.
윤흥신 : 북문, 서문 모든 병사를 동문 쪽으로 집합시켜라. 왜 병이 성벽 가까이 올 때 까지 기다려라.
(쥐죽은 듯 조용하게 기다린다.)
병방 : 예이 . . .
윤흥신 : 왔다 화살, 돌, 끓는 기름을 쏟아 부어라.
윤부장 : 화살, 돌, 끓는 기름을 쏟아 부어라.
병방 : 화살, 돌, 끓는 기름을 쏟아 부어라.
병사들 : 화살, 돌, 끓는 기름을 쏟아 부어라.
(정신을 못 차리도록 쏟아 부었다)
병방 : 남문 쪽에 200여척의 왜놈 배가 들어 닥쳐 남문을 에 어 싸고 있습니다. 사태가 위급합니다.
(첨사는 동문 방어를 병방에게 맡기고 동생 홍제와 함께 남문쪽으로 달려간다.)
윤흥신 : 동생 홍제야! 죽음을 같이 하여야 하나? 하늘도 무 심 하구나 . . .
동생 홍제 : 다음 날을 위하여 몸을 피하십시오.
윤흥신 : 이 판국에 살기 위해서 . . . . 나만 살아서 어떻게 하겠느냐 오직 죽음뿐이다. 저 조총 소리를 당할 수 없 구나 우리에게도 저런 총이 있었더라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텐데 할수 없다 싸우다 죽는 수밖에 없다.
물러서면 죽음 밖에 없다. 있는 대로 쏟아 부어라.!!!
조총과 싸우려면 백병전뿐이다. 매복 해 있는 군사 들은 총 공격하여라!! 쏘아라!!
윤부장 : 쏘아라!! 쏘아라!! 쏘아라!!
병방 : 쏘아라!! 쏘아라!! 쏘아라!!
병사 : 쏘아라!! 쏘아라!! 쏘아라!!
윤흥신 : 화살, 돌, 끓는 기름, 마구 쏟아 부어라!!!
윤부장 : 화살, 돌, 끓는 기름, 마구 쏟아 부어라!!!
병방 : 화살, 돌, 끓는 기름, 마구 쏟아 부어라!!!
병사 : 화살, 돌, 끓는 기름, 마구 쏟아 부어라!!!
병방 : 사또!!! 동문이 뚫렸습니다.
영상(남문에서 열심히 싸우던 병사들이 동문에 연기가 치솟고 왜놈들의 함성이 들리자 군사들이 전의를 잃고 흩어집니다)
동생 흥제 : 형님 사방이 포위되어 갈 곳이 없습니다. 지붕 위 로 올라가시오.
윤흥신 : 아!!! 분하다. 내가 죽더라도 내 영혼이 다시 살아 나 이 원수를 갚을 것이다.
병방 : 사또!! 바다 방어선이 무너져서 저녘까지 버터 낼 여유 가없습니다. 일단 후퇴하여 후일을 기약합시다.
윤흥신 : 너희들은 백성을 데리고 피신하라.
나는 최후까지 왜놈들과 싸울 것이다. 한 놈이라도 더 죽이고 죽으리라. 이 오랑캐 놈들아 덤벼라 죽음이 두렵잖다.
( 지붕 위에서 화살을 쏘며 동생 흥제도 함께 항전하다가 왜놈의 조총에 명중되어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왜장도 윤흥신 첨사의 무사도와 국가에 대한 충절에 감탄하고 머리를 숙여 명복을 빌었다 고 한다)
첫댓글 좋은 역사를 공부하겠군요. 천천히 야무지게 읽어봐야 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진 샘님 이 사실들이 확실하면 제가 사하문화원장으로 있으니 한번 노력해 보겠읍니다. 다른 첨사와 평형차원에서 .... 사하구의 명예를 위해서 말입니다.
지난 10월30일 을숙도 문화원에서 공모 마감 한 오폐라 "만고충신 다대첨사 윤흥신"이라는 제목으로 경성대 음대교수로 정년퇴임 하신 최인식님과 컨소시엄으로 제출한바 있습니다. 대본은 둔재인 저가 쓰고 음악은 최인식님이 작곡을 하였습니다.그날 원장님과 점심이나 같이 하심이 어떠하시냐고 하였으나 원장님이 바쁘셔서 자리를 같이하지 못하였습니다. 좀 서운하였습니다.다음에 시간 나시면 자리를 같이하는 영광도 갖고싶습니다..
대단한 일을 하셨어요 감사함니다
국제신문과 공동으로 윤홍신 장군에 대한 작업을 한 사실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