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6 - 독일마을을 뒤로 하고는 해변 유원지를 찾아 전망대에 올라 파도를 보다!
삼천포에서 창선 삼천포대교를 건너서 창선도를 지나고 남해도로 들어가 섬 동쪽에
삼동면에 자리한 남해 독일 마을에 도착해 맥주 축제를 구경하고는 다음날 다시
독일 마을을 찾아 붉은 지붕을 올린 독일식 주택들이며 레스토랑과 카페를 구경합니다.
그러고는 다시 차에 올라 고개를 내려가서는 바닷가를 달려서 물미해안전망대를 지나 작은 어촌에 도착
하는데..... 여긴 바닷가에 돌출된 언덕이라 계단을 올라가서는 파도가 부숴지는 해변을 구경합니다.
흔히 남해라고 하면 바다를 연상하는데.... 남해군이라는 이름은 신라 경덕왕이 지어 이미
1,300여년이나 된 오래된 지명으로 유자와 마늘, 시금치에 죽방 멸치로 유명합니다.
690년(신라 신문왕 10년)에는 전야산군(轉也山郡)으로 부르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 지방행정구역 명칭
개편 때 지금까지 사용하는 남해군으로 고치고 일선현(창선도)을 흥선현으로 고쳤으며 남해도
섬 지역은 남해군과 난포현(蘭浦縣, 삼동면), 평산현(平山縣, 남면 평산리) 2개 현으로 이뤄져 있었습니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군에서 현으로 강등하였으며 창선도는 유질 부곡
이라 하였다가 창선현으로 고친 뒤 진주목의 영현으로 삼았습니다.
1413년(태종 13) 하동과 합쳐 하남현(河南縣)이 되었다가, 이듬해 하동현이 독립하면서 진주 금양부곡
(金陽部曲)과 합쳐 해양현이라 하였으며 금양현이 진주에 속하면서 남해현으로 개칭하였습니다.
1895년(고종 32) 남해군은 진주부 관할 행정구역이 되어 7개 면을 관할하였는데
이듬해인 1896년 13도제 실시에 따라 지금의 경상남도 남해군이 되었습니다.
1906년에 창선도가 면으로 승격하여 남해군에 편입되면서 8개 면이 되었으며 1973년에 이동면
상주리의 갈도를 통영군 욕지면에 이관하였고 1979년에 남해면이 읍으로 승격하였으며
1986년에 이동면 상주출장소를 상주면으로, 삼동면 미조출장소를 미조면으로 승격시켰습니다.
남해는 겨울에 눈이 거의 안 오기 때문에 제설차가 별로 준비되어 있지 않은데 2005년에 폭설이
와서 그야말로 마비가 됐으니 당시 제설차가 부족해서 제설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눈이 안 온다고 해도 날씨가 추우면 잠시 눈폭풍이 몰아쳤다가 사라지는데 눈은 우박 아니면
진눈깨비이며 2012년 12월 폭설때도 어김없이 교통이 마비되고 일대 혼란이 벌어졌습니다.
제주도를 제외한 한반도의 대표적인 다우 지역으로 특히 태풍이 오면 많이 해안가 마을이 피해를 많이
입으며 큰 강이 없으니 홍수는 잘 나지 않고 해일 및 폭풍 때문에 해안가에 피해가 많습니다.
2003년에 태풍 매미가 왔을 때 상주해수욕장에 파도가 넘쳐흘러 해수욕장은 박살났고, 해수욕장
에 인접한 마을은 30cm 나 침수됐으며 남해읍 선소리에서는 선착장에 정박중이던
배가 강풍과 해일에 이기지 못하고 육지로 올라와 논 한가운데에 들어앉아버리기도 했습니다.
남해는 사람이 사는 섬이 3곳이 있는데 남해도 창선도 우도로...... 그중 남해도와 창선도는 생활권이 달라서
남해 사람들은 읍으로 놀러간다고 하면 창선 사람은 읍보다 가까운 삼천포로 가는데 창선삼천포
대교 개통 후에는 이동면을 중심으로 왼쪽은 남해읍 오른쪽은 사천시(삼천포) 생활권에 가까워 졌습니다.
1966년 135,000명이던 인구는 점점 줄어들어 2022년 2월에는 42,000명에 불과하며 1973년에
경상남도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와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를 연결하는 현수교인 남해
대교(南海大橋) 가 생기기 전에는..... 연락선을 이용하여 남해군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남해군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관광을 하러 올 것 이면 진주시까지는 KTX를 타고 와서
렌트하는게 좋으며 각 노선이 최소 한 시간의 텀을 가지기 때문에 차가 없으면 힘듭니다.
참고로 남해군은 전국에서 3번째로 큰 섬이며 또한 버스는 순환노선이 없고 최소 한시간
의 배차시간을 가지고 어떤 마을은 버스가 하루에 3번 정도만 들어갑니다.
또 버스 도착알림 서비스가 없기 때문에 버스를 한대 놓치면 최소 한시간은 그냥 버린셈
이니 섬이 괜히 섬이 아닌지라 사실상 오지 (Remote Area) 라고 볼수도 있습니다.
바닷길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데 과거에 가까운 전라남도 여수시 여수항에서 남해로 연결되는 정기선을 타고
갈 수 있었으니 과거 도로교통이 빈약한 시대에는 배를 타고 남해와 여수를 오가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다리가 개통되면서 2013년부터 관련 여객선들이 중단되었으며 서면에
서상여객선터미널이 있었으나 현재는 게스트하우스로 리모델링 했습니다.
특별히 알려진 명소가 아니라도 섬 대부분이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일부로, 지형과
해안선이 복잡하고 남해 바다와 어우러져 있어 경치가 좋은 곳이 많습니다.
또한 김만중이 유배를 왔던 곳이란 연고가 있기 때문에 김만중을 포함하여 유배지에서
작품을 남긴 이들에 대한 자료와 유배 생활 등을 모은 남해군 유배 문학관이 있습니다.
이 밖에도 원예 예술촌, 다랭이논 마을, 금산 보리암, 물미해안도로, 남해
보물섬 전망대, 설리 스카이워크 등 괜찮은 관광지가 많습니다.
여름에는 해수욕장으로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많으며, 상주 해수욕장
은 경남 서부권의 피서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송정솔바람 해수욕장, 설리 해수욕장, 사촌 해수욕장, 두곡 해수욕장
등이 유명하며 두모마을 등 마을 단위에서도 수상 레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남해군과 본토로 직접 연결되는 남해대교가 놓인 곳은 바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노량 해협
이고, 이 노량 해협은 노량 해전의 종결지임과 동시에 백두대간의 끝으로 여겨지는 곳입니다.
노량이라는 지명 자체는 하동군에 있지만. 노량 해전 당시 일본 수군이
큰 바다인 줄 알고 들어간 사지인 관음포는 남해군에 있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차를 달려서 설리 스카이워크에 도착해 내리는데....
일명 하늘그네 라고 불리는데 그네 높이는 38미터에 달한다고 합니다.
첫댓글 잘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