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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회(徘徊)
김 동 인
‘노동은 신성하다.’
이러한 표어 아래 A가 P고무공정의 직공이 된 지도 두 달이 지났다.
자기의 동창생들이 모두, 혹은 상급 학교로 가고, 혹은 회사나 상점의 월급쟁이가 되며. 어떤 이는 제 힘으로 제 사업을 경영할 동안 A는 상급 학교에도 못 가고 직업도 구하지 못하여 헤매다가 뚝 떨어지면서 고무공장의 직공으로 되었다.
‘노동은 신성하다.’
‘제 이마에서 흐르는 땀으로써 제 입을 쳐라.’
‘너의 후손으로 하여금 게으름과 굴욕적 유산에 눈이 어두워지지 않게 해라.’
이러한 모든 노동을 찬미하는 표어를 그대로 신봉한 바는 아니지만 오랫동안 헤매다가 마침내 직공이라는 그룹에서 그가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는, 일종의 승리자와 같은 기쁨을 그는 마음속에 깨달았다. 그것은 사회에 이겼다기보다도―전통성에 이겼다기보다도―한번 꺾어지면서 일종의 반항심이라는 것보다도, ―자기도 인제는 제 힘으로 살아가는 한 개 사람이 되었다는 우월감에서 나온 기쁨이었다.
“우으로 ― 우으로.”
생고무를 베어서 휘발유를 바르며, 혹은 틀에 끼워서 붙이며, 인제는 솜씨 익은 태도로 끊임없이 손을 움직이며, 그는 때때로 소리까지 내어 이렇게 혼자 중얼거렸다.
그러나 이 공장에 들어와서 한 주일이 지나고 열흘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는 동안, 그는, 여기서도 움직이는 온갖 게으름과 시기와 허욕을 보았다. 힘을 같이하여 자기네의 길을 개척해나가야 할 이 무리의 새에도 온갖 시기와 불순한 감정의 흐름을 보았다. 남직공들이 지은 신은 비교적 공평되이 검사되었지만, 여직공이 지은 신은 그의 얼굴의 곱고 미움으로, ‘합격품’과 ‘불량품’의 수효가 훨씬 달랐다. 생고무판의 배급에도 불공평이 많았다. 서로 남의 신을 깎아먹으려고 틈을 엿보았다. 자기가 일을 빨리 하려기보다 남을 더디게 하려기에 더 노력하였다. 혹은 남이 지어놓은 신을 못 보는 틈에 얼른 손톱으로 자리를 내놓는 일까지 흔히 있었다. 점심시간에는 서로 입에 담지 못할 음담으로 시간을 보냈다.
이러한 모든 엄벙벙의 거친 감정과 살림 아래서, A는 오로지 자기의 길을 개척하려고 힘썼다. 사람으로서의 감정과 사랑과 양심을 잃지 않으려―그리고 밖으로는 늙은 어머니와 사랑하는 처자의 입을 굶기지 않으려―휘발유 브러시와 룰러는 연하여 고무판 위에 문질러지며 굴렀다.
“우으로 ― 우으로.”
*
그것은 A가 이 공장에 들어온 지 두 달이 지난 어떤 봄날이었다. 일을 끝내고 한 달에 두 번씩 내주는 공전을 받은 뒤에 그가 막 집으로 돌아가려고 도시락통을 꽁무니에 찰 때였다.
“여보게 A. 놀러 가세.”
A와 같은 상에서 일하는 B가 찾았다. C, D, 두 사람도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 나도 놀러 가잔 말인가?”
“같이 가자기에 찾지.”
“그럼, 내, 집에 잠깐 들러서―”
“이 사람 걱정 심할세. 잠깐만 다녀가게. 이 사람 그렇게 비싸게 굴면 못써.”
“그래라.”
그는 다시 무슨 말을 못하고 따라갔다.
그들은 그 공장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어떤 집까지 이르러서 주인을 찾지도 않고 줄레줄레 신발을 문 안에 들여 벗은 뒤에 들어갔다. A는 의외의 얼굴을 하였다. 그 집 안주인은 공장 근처에 있는 서른댓쯤 난 여인이었다.
B는 그 여인에게 엄지손가락을 쳐들어 보였다.
“어디 갔소?”
“내보냈지. 놀다 오라구 오십 전 줘서…….”
“잘됐어. 넷만 데려다 주.”
“넷? 넷이 있을까. 하여간 잠깐 기다려요. 가보구 오께.”
여인은 일어나서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
“A도 앉게나. 왜 뻣뻣 서 있어?”
“B. 난 먼저 가겠네.”
“또 나온다. 앉어.”
“참 가봐야겠어.”
“몹시는 비싸다. 사람이 그렇게 비싸면 못써.”
“비싼 게 아니라一”
A는 하릴 없이 주저앉았다.
잠깐 다녀오마고 나간 주인 여인은 한 시간이나 넘어 지난 뒤에야 겨우 돌아왔다.
“자, 한턱 내야지.¨
그 여인의 이런 소리와 함께 뒤로는 다른 젊은 여인 넷이 들어왔다.
“저 얼간이와 또 맞선담. 좌우간 이리 와.”
B는 선등 서서 들어오는 어떤 뚱뚱한 젊은 여인을 손짓하며 웃었다.
“저 싱검둥이와 또 놀아? 에라 놀아줘라.”
얼간이란 그 여인도 대꾸를 하면서 B의 곁으로 내려와 앉았다.
C도 하나 맡았다. D도 하나 맡았다. 그리고, A의 몫으로 남은 것은 같은 P고무공장의 여직공으로 다니는 십팔구 세 난 도순(道順)이라는 뚱뚱한 계집애였다. 그러나 공장에서 일할 때와 달리, 비단옷을 입고 얼굴에는 분도 약간 발랐다.
이것을 한 번 둘러본 뒤에 A는 불쾌함을 참지 못하여 몸을 일으켰다.
“B, 난 먼저 가겠네.”
“에이 못난 자식, 가고 싶으면 가. ……여보게 우리 좋은 친구끼리 놀러 왔다가 혼자 먼저 간다면 우리가 자미 있겠나? 한 시간만 있다가 같이 가세.”
A는 일으켰던 몸을 다시 하릴없이 주저앉혔다.
*
남녀 여덞 명은 둘러앉았다.
술상도 들어왔다. 잡수세요, 먹어라, 먹자, 먹는다, 술은 돌기 비롯하였다.
“샌님. 먹게.”
술잔은 연하여 A에게로 왔다. A는 한 잔도 사양치 못하고 다 받아먹었다. 그러나 첫 잔부터 불쾌한 기분 아래서 받은 술은, 그 수가 많아감과 함께 불쾌함도 따라 늘어갔다. 술을 먹을 줄을 모르는 A는 차차 자기가 취해 들어가는 것을 똑똑히 의식하면서 주는 대로 받아 마셨다. 사양하려면 B가 막았다. 술잔을 받아놓고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여인들이 채근하였다.
“하하하하. 맛있지?”
A가 술을 삼킬 때마다 낯을 찡그리는 것을 보고, B는 재미있는 듯이 손뼉을 치고 하였다. 여인들도 깔깔 웃어대었다.
되는대로 되어라! 몇 잔 안 되어서 벌써 얼근히 취한 A는 마음의 불쾌와 몸의 불쾌가 가속도로 늘어가는 것을 마치 남의 일과 같이 재미있게 관찰하면서 오는 술잔은 오는 대로 다 받아먹었다. 다섯 잔이 열 잔이 되고, 열 잔이 스무 잔이 됨을 따라, 그의 눈살은 더욱 찌푸려졌다.
一이게 무슨 일이냐. 무슨 거친 생활이냐. 너희에게는 너희의 봉급을 손꼽아 기다리는 어버이나 처자가 없느냐. 술? 환락? 술보다도 환락보다도 먼저 너희의 사람으로서의 인격을 완성시키 것이 너희의 할 일이 아니냐. 우으로! 우으로! 술에 취한 몽롱한 눈으로 어두운 등잔 아래서 뭉기며 헤적이는 몇 개의 몸집을 바라보던 그는 뜻하지 않고 숨을 길게 쉬었다.
“망칙해. 우시네.”
곁에 앉아서 술을 따르고 있던 도순이가 A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뭐? A가 울어?”
B가 이편으로 머리를 홱 돌렸다. A는 얼굴을 돌렸다. 눈물이 나온 바는 아니었지만, 취한 그들에게 얼굴을 보이기가 싫었다.
“A, 우나? 도련님. 샌님. 하하하하, 또 한 잔 들게. 一도라지, 도라지, 도라지 ―까. 은률 금산포 도라지 ―까(콧노래를 부르며) 하하하하. 뚱뚱보. 그렇지? A, 또 한 잔 먹어라.”
“B. 난 정 먼저 가겠네.”
“가? 가갸거겨는 언역지 초요, 이마털 뽑기는 난봉지 초로다.―― 이 자식, 글쎄 가기는 어딜 간단 말이냐. 푸른 술 있겠다, 미희(美姬) 있겠다―야, 너무 비싸게 굴지 말어라. 천 냥짜리다, 만 냥짜리다. 십만 냥 줘라. 자 또 한 잔.”
A는 또 받아 마셨다.
“하하하하. 십만 냥이라는 바람에 또 먹었구나. 먹은 담에는 열 냥짜리다. 그러나 A, 내 말 듣게. 나도―나도―”
B는 지금껏 뚱뚱보에게 걸고 있던 왼팔을 풀어서 양 팔꿈치로 술상을 짚었다. 그리고 얼굴을 A의 앞으로 가까이 하였다.
“A, 자네, 정 우나? 울지 말게.”
울지도 않는 A에게 울지 말라고 권고하는 B는 자기 눈에 갑자기 고인 눈물은 의식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울 게 아니라네. 세상사가 다 그렇다네. 나도 상당한 학부를 졸업한 사람일세. 처음에는 자네와 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지. 세상을 좀더 엄숙하게 보자고……그러나 틀렸어. 세상에 어디 엄숙이 있나? 예수? 석가여래? 모두 다 샌님이야. 이 뚱뚱보 얼간이 보담도―”
B는 한 번 탁 계집을 붙안았다가 놓았다.
"듣기 싫어. 싱검둥이.”
“꼴에 비싸게 구네. A! 자네 밥만 먹고 살겠나? 반찬도 있어야고 물도 있어야지. 돈 있는 놈의 반찬은 명월관, 식도원에 있고, 우리 반찬은 이 뚱뚱보, 말라꽁일세그려. 자네네 그 올빼미―도순이 말일세. 오죽이나 얌전한가. 우리 얼간이하구 바꾸어볼까. 하하하하, 또 한 잔 먹게. 탄력 있는 몸집, 그래 어때?”
B는 술을 따라서 A에게는 주지 않고 자기가 마셨다. 하하하하. 쾌활히 웃는 그의 오른편 눈은 그 웃음에 적당하게 쾌활한 빛이 있었지만 커다랗게 뜬 왼편 눈에서는 눈물이 뺨으로 흘러내렸다.
“A, C, D, 그러구 이 요물들아. 내 말을 들어라. 오늘이 우리 아버지 생신이다. 저녁에 고등어를 사가지고 가마 했다. 그렇지만 고등어가 다 뭐야. 술이다. 술이야. 어따, A, 너 또 한 잔 먹어라.”
“B. 그럼 자네도 집에 가야겠네그려.”
“나? 내일 저녁에 가지. 남의 걱정까지는 말고 술이나 먹어라. 그렇지만, A. 이까짓 자식들―”
B는 손을 들어서 C와 D를 가리켰다.
“자식들과는 이야기할 게 없지만, 때때로 생각하지 않는 바 아니야. 상당한 학부까지 마치었다는 자식이, 그래 십여 년을 배운 것을 써먹지도 못하고 고무신을 붙여서 한 켤레에 오 전씩 받는 것, 이것을 가지고―이걸 술도 안 먹고야 어쩌겠나. A. 울말게, 울지 말어.”
B는 수건을 내어 제 눈물을 씻었다.
*
좀 뒤에 도순이의 집까지 몰아넣으려는 것을, 몸을 빼쳐서 피한 A는, 취한 술을 깨우기 위하여 공원에 갔다.
고요한 밤의 공원이었다. 전등불에 비쳐서 A는 그 나무들의 늘어진 가지에서 장차 터지려는 탄력을 보았다. 겨울의 혹독한 바람 아래서도 자포(自暴)를 일으키지 않고 오랫동안 기다린 그 가지들의, 겨우내 간직하였던 힘과 생활력을 한꺼번에 써보려는 그 자랑을 보았다.
“우으로―우으로. 좀더 사람다이.”
이 나뭇가지의 용기와, 아까의 B의 자포적 기분의 두 가지를, 마음속에 그려놓고 비교할 때에는 어느 편을 도울지 헤아리지 못하였다. B의 말에도 그럴듯한 근거가 있었다. 아무 바람과 광명을 발견할 수 없는 이 환경 아래서 혼자서 우으로 광명으로 손을 저으며 헤매면 그것이 무슨 쓸데가 있으랴. 필경에는 실망에 실망을 거듭한 뒤에는 또다시 침락〔沈落〕의 생활에 빠져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지 않으랴. 그러면 도대체 장래의 실망이라는 것을 맛보지 않게, 지금부터, 침락의 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도리어 옳치 않을까. 우으로? 우으로? 무엇이 우으로냐?
“술이다, 술이야.”
“아까 B가 부르짖던 그 부르짖음은 A 자기의 “우으로, 우으로”라고 부르짖는 그 부르짖음보다도 더 침통하고 진실한 부르짖음이 아닐까. 더 범인적〔汎人的〕 인 부르짖음이 아닐까.
A는 연하여 피께를 하며, 취하여 쓰러지려는 몸을 다시 일으고 일으키고 하였다.
*
이튿날 종일을 A는 불쾌하게 지냈다. 먹을 줄을 모르는 술을 과음했기 때문에 얼굴은 뚱뚱 부었다. 가슴이 별(別)하게 쓰렸다.
그는 공장에서도 일하던 손을 뜻하지 않고 멈추고는 눈을 꺼벅꺼벅하고 하였다.
“어때? 샌님.”
B가 찾는 것도 그는 들은 체도 안 하였다. 몇 번을 저절로 눈이 도순이 있는 편으로 쏠리다가는 혼자서 혀를 차고 하였다. 주위의 인생이란 인생, 여인이란 여인이 모두 더럽게만 보였다.
“그러고도 사람이냐. 더러워 ! 우으로―우으로.”
그는 몇 번을 혀를 차고 주먹을 부르쥐고 하였다.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렬 무렵에 B가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또 가볼까?”
하였지만 A는 대답도 없이 지나가버렸다.
“하하하하.”
뒤에서 B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우으로― 우으로.”
A는 머리를 수그리고 걸음마다 힘을 주면서 집으로 향하였다.
*
어떤 날 점심때, 점심을 끝낸 장화공(張靴工)들은 넓은 방에 모여서 잡담들을 하고 있었다. 그때 어느 여공이 이런 말을 꺼냈다.
"이 즈음 불량품이 많이 나.”
"당신 면상이 멍텅구리거든.”
어느 남직공이 놀렸다.
“아니야. 나도 많이 나는데.”
이번은 얼굴 좀 빤빤한 계집애가 이렇게 말하였다.
“그럼 당신은 얼마나 이쁘우?”
아까의 남직공은 또 놀렸다.
"아이구. 당신은 입이 왜 그리 질으우?”
“질지 않어 물이면 어때?”
한참 이렇게 주고받을 때에, B가 쑥 나섰다.
“그럴 것들이 아니야. 내게서도 이즈음 불량품이 많이 나는데 아마 배합(配合)이 나뻐.”
일종의 위신을 가지고 있는 B의 말에는 아무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사실 이즈음은 불량품이 많이 났다. 그것은 얼굴 미운 여공에게서만 많이 나는 것이 아니요 남직공이며 얼굴 예쁜 여공에게서도 검사에 불합격되는 신이 많이 났다. 불량품 한 켤레를 낼 때마다 그 직공은, ‘불량품을 낸 벌’로서 한 켤레와 ˙불량품이 된 원료에 대한 보상’으로서 한 켤레―이렇게 두 켤레를 공전 안 받고 만드는 것이 고무공장의 내규였다. 그런지라, 한 켤레의 불량품을 내면 그 직공은 공전 못 받는 세 켤레(불량품까지)를 만드는 셈이다. 잘해야 하루에 십칠팔 켤레 이상은 못 붙이는 그들이, 어떻게 해서 하루에 세 켤레만 불량품을 내놓으면, 그날은 공전 받는 일은 칠팔 켤레밖에는 못한 셈이 되는 것으로, 사실 불량품이 많이 난다 하는 것은 직공들에 대하여는 큰 문제였다.
“배합이 나뻐.”
B의 말을 따라서 제각기 들고 일어섰다.
“난 어제 네 켤레를 퇴맞었는데.”
“난 그저께 여섯 켤레.”
한 시간 전까지는 불량품 낸 것을 수치로 생각하고 그 수효를 줄이거나 감추려던 그들은, 그것의 책임이 자기네에게 있지 않은 것을 아는 동시에 각각 그 수효의 많음을 자랑하였다. 세 켤레 네 켤레다. 제각기 들고 일어섰다.
“여러분들. 이럴 것이 아니라, ―이렇게 지껄이기나 하면 뭘 하오. 그러니까, 우리는 어떻게든 그 대책을 연구합시다.”
“대책이라야 배합사를 두들겨주는밖에 수가 있나?”
누가 이런 말을 하였다.
“두들겨라.”
“따려라.”
몇 사람이 응하였다. 하하하, 웃는 사람도 있었다.
“담뱃불 좀 주게.”
딴소리 하는 사람도 있었다.
“좀 조용들 해요. 우리 문제를 좀 구체적으로, 생각해봅시다그려.”
그들은 머리를 모으고 의논하였다. 제각기 의견을 제출하였다. 그러던 끝에 마침내 B의 의견을 좇아서 지배인에게 배합사를 주의시켜달라기로 작정되었다. 그리고 그 대표자로서는 A가 뽑혔다.
A는 이 직책을 달갑게 받았다.
*
모든 장화공들의 성원 아래 그들을 문밖에 남겨두고 A는 지배인의 앞에 갔다. 지배인은 무슨 일이 났는가고 눈이 둥그렇게 되며 장부를 집어치웠다.
“무슨 일이어.”
“저, 다름이 아니라―”
A는 분명하고 똑똑하게 이즈음 유화(硫化)할 때에 불량품이 많이 발견되며, 이 때문에 장화공들이 받는 손해가 막심하니 배합사를 불러서 좀 주의하도록 명하여달라고 말하였다.
지배인의 명으로 배합사가 왔다.
"이즈음 배합이 나빠서 불량품이 많이 난다는데―”
이 지배인의 말에 대하여 배합사는 즉시로 반대하였다.
“네? 그럴 리가 있습니까. 꼭 저울로 달아서 이전과 같이 배합에 변동이나 착오가 있을 리가 없습니다. 아마 네리(鍊)가 부족한 모양입지요.”
“네리? 그럼 네리공을 불러.”
네리공이 왔다.
“네리를 이즈음 어떻게 하나?”
“전과 같습니다.”
“그래두 생고무 품질이 나빠서 불량품이 많이 난다고 말이 있는데.”
“네리에는 부족이 없습니다. 그럼 유화가 혹은 과하거나 부족하거나 하지 않습니까. 유화시킬 때의 취급이 너무 아라이하지 않습니까?”
“어디 유화공을 불러봐.”
유화공이 왔다.
“이즈음 유화를 어떻게 하나?”
“네?”
“이즈음 불량품이 많이 나는 건 알겠지.”
“네.”
“왜 잘 유화시키지 않어?”
“천만에. 붙이기를 잘못 붙이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유화에는 잘못이 없습니다. 기압 오십 파운드로, 한 시간 반씩―과부족이 없습니다.”
배합에서 네리로, 유화로, 이 세 과정의 책임자의 말을 듣는 동안 A의 머리는 점점 수그러졌다. ―내가 무엇 하러 여기 들어왔는가. 서로 책임을 밀고 주고……·여기 들어온 나부터가 벌써 마음을 잘못 먹지 않았나. 사람이란, 제가 당연히 져야 할 책임까지도 남에게 밀지 않구는 살아가지 못하나. 여기 들어온 나부터가, 잘못이다. 아무리 배합이 나쁠지라도, 아무리 네리가 부족할지라도 아무리 유화가 잘못되었을지라도 성심껏 붙이기만 하면 안 붙을 바가 아니다. 왜 그 책임을 남에게 밀려 했는가. 우으로! 우으로! 좀더 사람다이! 감격키 쉬운 그의 눈에는 눈물까지 고이려 하였다.
“자네도 듣다시피, 제각기 잘했노라니깐 어느 편이 잘못했는지 모르겠네 그려. 허허허.”
지배인은 수염을 쓰다듬었다.
“네. 듣고 보니, 아마 붙이기를 잘못한 것 같습니다.”
A는 머리를 수그린 채 돌아서서 지배인실을 나왔다. 그가 머리를 수그리고 직공들 틈을 지나갈 때에 어떤 여공이 그를 멍텅구리라 하였다. A는 그 말은 들은 체도 않고 빨리 공장으로 돌아와서 제 모자를 뒤집어쓰고 도시락통을 뒤통수에 찼다. 그리고 막 밖으로 나오려다가 B와 마주쳤다.
“잘 만났네. 술 안 먹겠나? 내 한턱 냄세.”
"뭐? 술? 만세. 좌우간 오늘 일을 끝내고―”
"에, 불쾌해!”
“왜 그러나. 하하하하. 제각기 책임을 밀던가. 그런 게라네, 사람이란 건·……거기서, 네 저희 장화공들이 붙이기를 잘못 붙였나 보이다 하던 자네의 태도는 예수 그리스도데, 예수그리스도야. 예수, 석가여래, 공자, 하하하하. 하여간 좀 있다 술을 잊어서는 안 되네. 그리스도의 술을 얻어먹기가 쉽겠나?”
*
이튿날 아침, 몹시 목이 말라서 깬 때는, A는, 뜻밖에도 도순네 집에 있는 자기를 발견하였다. A는 벌떡 일어났다. 정신이 앋득하였다.
“이게 무슨 일이냐. 내가 이게 무슨 짓이냐.”
무한한 자책과 불쾌 때문에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였다. 증오에 불붙는 눈을 도순이의 얼굴에 부었다. 얼굴에 발랐던 분이 절반 만치 져버려서 버짐 먹은 것같이 된 면상에 미소를 띠고 있는 도순이를 보면 불쾌감이 더욱 맹렬해졌다. 그 얼굴에 침을 탁고 싶었다.
A는 황급히 일어났다. 무엇이라 그의 등을 향하여 도순이가 부르짖었지만, 듣지도 못하였다. 문 닫고 가란 말만 간신히 들렸다. 잠에 취한……
그 집을 뛰쳐나온 그는, 자 어디로 가나 하였다. 밤을 다른 데서 보내고 이제 어슬렁어슬렁 제 집으로 돌아가기에는 그의 양심은 너무도 밝았다. 지금껏 아내 이외의 딴 계집을 접해본 일이 없는 그였다.
“무슨 짓이냐. 이 내 꼴은―”
불쾌하였다. 침이 죽과 같이 걸게 되었다. 마음은 부단히 향상을 바라면서도, 행위에 있어서 양심과 배치되는 일을 저지르는 제 약함을 스스로 꾸짖어 마지않았다. 그는 불쾌한 감정 때문에 연하여 사지를 떨면서 골목에서 거리로 거리에서 골목으로 빙빙 돌고 있었다.
“아아. 거칠은 삶이다. 바보! 바보! 왜 나는 좀더 사람답게 못 되는가. 사람으로서의 사랑과 감정과 양심 ―이것을 왜 기르지를 못하느냐. 기르기는커녕, 있던 것조차 보전치를 못하느냐. 우으로, 우으로. 좀더 사람다이!”
그는 메스꺼운 듯이 탁 침을 뱉고 하였다.
하릴없이 공장으로는 갔다. 하루 진일을 불쾌하게 지났다. 공장에서 일할 동안 저편 여직공들의 일터에서, 무엇이 좋다고 죄죄거리는 도순이의 뒷 태도를 증오에 불붙는 눈으로 수없이 흘겼다. 벌써 잊었느냐.
“에익! 더러워. 한 사내와 한 계집의 결합이라는 것은 결코 농담이 아닐 것이다. 무지로다. 더럽다.”
소리까지 내어서 중얼거리고 하였다.
여전히 천하를 태평히 보자는 B는, 일손을 멈추고 A를 돌아보며 웃었다. 그러나 A는 그의 미소에는 응치도 않고, 타는 듯한 증오의 눈을 B에게 던질 뿐이었다.
“오늘 밤도 또 가려나?”
응하지 않는 것을 탓하지 않고 B가 두 번이나 말을 붙일 때에 A는 몸까지 휙 B편에서 돌려버리고 말았다.
*
그러나 그날 밤 A는 혼자서 몰래 술을 몇 잔을 먹은 뒤에 또다시 도순이의 집의 문을 두드렸다. 아직 양심이 썩지 않은 A는, 자기의 양심과 어긋나는 이 행동에 대하여 억지로 자기 스스로를 속일 핑계라도 없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자기 스스로를 속여서, 오늘 도순이에게 ‘한 사내와 한 여인의 결합이라는 것은 좀더 엄숙히 볼 문제라’는 것을 설교해주어야겠다고 핑계를 만들었다.
*
배합사와 장화공 새의 문제는, A의 철저치 못한 태도와, 지배인의 ‘허허허’ 하던 웃음소리로, 한 단락을 맺은 듯하나, 그것으로 온전히 끝이 난 것이 아니었다. 이튿날도, 불량품을 낸 직공에게서마다, 배합사에 대한 원성이 나왔다. 그 이튿날도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리하여 날이 지날수록 그들의 원망은 차차 더하였다. 그러나 거기 대하여, 구체적으로 어떻게든지 하자는 사람은, 없었다.
“제길, 도죽놈.”
이것이, 그들의 최고의 원성이었다.
A는, 지배인에게 향하여, 인제부터는 잘 붙여보겠노라고 하고 나온 뒤로, 정성을 다하여 붙였다. 전에는 하루에 열여섯 켤레 평균으로 붙이던 그가, 그 다음부터는, 열두 켤레를 한하고 붙였다. 그러나 이틀에 한 켤레씩은, 역시 불량품이 났다. 아무런 일에든지, ‘되는대로’를 표방하고 지나는 B에게서는, 하루에 평균 세 켤레가 났다.
어떤 날, A는―브러시질을 하던 손을 멈추고, B를 찾았다.
“여보게, B. 이러다가는 참 안 되겠네.”
“뭐이?”
“불량품 문제 말일세.”
“하하하하. 자네도 걱정이 나는가? 붙이기만 잘 붙여보게나.―아닌 게 아니라, 걱정은 걱정일세. 그래서 어저께 나 혼자서 몰래 지배인을 찾아갔다네. 그자(지배인)허구 우리 집허구는 본시 세교 집안이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일개 직공이라 해도, 그리 괄시를 못한다네. 그래서 담판을 했지. 배합사를 내쫓아달라구. 그랬더니 그 대답이 이렇드구먼. 지금의 배합사는 이 공장이 창설될 때 공장에서 일부러 고베(神戶)까지 보내서 수천 원을 색여가면서 배합법을 도적질해온 게라구. 그래서 보통 배합사면 한 달에 원급 일백이십 원은 줘야 하는데 이자에게는 그 반액 육십 원밖에는 안 준다나. 십 년 동안을 육십 원씩 주고 그 뒤부터야 보통 '배합사의 봉급을 준다네그려. 그런 사정이 있으니까, 내보낼 수가 없대.”
“B. 난 어젯밤에 이런 생각을 해봤는데 어떨까. 우리 장화공의 수효가 삼백 명이 아닌가. 그 삼백 명이 한 달에 네 켤레씩 불량품을 낸다면 그 공전 손해가 한 달에 육십 원이지. 그러구 불량품을 낸 배상으로 만드는 이천사백 켤레의 공짜 신까지 합하면 매달 일백팔십 원이라는 돈이 떠오르네그려. 그 떠오르는 돈으로, ―즉 우리 돈으로 말일세, 우리 돈으로 우리가 배합사 한 명과 네리공 한 명을 야도우(雇)해보면 어떨까 하는 말이야. 공장 측 배합사와 네리공을 감독하는 셈일세그려. 우리가 지금 배합이나 네리가 나쁜 탓으로 받는 손해가 한 달에 한 사람에 네 켤레쯤으로 당할 것인가. 적어도 한 사람 평균 서른 켤레는 될 것일세.”
“만세. A 만세. 씨르럭 푸르럭 톨스토이식의 헷소리나 하는 자넨 줄 알었더니 이런 지혜도 있었나? 만세 만세 만만셀세. 그렇지만 역시 공상가의 생각일세. 도련님의 생각이야. 샌님. 도련님. 직공들이 말을 들을 줄 아나? 배합이 나뻐서 한 달에 일만 원을 손해를 볼지언정 그것을 개량할 비용으로는 십 전은커녕 일 전도 안 낸다네.”
“그럴 리야 있겠나?”
“그러기에 자네를 샌님이라지. 하하하하.”
“사리(事理)를 설명 해―”
“사리? 사리를 알 것 같으면 자네 같은 철학자나 나 같은 주정꾼이 되지. 좌우간 말해보게나. 나쁜 일은 아니니깐.”
A는 다시 브러시를 들었다. B의 이야기는 독단이었다. 사람의 사람으로서의 신성함을 무시하는 독단이었다. A는 다시 그 이야기를 B에게 안 하려 하였다.
그리고 이튿날 공장에 출근할 때는 그는 어저께 B에게 이야기한 것과 같은 규맹서(規盟書)를 작성 해가지고 왔다.
점심때를 이용하여 그는 B에게 도장 찍기를 원하였다. B는 웃으면서 찍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서는 그는 좀체 도장을 받지는 못하였다.
“도장을 못 가져 왔구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다들 찍으면 나도 찍지요.”
어떤 사람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집에 가서 의논해야겠네.”
어떤 사람의 대답은 이것이었다.
이리하여 그가 받은 도장은 삼백 명 직공 가운데서 겨우 열서너 사람에 지나지 못하였다.
그날 일을 끝내고 몹시 불유쾌하여 돌아가렬 때에 B가 따라왔다.
“어때? 몇 사람이나 받았나?”
“에익! 더러워! 짐승만도 못한 것들.”
“하하하하. 안 찍던가? 글쎄 내가 그러지 않던가. 안 찍네, 안 찍어.”
“돼지! 개!”
“몹시 노여우신 모양일세그려. 술 먹구 싶지 않은가? 한 턱 내게나.”
A는 B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B의 얼굴에 뱉으려고 준비하던 침을 탁 땅에 뱉은 뒤에 돌아서서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향하였다.
*
도순이와의 일이 있은 뒤부터, A는 자주 도순이를 찾았다. 도순이의 집을 다녀온 이튿날마다 몸시 불쾌하여, 다시는 안 가려 혼자 맹서하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발은 뜻하지 않고 그리로 향해지고 하는 것이었다.
공장에서는 도순이와 A는 서로 모른 체하였다. 처음 한동안은 도순이가 말을 걸어보려 하였으나 A가 부끄러워 피하고 하였다.
그 뒤부터는 도순이도 모른 체하였다. 간간 도순이가 A의 곁으로 지나가다가 몰래 꼬집고 하는 것뿐이었다.
*
그것은 오월 단오가 가까운 어떤 날이었다.
A가 집에서 저녁을 먹고 거리(?)에라도 나갈까 하고 망설이고 있을 때에 아내가 찾았다.
“어디 또 나갈려우?”
“응.”
“여보, 응이 대체 뭐요, 응이 뭐야. 집안 꼴을 좀 봐요. 쌀이 있소, 내일모레가 명절인데, 아이 옷이 있소?”
“우루사이 온나다나.”
“할 말 없으면 저런 말 한담.”
아내는 어이없는지 픽 하고 웃어버렸다. A도 그만 웃어버렸다. 그리고 싱 겁게 귀동이(그의 두 살 난 아들)를 두어 번 얼러본 뒤에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선 그는 B를 찾아가서 B를 문간까지 불러내었다.
“여보게 B. 돈 한 이 원만 취해주게.”
“밤중에 돈은 해서 뭘 하겠나?”
“집에 쌀이 떨어졌네그려.”
“뭐? 쌀? 그게야 되겠나. 가만있게. 이 원으로 되겠나? 한 오 원 줄까?”
A는 B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천하만사를 되는대로 해나가는 듯한 B―그가 집에는 생활비용을 여유 있게 남겨두며, 친구의 청구에 두말없이 꾸어주는 그의 태도. 눈물이 나오려 하였다.
“오 원이면 더 좋지.”
“잠깐 기다리게.”
B는 들어가서 제 아버지(?)와 중얼중얼하더니 오 원을 가지고 나왔다.
“자, 쓰게. 딴 데는 쓰지 말게.”
“이 사람아.”
이런 일에 감격키 쉬운 A는,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막고 B에게 사례를 하고 돌아섰다.
그날 밤 집에 돌아올 때는, 그는 쌀 한 말과 어린애의 인조견 저고릿감과 제 아내의 저고릿감을 각 한 채씩을 들고 돌아왔다.
집에 들어서면서 장한 듯이 홱 내던진 그 물건들을 아내는 생긋이 웃으면서 집어치웠다. 제 저고릿감에 대하여는, 그는 그다지 기뻐하는 듯이 보이지 않았다. 한순간 펴본 뿐, 곧 집어치웠다. 자리에 누워서도, 당신의 옷이나 끊어 오지요 한 뿐 제 것에 대한 치하는 안 하였다.
이튿날 아침, A가 깨어서 세수를 하려고 문을 열 때였다. 혼자서 불을 때며, 제 저고릿감을 뒤적이고 있던 그의 아내는, A가 나오려는 바람에 얼른 감추어버렸다. 얼굴이 주홍빛이 되었다. 말도 없고 표정도 없었지만 얼마나 기뻐하는지가 역연히 보였다.
집을 나서서 공장으로 가는 동안, A의 마음은 마치 명절을 맞은 아이들같이 괴상히도 들먹거렸다. 무한 명랑하고 기뻤다. 단 일 원. 그것으로 아내의 마음을 그만치 기쁘게 할 수가 있는 것이었다. 싸지 않으냐.
그는 문득 도순이를 생각하였다.
연애? 그것도 아니었다. 성의 불만? 그것도 아니었다. 유쾌? 오히려 그 반대였다. 여성 정복이라는 일종의 병적 쾌감이 그를 도순이에게 끄는 유일의 원인이었다. 그것은 더러운 감정이었다.
“우으로 ― 우으로.”
이리하여 그는 그 뒤부터는 도순이의 집을 다시 가지 않았다. 공장에서도 할 수 있는 대로 도순이를 보지 않으려 하였다.
집에 누워서 때때로 그 도순이의 일을 회상하고는 심란해질 때는 언제든지 귀동이를 찾았다.
“야 귀동아.”
“어.”
“응, 너 착하지.”
“까 ― 따 ― 빠―”
“뭘?”
“따― 떼 ― 여이 !”
“그렇지. 따, 떼, 여이, 지.”
그리고 그는 거기서 도순이와 만났을 때와는 온전히 종류가 다른 만족과 희열을 발견하였다. 귀동이의 까―따―빠―는 도순이의 흥에 지지 않는 매력이 있었다. 제 아내에게 무슨 물건을 사다 줄 때마다 본 체 만 체하는 아내의 태도는, 사다 주는 물건에 입을 맞추며 기뻐서 날뛰는 도순이보다도 A에게는 더 은근스럽고 흡족하였다.
그의 생활은 다시 건전한 데로 돌아섰다.
*
여름도 절반이 갔다.
그 어떤 여름날 공장을 끝내고 돌아오던 길에 A는 문득 앞에 B가 도순이를 끼고 소곤거리면서 가는 것을 보았다.
집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은 뒤에 곤하여 자려 하였으나 그의 마음은 공연히 뒤숭숭하였다.
“압 바.”
귀동이가 찾으면서 왔다. 그러는 것을 그는 밀었다.
“저리 가.”
“따 띠?”
“뭘?”
“여이 다― 떼이.”
“엄마한테 가.”
“마?”
“응, 옹.”
A는 벌떡 일어났다. 더워하면서, 그는 모자를 쓰고 집을 나섰다.
야시며 거리를 일없이 빙빙 돌다가 아흡 시쯤 하여 도순이의 집 앞에 가서 귀를 기울였다.
“올빼미 같으니.”
“흥, 넌 싱검둥이지?”
안에서는 확실히 B와 도순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A는 문을 두드렸다. 안의 소리들은 끊어졌다. A는 두번째 두드렸다. 대답은 없었다. A는 또다시 두드렸다.
세번째야 건넌방에서 누구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
“도순이 있어요?”
“놀러 나갔소.”
“언제쯤이오?”
“아까요.”
A는 홱 돌아섰다. 나를 따는구나. 있고도 없다고? 짐승들! 더러워! 더러워!
거기서 돌아선 그는 그로부터 두 시간쯤 뒤에, 다시 도순이의 집에 이르렀다. 그때는 그는 먹을 줄 모르는 술에 정신없이 취해 있었다.
“도순이.”
그는 몸 전체로 대문을 받았다. 그리고 그 여력으로 넘어진 그는 주저앉은 채로 대문을 찼다.
“도순이.”
한마디 부르고는 앉은 채로 서너 번씩 대문짝을 차고 하였다.
지금 연놈이 끼고 누워 있나?
“어어. 나가네.”
이윽고 안에서 대답 소리가 났다. B의 목소리였다.
“이 사람아 좀 기대려. 대문 쩌개지겠네.”
안에서 문 여는 소리가 나고 신발 끄는 소리가 나고, 대문이 덜걱 덜걱 하다가 열렸다.
“자. 들어가세.”
A는 그만 싱겁게 일어났다.
“B인가. 난 누구라구. 가겠네. 어 취해.”
“들어 가세나.”
“가겠네. 재미 보게. 응? 재미 봐.”
A는 뿌리치고 돌아섰다.
바보! 바보! 뭘 하러 거기까지 다시 갔던가. 이야말로 태산을 울린 뒤에 겨우 쥐 한 마리란 격이로구나. ―술과 노염과 불쾌 때문에 그는 귀가 어두워지고 눈이 어두워졌다.
“바보! 바보! 이게 무슨 창피스런 꼴이냐!”
집에만 돌아가면, 즐거운 가정이 있지 않으냐. 귀동이가, 있지 않으호냐. 아내가, 있지 않으냐. 시골에는, 늙은 어머니가 있지 않으냐. 그리고, 그들은 모두 나 하나를 힘입고 살고 있지 않으냐. 나는, 그들을 돌볼 권리와 의무가 있지 않으냐. 나는 사람이다. 우으로, 우으로.
술과 노여움으로 흥분된 그는, 혼자서 승얼승얼 말을 하면서, 고개를 푹 수그리고 거리거리를 비틀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디선지 쓰러져 자버렸다.
*
이튿날ㅡ. 새벽에 길로 뛰쳐나왔다.
A는 오늘은 공장을 쉴까 하였다. 공장에서 B를 만나기가 싫었다. 그러나 갈 데가(이 이른 새벽에) 없어서 빙빙 돌다가 오정쯤 드디어 공장으로 갔다.
“요 ㅡ”
B는 여전히 손을 들어 인사하였다.
이것은 A에게는 의외였다. B는 부끄러워하려니 하였던 것이었다. 그런 일이 있고 뻔뻔스럽게도 천연하랴? 그날 일을 하는 동안 B에 대한 시기가 차차 커가다가, 그 시기가 노염이 되고 노염은 종내 그답지 않은 일로 폭발이 되었다.
B는 자기의 브러시가 보이지를 않았던지, A의 승낙도 받지 않고 A의 브러시를 집어갔다.
“이 자식! 남의 것 왜 집어가는 게야.”
A는 붙이던 신을 상 위에 탁 놓은 뒤에 팔을 내밀었다. B는 브러시를 앗기지 않으려는 듯이 손을 뒤로 돌렸다.
“자네 것이면 좀 못 쓰겠나?”
“내 해, 내 것, 내, 내, 내, 해야.”
A는 숨을 덜걱 덜걱 하였다.
“야, A. 비싸게 굴지 말어.”
“뭘? 이리 못 내겠느냐?”
“내 쓰고 주지 않으랴.”
“에익!”
A는 주먹으로 B를 쥐어박았다. 눈에 충혈이 되면서 일어섰다. 이 통에 다른 직공들도 왁하니 일어서서 둘러쌌다. 큰 구경이 난 것이다.
그 가운데서, 일단 넘어졌던 B는 옷의 먼지를 털면서 일어났다. A는 B가 달려들 줄 알고 그 준비를 할 때에 B는 옷을 다 털고 나서, 앞에 놓인 꽤 굵은 쇠몽치를 잡았다. 그리고 무릎을, 쇠몽치의 중간에 대고, 양손으로 쇠몽치의 양 끝을 잡아 힘써 당겼다. 쇠몽치는 그 두려운 힘에 항복하듯이 구부러졌다.
‘A. 이봐. 내가 힘으로 너한테 지는 바는 아니다. 그렇지만 너한테 차마 손을 못 대겠다. 네 브러시를 쓰지 않으면 그뿐이 아니냐. 어따. 받어라. 네 브러시로라.”
B는 브러시를 A에게 던졌다. 그리고 제 브러시를 얻어가지고, 방금 그 분쟁은 잊은 듯이 제 일을 시작하였다.
그 오후, A는 일할 동안 몇 번을 몰래 B를 보고 하였다. A는 지금 브러시가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이라도 B가 달라기만 하면 곧 주고 싶었다. 아까의 제 행동을 뉘우쳤다. 부끄러운 일이라 하였다. 사람의 짓이 아니라 하였다.
저녁때 일을 끝내고 돌아가려 할 때에 A는 공장 문밖에서 B를 기다렸다.
“여보게, B.”
“또 싸움을 하ㅡ”
“아까는 미안하이.¨
“하하하하. 사죈가. 凡張面な男な (경우 밝은 녀석 일세). 세 시간도 못 지나서 사죄할 일을 왜 한담. ㅡ(또 콧노래 한 가락 부르고 나서) 그런데 A. 브러시가 그렇게 아깝던가.”
A는 머리를 숙였다.
“B. 웃지 말고 대답해주게. 자네, 도순―”
“하하. 아, 알었다. 아까 그 일이 거기서 나왔구나. 이 못난 자식아, 샌님아. 야. 술이나 먹으러 가자. 오늘은 내가 한턱 내지.”
A는 술을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B에 대한 미안한 생각은 A로 하여금 싫은 술좌석일지라도 기쁜 듯이 가지 않을 수가 없게 하였다.
*
그날 저녁을 기회로, A의 생활은 또다시 불규칙하게 되었다. 또 다시 술, 계집……
그날 저녁 B는 A에게 얼간이를 소개하였다. 얼간이는 싱겁게 웃은 뒤에 이를 승낙하였다. A는 순교자와 같은 비장한 마음으로 이를 승낙하였고, 대단한 불쾌와 그 가운데 약간 섞여 있는 호기심으로, 얼간이의 집으로 갔다.
이날의 이 일은 마치 A에게는 아편의 독소와 같았다.
“우으로―우으로. 더욱 높은 데로.”
마음으로는 여전히 향상을 바라고 부단의 자책과 공포를 느끼면서도, 그의 이성 그의 양심을 무시하고 그의 행동은 어긋나는 길로 가는 것이었다.
그날의 그 일은, A의 양심 의 첨단을 갈아내는 줄이었다. 커다란 이 줄에 끝이 쓸려나간 그의 양심은, 그로 하여금 얼굴 붉힐 일을 연하여 행하게 하였다.
아침 자리에서 일어날 때는 언제든 그는 이즈음의 제 생활을 돌아보고, 커다란 부끄러움을 느끼고 하였다.
“곤처야겠다. 이런 생활에서 어서 떠나야겠다.”
이런 생각이 아침 일어날 때마다 그의 마음을 지배하였지만, 저녁때 공장에서 돌아올 때에, 동무들이 그의 어깨를 한 번 툭 치는 것을 기회로, 그의 양심은 자취를 감추고, 또다시 그들과 어깨를 겯고, 좋지 못한 곳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그런 뒤에는, 술과 계집과 방탕이 시작되는 것 이었다.
술은, 언제던 A의 마음을 무겁게 하였다. 남들은, 술이 들어가면 마음이 더 들뜬다 하나, A의 속에 술이 들어가면, 언제든 마음이 차차 무거워갔다. 순교자와 같은 비창한 마음이 늘 생겼다. 술은, 언제든 그의 양심으로 하여금, 분기케 하였다. 제 거친 생활을 뉘우치게 하였다. 취기가 돌면 돌수록, 그는 자기의 비열하고 참되지 못한 생활과 행동을 뉘우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곳에 같이 따라온 제 약한 마음을 채찍질하게 되었다.
“우으로! 우으로!”
“아아.”
지금은 주량도 무척이 는 그였다.
*
불량품 문제는 이전의 그 자리에서 조금도 진척되지 않았다. 역시 불량품이 많이 났다. 그러나 거기 대하여 제각기 불평은 말하면서도 어떤 조처를 하자고 발의를 하는 사람도 없었고 생각을 해보는 사람조차 없었다.
“제길! 또?”
이것이 그들의 가장 큰 원성이었고, 가장 큰 반항이었다.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었다.
더구나 여름이라 하는 시절은, 고무 공업의 한산한 시절이라, 공장주 측에서도 아무런 조처도 없었다. 직공은 직공대로 다만 목 잘리지 않기를 위주하였다. 공장주는 공장주대로, 한산한 여름을 공전 적게 주고, 공장문 닫지 않게 지나기만 위주하였다.
이리하여 많은 ‘제기!’와 많은 불량품 가운데서 한산한 여름은 지나갔다.
*
어떤 날 낮, 배합사가 갑자기 A와 B를 찾아서, 저녁때 좀 조히 만나기를 청 하였다.
저녁 때 배합사와 A와 B의 세 사람은 어떤 조용한 중국요릿집에 대좌(對坐) 하였다.
처음에 두어 마디 잡담이 돌아간 뒤에, 배합사는, 옷깃을 바로 하며 눈을 아래로 떨어트리고,
“오늘 부러 두 분을 청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특별히 부탁할 일이 있어선 데 들어주시겠습니까?”
고 공손히 부탁하였다.
A는 B의 얼굴을 보았다. B는 배합사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아무 대답도 없는데, 배합사는 또 말을 꺼내었다.
“들어주시겠습니까가 아니라, 꼭 들어주셔야겠습니다. 이것은 내게뿐 아니라 노형 네들께도 해롭지 않은 일이외다.”
“어디 말씀해보세요.”
B는 담배를 붙여 물며 배합사를 바라보았다.
“네. 형공 두 분을 믿고 말씀드리리다. 다른 게 아니라, 그 배합에 대해서 언젠가도 이야기가 났었지만, ―불량품이 많이 나는 건 역시 배합이 나빠서 그래요. 부끄러운 말씀이올시다마는, 내 집안 식구가 열셋이야요. 그런데 여기서 내가 받는 월급이 겨우 육십 원이겠지요. 그걸로 어떻게 열세 식구가 살아갑니까. 보통 배합사면 아무 데를 가든 월급이 백 원은 넘습니다. 그런데 이 공장과 나와의 새는 특별한 관계가 있어서…… 그 관계라는 것이一”
말의 순서를 잘 따질 줄 모르는 배합사의, 선후며 연락이 없는 이야기를 종합하여 듣건대一그리고 정 이해하기 어려운 곳은 다시 묻고 또 묻고 하여 알아들은 결론에 의지하건대, 그의 말의 요지는 아래와 같았다.
ㅡ먼저 그는 자기가 이 공장의 돈으로 고베까지 파견되어 배합법을 배워온 경위를 말한 뒤에, 말을 계속하여 ―
一자기는 분명히 그 은혜가 크기는 크다. 금전으로 바꾸지 못할 귀중한 보배, 마를 길 없는 지식의 샘(배합법 이라는)을 공장의 덕으로 머리 속에 잡아넣기는 넣었다. 그 은혜의 큰 바는 모름이 아니지만, 한 달에 겨우 육십 원의 봉급으로는 열세 식구가 살아갈 수가 없다. 그러나 십 년 만기까지는 이 공장에 팔린 몸이매, 제 자유로 나갈 수도 없다.
은혜 내지는 의리와 현실 생 활ㅡ 이러한 딜레마에서, 헤매던 그는, 마침내 한 가지의 방책을 발견한 것이었다. 즉, 공장에서 자기를 내쫓도록 수단을 쓰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부러 배합을 허투루 하여 고무가 붙지를 않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직공 측에서 문제가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의 기대와 달리, 잠시 일어나려던 문제는 사라지고, 그러는 동안에 고무 공업계의 한산기인 여름이 되어서, 그냥 잠자코 있었는데, 一아무리 하여도 육십 원의 월급으로는 열세 식구가 먹고 살 수가 없으니, 직공 측에서 운동을 하여 자기를 내쫓도록 해달라―는 것, 이것이, 그 배합사의 부탁의 뜻이었다.
“A, 자네 의견은 어떤가.”
배합사의 이야기를 들은 뒤에, B는, A에게 먼저 의견을 물었다. 모든 일을 농담으로만 넘겨버리려는 B의 얼굴에도, 이때뿐은 비교적 엄숙한 기분이 있었다.
“글쎄.”
A는, 이렇게 대답할 뿐이었다. 이즈음, 술과 허튼 생활로써 마비된 A의 머리로서는, 이런 일에 임하여 갑자기 옳은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온갖 일이 권태의 대상이요, ‘감동’이라 하는 것을 잃어버린, 한낱 기계와 같이 되어버린 A의 머리에는, 이러한 '미묘한 감정에 얽힌 인생 문제는,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글쎄.”
또 한 번뇌면서, A는, 곤한 듯이 담배를 붙여 물었다.
1. 열세 식구와 육십 원―이러한 괴로운 경지에서 배합사가 쓴 수단, 그것은 비열한 수단에 틀림이 없으나, 사랑하는 부모 처자의 구복을 위해서, 할 수 없이 쓴 수단이니 배합사의 이 행위는 용납할 것인가.
2. 저부터 살고야 볼 것인가, 남부터 살릴 것인가.
3. 배합사는 공장의 덕택으로, 일생을 써먹어도 마를 길이 없는 귀한 보배인 지식을 얻었다. 여기 대한 의리와 의무를 벗어버리려는 배합사의 행위는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만약 옳다 할진대 그것은 너무 에고이즘이다. 그르다 할진대, 너무 도학적이다.
4. 자기의 한 가족을 위하여 몇 달 동안 삼백여 명의 직공과 수천 명의 그 가족들을 괴롭게 한 행위를 밉다 볼 것인가.
5. 비열한 행동은 해서는 못쓴다.
6. 밥은 먹고야 산다.
7. 그러나 ‘정당한 행위’와 ‘밥’이 서로 배치될 때는 어느 길을 취해야 하나.
순서 없이, 연락 없이, 그리고 한 토막의 해답도 없이, 이런 생각이 A의 머리에 얽혀서 돌아갔다.
B가 지금껏 먹던 담배를 획 내던지고, 코를 두어 번 울렸다. 배합사를 찾았다.
“좌우간 여보. 노형 혼자를 위해서 몇 달 동안 배합을 못되게 해서 삼백여 명의 직공을 손해 입혔으니 그게 무슨 비열한 짓이오? 지금 새삼스레 성 내야 쓸데는 없는 일이지만, 미리 서로 어떻게든 의논을 했으면 좀더 달리 변통할 도리라도 있었지요?”
“면목 없습니다.”
“면목? 면목쯤으로 당하겠소? ㅡ좌우간, 우리는 어차피 노형을 배척은 해야겠소. 그건 노형을 위해서가 아니고 우리들을 위해서 하는 일이지만·…… 이 뒤 다른 데 가서라도 그런 짓은 아예 다시 하지 마시오. ㅡA, 자네 돈 가진 것 있나?”
A는, 주머니를 뒤졌다.
“일 원밖에는 없네.”
“일 원 내게.”
“뭘 하겠나?”
“글쎄, 내게.”
B는 돈을 받아가지고, 보이를 불러서, 회계를 명하였다. 배합사가 창황(蒼黃)히 말렸다.
“이보세요. 이번 건 내 내지요. 두 분께 부탁할 일이 있어서 부러 청한 게니깐·…….”
“걱정 마시오. 조합식으로 합시다. 이런 부탁을 받을랴고 음식을 얻어먹었다면 우리도 속으로 불유쾌하니깐, 삼분(三分)해서 내기로 합시다.”
A는 눈을 들어서, B와 배합사를 번갈아 보았다. 커다랗게 뜬 오른편 눈을 약간 떠는 뿐 아무 표정도 없는 B의 얼굴과, 부끄러움으로 풀이 죽은 배합사의 얼굴을 번갈아 보는 동안, A의 마음에는, ‘감동’이라고 밖에는 형용할 수 없는 괴상스런 감정이 생겼다.
그리고, 그것은 이즈음 한동안은 그의 마음에서 발견할 수 없던 감정이었다.
A의 눈도 약하게 떨렸다.
*
삼사 일 동안은 그 배합사의 문제는 A와 B 두 사람이 아는 뿐 일절 누설치 않았다.
온갖 일에 대하여, 자기의 푯대와 주장은 가지고 있는 B는, 이런 일을 당할지라도, 주저하지 않고, 일을 진행시켰다.
A가 든 바.
1. 임금 인상.
2. 대우 개선.
3. 배합사 해고.
이 세 가지의 문제에 대하여, B는 웃어버렸다.
“배합사 무조건 해고.”
B의 주장은 이 단 한 가지 조건이었다.
“소위 개선이라 하는 건 한 가지씩 점진적으로 해야 된다네. 한꺼번에 여러 가지를 청구했다가는 저편에서 질겁을 해서 승낙을 안 해. 지금 우리에게 절박한 문제는 배합이 아닌가. 게다가 공연히 ‘임금 인상’이며 ‘대우 개선’을 덧붙였다가는 공장주 측에서 질겁해 물러서고 말리. 한 가지씩 한 가지씩, 해나가면 손쉽게 될 가능성이 있는 결 공연히 섣불리 덤비어서 동맹 파업이라 무엇이라 해가지고 피차에 손해를 보면 긁어 부스럼이네. 우선 급한 문제만 해결하고 기회를 봐서 서서히……”
그리고 또 이렇게 보태었다.
“또 공장주 측에서 배합사를 내쫓을 때 배합사를 유학시킨 비용을 증서로 받는다든가 하면 배합사가 불쌍하지 않은가. 우리 측에서 보면 배합사가 한 일은 괘씸하기는 하지만 그것도 무슨 악의에서 나온 바가 아니고 자기의 밥을 위해서 쓴 게니까, 그 수단이 무지하기는 하지만 그 사람의 장래도 생각해줘야 할 게야.
‘악의’는 용서할 수 없지만 ‘무지’는 용서할 여지가 있는 일이야. 그 사람도 노동잘세.”
A는, 이러한 B의 말을 들을 때에, 막연하게나마, 커다란 인류애를 느꼈다. 오른쪽 눈과 왼쪽 눈이, 제각기 활동을 하는 사팔뜨기 B의 표정에는 이런 때는 신성하고 엄숙한 기분이 넘쳤다.
이러한 삼사 일 동안, A는 금년 여름을 보낸 그 들뜬 기분을 잊었다. 때때로 불끈 그 생각이 솟아오를 때는, 그는 얼굴을 붉혔다. 그의 마음은 마치 핸들을 잡은 운전수와 같이 긴장되어 있었다. 온갖 술과 계집과 허위와 너털웃음의 들뜬 생활―여름 동안은 그렇듯 그의 마음을 끌고 그의 온 정신을 유혹하던 그 생활, ―더구나, 삼사 일 전까지도, 계속되던 그 생활은, 인제는, 그에게는, 이상한 애조로서 장사당한 한 옛적의 일과 같이, 어떤 엷은 베일로 감춰져 버렸다.
B는, 아무 일에든 구애됨 이 없이, 낮에는 천연히 일하였다.
“네 나이는 열아홉 내 나이는 스물하나―까. 너고 나고 인제는.”
늘 콧소리로 흥얼거리면서, 일변 불량품을 연하여 내면서, 때때로는 멀리 멀어져 있는 여공들의 일간을 향하여, 큰 소리로, 농담도 던지면서, 천연히 일을 하였다
A는 B를 부러워하였다. 아무런 일에 처하여도, 자기의 본심뿐은 잃지 않는 B는, 어떤 의미로 보아서는, A에게는, 영웅으로까지 비쳤다. 아무런 일이든, B는 그 일이나 마음을 지배하였지, 거기 지배당하지는 않았다. 꼭 같은 일을, A와 B가 할지라도, A에게 있어서는, ‘그 일에 끌려서 행하는 것’에 반하여, B는, ‘그 사건을 지배’하였다. A에게는, B의 그 점이 몹시 부러웠다.
그리고, A는, 막연하게나마, 자기의 성격이라 하는 데 대하여도, 처음으로 이해의 눈이 벌어지기 비롯하였다. 공장 노동이라하는 것은, 자기에게는 적당치 않은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B와 같이 굳센 성격의 주인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다시 소생할 여망 없이 타락한 사람이 아닌 이상에는, 공장 노동이란, 십중팔구는, 그 사람의 성격을 파산시키며, 품성을 타락시키며, 순진함과 향상욕을 멸망케 하는 커다란 기관이란 것도, 어렴풋이 짐작되었다. 검은 물은 들기가 쉼고, 따라서 무서운 전파력을 가졌다는 평범한 진리도, 다시금 느꼈다.
*
며칠 뒤, 좀 두드러진 직공 몇 사람을 모아놓고 이번의 배합사 문제를 내놓고, 배합사를 내쫓도록, 공장 측에 요구하자는 의향을 그들의 앞에 제출할 때에 반대가 있으리라고는 뜻도 안 하였다.
그 반대의 이유는 이러하였다.
“그럼 그 배합사는 부러 배합을 고약하게 해서 우리를 손해를 입혔단 말이지. 그러면 말하자면 배합사는 우리의 원순데 우리가 애써서 그 사람을 내쫓아서 봉급 많이 주는 데 갈 수 있게 해줄 필요가 어디 있단 말인가.”
거기 대하여 B는 이렇게 설명 하였다.
“여보게. 그렇게 생각할 게 아닐세. 우리는 우리를 위해서 그것을 요구하는 것이지, 배합사를 위해서 요구하는 게 아니네. 배합사는 잘되건 못되건 생각할 필요가 없구, 우리는 우리 문제, 즉 불량품 많이 나는 문제만 없어지면 그뿐이 아닌가. 배합사의 봉급 참견까지야 할 필요가 어디 있나?”
“글쎄 남의 일은 참견 말고 우리 일이나 하세그려. 유조건 해고던 무조건 해고던, 그것까지야 왜 참견하자나?”
―어떤 직공이 또 이렇게 반대하였다. 그리고, 제 말재간을 자랑하는 듯이 둘러보았다.
“그건 궤변이야. 궤변은 함부루 쓰면 못써!”
“궤변?”
그 직공은 ‘궤변’의 뜻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싱거운 듯이,
“궤변 아니야.”
할 뿐 잠잠해버렸다. 다른 직공이 또 반대했다.
“노동자는 제 밥벌이만 해도 바쁜데, 원수까지 사랑할 겨를은 없네. 우린 예수교인이 아니니까.”
“이 사람아. (B의 말이었다) 말을 왜 그렇게 하나. 아무리 겨를이 없다 해두, 겸사겸사에 해지는 일을 왜 부러 피하려나. 저도 좋고 나도 좋은 일을, 왜 나만 좋자고 그 사람의 일을 일부러 뽑겠나. 그 사람― 배합사도 노동잘세.”
“그 사람은 양복 입었데.”
또 반대였다.
“나도 양복이다!”
―B는 마침내 성을 내었다. 그는 발을 구르면서 제 다 해진 양복의 앞자락을 쳐들었다. 왁하니 웃음소리가 났다.
그러나, A에게는 이것은 결코 웃지 못할 장면이었다. 다 해져서 걸레에 가까운 알파카 양복의 앞자락을 쳐들며 일어서는 B의 모양에는, 웃지 못할 엄숙함이 있었다.
문제는 진행되지 않았다. 변변치 않은 문제에 걸려서 제각기 의견을 제출하고 반대하고 하느라고, 그날은 종내 해결 짓지 못하였다. 그리고 내일 다시 모이기로 하고 그냥 헤어졌다.
이튿날 다시 회의는 열렸다.
회의의 벽두에 누가, 동맹 파업의 문제를 일으켰다. 그때에 뜻 밖에도, 동맹 파업이라 하는 것은 거기 모인 사람들의 흥미를 몹시 일으켰다. 뭇 입에서는 동맹 파업을 부르짖는 소리가 높았다.
처음에는 어이없어서 방관적 태도로 입을 봉하고 있던 B가, 너무도 모든 사람의 의견이 그리로 몰리므로 종내 입을 열었다.
“여보. 일에는 순서가 있지 않소? 먼저 우리의 요구를 제출해서 그 요구가 용납되지 않으면 동맹 파업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동맹 파업부터 먼저 한다는 법이 어디 있소?”
“요구야 물론 안 들을 게지.”
“아, 들어줄지, 안 들을지, 지나봤소? ― 대체 여보. 당신네들이 알고 그러우, 모르고 그러우. 어쩔 셈이오?”
“알고 모르고가 있나?”
―도리나레바 「오료 고부시」를 부르는 사람도 있다.
“여보들. 순서를 밟아서 일을 하면, 혹은 무사히 우리 요구를 들어줄지도 모를 일을 동맹 파업부터, 하면 뭘 하오?”
“그러야 혼내우지.”
“하하하하. 설사 혼이 난다 합시다. 혼이 나면―그동안 우리들의 집안 식구는 어떻게 무얼루 살아갈 테요?”
“그런 걱정까지 해선 큰일을 하나?”
아아. 이 무지여. 외래 사상을 잘 씹지도 않고 거저 그대로 삼켜서, 그것이면 무조건하고 좋다고 자기의 환경과 입장을 고찰하지도 못하고 덤비는 이 무리들이여. A에게는, 딱하고 한심하기 끝이 없었다.
B와 A의 의견과, 다른 직공들의 의견의 새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그 차이를 갖다가 맞붙이기는 몹시 힘들었다. 직공들의 대부분은, 공연히 ‘동맹 파업’이라 하는 생각에 들떠서, 사리를 생각할 여유를 잃은 모양이었다.
문제는 해결되지 못한 채로 셋째 날로 넘어갔다.
문제는 닷새째 되는 날에야 겨우 타협점을 발견하였다.
1. 배합사의 해고에 ‘무조건’이라는 문구를 뽑을 것.
2. 공장 측에서 직공의 요구를 듣지 않는 경우에는 동맹 파업을 하되, B와 A가 그 지도자가 되어줄 것.
이러한 조건 아래 타협 이 성립된 것이었다.
*
그날 밤, A와 B는 교외에 산보를 나갔다. 벌써 저녁때는 꽤 서늘한 절기였다.
달 밝은 밤이었다. 소나무들은 땅 위에 커다란 그림자를 던져주고 있었다.
A와 B는 잠자코 걸었다.
어떤 바위에까지 가서 그들은 걸터앉았다. 그러나 말은 없었다.
한참 뒤에 A가 먼저 입을 열었다.
“B, 나는 공장을 그만둘까 뵈.”
“찬성이네.”
B는, 간단히 대답하였다.
“그러고, 시골로 나려갈까 봐.”
“찬성이네.”
“이즘 한 주일을, 거의 한잠도 못 자면서 생각했는데, 참 못 견디겠어.”
“글쎄. 시골을 가도, 자네 같은 결벽의 사람에게 만족이 될지 안 될지는 의문이지만, 도회보담이야 낫겠지 . 가보게.”
말은 또 끊어졌다.
한참 뒤에, 이번은, B가 말을 꺼냈다.
“자네 결벽도 무던하데. 좌우간, 도회―더구나 공장 노동자로서는, 그런 결벽을 가지고는 사실, 성격까지 파산하겠기에, 그 결벽을 없이 해볼랴고 나도 꽤 애를 썼지만, 자네 같은 벽창우 결벽가가, 이 세상에 있으리라고는, 뜻도 못했네. 하느님의 초특작품(遡寺作品)이데.”
A는, 적적히 웃었다. 그리고, 담배를 꺼내어, B에게 권하였다.
서너 모금 뻐금뻐금 빤 뒤에, A는 또 입을 열었다.
“어머님도 내려오래시고…….”
“어머님? 참, 어머님도, 자네가, 놀아난 것을 눈치 채셨겠지?”
“우리 처가, 편지를 한 모양이야. 몹시 걱정하시든데…….”
“부인은 나를 원망하겠네그려.”
“왜 안 원망하겠나?”
“하하하하. 나도 못된 놈이지.”
B는 적적히 웃었다. A도 따라 적적히 웃었다.
“자네마자 가면 난 적 적할세그려.”
“피차.”
말이 끊어졌다. B의 움직임 없는 한편 쪽 눈에는 그럴 사라 해서 그런지 눈물이 고인 듯하였다.
B는 하늘을 우러르며 콧노래를 불렀다.
“네 나이는 열아홉, 나는 벌써 스물셋 ―까.”
그러나 A에게는 이 노래가 몹시 구슬프게 들렸다. A는 기지개를 하면서 일어섰다.
*
이튿날 직공들은 공장에 자기네의 조건을 제출하였다. 공장 측에서는 한 주일의 유예를 청하였다. 한 주일 뒤에 가부간 회답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기간이 끝나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아니, 기다리지 않고 A는 공장을 그만두고 처자를 거느리고 시골로 떠났다.
*
A가 시골로 내려간 지 두 주일쯤 뒤에 B에게서 편지가 왔다. 그 편지에는 이런 말이 씌어 있었다.
―(상략) 공장주 측에서는 직공 측의 요구를 다 승낙하였소. 그러나 직공 측에서는 역시 만족해하지 않았소. 왜? 다름이 아니라, 직공 측에서는 ‘동맹 파업’이라는 것을 일종의 유희적 기분으로 기대하고 있었는데, 공장주 측에서 모든 조건을 다 승낙하였으니 ‘동맹 파업’을 일으킬 구실이 없어지기 때문이오. (중략)무지의 위에 ‘외래 사상’을 도금한 것―이것이 현하의 조선의 상태 외 다.
타락과 시기의 위에 신사상이라는 것을 도금한 것―이것이 도회 노동자의 모양이외다. 외래 사상을 잘 씹지도 않고 삼켜서 소화불량증에 걸린 딱한 사람들이외다. (하략)
*
이 편지에 대하여, 한 A의 회답에 이런 말이 있었다.
― (상략) 농촌도 도회 같지는 않으나 소화불량증이 꽤 침입되어 있소. 좋은 의사가 생겨나서 좋은 약을 발명하거나 발견하지 않으면 큰 야단이외다. (하략)
-끝-
2016년 4월 1일 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