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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종 이야기 1
학생부종합전형은 입시 관련 논란의 중심에 설 것이다. 그런데 학종이란 이름 때문에 학종에 대한 오해가 생기는 것 같다. 좋은 쪽으로건 나쁜 쪽으로 건 말이다.
'학생부종합전형'의 정확한 명칭은 <입시종합전형>이라야 맞다.
대학별고사(면접 및 구술고사) + 수능시험 + 교과 성적 + 비교과 스펙 + 자소서 + 추천서 ~가 합쳐진 입시다.
여기에 (공개적으로 말하긴 곤란하고, 또 의도적으로 그러는 건 아닐 수도 있고, 나쁜 것이라 비난만 할 수 없는, 그렇다고 쉽게 받아들일 수도 없는 ) '고교등급제 비슷한 것'이 합쳐진다.
학교에 따라 반영하는 것이 상당히 다르긴 하다.
하지만<학종>보다는 <입종>이 더 정확한 말인 건 분명하다.
그러니 당연히 말할 것이 월등히 많을 수밖에 없다. 욕할 것도 현저히 많고, 칭찬할 것도 많다. 각각의 것이 가진 부정적인 점이 다 모여 있고, 각각의 것이 가진 좋은 점도 다 모여 있다.
학종 이야기 2
학종의 한 요소인 학생부는 교과(내신 성적) + 비교과(스펙)로 구성된다.
사람들은 비교과 스펙을 집필 시험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수상기록 중 수학, 과학, 영어, 논술, 과학 등의 경시대회 기록은 사실상 집필 시험에 의해 완전 상대평가로 순위가 정해진다.
이들 경시대회는 상위권 학생학생들이 주로 참여하기에 문제가 매우 어렵다.
수학 1등상(금상 대상 등 이름은 다양) 수상자는 그 학교의 진정한(?) 수학 1인자다.
내 생각이 옳다면 H대를 비롯한 상당수 대학이 비교과 스펙 중 이것을 제일 중시한다.
학종 요소 중 사교육 유발 효과가 상당히 큰 부분이다.
학종 이야기 3
학종과 사교육
입시정책을 논할 때 이제는 사교육에 대한 염려에서 좀 벗어났으면 좋겠다. 사교육 문제에 너무 얽메이면 저차원적 입시정책을 쓰게 된다. EBS수능 연계정책이 대표적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학종은 사교육 유발 효과가 큰 입시일까, 작은 입시일까?
수능 사교육은 확실히 감소했다고 보여진다. 수능 최저 등급 적용을 하는 대학이 적잖게 있긴 하지만 과거에 비하면 수능 사교육은 확실히 감소했을 것이다.
그 대신 증가하거나 새로 생긴 사교육이 있다.
내신 대비 사교육, 학종 컨설팅 사교육, 구술고사 사교육, 자기 소개서 사교육 등이 그것이다.
감소와 증가가 서로 상쇄된 후 전체적으로 사교육은 감소했을까, 증가했을까?
학종 옹호론자들은 엄청 감소했다고 주장하고, 비판론자들은 오히려 크게 증가했다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사람마다 차이가 크지만 사회 전체로 보면
감소했어도 조금이요, 증가했어도 조금일 거라고 예상을 하고 있는 정도다.
( 쓰고 보니 결론이 영 시시하다 ㅎ)
학종 이야기 4
학생부 기록의 고뇌 (1)
학종에서 학생부 기록은 주관식 시험 문제의 답안지 비슷한 역할을 한다.
교사는 학생부라는 답안지를 작성하는 수험생과 비슷한 처지이다. 교사의 입장에서 볼 때 입학사정관은 그 답안지를 채점하는 채점자이다.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나 압력이 없어도 대부분의 교사들은 답안지(학생부)를 잘 작성해야 한다는 심적 압박을 강하게 받는다. 왜?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니까!
여기에 학생, 학부모, 교장 등의 크고 작은 요구가 더 해지면 심적 압박이 심각해진다.
좋게 써주려 할 수밖에 없다.
내가 좋게 써주면 내가 가르치는 학생에게 이익이 되는데 어떻게 나쁘게 쓰겠는가?
이때 교사의 마음은 답안지를 작성하는 학생의 심정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이거 상당히 힘든 일이다.
쓰고 난 후에도 더 좋게 쓸 수는 없었는가 하고 자책하게 된다.
어떻게 해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이것은 그래도 다른 심적 괴로움에 비하면 약과다.
학생부를 쓰는 내내 교사는 학생의 입시를 위해 자신이 과장하거나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끝임 없이 자책하게 된다.
생각해 보시라. 현실의 세계에서 사실과 과장과 거짓을 가르는 분명한 기준이란 게 없지 않은가?
"실험도구를 잘 다루고 ~" 란 표현을 쓸 때 실험도구를 못 다루는 것과 잘 다루는 것의 명확한 기준이 있을 수 없고,
"시를 분위기와 감정을 살려 잘 낭송하고 ~"란 표현을 할 때 낭송을 잘 하고 못하고의 기준이 있을 수 없고,
" 학교폭력 예방교육을 받고 학교 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키우고 ~ "란 표현을 할 때 경각심을 키운 것과 아닌 것과의 기준은 더더욱 있을 수 없지 않은가? (게다가 이것은 학생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러니 학생부를 쓰는 내내 어떤 때에는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 괴롭고, 또 다른 때에는 자신이 학생에게 너무 야박한 것 같아 괴롭다.
괴로움이 이것 만인가?
( 물론 나는 좀 나쁜 놈이라 크게 고뇌하지 않는 편이다. 착하고 여린 선생님들께 좀 죄송하다. ㅎ)
학종 이야기 5
학생부 기록의 고뇌 (2)
학종 시대에 학생부로 인해 교사들이 느끼는 괴로움은 힘든 일을 더 많이 하게 될 때 느끼는 그런 괴로움과는 성질이 다른 것이다.
학생부 작성 때 교사는 양립 불가능한 모순된 상황에 처하게 된다.
한쪽에는 입학사정관이 높이 평가하는 좋은 학생부를 작성하라는 유언 무언의 압력이 있다.
다른 한쪽에는 입시에 이용할 수 있도록 공정하고 변별력 있는 학생부를 작성하라는 유언 무언의 압력이 있다.
교사에게 이 두 개의 압력은 모순된 요구다. 물론 대부분의 교사는 좋은 학생부를 쓰라는 압력 쪽으로 투항하기는 한다. 그러나 백기 들고 투항한다고 마음의 고뇌가 없는 것은 아니다.
또 교사는 학생부를 교사 스스로 작성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당연한 요구다. 학생이 써오는 것을 기록해서는 학생부의 정직성이 유지될 수 없다.
그런데 학생부에 기록할 내용 중 상당부분은 학생의 내면(정신)에 대한 것이다. 그것을 하게 된 동기, 배우고 느낀 것, 변화한 것 등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들은 이것들을 제대로 기록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이 두 개의 요구는 모순된 요구다. 어느 한 쪽을 포기해야 다른 하나가 가능하다.
학종이 입시의 대세가 될수록 이런 식의 양립 불가능한 요구는 점점 더 게세질 것이다.
학교의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꼬리(행정업무)가 몸통(교육)을 지배하는 왝더독 현상이다.
지금의 추세가 계속된다면 몇 년 후에는 또 하나의 왝더독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학생부기록(꼬리)이 교육(몸통)을 흔드는 현상 말이다.
고뇌가 크다고 교사들이 전부 학종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학종 지지파는 상당히 많다. 왜 그럴까? 다음 글의 주제다.
학종 이야기 6
학생부종합전형의 장점은 무엇일까? (1)
학종으로 인해 학생들의 학교활동이 한층 활발해지고 다채로워졌다는 것을 제일 먼저 꼽을 수 있겠다. 학종 시대로 들어와 동아리 활동, 학생회 활동, 봉사 활동, 독서 활등, 경시대회 참여 활동, 학급 활동 등의 활동이 예전에 비해서는 확실히 활발해졌다. 학종이 입시의 대세가 될수록 이러한 긍정적 현상은 더 커질 게 분명하다.
이것은 단순히 다양한 활동이 활발해진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들의 인식에 변화를 가져왔다. 학종의 시대에 들어와 사람들은 시험공부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밖의 다른 많은 것들도 교육적으로 중요하다고 본격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학종이 아니더라도 논리적(과학적)으로 생각하면 시험공부 이외의 다른 활동들이 그렇게 심하게 위축될 이유는 없었다. 사실 독서만 하더라도 독서는 그 자체로 꽤 훌륭한 시험공부다. 풍부한 독서가 수능시험에 상당한 도움이 되는 것은 논의의 여지가 없다. 운동(스포츠)도 마찬가지다. 운동은 스트레스를 해소해 주고 체력을 길러 주고, 두뇌를 활성화시켜 시험공부에 상당한 도움을 준다.
하지만 그것은 이성적인 생각일 뿐 학종 이전에는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어떤 편견을 내면화했었다. 독서보다 시험공부가 중요하고, 운동보다 시험공부가 중요하고, 다른 모든 것들보다 오직 시험공부만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자신도 모르게 내면화하게 마련이었다. 교사들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어쩌면 교사들이야말로 그런 생각을 가장 세게 내면화했을 수 있다.
학종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진 이런 편견에 커다란 균열을 내었다. 이제 시험공부만이 교육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시대에 뒤처진 사람이 되었다.
이것은 학종이 가져온 명백한 긍정적 결과다. 이것은 명백히 학종이 세운 공이다.
물론 이러한 학종의 장점은 그 자체가 단점일 수 있다. 학종은 입시에 대한 학생들의 부담을 가중시킨다. 학종으로 인해 학생들은 슈퍼맨이 될 것을 요구받고 있다. 학종의 시대에도 시험공부에 대한 부담은 줄지 않았다. 시험에공부 대한 부담은 줄지 않았는데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다. 학교의 온갖 경시대회에서 참여하고 상을 타야 한다. 동아리활동을 몇 개씩 해야 하고, 봉사활동을 수십 수백 시간을 해야 하고, 입학사정관이 마음에 들어 할 수준 높은 책을 수십 권씩 읽어야 하고, 학급 회장이나 부회장도 해봐야 하고, 어려운 친구들을 도와야 하고, 친구들의 갈등도 해결해줘야 한다. 이 모든 것이 학생부에 제대로 기록되도록 교사들에게 보여야 하고, 교사들이 제대로 기록하지 못하면 제대로 기록되도록, 아니 한 것에 비해 더 화려하게 기록되도록 교사들과 밀고 당기는 행동을 해야 한다. 학종 시대에 학생들은 슈퍼맨에다 성인군자, 그리고 훌륭한 정치인(?)까지 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이것은 학종의 장점 그 자체가 곧바로 단점으로 전환한 것이다.
장점을 단점으로 상쇄하고 나면 남는 게 있을까? 나는 조심스럽게 그렇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러한 과정은 우리교육이 어차피 한 번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학종 이야기 7
학생부종합전형의 장점 2
재작년인 2015년, 하루는 수업 준비 하다가 답답한 마음에 페북에 이런 글을 올렸었다.
“EBS 수능특강 <국어영역> ~ 문제풀이 책이라 재미가 없을 수밖에 없긴 하지만,
누가 만들어도 다 마찬가지인 측면도 있지만,
해도 해도 너무하단 소리가 절로 나온다.
수업준비 하는 한 시간 동안 육두문자를 수십 번 내 뱉을 뻔 했다.
내가 이렇게 죽도록 재미가 없는데,
도대체 애들은 어쩌란 말이냐~~~!”
물론 문제풀이 수업은 우리나라 수업의 오랜 관행이다. 인문계 고교 3학년 수업은 오래 전부터 그랬다. 수능 시대 이전의 학력고사 시대에도 그랬다. 단지 문제집(참고서)만 학교마다 달랐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EBS수능 연계정책 이후엔 EBS 수능교재로 문제집이 전국적으로 통일(획일화)된 것뿐이다.
2016년인 작년에도 나는 3학년 수업을 했다. EBS 교재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수능시험에 대비하는 문제풀이가 수업의 큰 축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작심하고 새로운 수업을 시도했다. 학생부종합전형에 대비하기 위한 수업이었다. 학생들에게 교과세부능력특기사항에 의미 있고 풍부한 내용을 기록하기 위한 것이란 명분을 내세웠다.
뭐 대단한 수업을 한 것은 아니다. 나 또한 교과서를 해설하고 수능문제집을 풀어주는 낡은 수업에 찌들대로 찌든 사람이다. 그런 나에게 대단하게 참신하고 창의적인 수업을 할 능력이 있을 까닭이 없다. 학생들에게 읽고 싶은 책을 읽게 한 후 그 내용과 감상을 수업 시간에 발표하게 하는 단순한 수업에 불과했다. 수업은 매우 단순했고 나는 상당히 어설펐다.
그래도 수업은 나름은 성공적이었다. 제법 많은 학생이 능동적으로 참여했다. 학생들은 나의 설명보다 친구의 발표를 더 경청하는 것 같았다. 학생의 발표를 학생부에 기록하기 위해 나 또한 열심히 경청했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나 혼자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수업에서는 알 수 없었던 것들을 알 수 있게 된 점이었다. 학생들 각각의 개성, 고민, 생각 등을 알 수 있게 된 점이었다.
수업하면서 나는 좀 놀랐다. 세상에 이런 수업을 고3 수업에서 할 수 있다니! 앞으로 이런 방식의 수업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묘한 흥분을 느꼈다. 학생부종합전형에 이런 장점이 있었다니! 선각자적으로 수업의 변화를 꾀한 교사들이 왜 열렬한 학종의 지지자가 되었는지 절실하게 이해가 됐다.
여기서 용기를 얻어 3학년 여름방학 보충수업 때는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수업을 시도했다. 아예 처음부터 수능시험과 완전히 무관한 수업을 하겠다고 철저히 공지했다.
그런데도 학생들이 신청을 했다. 왜 그랬을까? 우리 학교의 특수성이 작용했을 것이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대부분 정시가 아닌 수시로 대학을 간다. 하지만 학생부종합전형 때문이었을 가능성도 크다. 학종이 만들어낸 분위기가 아니었다면 학생들은 신청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 또한 고3 여름방학 보충수업에서 이런 수업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뭐 이번에도 대단한 수업을 시도한 것은 아니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과거 방식의 수업에 찌들대로 찌든 사람이다. 학생들에게 시(詩)를 낭송하게 하고 감상을 발표하게 하는 간단한 수업을 계획했다.
그런데 내 평생 수업준비에 그렇게 많은 시간과 정성을 기울인 적이 없었다. 왜? 내 스스로가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수 십 권의 시집과 참고서를 읽으며 수업에 활용할 시를 고르고 또 골랐다. 우선 내가 감동해야 학생들도 감동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한 일이었다. 그런데 내 마음에 흡족한 시를 내 마음대로 고르고 고르는 일은 문제집을 풀면서 수업 준비를 하는 것과는 달리 상당히 재미가 있었다. 그렇게 시를 고르고 골라 자료를 만들었다. 학생들에게 제시한 자료에는 오로지 시(詩) 그것만 있었다. 문제가 단 한 문제도 딸리지 않은 오직 시(詩)만 실린 자료였다. 한시와 영시도 몇 개 골랐고, 하이쿠도 몇 개 골랐다.
시에 대한 해설과 설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문제풀이 수업 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설명이었다. 시험성적을 생각하면 낭비적인 설명일 수 있었다. 설명은 오직 시를 더 재미있게 감상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이루어졌다.
스스로 신청해서 진행되는 수업이라서 그랬겠지만 아이들은 제법 시를 정성껏 낭송했다. 시에 대한 감상도 제법 능동적으로 발표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일화가 있다. 한 학생이 시에 대한 감상을 얘기하다가 울컥해서 눈물을 살짝 흘리고 끝내 얘기를 다하지 못했던 일이다.
학종이 아니었다면 생각지도 못했던 수업이었다.
학종은 수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의 변화를 원하는 교사에게 학종은 한편으로는 축복일 수 있다. 학종으로 인해 단조롭고 저차원적인 수업에서 벗어날 명분이 생겼다. 교과세부능력특기사항에 의미 있는 활동을 기록하려면 기존의 수업으로는 소재를 얻기 어렵다. 교과서나 문제지를 해설하고 분석하는 기존의 수업만으로는 교과세부능력특기사항의 기록이 빈약할 수밖에 없다. 이 기록을 풍부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교사와 학생은 기존의 수업에서 벗어나 다채로운 수업을 해야 한다. 실제로 이것을 이용해 토론수업, 발표수업, 프로젝트수업 등을 도입하는 교사들이 늘고 있다.
물론 모든 학생이 학생부기록을 풍부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주로 학생부의 기록이 풍부해야 하는 학생은 주로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이다. 하지만 그래도 하위권 대학에 진학하려는 상당수 학생에게도 이런 수업은 손해가 아니다. 기존의 수업보다 더 재미있고 더 흥미롭기 때문이다. 학교 전체로 보았을 때 어차피 내신 성적에는 손해가 없다. 내신 성적은 동일 학교 내에서는 완전한 제로섬 게임이니 말이다.
물론 이러한 긍정적 변화를 너무 과장하면 곤란하다. 학종 옹호자들은 그 긍정적 변화를 너무 심하게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 학종은 한편으로는 수업의 변화를 추동하지만 한편으로는 수업의 변화를 가로막는다. 현재의 학종은 교과(내신) 성적이 제공하는 입시 변별력에 크게 의존한다. 즉 현재의 학교내신제도가 가진 폐해를 강화한다. 물론 수업의 변화를 추동하는 측면이 가로막는 측면보다 큰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변화는 한계가 뚜렷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그 작은 변화일망정 너무나 소중하다. 작은 변화의 가능성일 만정 소홀하게 여겨선 안 된다. 그 변화의 가능성을 계속 키워나갈 생각을 해야 한다.
학교마다 교사마다 다르겠지만 학종은 분명 수업의 변화에 일조하고 있다.
학종은 문제가 많은 입시다. 과연 입시의 전장에서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 장점에도 불구하고 문제점으로 인해 오래 버티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학종이 사라져도 학종이 만들어낸 이러한 변화의 가능성은 다른 입시를 통해서도 살아나게 해야 한다.
학종 이야기 8
학종은 금수저 입시일까, 흙수저 입시일까?
학생부종합전형은 특목고·자사고에 유리한 입시일까, 일반고에 유리한 입시일까?
강남지역 고교에 유리한 입시일까, 강북지역 고교에 유리한 입시일까?
같은 학교 내에서라면 부자에게 유리한 입시일까, 서민층에게 유리한 전형일까?
사실 지금까지 존재하는 모든 입시는 금수저에게 유리하다. 의도적으로 흙수저를 우대하는 사회배려자전형 등에만 예외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수능 위주 전형과 비교하면 그 정도가 어떨까?
학종의 본성 자체는 수능에 비해 금수저 전형인 것 같다. 학종 이야기 1에서 얘기했듯이 학종은 여러 개의 입시로 이루어진 입시전형이다.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학생부종합전형이라기 보단 입시종합전형이다.
대학별고사(면접 및 구술고사) + 수능시험 + 교과 성적 + 비교과 스펙 + 자소서 + 추천서 ~의 일부 또는 전부가 합쳐진 입시다.
반영하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금수저에게 유리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학교에서 교복 하나만 입게 하는 것과 다양한 사복을 자유롭게 입게 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금수저에게 유리할까? 따져볼 필요도 없다. 나는 복장 자율화주의자이지만 온건한 자율화주의자인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교복만 입게 하는 것이 흙수저 학생에게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다른 것은 빼고 학생부만 봐도 그렇다. 알다시피 학종에서 학생부는 교과와 비교과로 나누어진다. 교과(내신 성적)는 예전부터 존재하던 입시의 한 영역이고, 비교과는 학종(학종의 이전 형태인 입학사정관제 포함)으로 인해 새로 입시에 편입된 영역이다.
학종의 특징은 비교과에 있다. 사람들이 학종하면 비교과를 떠올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흔히들 사람들은 학생부 비교과를 스펙이라 부른다. 입학사정관들은 극구 스펙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으려 하는 것 같지만 사실 비교과는 스펙이라 부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측면이 있다.
비교과는 그 본성이 명백히 금수저 (또는 금수저 학교)에 유리하다. 교과서나 참고서만 가지고 시험 공부하는 것은 사실 학생 스스로 하기 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 다양한 비교과 준비는 학생 혼자 스스로 해내기 어렵다. 부모의 지속적 도움과 학교의 뒷받침이 커야 유리하다. 그동안 학종(입학사정관제 포함)은 학생부에 기록하는 비교과 내용을 점차로 축소시켜 왔다. 비교과 기록을 가급적 교내활동으로 엄하게 제한하고 있다. 봉사활동은 국내의 봉사활동만 인정하고 있다. 왜 해외 봉사를 제외할까? 한참 지난일지만 강남을 중심으로 해외 봉사활동 열풍이 불었기 때문이다. 최근 소논문(R&E)이 학종에서 퇴출된 이유가 무엇일까? 현저히 금수저에게 유리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독서기록이 제목과 저자만을 기록하는 것으로 바뀐다. 그래도 여전히 독서기록 항목에 입학사정관이 매력을 느끼는 책을 읽고 그것을 기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은 문화자본이 풍부한 부모를 둔 학생에게 현저히 유리하다.
비교과의 취지를 살리려면 할수록 그것은 금수저에게 유리하다.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비교과를 축소해온 것은 그것들이 나빠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고급스러운 것이라 아무나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교과는 금수저 친화적이다. 그러한 속성을 완화하려하면 할수록 비교과를 자꾸 축소해야 한다. 그런데 결국 그것은 비교과를 왜소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학종 전체가 금수저 전형이라고만은 보기 어렵다. 그것을 견제하는 요소가 학종 내에 존재한다.
그 첫째는 교과(내신) 성적이 학종에서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학종에서 사람들은 흔히 비교과만을 떠올리지만 실제로 더 중요한 것은 교과(내신 성적)이다. 그것은 입학사정관들이 일관되게 얘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교과(내신) 성적 반영은 대체적으로는 흙수저 학교가 더 유리하다. 자사고 특목고에서 1등급을 받는 것과 일반고에서 1등급 받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쉽겠는가? 아무리 은밀하게 고교 수준을 반영한다하더라도 수치화된 내신 성적 그 자체를 무시할 수는 없다. 아무리 강북의 평범한 일반고라 하더라도 내신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학종에서 웬만큼 후한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평범한 일반고 학생을 많이 받기 싫어하는 일부 최상위권 대학에서 교과 성적을 반영할 때 특목고, 자사고, 비평준화지역 명문고에 유리한 z점수 따위로 변형해서 반영하는 것이다.
동일 학교 내에서도 학종의 금수저 친화성을 완화하는 것은 어느 정도는 교과(내신) 성적이다. 1등급 학생들에게 스펙 몰아주기가 횡횡한다는 비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과장된 비난이긴 하지만 일선 학교가 내신 성적이 뛰어난 학생에게 스펙을 몰아주려고 정성을 기울이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입시 전략이다. 학종이 상위권 대학 위주의 입시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일반고에서 학종으로 상위권 대학에 가려면 내신 성적도 좋고 스펙도 좋아야 하는 것이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결국은 흙수저 학생들도 교과(내신) 성적이 뛰어나면 스펙을 쌓은데 상당히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다. 이렇게 동일 학교 내에서도 학종의 금수저 친화성을 완화하는 것은 결국 학생부 교과 성적이다. (물론 교과 성적조차도 절대적으로는 금수저에게 유리하다. 학종 시대에 들어와 내신 대비 사교육이 증가한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얘기다.)
둘째는 대학의 양심이다. (또는 대학에 가하는 사회적 압력이다)
대학의 양심 또는 대학에 가해지는 사회적 압력은 학종이 현저히 금수저 전형으로 흐르는 것을 막는다. 그것은 학종의 본성으로 인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학종은 정성평가다. 학생부를 흙수저 학생(학교)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주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결론을 말하자.
학종은 금수저 전형이다. 하지만 흙수저 전형인 면도 있다. 전체적으로 종합했을 때 학종이 수능 위주 전형에 비해 금수저 전형인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그 반대인 증거가 많다.
이것저것 서로 상쇄하고 나면 수능 위주 전형이나 학종이나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 금수저론이 옳다 해도 유리한 정도는 10% 이하일 것이다. 흙수저론이 옳다 해도 마찬가지다.
나의 판단으로는 학종에 대한 논쟁에서 금수저-흙수저론은 그다지 중요하게 다룰 논점이 아니다. < 계속 >
첫댓글 꽤 글인데 뒤로 읽어내려 갈수록 내용이 궁금해졌는데...<계속> 다음글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