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한옥학교에서의 한 달
(강흥순 안식휴가 1차 보고)
1. 많은 분들의 도움과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사실 안식휴가라는 것을 쓴다는 것이 많이 고민스러웠습니다.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되는 환경운동연합의 살림살이가 뻔한데 6개월간의 유급휴가를 쓴다는 것이 그렇고, 빠듯한 수입에 5인 가족 생활비도 어려운데 제법 목돈이 들어가는 교육비의 부담도 그렇고, 무엇보다 아직 어린 아이들 셋을 챙기며 이제 막 시작한 어린이집 일을 해야 하는 집사람에게 미안함이 그러했습니다.
또 주어진 6개월을 어떻게 알차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짜는 일도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주제와 조건들을 나름 검토하고 짜 맞추어 보며 여러 날을 고민했습니다.
개인적인 조건에 한계가 있어 그럴듯한 계획을 세우진 못했지만 나름 많은 고민 속에서 세운 계획이니만큼 최선을 다해 성실히 진행하겠습니다.
2. 108배로 시작하는 청도에서의 하루
안식휴가의 시작과 함께 바로 짐 싸들고 들어온 청도 한옥학교에서의 생활이 벌써 한 달이 되어 갑니다.
경상북도 청도, 태어나서 처음 와보는 곳으로 여수에서 자가용으로 4시간 대중교통으로는 5시간이 걸리는 조그맣고 조용한 시골 읍내입니다.
한옥학교는 청도 읍내가 내려다보이는 남산자락에 위치해 있고 교육과정은 한옥의 주요골격을 짓는 대목수과정, 가구와 문을 짜는 소목수과정, 스스로집짓기 주말반과정 등이 있는데 제가 참여하는 것은 대목수 과정입니다.
하루의 일과는 05시 40분 일어나 06시에 108배, 07시 아침식사, 08시 아침산행 또는 명상과 요가, 09시 오전수업, 12시 점심식사, 13시 오후수업, 18시 저녁식사로 진행되며 일과 후에는 월요일은 풍물 동아리활동, 수요일은 천연염색 동아리 활동 등이 있습니다.
한옥학교는 총 3개월 과정인데 첫 달은 1학년이라 하여 첫 주는 한옥 용어와 구조에 대한 이론교육, 둘째 주는 이론과 더불어 개인공구(대패와 끌)를 받아 자루를 깎아 넣고 날을 갈고, 셋째 주는 대패와 끌을 사용해 기둥 사괘맞춤과 사모정 삼분턱을 실습하고, 넷째 주는 엔진 톱과 전동공구에 대한 이론과 실습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냥 집짓는 목수일 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집이란 무엇인지?(집이 뭣꼬?), 집을 짓는 목수의 마음가짐은 어떠해야하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고민하게하고 가르칩니다.
둘째 달 이학년이 되어 본격적으로 실습주제인 사모정을 짓는 일을 하고 있는데 첫 주는 주로 한옥의 도면(평면도, 횡단면도, 앙시도, 선자연 상세도)을 그리는 공부를 했고 현재는 본격적으로 사모정에 들어갈 목재를 치목하고 있습니다.
각 부재에 맞는 원목을 고르고, 껍질을 벗기고, 원하는 크기에 맞게 먹을 놓고, 엔진 톱과 전동대패로 나무를 자르고 깎아냅니다.
하나하나 어렵고 힘든 과정이지만 나무를 다루는 일과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이 좋고, 원했던 대로 나무가 깎아져 기둥이 되고 도리가 될 때 나름 성취감을 느낍니다.
3. 환갑이 지난 63세 퇴직 공무원에서부터 고등학교 가는 것 대신 목수공부를 택한 17곱살 소년까지 25명의 동기들
청도 한옥학교 대목수과정 58기동기들은 총 25명으로 환갑이 지난 63세 퇴직 공무원, 고건축을 배우기 위해 일본 유학을 준비 중인 23살 여학생, 8년간의 군대 생활을 마치고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딛는 31살 가장, 농고를 나와 농사일과 건설노동자로 일하다 온 45살 노총각 등 이력과 사연들이 다양합니다.
24시간을 꼬박 함께 생활하고, 일하고, 공부하다보니 관계와 사람에게서 배우는 것이 많습니다.
특히 고등학교 가서 수업시간에 졸고 있는 것 보다는 집을 짓는 목수 일을 배우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오랜 시간 고민하여 함께 왔다는 17살 아들과 45살 아빠의 이야기는 아직 어린애들이지만 자식을 키우는 부모로서, 또 16년 동안 한 가지 일만하다 어느새 중년이 되어버린 저에게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기껏해야 대안학교를 고민하고, 그것도 꽤 목돈이 들어가는 일이라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주변의 경우를 보아왔는데 집을 짓는 대목수를 배우겠다고 함께 온 아빠와 아들의 용기는 좁은 저의 생각에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지켜질지 모르지만 저의 큰아들 놈도 시기가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꼭 한번 보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4. 무언가 머리가 아닌 몸뚱이로 할 수 있는 새로운 일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한옥학교
시민운동 16년, 머리와 말로한 일들이 많았다는 생각에 무언가 머리가 아닌 몸뚱이로 할 수 있는 새로운 일을 배워보고 싶어 많은 고민 끝에 한옥학교를 결정했습니다.
무거운 통나무를 나르고, 아직 익숙하지 않은 공구를 사용해 자르고 깎고, 하루 종일 힘든 노동의 연속이지만 몸으로 익히는 무언가가 있어 뿌듯하고, 또 함께하는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것이 있어 행복합니다.
사실 한옥학교와 대목수라는 것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걱정 반 기대 반으로 6개월 안식휴가 중 3개월을 한옥학교로 계획했는데 지금까진 대 만족입니다.
비록 살림집은 아니지만 25명 동기들과 함께 기둥, 창방, 장혀, 도리, 대들보, 선자연을 깎아 멋진 전통 사모정을 지어보겠습니다.
다시 한 번 육 개월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할애해 주신 회원님들, 배려와 도움을 보내주신 많은 분들, 세 아이들과 혼자 씨름하고 있는 집사람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청도 한옥학교 일주문과 건물들
한 번씩 절을 할 때마다 떠오른 태양
아침 산행 약대폭포 가는 길
첫 일주일은 하루종일 이론수업
끌 자루를 깎아넣고 날을 갈고
기둥 사괘맞춤
기둥, 보아지, 창방을 축소하여 대패와 끌로 깎아 맞춘 강흥순의 첫 작품
사모정 삼분턱
세개의 부재가 만나 결구되는 곳에 적용되는 한옥기법으로 강흥순의 두번째 작품
실습주제 사모정 - 56기 선배들의 작품
본격적인 실습 전에 다녀온 고택 실측답사
기둥의 두께에서부터 간격 등 집 전체의 구조를 자로 실측하고 도면으로 옴기기
원목을 옴기고, 껍질을 벗기고, 먹을 놓고, 자르고, 깎고
내가 치목하고 있는 창방
기둥머리에서 기둥과 기둥을 연결해주는 부재로 원목을 5*7(단위는 치, 1치는 3.03cm) 각재로 깎아야 함
하루 동안 쌓인 톱밥
마주보고 대패날을 갈고 있는 17살 아들과 45살 아빠
청도 한옥학교 대목수과정 58기 동기들
첫댓글 새로운 변화... 새로운 다짐, 새로운 활력... 선배의 가는 길을 바라보는 후배로서... 잘 있다 오십시요.
국장님! 짱이에요!
안식휴가가 고행의 시작인듯~~ 힘든교육 잘 받고 무사 귀환하길 바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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