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연구소에서 실시한 제 44차 풍수 간산 및 2014년 시산제행사는 기후가 화창한 봄 날씨 속에 백제의 충신 계백장군의 얼이 녹아있는 황산벌을 품안으로 간직한 논산에서 실시되었다. 논산은 우리나라 국토를 ‘포효하는 호랑이 형상’ 으로 보았을 때, 하단전(下丹田)에 해당하는 곳으로, 경락(經絡)이 모이고, 원기(元氣)가 저장되어, 기 흐름의 요체가 되는 힘의 원천지로, 선사 시대부터 조상들이 삶의 터를 이루던 곳이다. 삼한시대에는 마한(馬韓)이 있었고, 삼국시대에는 백제(百濟)의 땅으로, 계백장군의 5천 결사대와 신라와 당나라가 연합한 5만군대가 황산벌을 중심으로 백제가 최후의 결전을 벌인 유서 깊은 곳이다. 지금은 그 얼을 이어받아 대한민국 국군의 가장 큰 교육 부대인 논산훈련소가 입지하고 있다. 오늘 연구소 시산제 및 간산에 참여한 42명의 회원들이 계백장군의 묘역 청룡자락에서 치러진 행사와 함께 중식을 마무리하고, 오후 간산일정에 따라 후백제왕인 견훤왕릉을 돌아본 뒤, 논산일대에서는 최고의 수혈(首穴)로 알려진 가평이씨(加平李氏)의 중시조(中始祖), 이다림 음택을 답사하기 위해 연산면 청동리로 진입한다.
이곳 일대에 기운을 불어넣는 주맥(主脈)은 금남정맥(錦南正脈)에서 금남기맥으로 분지되어 대둔산과 계룡산(鷄龍山)을 치올리는 맥이다. 이 맥의 행도(行度)를 보면 금남정맥의 왕사봉(718m)에서 금남기맥으로 분지된 한 맥이 거의 북쪽을 향해 치오르다 인대산(662m)을 일구고, 북서쪽으로 진행하여 이곳 터의 태조산(太祖山)인 대둔산(878m)을 솟구치고, 다시 깃대봉(394m)과 함박봉(404m)을 치올린다. 함박봉에서 북쪽으로 치오르는 기맥은 지방도가 지나는 황령재에서 과협(過峽)하여 기운을 갈무리 한 뒤, 본맥(本脈)은 계속 북쪽으로 나아가다 개태사를 품안으로 끌어안은 천호산을 일구는 맥이고, 여기서 남서쪽으로 크게 몸통을 틀어 분지(分枝)된 맥이 오늘 간산여정에 포함된 이다림 묘역과 김장생 묘역, 계백장군 묘역을 차례대로 아우르는 맥이다.
이다림의 묘소를 일구는 용맥은 좌선룡으로 진행하면서 이곳 묘역의 외백호 자락에 터를 정한 이다림의 둘째아들 이형손의 음택에 먼저 기를 불어넣는다.
이다림 음택의 외백호자락에 터를 정한 이형손 음택과 용맥(다음지도 참조)
이형손은 가평이씨의 대표적인 인물로 세종 29년 무과에 급제하여 군기부정, 함길도도진무사, 절형장군, 의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1455년(세조 1) 12월 판관으로 세조의 즉위를 도운 공로로 원종공신(原從功臣) 2등에 녹훈되었고, 세조 13년엔 박충선과 함께 평안도에서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적개공신(敵愾功臣) 2등에 녹훈되었다. 전라도부절제사 겸 전주부윤을 지내고 이어 부총관을 겸임하였다. 여러 공로를 인정받아 처음에는 연산군(連山君)으로 봉해졌다가 곧이어 가평군(加平君)으로 봉군(封君)되였으며, 이로부터 본관(本貫)이 조종(祖宗)에서 가평이씨로 개관(改貫)되어 가평군을 중시조(中始祖)로 삼고 있으며, 그의 후손들이 가문을 빛냈다. 이곳 묘소는 1번 국도변에 위치하여 접근성이 양호하고, 손룡(巽龍) 입수(入首)하여, 천반(天盤), 지반(地盤), 진좌술향(辰坐戌向)에 좌선수 임자파(壬子破)다.
부모봉에서 낙맥하여 속기를 하고, 위로 치오르는 내맥
전방에서 바라본 묘역의 전경
보국이 완벽한 용호의 끝자락과 전방의 일자문성
혈 앞이나 좌우 산들이 이빨이 서로 맞물리듯(交牙), 관쇄(關鎖)를 이루어야 혈장의 기운이 새어나가지 못하고, 혈을 중심으로 여러 사(砂)가 십자모양으로 나뉘었는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 음양의 배합은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그리고 혈을 감싸는 주변 사격의 여부와, 물의 강약(强弱), 순역(順逆), 완급(緩急), 생사(生死), 부침(浮沈), 허실(虛實) 등을 살펴 가감(加減), 요차(饒借)하여 정혈(正穴)해야 하는데, 그 요령은 혈처를 생기가 있는 쪽으로 당기고, 추하고 더러운 곳을 피하거나 거리를 두고, 내외(內外)가 부합(附合)하고, 앞뒤로 막히지 않아야 비로소 진결(眞結)을 이룬다. 이와 같이 여러 조건 중에서 하나라도 맞지 않으면 그것은 곧 가혈(假穴)인 것이다.
백호자락 사이로 쌍귀인이 손짓을 하는 모습이다
뒤에서 바라본 이다림 묘소
백호방에서 바라본 묘소 전경
입체지도를 활용한 정혈처 추정지
<<사고전서 장서>>
맥이 느린 평양지에서는 꼭대기로 7~8치 올려 꽂아야 느린 성질을 급하게 할 수 있는데 이것을 주교투살(湊交鬪殺)이라 부른다. 유씨(劉氏)가 이른바, 느슨한 것은 흔들어 타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곧 첨(簷)에서 위로 올려, 구(毬)에 붙여 넣어야 한다는 말이다. 함부로 고산룡(高山龍)의 법을 평양지에 인용하여 혈을 정한다면 패절(敗絶)하는 수가 있는데, 그것은 높은 고산룡에서는 그 체(體)를 확인하기가 지극히 어렵기 때문이다.
- 유씨: 천보경(天寶經)의 저자, 양균송의 제자인 유강동(劉江東)으로 지리천기회원(地理天機會元)에 전문이 수록되어 있다.
고지장기전(故支葬其顚)-지(支): 평양룡, 전(顚): 정수리, 산정 그러므로 평양룡에 장사지내는 것은 산꼭대기에 하고,
농장기록(壟葬其麓)-농(壟): 고산룡 고산룡에 장사지내는 것은 산기슭에 해야 한다.
복지여수(卜支如首) 평양룡에서는 산의 머리(산정)부분에 터를 정해야 하고
복롱여족(卜壟如足) 고산룡에서는 산의 발(기슭)에 터를 정해야 한다.
또한 혈법에 보면 고산룡에서는 바람이 무섭기 때문애 오목한 곳을 찾아야 하고, 평양지에서는 물의 침범이 무섭기 때문에 아래쪽보다는 위로 올려 장사 지내야 한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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