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으로 대위제 저수지 물을 정화하다.
1.물고기떼 사열을 받다.
오늘은 저수지 물이 얼마나 맑아 젔을까…
저수지 가를 거닐고 있다. 저수지 물을 정화 하겠다고 지난 09년 10월 14일부터 EM활성액을 투입한지 7개월이 넘었고 그 양은 7.2㎘로써 월 평균1000ℓ가 된다.
작년에는 수면에 파란 이끼류와 녹조류가 빡빡하게 껴 있어 물고기는 도저히 살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EM활성액을 투입한 금년에 는 표면에 녹조가 거의 없다. 그러나 물의 투명도가 개선되지 않고 있어 고민하고 있다.
“앗 이게 뮈야!”
송사리 떼가 내가 서 있는 앞을 보무도 당당한 군인들이 행진하는 것처럼 혜엄을 쳐 가는 것 아닌가. 그 뒤에는 붕어인지 잉어인지 커다란 물고기가 옆에 호위병처럼 작은 고기를 거느리고 혜엄 쳐 지나가고 그 뒤 또 송사리 떼가 혜엄쳐 가고 있다. 그 수는 어림잡아 300마리는 될 것 같았고 나는 대장이 된 기분으로 그 광경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언제 이런 광경을 본 일이 있었던가
저수지 물은 부패가 심해 시궁창 물이 되어 악취가 코를 진동하고 물 이 탁해서 밖에서 물고기를 볼 수 없었는데 이렇게 물고기사열을 받다니 참으로 감개무량하다
2. 대위 저수지의 德(덕)
나는 어려서부터 이 저수지를 벗 삼아 자라왔다. 저수지 저쪽 언덕 아래 물속에 우리가 살던 초가삼간 오두막집이 있었고 그 때는 저수지가 조그만 하고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우리 집 마당 가에까지 물이 출렁거렸다.
여름철 비가 오면 용수를 놓아 송사리 붕어를 잡았고 나무생개(토와)가 꼬리를 물고 흐르는 물을 따라 올라가는 광경은 장관을 이루었으며 용수 안에는 고기가 하나 가득 잡히곤 하였다. 겨울에는 오리,고니등 겨울철새가 호수위를 장식 했고 긁겡이 그물을 호수에 던져 오리 떼가 몰고 온 고기를 잡았고 새우를 잡아 국을 끓여 먹었다.. 수초를 뜯어 나물로 먹었고 저수지가 마르면 가리질로 고기를 잡았고 수초를 베어 땔감으로 쓰기도 했다. 개구리를 잡아 끈에 매달아 물속에 넣어두면 게가 잡히고 낚시로 장어 잉어 가물치 등 없는 고기가 없이 잡혔으며 저녁에는 반딧불이가 춤을 추고 도깨비 불도 구경하며 살았다. 이와 같이 호수는 각종 고기가 풍부하여 우리 집 부식창고로 보고역할을 했다.
그렇게 풍부하던 저수지가 온갖 폐기물 농약 등 남용으로 씨가 말랐고 오물만 쌓이는 저수지가 되었다.
나는 이 저수지 가에서 살던 오두막이 그리워 질 때가 있다. 그렇게도 가난하게 살면서 청소년 시절의 장래의 희망과 꿈 정서를 키우던곳 이기 때문이다.
3.先親(선친)에 대한 추억
나의 선친 福(복)자 敬(경)씨는 지능이 높고 재능이 뛰어나셨다. 현대 교육만 받으셨으면 훌륭한 인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추앙을 받을만한 인물이 되었으리라….사범학교 시험에 합격하고 학부모님과 소집되어 학교에 갔다 나오면서 선친이 하신 말씀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나는 사범학교를 가기 싫어했다. 인문계나 공업학교를 가기를 원했다”어버지 나 공업학교 갈래요”
“이놈아 나는 이렇게 좋은 학교 구경도 못했다. 다른 학교 갈려거든 학비는 없다.”
조상 때부터 물려 받은 재산 없이 자수성가를 위하여 불철주야로 모든 일을 다 하셨다. 가마니 짜기, 왕골 풀 돗자리 짜기. 지게 만들기.
구루마 짜기, 나무통 짜기, 사관 침 놓기, 담박약 만들기, 동티 경 읽기. 소를 이용한 밭갈이 쟁기질, 짚으로 지붕 씨우기, 밥상고치기, 호미 괭이 고치기, 지경장에 가서 거간일, 삼베 모시 베 짤 베감 만드는 일,…..사형제 잘 키우기 위하여 열심히도 사셨다. 재산이 모이고 살림이 점점 불어나 밥은 굶지 않고 살 지음 저수지 공사가 시작 되어 수몰 민 신세가 되었다. 50년도 말 만경강 간척지 공사로 농지에 급수시설이 필요하므로 기존의 대위제 저수지 뚝을 높이는 공사가 시작되었고 우리 초가삼간 오두막집은 물속으로 파묻혔다. 뜻하지 않던 수몰 민 신세가 된 우리 가정은 농토를 장만할 재력이 없어 농토는 대부분 종토나 소작이었던 선친께서 보상을 받은 몇 푼의 돈으로 살림을 꾸려야 하는 쪽박 차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4. 삼 대를 이은 수몰민
우리 조부 明(명)자佐(좌)씨는 회현면 세장리 요동마을에서 살았는데 1930년대 나는 태어나지도 아니했으니까 선친에게서 들은 바에 의하면 왜인들이 군산에 북선제지(그당시회사이름)종이 공장을 만들며 옥산 저수지를 만들면서 논밭 전부 저수지가 삼켜 수몰민이 되었고 1930년~1960대를 지나는 동안 30여년 안에 조부,선친, 나의 대까지 삼대를 이은 수몰 민 신세가 되었다. 국가적으로는 이 시기에 왜인들의 착취- 해방 – 6.25한국전쟁 – 자유당정권 - 4.19혁명 - 5.16군사혁명 - 민주화 바람 등 국가적 혼란기를 다 살아온 나는 우리 가정의 빈곤을 퇴치할 힘과 능력이 없었다. 그래도 5.16군사정권 박정희 대통령께서 교원 봉급을 배로 인상하여 밥은 굶지 않고 살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국가는 우리가정을 가난하게 만들었다. 국가를 상대로 송사라도 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곤 한다. 교원을 정년 퇴직하고 고향을 방문하여 대위제 저수지를 바라보며 지나온 세월을 추억하고 많은 상념에 빠지곤 한다.
4. EM을 접하고
우연한 기회였다.
이웃집 아주머니께서 화분에 물을 주고 있었다.
“무슨 물이여요”
“ EM이여요 우체국옆 OO상점에서 팔아요”
나는 곧장oo상점으로 뛰어갔다. 아곳은 신동아그릅 에버미라클 회사의 EM홍보관 이었다. 이곳에서 우선 EM에 대한 서적을 구입했다.
되살아나는 미래, EM환경혁명, 생명을 구하는 신비의 물EM-X, EM이야기 등 네권을 사서 단숨에 읽었다. 그 뿐 아니라 EM홍보용CD, DVD,를빌려 보았다.
EM이 수질정화능력은 물론 놀라운 것은 다이옥신을 소멸시키고 방사능을 감소시키며. 농업에 이용하면 한계농업에 도달 할 수 있고. 의학에 이용하면 암을 예방 및 치료 할 수 있고 당뇨병 등 난치병을 차료할수 있으며 정전기방지는 물론 자기파 공명으로 지진피해를 막을 수 있다니 내용을 읽고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물질이 왜 이제야 세상에 나왔을까.
5.저수지에 EM할성액을 투입하다.
과학에 유난히 흥미가 많은 나는 이렇게 좋은 것이라면 당장에 실생활에 적용을 해보자.
우선 EM활성액을 만들어 보았다..
EM원액, 쌀뜨물, 흑설탕, 소금, 당밀을 지하수에 풀어 400L프라스틱 통에 채워 넣고 겨울철에는 가열기로 가열하여 2주 를 기다렸다. 2주후에 관찰 해 보니 기가 막히게 잘 발효 되었다.
이 발효된 활성액을 09년 10월 14일부터 저수지에 투입하기 시작했다.
프랑카드를 내걸고 본면 면장님과 중학교교장선생님을 모시고 EM액통의 밸브를 열었다. 그리고 10개월이 지나지 안니 한 2010년 8월 이 저수지 물이 해 맑아지고 투명한 물속에서 송사리 등 고기떼가 노니는 결과를 보게 되었다.
참으로 기쁘고 가슴 벅찬 일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EM이 수질정화의 능력을 확인하게 되었다..
첫댓글 윗글중 99년 10월 14일은 09년 10월 14일로 정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