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 해보지도 못하고……
그때까지만 해도 인야는 한국으로 돌아갈지 베를린에 남아 있을지 확실히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지만 후자 쪽에 마음이 쏠려 가급적 뭔가 그 실마리라도 찾아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운명은 인야를 자꾸만 전자 쪽으로 몰고 가는 것이었다.
a. 지리멸렬
사람의 일이란 종잡을 수 없다. 더욱이 그 시절 인야처럼 불안정한 상황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사람에게는 그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를 변수가 항상 도사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거기에 적절히 대응할 힘도 여력도 인야는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한마디로 지리멸렬이었다.
그 와중에도 인야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작업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즈음 작업에 제동이 걸려 멈춘 상태로 그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도 있었다.
새 집으로 옮겨온 이래 벌써 십수 일째 만족할 만한 드로잉 하나 못하고 있었는데, 뭔가 모를 미궁에 빠져 작업 감각을 잃은 느낌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왜 베를린에 있는지조차 모를 일이었다.
해 놓은 게 하나도 없었기에 여전히 뭔가를 찾으려 안간힘을 쓰고는 있었지만, 어쩐지 시간만 낭비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루하루 불안감만 가중되고, 사는 맛도 안 났다.
몸이 많이 회복된 건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었지만, 해야 될 일의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는 건... 안타깝지 않을 수 없었다.
돈이 궁하니, 스페인에 가서 연습까지 했던 '거리의 초상화가'도 하려고 시도는 해봐야 했지만, (그걸 하려면 허가를 받아내야 하는 등, 이런저런 절차와 어려움이 겁이 나...)그럴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돈에 허덕이고 있었다.
며칠 뒤 인야는 아시아 도서관에 가서 한국 신문을 읽었다.
그런데 한국 형편이 어려운 모양이었다.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러시아 경제가 고꾸라져 유럽에도 영향을 미쳐... 특히 독일 쪽에 타격이 크다고도 했다.
일본도 그렇고, 전 세계가 경제난으로 심각한 문제에 봉착해 있다는 것이었다.
인야는 그런 국제 정세가 자신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직시해야 했다.
가장 열심히, 그리고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해야 할 나이와 시기에... 세계 경제가 안 좋다는 것은, 인야에게도 기회 잡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었고, 그만큼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베를린에서 아직 제대로 된 시작조차 하지 못한 상태의 인야에겐 시운마저 따라주지 않는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그런 현상들마저 인야를 더욱 의기소침하게 만들었다.
그런데도 현실 감각마저 없는 인야는, 다음 날부터 영어학원에 나가리라던 계획도... 돈 때문에 포기해야만 했다.
어느 날 인야는 마치 할 일 없는 사람처럼, 참으로 할 일조차 없는 사람처럼... 아무 상관도 없는 베를린 FU 대학 잔디밭에 나와 앉아 있었다. 점심때라 젊은 학생들은 밥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들 몰려가고 있었다.
그 사이에 9월이 와 있었다.
긴 머리로 베를린에서 인생의 한 부분을 보내고 있는 인야는, 날씨에 이끌려 밖에 나온 길이었다.
그러나 하늘은 검은 구름들로 덮여가고, 밝고 맑던 9월의 기운이 잿빛으로 바뀌고 있는 중이었다.
어느새 어떤 나무들은 연노랑 단풍을 내뿜는, 가을 냄새마저 풍기기 시작했다.
답답한 마음을 달래보려고 나왔던 인야였는데, 마음이 더욱 답답해지는 기분이었다.
'아, 나도 이들처럼 학생이라면 좋겠다. 부모들의 돈으로 공부만 열심히 하고 학위 받아 돌아가는 학생이라면 좋겠다. 다른 고민 없이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거니까.'
9월이 오면 뭔가 새롭고 좋은 일이 생기리라고 믿지는 않았다. 그러나 첫날부터 이렇게 무의미하게 보낼 줄도 몰랐다.
'내가 왜 살아있는 거지?'
평소에 좋아하는 달렘도르프(Dahlemdorf) 길을 걸어보고 집에 돌아왔다.
처음 유화를 시작한 안나 부인은 퍽 만족해 하는 모습이었다.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으니.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내가 이 집에 머물고 있는 보상을 받는 기분이다. 마냥 공짜로만 지낼 순 없는 거니까.'
방에 들어와 연필로 끄적끄적 작업을 했다.
밤에 요한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그 사이 편지가 세 통이나 왔다고 했다.
그러나 인야는 이미 한국으로부터 오는 편지에 큰 기대를 접은 지 오래였다. 상처가 컸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약속을 잘 안 지킨다.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인야는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들 세상에서 그들과 어울려 살아야 했다. 물론 약속을 안 지킨다고 나쁜 사람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었다. 한 때 인야는 그런 사람들을 경멸하고 어울리려 하지 않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엔 그렇게까지 배타적이지는 않았다. 그래봐야 자신만 손해이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스페인에 살면서, 그 뒤로 멕시코에 살면서, 그리고 여기 독일에 살고 있으면서... 종합적으로 느끼고 체득한 인생 경험의 총체적인 결과물이기도 했다.
어디든 사람들은 자기 이익에 결부되어야 관심을 보이고, 그렇지 않은 일에는 무섭도록 냉담해지는 현상에 대한 인야의 자세인 것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제 인야는 돈의 위력에 짓눌려 돈에 대한 경의가 커가고 있음도 부정하지 않았다.
돈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어느덧 인야는 돈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돈 있는 사람의 부류에 끼고 싶고, 그런 사람들을 얼마든지 칭송하고 우러러볼 마음까지 준비돼 있는 사람이었다. 그게 설사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을지라도, 지금 이 상황에서 도움과 이익이 된다면 얼마든지 고마움으로 받아들일 자세도 갖추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지금 돈이 많다면 인야는 좋은 사람 역할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불쌍한 사람들도 돕고, 뜻 있는 곳에도 쓸 테니까.
'아, 9월 1일에 나는 이런 복잡하고도 황당한 생각에 잠겨, 마치 내 삶이 껍데기만 남은 것 같은 느낌으로 하루를 보냈다.'
독일에 와서 처음으로 편지 세 통을 한꺼번에 받았다.
아무리 상황이 긴박하고 불안하다고 해도 편지를 받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어쨌거나 편지라는 것은 사람들 간의 마음을 연결해주는 매개체라, 인야의 마음 한 구석이나마 따뜻하게 해주었던 것이었다.
편지를 읽자마자 빨리 마음을 다시 전하고 싶어 정신없이 답장을 썼고, 우체국에 달려가 부치기까지 한 뒤... 그런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늘 오는 동물원역 플랫폼에 와 앉아 있었다.
떠나는 사람들과 도착하는 사람들, 그들을 배웅하거나 마중 나온 사람들……
그 속에 또 인야가 끼어 있었다.
저녁이 되면서 날씨가 다소 쌀쌀해지고 있었다.
맑은 가을 날, 인야는 다시 FU 사과나무 밭에 앉아 있었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왔다.
'오늘 같으면, 베를린도 한국 가을 부럽지 않은 날씨네......'
지난밤 일은 생각하기 싫었다. 그리고 그 날 아침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아침을 먹고 일상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갈 곳이 없었다.
일단 아시아 도서관으로 향했다. 신문 이틀 치를 읽고도 마땅히 갈 곳이 없어 달렘도르프 쪽으로 걸어와, 지난번 한 번 같이 식사했던 유학생을 만나 학교 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었다. 그런데 세대가 달라서인지 서먹해서 바로 헤어졌고, 다시 혼자가 되어... 사과나무 아래 잔디밭에 와 앉아 있었다.
'그 집을 나와야 하나? 돈이 있어야 집을 얻지. 그렇다면 그냥 한국에 돌아가야 하나? 무의미하게 이런 생활을 계속한다는 건 아무 가치도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한국에 돌아가야 한다는 건데, 그러기 전에 덴마크에는 꼭 가보고 싶다. G를 한 번은 만나고 싶은데, 그것 역시 돈이 없어서 가능하지 않다. 아, 나는 왜 이렇게 사는가. 왜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가.'
햇살이 따갑지만 스산한 바람이 부는 가을 날, 인야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남의 나라 대학 한 귀퉁이에서 시간만 보내며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하늘도 인야에게 베를린을 빨리 떠나라고 하는 것 같았다.
이제 더 이상 이곳에 남아있을 여력이 없었다.
인야는 여기서 일기의 한 대목을 지우기로 했다.
만약 인생을 정리하는 이 일을 하지 않았다면 없었을 일이지만, 공교롭게도 25여 년 전에 실제로 일어났던 한 사건을 삭제하는 것으로, 이것도 처음이거니와 앞으로도 이런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었다. 지난 역사를 인위적으로 조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 일을 하는 철칙이었으니까. 자신의 부끄러움을 감추려는 게 결코 아닌, 베를린이란 곳에서 더 이상 오갈 데 없던 인야를 한동안 거둬주었던 안나 부인의 고마운 정성과 명예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이 상황에서 그 집에서 나오면 갈 곳이 없는데, 그렇다면 한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겨우 당분간이나마 한 몸 머물 곳이 해결되는가 싶었는데, 그마저도 파탄이 난 것이었다.
그렇게 베를린은 끝까지 인야를 받아들이지 않을 태세였다.
숨이 막힐 것 같아 그 집에서 나온 인야는, 한동안은 잊고도 있었던 오스트리아 청년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희망을 걸고... 그 식당으로 향했다.
어차피 한국으로 돌아가면 앞으론 그를 찾을 일도 없을 테니까.
'정말 오늘이 마지막이다.' 하는 심정으로 3시 40분쯤 전에 식당에 도착했는데, 4시까지 기다렸지만... 그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는 더 이상 만날 인연이 아닌가 보다. 베를린을 빈 손으로 떠나야 할 입장에서, 그나마 좋은 친구를 하나 건져보고도 싶었는데, 베를린은 그 바람마저도 들어주지 않는구나. 이젠 안녕!'
그러고서도 갈 곳이 없어, 결국 동물원역 플랫폼에 와 앉아 있었다.
훗날 인야는 그 대목을 들여다보며, '그나저나 내가 그 오스트리아 청년의 이름도 몰랐나? 왜 이름 대신 항상 오스트리아 청년이라고만 했다지? 지금 생각해도 슬프네…… 그 청년을 찾았어야 했는데…… 그랬다면 지금까지 친구로 남았을 수도 있는데……' 하면서 오래도록 그 이름 모를 청년을 떠올리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