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갈래 집에서 놀래?”
“약수터 갈래요!”
약수터, 누군가에겐 생소할 수 있지만 나에게는 놀이터나 다름없는 곳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생수를 사는 대신 항상 산 근처에 있는 약수터에 가서 물을 받아오셨다. 무거운 물을 들고 오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할아버지께서 나이가 많이 드신 후로는 항상 삼촌의 몫이었다. 할머니 댁에서 할 일 없이 심심하게 지내던 나는 삼촌 따라 약수터 가는 것이 무언의 약속이었다. 약수터에 가 물을 받기 전 삼촌은 나에게 항상 소시지를 주셨다.
"이거 먹으면서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네!”
삼촌은 물을 받는 동안 심심하게 기다릴 나를 위해 차에 있는 소시지를 하나씩 꺼내주셨다. 별로 비싸지도 않은 소시지를 먹으며 기다리는 것은 그저 즐거운 일이었다. 작은 기본 소시지에서 치즈가 들어가 있는 점점 큰 소시지로 바뀌어 가는 것을 보며 속으로 마냥 좋아했다.
8살 언니와 수영을 배우러 다닐 때의 일이다. 어린 언니와 나를 위해 할머니께선 항상 우리와 수영장에 오셨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수영 강습이 끝나기만을 기다리셨다. 할머니의 배려를 당연하게만 생각하던 어느 날 혼자 의자에 앉아 졸고 계시던 모습을 보았다.
".....”
결국 할머니가 너무 힘드시다는 엄마의 판단에 따라 처음으로 언니와 둘이 수영장에 가게 되었다. 버스 시간 놓치지 않고 잘 타고 집으로 오기. 엄마가 우리에게 내린 임무였다.
“언니, 우리 잘 타고 올 수 있을까?”
“너만 빨리 준비하면 돼.”
하지만 역시 걱정한대로 할머니 없이 간 첫 날부터 버스를 놓쳤다. 혼날 걱정은 뒤로하고 할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할머니... 버스를 놓쳤어요.”
"아이고, 외숙모가 갈 거니까 조금만 기다려라”
할머니를 쉬게 해드리고 싶었지만 외숙모를 귀찮게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외숙모는 눈치보고 있는 우리의 손에 붕어빵을 한 개씩 쥐어주셨다. 추운 날 붕어빵 하나를 물고 집에 가는 길.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이라는 점이 그때를 더 소중하게 기억하게 한다.
학업, 친구 관계, 진로. 고등학생이 된 지금 매일 매일이 힘든 일의 연속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기억은 저절로 나를 미소 짓게 한다. 그때는 알지 못한다.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힘들다고 생각했던 시간이 어느새 행복한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이 길을 다 걷고 나면 우리의 삶은 행복한 일의 연속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