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산개세(拔山蓋世)3-통권155
계세자(鷄世子) 계호림(鷄豪臨)과 지세공(智世公) 계만우(鷄萬禹)는 지금 신선들이나 타고 다닌다는 선산환도를 타고 임주(壬州)의 주도(主都) 백유성(白酉城)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이미 백호나한은 용호군 5개 군단 9만 대군을 병주(丙州)의 주도(主都) 청묘성(靑卯城)에 내려놓고 그 길로 금강을 띄워 촌각의 지체함도 없이 임주로 향하고 있었다.
“세자저하, 용호왕 전하가 약속한 용호군 3만 6000이면 복권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듯싶은데 어찌하여 안색이 좋지 못하십니까?”
“그렇게 보이는가요?”
“….”
계세자 계호림은 숙부의 물음에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리야, 임주를 되찾으니 좋겠지만, 수인 천하는 어찌 될까요?”
“….”
“백호나한이 용천검의 주인으로 용황을 대리하는 자라 하지만 그는 십이진가가 아닌 십삼인가일 뿐입니다. 그가 우리 임주 문제를 해결하고, 자기에게 검을 겨눈 서제가와 토제가를 토벌한다고 해서 머리를 조아리며 상경으로 와서 천원 회의에 직접 참석할 십제가 있겠습니까?”
“세자저하, 그거야 두고 보아야 할 일 아닙니까? 환도 금강이라는 이 천공성을 가진 용호왕 전하에게 누가 감히 검을 겨눌 수 있겠습니까? 중경을 출발한 지 고작 하루 만에 9만 대군을 병주 청묘성에 내려놓았고, 이제 곧 임주 백유성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마 십중십, 백이면 백, 백유성에는 백호나한이 전권을 장악하고 천공성을 띄웠다는 소문조차 들어가지 않았을 겁니다.”
계세자 계호림은 병주의 청묘성이 어떻게 떨어졌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단단하고 견고해 보이는 성벽은 하늘을 나는 환도 금강을 막을 수 없었다. 금강은 토제궁의 상공(上空)에서 내려앉아 백호나한이 자랑하는 절정 고수들로만 이루어져 있는 백호영이 토궁을 장악, 궁에 남아 있던 토제와 토제가 식솔들의 신병을 확보하고 그 뒤로 9만 대군이 일시에 청묘성을 장악했다. 그리고 백호나한의 군대는 토제의 성지(聖旨)를 이용해 병주에 남아 있는 5만 토병과 토제가의 토병을 상징하는 기치를 들고 원주로 들어가 있는 7만 토병의 뒤를 치기 위해 내닫고 있었다. 그 대단하다는 진골십가(眞骨十家) 중 한곳이 참으로 어이없게 무너진 것이었다.
“숙부, 수인 천하를 이룩한 십이표기의 후예인 십이진가의 시대는 끝난 것 같습니다.”
계호림은 토제가가 무너지는 것을 떠올리며 힘없이 읊조렸다. 그러나 지세공 계만우는 감상적인 조카와는 생각의 궤를 달리했다.
“저하의 말씀엔 일리가 있습니다. 앞으로 어찌 될는지는 모르나 천하, 천지의 어떤 존재도 백호나한을 어찌할 수는 없을 겁니다. 난세는 힘 있는 자가 법인 세상을 말합니다. 사실상 용호왕이 천하를 압도하는 힘을 가진 이상, 세상이 그를 중심으로 돌아갈 것은 뻔한 이치지요. 그리고 십이진가가 400년을 이어왔으니 지금에 와서 그 운을 다했다고 아쉬울 것이 없습니다. 앞으로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겁니다. 그리고 그 중심엔 용호왕이 있게 되겠지요. 그리고 용호왕 전하는 우릴 좋게 보신 듯하니 우리 계제가의 성세는 앞으로도 천년만년 계속될 것입니다. 그보다, 이제 곧 백유성인데 준비하셔야지오.”
계세자 계호림은 숙부인 지세공 계만우의 백호나한에 대한 태도에 묘한 위화감을 느끼며 갑주를 챙겨 입었다. 그러나 앞으로 천하는 백호나한을 중심으로 돌 것이며, 자신의 운명도 그와 함께해야 할 것이란 말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
금강을 움직이게 하는 작업은 진 빠지는 일이다. 그러나 지난 사나흘 동안 금강을 움직이느라 고생한 라혼은 중력자와 반중력자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정신을 집중하는 작업은 참으로 피곤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라혼은 전면 벽에 펼쳐진 산이 허공을 날아오는 괴사에 난리가 벌어진 백유성 사람들을 보며 계궁의 대전 앞마당에 금강을 정지시켰다. 금강을 움직이는 데 있어 처음 움직일 때와 이처럼 정지할 때가 가장 힘이 들었다. 그래서 금강을 원하는 자리에 멈추게 한 라혼은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며 말을 탄 군사들이 가볍게 뛰어내릴 수 있을 만큼 고도를 낮추었다. 원래 금강에는 그럴 만한 출구가 없었지만 급하게 임시 출구를 만들었다.
“주군, 계세자 일행과 군사들이 금강을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후우~! 고학, 그럼 부탁하네.”
“예!”
수두로 들어온 고학이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라혼에게 짤막한 보고를 하고 다시 수두를 나섰다. 고학이 짤막한 보고를 하고 수두 금강 주변부를 감시할 수 있게 만들어놓은 옆방으로 가자 라혼은 수두 한구석에 깔아놓은 두툼한 이불 위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꿀물 같은 단잠에 빠졌다. 평상시에는 잠을 자지 않는 라혼이었지만 금강을 움직이게 하는 데 엄청난 심력(心力)을 쏟아야 했고, 그러한 심력을 회복하는 데 수면만큼 좋은 것이 없었다. 본래는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잠기는 것으로 하려 했으나 어처구니없게도 명상 중 단잠에 빠지고 만 라혼은 명상에 잠기는 것보다 차라리 수면을 취하는 것이 낫다는 결론을 내리고 참으로 설화가 없는 곳에서 오랜만에 달콤한 잠에 빠졌다.
라혼이 그렇게 태평하게 다디단 잠에 빠져 있는 동안 백호영들은 엊그저께 청묘성 토궁에서 했던 일을 했다. 그러나 이번에 한 번 해보았던 일이고, 토궁의 구조를 속속들이 아는 계세자의 수하들이 길 안내를 하여 더욱 수월했다.
―꺄아~!
―탁탁탁타….
위압적인 검은 갑주의 무장들이 허공에 떠 있는 산에서 떨어져 내려와 궁 안을 어지럽히자 궁녀들과 내관들이 몹시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고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독 대장님, 우측에 궁수들입니다.”
“좋아 저놈들은 우리가 제압한다. 따라와라!”
백호영 대장(隊長) 독대오(獨大旿)는 부장(部長) 초묵(草黙)이 발견한 금강을 겨누는 궁수 수백 명에게 달려들었다. 50여 장 떨어진 거리였지만 백호영들에게 그만한 거리는 지척이나 다름없었다. 계궁을 수비하던 궁수들이 독대오들을 발견하고 화살을 날렸지만 당황한 궁수들의 화살은 태반이 아무것도 없는 하늘로 날아오르고 10여 개만이 백호영의 몸을 맞혔지만 화살을 맞은 백호영들이 주춤하게만 했을 뿐이었다.
“이런, 썅!”
그러나 화살 세례를 받는 것이 기분 좋을 리 없었다. 독대오는 세 개의 비도(飛刀)를 궁수들에게 던졌고, 그것을 신호로 비도술에 재간이 있는 백호영들이 각자 실력에 맞게 한 개에서 많게는 예닐곱 개씩 던진 비도가 허공을 가르고 날아가 갑주를 착용한 궁수들의 목과 눈에 틀어박혔다.
―퍽, 퍼퍽퍽!
―크헉, 악!
―콰창~!
그리고 100여 명의 백호영 무장들이 시퍼런 도기(刀氣)를 머금은 강도(鋼刀)를 휘두르며 약 300여 궁수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100여 마리 늑대가 수백의 양떼를 덮치는 기세였다. 그렇게 백호영들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다시 용호군들이 자리를 잡았고, 그야말로 한순간에 계궁을 지키는 금군들이 제압되었다.
“군사님, 초강남 장군이 계궁 전역을 완전히 제압했다고 합니다.”
“긴장을 늦추지 마라. 여기는 토제가의 토제처럼 병권이 확실한 곳이 아니다. 학초현은 아녀자에 불과하다. 최소한 백유성의 병권을 확실히 할 때까진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고학은 금강이 햇빛을 가린 탓에 어둑어둑한 백유성의 거리를 투영한 마치 샘처럼 생긴 천리경(千里鏡)을 내려다보며 한곳에 집결하고 있는 군사를 발견하고 그것을 가리키며 옆에 있는 계세자의 심복에게 물었다.
“저기, 저곳 군사는 누가 지휘하는 것이오?”
“아마 학상(鶴想)이란 자로, 학초현의 외조카요.”
“그럼, 저 군사들은….”
“학가의 군대요.”
고학은 계순(鷄順)이라고 스스로를 밝힌 계세자 계호림의 심복이 전해준 정보를 전환을 통해 백유성을 장악한 임무를 맡은 웅장모에게 전했다.
“웅 장군, 서문대로에 학가에 충성하는 군사들이 모여들고 있소.”
웅장모는 고학의 전언에 휘하 군사들을 서문 쪽으로 몰아치며 물었다.
“병력은 얼마나 되는 것 같소?”
―대략 7000~8000은 되는 것 같소. 하지만 가옥에 가려 보이지 않는, 숨은 군사들이 있으니 그보단 적지 않을 것이오!
웅장모는 학상이란 자가 이끄는 군세가 만만치 않음을 인식하고 어찌할까 고민했다. 그때 부관 참위(參尉) 궁상(宮上)이 진언했다.
“장군, 저들은 아마 우리가 여기 있는 줄 모를 겁니다. 그러니 매복하는 것이 어떨까요? 금강에서는 저들의 움직임을 한눈에 볼 수 있으니 그것을 이용하면 적이 눈치채더라도 손해는 없을 것 같은데?”
“과연!”
웅장모는 부관 궁상의 제안을 받아들여 5000명을 매복시켰다. 백유성의 백성들은 군사들이 흉흉한 살기를 드러내며 자신의 집 안으로 들어서자 아무 소리 못하고 두려움에 떨었고, 매복한 용호군들은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며 창틀에 숨어 신호를 기다렸다.
“학 장군, 저것을 타고 내려온 군사들이 계궁을 휘젓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가하게 군사들이 모이기를 기다릴 때가 아닙니다.”
“태사는 아직 무사한 것이겠지요?”
“태사께서는 비밀 통로로 몸을 빼신 지 오래입니다. 아직 계궁이 혼란스러우니 지금이 바로 적기입니다. 어서 빨리….”
“하지만 다른 성문을 지키는 군사들이 움직인다는 소식이 없는데….”
“학 장군이 움직이면 그들 또한 따를 것이오.”
태사 학초현은 지근거리에서 모시는 태감 학태는 줏대 없이 어물거리기만 하고 딱 잘라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우유부단(優柔不斷)하기 그지없는 학상을 재촉했다. 계피학발(鷄皮鶴髮)의 태감(太監) 학태(鶴太)는 어렸을 적 낙마(落馬)로 신(愼)이 다쳐 환관이 된 자였다. 그리고 지금 학가의 성세는 그로 인해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계군에 들어 출세를 위해 갖은 모략과 권모술수를 부렸고, 계제에게 학가의 의동생인 학초현을 소개한 이도 바로 그였다. 계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학초현을 등에 업고 임주 조정의 여러 대소 신료들을 포섭, 후에는 학초현이 세자를 생산하고 그 세자를 또다시 계제에 옹립함으로써 그 위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리고 외조카이기도 한 계제가 자신의 권력을 견제하자 태사 학초현을 전면에 내세워 계제를 탄핵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꼭두각시에 불과했던 의동생 학초현은 이미 권모술수에 닳고 닳은 여인이 되어 있었다. 친아들이기도 한 탄핵된 계제에게 독주를 주어 죽이고 학가를 학제가로 인정받기 위해 서제를 지지하고, 뒤로는 후선의 강무세가와 관계를 돈독히 하는 등의 일들을 벌였다. 그렇게 되자 학태는 학초현의 수족으로 부려졌고, 한때 손가락 하나로 움직였던 학상에게 이토록 답답하게 군사를 움직이라 종용하는 신세가 되었다.
“알았소. 태감의 말대로 일단 궁으로 가겠소.”
그렇게 학상은 전초도 보내지 않고 군사들을 움직였다. 그리고 군사들이 백유성 서문대로에서 북쪽에 위치한 계궁으로 돌아가는 모퉁이를 반이나 지났을까?
―삐이이이익!
“뭐? 뭐냐?”
―히히히이잉~!
―와아~!
―탁타타다다닥!
가옥의 창문과 지붕에 매복한 용호군의 궁병들은 효시(嚆矢)가 날아 찢어지는 휘파람 소리를 내자 일제히 화살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워낙 근거리에서 쏘아대는 화살인지라 대부분 빗나감 없이 학상이 이끄는 군사들의 몸에 틀어박혔고, 갑작스런 함성 소리에 놀란 말들은 학가의 군사들을 더욱 당황하게 했다.
―쿠어어엉~!
그리고 웅장모가 웅인으로 화신하며 포효를 터뜨리는 것을 신호로 골목골목에 숨어 있던 용호군이 일제히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웅장모의 서슬 퍼런 대도(大刀)에 학상과 학태의 목이 달아나고 그들의 목을 자른 웅장모는 신법을 발휘해 지붕 위로 단숨에 뛰어올라 그들의 목을 높이 치켜들고 항복을 종용했다.
“이것이 패장 학상의 목이다. 항복해라! 항복하는 자, 목숨만은 살려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백유성에서의 큰 싸움의 전부였다. 밀도(密道)를 통해 도망쳤던 태사 학초현은 양엽구 구만혁이 추적하여 반나절 만에 잡아들이고, 아직 뜻을 밝히지 않던 무장들은 계세자 계호림이 나서서 그간의 죄를 사해줄 것을 약속하자 하나 둘 항복하는 것으로 백유성 싸움도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모든 싸움이 마무리될 무렵, 라혼은 잠에서 깨어나 고학으로부터 승전 보고를 받았다.
“용호군의 피해는?”
“전사가 45인, 중상자가 184인입니다. 백호영 중에서는 중상만 34명입니다.”
비록 천하칠대도 오방상제에는 미치지 못하나 대도(大都)라 할 수 있는 임주의 주도를 점령하는 데 그만한 피해는 경미하다 할 수 있었다.
“좋아! 다친 사람을 치료하고 나서 상경 용호왕부로 갈 것이다.”
“주군, 이미 중경에 1개 군단, 병주에 5개 군단을 두었습니다. 계세자가 아직 병권을 확실히 잡지 않은 이상….”
“아니, 초강남과 웅장모는 계속 계세자를 돕는다.”
“…!”
“고학, 백호영들만 금강에 오르게 해라! 이 길로 회부할 것이다.”
용호군은 총 11개 군단으로 되어 있고, 용호군의 11개 군단의 군단장은 백호십일걸이었다. 모석은 중경에, 고우, 석은, 원복, 만력, 오차는 병주에, 초강남과 웅장모는 임주에 남으니 이제 남은 것은 표상치, 달성모, 구만혁의 3개 군단뿐이었다. 1개 군단이 1만 8000여 명이니 3개 군단 5만 4000의 병력으로 서병 30만을 어찌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병력이었다. 그러나 명은 떨어졌고, 고학은 따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