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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할 수 없는 늑대의 유혹
-‘청.바.백.광.’ 종주, 살인미수(?) 혹서(酷暑) 산행-
-제 1 부-
후생에까지 다시 업(業)을 지고 갈 수는 없기에 우리는 스스로 고행을 자청하는 것일까?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의 언덕을 넘듯이.....
그렇게 우리는 속고 속이며 또 산길에 붙는다.
마치 업장소멸(業障消滅)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어쩔 수 없이 또 늑대의 유혹에 휘말리고 말았다.
그래도 아직은 늑대가 던지는 추파만큼 요염(?)한 것은 보지 못한 탓이리라.
설마, 또 지난번 같지는 않겠지.. 하는 기대를 속절없이 해보며....
그 ‘설마’가 또 사람을 잡는다.
2008년 7월 27일 아침 8시 양재역 7번 출구.
처음 보는 얼굴까지 모두 9명의 꼴통들이 모였다.
버스 이동 중에 합류한 아싸회장님까지 모두 10명.
늑대의 유혹에 이렇게 많은 인원이 휘둘리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매번, 늑대의 기침소리만 들어도 다들 기겁을 하더니?
유혹엔 약한 것이 우리 중생들의 평상심일까...?
양재 화물터미널 청계산 들머리. 아침 8시 20분.
대책 없는 10명의 막가파들은 기념 촬영을 마치자마자 바로 된비알에 올라 붙는다.
옥녀봉까지는 소문난 급경사이다.
조금 버겁게 여겨지는 급경사를 처음부터 이를 악물고 선두에서 올라 친다.
윤기가 넘치는 진녹색의 침엽수가 흐르는 땀을 위로한다.
생기가 넘치는 잣나무 숲길로 삼림욕을 하면서 제1 솔밭 길, 제2 솔밭 길, 쉼터를 지나자,
다시 임꺽정 길이 나오고 계단을 억세게 치고 오르니 옥녀봉(09:05)이다.
배낭 무게가 만만치 않은 듯싶은데, 한번도 쉬지 않고 올랐다.
오늘은 어차피 10시간이 넘는 강행군이니 호흡을 잘 조절해야만 한다.
뒤이어 올라온 늑대대장과 강화도.
“아니, 날라서 올라오셨나 봐요?”
오늘 처음 뵙는 강화도님이 나를 보며 묻는다.
“그러는 강화도님은 또 어떻구요?”
대장과 발을 맞추는 수준이라면 보통 내공이 아니다.
호흡소리도 아주 고르고 바람결처럼 부드럽다.
재야에 고수가 많다는 것은 만고 불변의 진리이지만...
얼른 배낭에서 장수막걸리를 꺼내 잔을 권하며 목을 축인다.
뒤이어 모두가 힘들게 도착하는데, 초장부터 무언가 벌레 씹은 표정(?)들이다.
한잔씩을 나눈 후 기념 촬영, 정상마다 오늘의 흔적을 남기기로 한다.
바람 잡은 죄로 언제나 늑대 대장은 그 무거운 카메라 메고 촬영 서비스까지 겸한다.
위대하고 존경스런 늑대...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저 심지 깊은 싸가지(헌신).....!
휴식을 마치고 출발(09:25),
이제부터는 번호표까지 붙은 계단 길이 이어진다.
1200개가 넘는 번호가 계속 이어지고 씩씩거리는 소리마저 잦아들 즈음 나타나는 돌문 바위.
2바퀴를 돌며 소원을 비는데 ‘오늘의 무사한 완주’를 소망해 본다.
아침까지도 비가 뿌린 탓인지 그리 습하지는 않으나, 바람이 영 인색하니 높은 한여름의기온이 몹시도 부담스럽다.
날씨는 흐려서 금방이라도 비가 퍼부을 듯, 평소 그렇게 좋던 전망도 오늘은 꽝이다.
드디어 매바위(10:00)를 거쳐 매봉 정상에 도착(10:03).
다시 정상주를 나누고 기념 촬영을 마치고 또 출발(10:30).
2년 만에 다시 청계산을 찾은 셈인데 산행로가 많이 정비된 것 같다.
석기봉을 오른다고 길을 잡다가 방향을 잘못 들어 정상은 비탈로 우회하고(11:05)
회장님, 강화도와 선두에서 같이 길을 잡아 나가는데 갑자기 계곡의 물소리가 들린다.
정상적인 산행로라면 계곡이 절대 나타날 수 없는 것이다.
그만 포장도로 쪽으로 하산하는 알바를 하고 말았다.
세상에나~ 청계산에서 다 알바를 하다니~~?
여러 번 쳥계산에 올랐지만 처음 있는 일이다.
점점 바보가 되어가는 기분이다.
내려온 길만큼 포장도로를 다시 올라 치니 석기봉에서 내려오면 만나게 되는 헬기장이 나타난다(11:15).
청계사 갈림길인 절고개에 이르니(11:18) 강화도가 주막에서 동동주를 권한다.
청계산에는 동동주 주막이 여러 군데 있어서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목을 축이기 좋다.
그러나 광교 구간에는 주막이 거의 없다.
그래서 배낭 속의 주님(?)을 신주 단지처럼 고이고이 모셔야만 한다.
알바를 했는데도 우리가 선두다.
잠시 후 나타나는 후미대와(11:25) 이수봉까지 직행한다.
이번에 처음 산행에 참석한 강화도님은 황사방지 겸 자외선 차단용으로 스커프를 둘러 얼굴을 가리니
기억에도 끔찍한 영락없는 탈레반이다.
작년 7월에 선량한 20여명 우리의 처자들을 납치하여 두 달 가까이나 억류한 불한당들 모습이다.
이후 나는 ‘강화도’님을 ‘탈레반누이’라는 이름으로 대신 부르기로 하는데,
누이는, 내가 20시간 넘게 걸려서 완주한 강북 5산, ‘불.수.사.도.삼.’ 코스를 지난 6월 15일에
13시간 만에 주파했다고 하니, 쩍~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날라 다니는 산악 마라톤 환자들이나 가능한 기록인데, 탈레반 누이의 가공할 내공이 미루어 짐작이 된다.
그것도 처녀 출전에다 코스도 잘 모르면서 주파한 기록이라고 하니, 앞으론 천연기념물로 고이고이 모셔야 할 듯싶다.
이수봉에 도착하니(11:35), 오후에 출근하는 날인데도 굳이 오늘 산행에 참가한 극성(?)스런 꽃순누이가
여기서 옛골 봉오재 고개로 하산해야 한단다.
서운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고문관인 내가 보고 싶어서 일부러 참석했다고 하는데, 그냥 믿어주기로 하고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서 굳게 손을 잡아 준다.
갈 뇬은 가고 남을 넘은 또 남아서 오늘의 과업을 완수해야지...!
10분의 휴식을 끝내고(11:45) 꽃순누이를 보낸 우리 아홉 명의 막가파 꼴통들은 국사봉을 향해 걸음을 재촉한다.
강남 5산 1구간을 지난 달에 완주하고 오늘 남은 2구간을 종주하는 셈인데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고행의 시작인 셈이다.
재작년 가을에 대간킴과 같이 강남 5산을 종주하던 끔찍한 기억에 의하면 하오고개부터 올라 치는
우담산, 바라산, 백운산의 된비알은 거의 살인적(!)이다.
오죽하면 백운산 오르막에서 몰려오는 졸음을 견딜 수가 없어서 스틱을 짚고 선채로
폭포처럼 쏟아지는 졸음을 달랬겠는가?
주저 앉으면 그대로 수마(睡魔)에 휩쓸리고, 종주는 수포(水泡)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때의 악몽 때문에 강남 5산 완주를 끝으로 더 이상은 목숨 건 산행은 하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었는데.....
또다시 미련을 어쩌지 못하여 지난 4월의 강북 5산 완주에 이어 오늘 또 이 마의 구간을 마주하고 선 것이다.
끝없이 되풀이되는 이 거부할 수 없는 늑대의 유혹 때문에.....
20분 남짓 속도를 내니 국사봉(12:10) 정상 도착, 후미대를 기다린다.
한참 후 도착한 후미와 함께 우리는 한갓진 곳에 자리를 잡고 점심상을 펼친다.
나는 배추와 유채와 쌈장인데, 모두들 준비한 먹거리가 장난이 아니다.
먹기 싫어도 꾸역꾸역 곱창순대를 채워줘야만 앞으로 넘게 될 살인적(?)인 된비알을 올라 칠 수가 있다.
탈레반누이가 홍삼까지 넣어서 정성 들여 준비한 찰밥이 입맛에 땡기는 탓에,
내 밥은 팽개친 채 염치없이 자꾸만 그리로 숟가락이 움직인다.
(그저 몸에 좋은 것은 귀신 같이 알아 가지고... )
누이는 댁이 안양이고 분당에서 세무회계사무소를 직접 운영하고 계시는 대단한 재원이신데,
식사 준비 하나만 봐도 빈틈이 없다.
완빈뇨(완벽하게 빈틈이라곤 없는 뇨자)라고나 할까...?
거기다가 천리마의 지치지 않는 내공까지...
2년 전 몸이 망가져서 병원신세를 졌다는데 그때 의사 선생님이 권해서 등산을 시작했고,
운동장 달리기와 등산을 2년간 계속했더니 이렇게 체력과 건강을 되찾았다고 한다.
이젠 동네 아줌마들과 함께 등산을 하면 간이 안 맞아서 장거리 산행을 선호한다고 한다.
오늘도 9시간 산행이라고 예고되어 있어서 기대를 가지고 참석했다고 하니 듣는 얘기마다 그저 놀라울 뿐이다.
몸매도 군살 하나 없는 코리언 스탠다드(Korean standard) 미시 짱, 55사이쥬(!)다.
점심 식사를 마치니, 잔뜩 찌푸렸던 하늘이 급기야 터졌는지 후두둑 비가 듣기 시작한다.
비옷을 꺼내 입는다 어쩐다 모두들 야단법석들인데, 나는 그냥 비를 맞기로 한다.
차라리 비에 젖는 것이 낫다는 것을 안다.
이 염천(炎天)에 후끈후끈한 비옷을 견뎌낼 재간이 없는 것이다.
다행히 몇 방울 떨던 빗방울은 하늘이 도왔는지 잠시 내리다 그친다.
이제 겨우 산 하나를 넘고 있는데, 뭔가 체해서 속이 안 좋다는 사람, 신발에 씹혀 발에 상처가 난 사람,
발가락이 짓무른 사람 등등, 서서히 이상 증후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시나브로 산행에 적응해 가는 일시적인 명현현상(瞑眩現象, 또는 요요현상)이 아니라면,
아무래도 오늘의 산행이 순조롭지만은 않을 것 같은 불길한 조짐이다.
국사봉을 내려오면서(13:10) 우측으로 난 갈림길로 내려서고, 길게 이어져 있는 공동묘지를 지나면서
절개지 급경사 내리막을 왼쪽으로 타고 내려서니 길게 국도가 뻗어 있는 하오고개(13:45)이다.
2년 전엔 여기서 점심을 먹고 반주로 마신 탁주가 과하여 광교산 들머리 오르막을 올라 치며
포기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은 절망감에 몸부림쳤던 기억이 새롭기만 하다.
두 개의 국도를 조심스럽게 가로 지르고 길게 이어진 철망을 따라 오른쪽으로 이동하니
철망이 끝나는 지점에 희미하게 광교산 들머리가 나타난다.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탓에 눈 여겨 보지 않으면 쉽게 눈에 띄지 않는 곳이다.
우리보다 앞서 갔던 부부인 듯싶은 젊은 한 쌍도 입구를 찾지 못해 여러 번 헤매다가 우리 뒤를 따라 붙는다.
우리들처럼 청계산부터 시작, 광교산을 종주하는 중이라고 하니, 참으로 대단한 한 쌍이다.
청계산 들머리 출발(08:20)-제1, 2, 솔밭길 쉼터-임꺽정 길- 옥녀봉(09:05)-
출발(09:25)-매바위(10:00)-매봉(10:03)-출발(10:30)-석기봉 우회(11:05)-
헬기장(11:15)-절고개(11:18)-출발(11:25)-이수봉(11:35)-출발(11:45)-국사봉(12:10)-
점심-출발(13:10)-하오고개(13:45) ⇒ 청계 구간 산행시간 5시간 25분 소요.
-제 2 부-
늑대대장은 상태가 조금 안 좋아 보이는 아싸회장님이 염려스러운지 광교 구간 산행을 계속할 것인지 의사를 확인한다.
그러나 아싸가 누군가?
400명 가까운 ‘우리’의 한가닥하는 개성들을 일사분란하게 지휘하는 사령관이 아니신가!
카리스마 넘치는 늠름한 위용으로 스틱을 들어 절개지 급경사를 가리키는 아싸회장님!
계속 go~ go~~
가파르게 깎아지른 절개지 수로를 따라 급경사를 올라 치기 시작하는데,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라곤 거의 없다.
허긴 우리들처럼 정신 나간(?) 사람들이나 이 삼복지절에 올라 붙을 길이긴 하지만...
누구 말처럼 돈을 받고 하는 일이라면 이 땡볕에 절대 괴로워서 완주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그러나 스스로가 선택해서 자청한 운명이니 비 오듯 흐르는 땀도 즐기는 도리 밖에는 없다.
하늘처럼 우뚝 솟은 급경사를 쉬지 않고 40분을 올라 치니 중계탑이 있는 갈림길, 능선(14:25)에 이른다.
뒤따라 오른 늑대대장과 탈레반 누이, 공기 총무와 같이 과일을 나누어 먹으며 후미를 기다려 보지만,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들이다.
여기서는 갈림길이 이어지고 왼쪽은 거의 직진 길이라 자칫하면 그리로 진행하기가 쉬운데,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은 철망을 끼고 돌아야 하는 오른쪽 길이다.
그런데 능선에는 웬 산모기가 그렇게도 많은지 벌떼 같이 달라 붙는다.
녀석들의 구미(!)를 자극하는 찐한 땀냄새까지 진동하니 오랜만에 맛보는 푸짐한 진수성찬을 결코 포기할 수 없으리라.
공기가 깨끗해서 모기도 많은 거라고 썰을 풀었더니만 탈레반누이, 조금은 위안(?)이 되는지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린다.
대간이나 정맥에서 야간 산행을 하다가 보면 유달리 헤드 랜턴 불빛을 보고 달려드는 벌레들이 많다.
생명 있는 것들이 청정한 환경을 더 좋아하는 것이야 지당한 이치이리라.
서당개 3년이면 터득한다는 풍월을 읊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썩소가 나오지만...
그래도 대책 없이, 앙칼진 모기 녀석들에게 마냥 오지랍 넓은 헌혈(?)만 하고 있을 수는 없어서
일행들을 먼저 보낸 후, 갈림길 들머리에다 스틱으로 진행 방향을 화살표로 알리고
‘우리’라고 적는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후미를 만나고 같이 출발(14:40), 우담산 비알로 올라 붙는다.
20분을 다시 빡쎄게 올라 치니 소나무가 인상적인 우담산 정상(15:00) 도착이다.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능선 길을 따르다 갈림길에서 다시 좌회전하니 앞서 갔던 선두대, 늑대 일행이 나타난다.
바라산 가는 방향이 헷갈리는지 계속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다.
오늘은 조망거리도 매우 불량하고 여름이라 녹음이 우거져 숲 속에 있을 때는 산세를 읽기가 수월치 않다.
옛날에 종주하던 기억에만 의지하며 앞으로 전진한다.
약간의 오르막이 이어지는가 싶더니 계곡으로 하산하는 길처럼 계속 아래로 아래로 하염없이 내리 꽂는다.
내려 가는 길만큼 다시 올라 쳐야 하는 것을 알기에 경사가 급한 내리막일수록 더욱 야박스럽게만 느껴진다.
왼쪽 방향으로 고기리 저수지로 내려가는 안부에 이르니(15:45), 거기서부터 악명 높은 바라산 올라 치는
급경사 된비알이 시작된다.
백운산 된비알 다음으로 악명 높은 구간이고, 하늘처럼 우뚝 솟은 장애물(?)이다.
몸 속의 모든 진기를 다 끌어내어 절벽 같은 오르막과 깡생깡사(!)로 겨룬다.
‘우리’의 고명(高名)한 자존심을 걸고서...
이럴 땐, 시원한 바람이라도 응원을 해준다면 얼마나 감개가 무량할 것이랴!
그러나 하늘은 작은 실바람조차 거두고, 우리에게 더 많은 인내와 끈기와 투지를 시험한다.
그것을 알기에 별수없이 극한의 상황을 즐기는 기분을 억지로 자극하며 20분을 빡세게 올라 치니
아, 그렇게도 그리고 그리던 바라산 정상!
오후도 깊어가는 4시 5분이다.
뒤이어 올라온 늑대대장, 탈레반 누이, 공기 총무와 같이 후미를 기다리면서 긴 휴식을 취하고,
그 동안 애지중지하던 배낭 속의 곡차를 꺼내어 정상주를 함께 나눈다.
공기 총무와는 오랜만에 산행을 같이 하는 셈인데, 그 동안 총무의 내공이 무시무시하게
일취월장하였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약간 체기가 있다며 초장엔 조금 괴로워하는 것 같더니 계속 선두에서 뒤쳐지지 않는다.
원래 매사에 적극적이고 열정이 넘치는 분이니 학습진도도 빠를 수 밖에 없으리라!
“장애물(?)이 없어서 그런지 펄펄 나는 것 같은데요?”
농담 섞어 이렇게 칭찬을 건넸더니, 짝지기인 청결미는 장거리를 싫어한다며 살포시 미소 짓는다.
한참 후 올라온 후미와 함께 넉넉한 휴식을 취하며 여유를 부려보는데,
아싸회장님의 표정이 많이 불량해 보인다.
아무래도 점심 먹은 것이 체한 것 같다고 한다.
늑대가 수지침을 꺼내고 재주 많은 미남이 혈도를 짚어 사관을 뚫는다.
피의 색깔이 심하게 검붉지는 않은 것으로 보아 아직은 극도로 악화된 상태는 아닌 듯하다.
하여튼 우리는 요상한 집단이다.
돌파리에다 명의까지 없는 게 없으니 명물들의 집합이다.
바이크 송님은 신발이 말썽을 부려 몇 번인가 포기할까 망설이면서도 등산샌들로 갈아 신은 후,
불편한 상태에서도 그 먼 거리를 끝까지 따라 붙으니 바로 의지의 표상이다.
같이 발을 맞추는 것은 오늘이 처음인데, 평소 산을 오르며 그 동안 연마한 내공이 녹록치 않음을 느낄 수가 있다.
더군다나 곰 같은 뚝심으로 무장된 파우대장은 항상 남보다 갑절이나 무거운 배낭을 메는데,
내 소싯적 미련스럽던 모습이 생각나고, 그저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그러나 산꾼마다 다 저마다의 개성과 천성이 있으니, 억지로 고쳐질 일은 아니다.
모두다 동료들을 염려하고 서로를 위하는 발심에서 나온 헌신임을 아는 까닭이다.
아니나 다를까?
파우대장의 요술 배낭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꽁꽁 얼린 파인애플 대짜 통조림이 어김없이 기어 나온다.
세상에나~
그 무거운 통조림을 이곳까지 메고 오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한 입 베어 무니 얼음이 버적버적한 그 씨원함!
전신의 말초신경 구석구석까지 퍼져 나가는 그 짜릿한 오르가즘!
어쩌면 나는 백운산, 그 하늘처럼 높은 장애물을 파우대장의 이 파인애플 덕분에 거뜬히 돌파했는지도 모른다.
산에서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항상 먼저 남을 배려하고, 또한 이것이 우리의 저력이기도 하리라!
충분한 휴식을 끝낸 후, 다시 고행의 행군을 시작(16:30)한다.
갈림길이 있는 고분재까지는 계속 이어지는 내리막이다.
백운산 올라 치는 된비알의 악명을 알기에 그만큼 또 내리쳐야만 하는 것도 경험으로 안다.
드디어 사방으로 길이 연결되는 갈림길, 고분재에 도착한다.
왼쪽은 성남시 고기리 저수지 쪽이고, 오른쪽은 의왕시로 이어지는 길이다.
고기리 저수지가 있는 왼쪽 길로 빠져 유원지 주막에서 음풍농월하고 싶은 유혹이야
굴뚝 같지만,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은 정면으로 까마득하게 높이 솟은 하늘을 보고 올라가야만 하는 야속(?)한 운명이다.
비장한 심정으로 심호흡을 하면서 각오를 다지고, 성큼 된비알에다 발을 올려 놓는다.
가장 악명이 높은 구간임을 알지만 그래도 백운산이 마지막 오르는 고지이기에 몸 속의 진기를 다 끌어 모아
투지를 불사르기로 한다.
백운산 이후는 평탄한 길로 이어지는 것이다.
바로 뒤따라 오던 늑대대장, 공기 총무도 이젠 보이지 않고 혼자 줄기차게 오르막을 치고 오른다.
저기만 오르면 되려니 싶어 기를 쓰고 산 하나를 오르면 또 다른 더 높은 산이 나타나
눈을 부라리면서 내려다 보니 지레 기가 질린다.
어차피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 주는 거라고 체념하면서 무심의 경지에서 모든 것을 놓아 버린 채
한발한발 오르막을 쉬지 않고 오르는데, 후미가 모습을 보일 기미가 없으니 오늘 산행 시간이
예상보다 많이 지체될 것만 같다.
그렇게 실망과 체념이 여러 번 되풀이 되는 가운데 갑자기 사람들의 두런거리는 말소리가 지척에서 들린다.
드디어 마의 구간을 넘고 넘어 백운산 주막에 도착했나 보다.
드라이 아이스 통이 눈에 띄기에 반가운 마음에 얼른 마른 목을 식혀줄 씨원한 아이스크림을 찾았더니만
곡차 밖에 없단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크게 낙담하면서 백운산 정상에 오르니, 오후 5시 19분이다.
드디어 악명 높은 백운산 정상에 올랐으니 안도의 한숨이 나오는데,
이제부터는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행복한 기분도 든다.
자신이 생각해도 조금은 스스로가 대견스러워 조용히 자신을 위로해본다.
“정말, 수고가 많았구나. 천하 꼴통~! ”
아직도 여유가 있는 얼음물을 꺼내 갈증을 달래고 사과(아오리)를 한입 베어 문다.
악을 쓰며 된비알을 올라 친 공복감이 조금은 달래지는 것 같다.
사과 한 개를 다 먹을 즈음 늑대대장이 올라온다.
후미대는 갑자기 몰려온 허기를 견디지 못해 식사를 펴는 것을 보고 먼저 올라 왔다고 한다.
식욕이 땡기지 않더라도 강행군 산행에서는 억지로라도 끼니만은 잘 챙겨야 한다.
모든 것은 경험이 말해주는 것이다.
몇 년 전 지리산 종주에서도 갑자기 몰려온 허기와 탈진 때문에 고생하는 동료들을 여럿 보아 왔던 경험이 있는 것이다.
아무리 미리 일러 주어도 직접 경험하지 않는 한 우이독경일 뿐이다.
늑대와 같이 정상주를 나누고 있는데, 한참 후 올라온 후미대가 주막에서 동동주를 한잔씩 나누자고 한다.
오늘 처음 종주에 참가한 탈레반누이가 너무도 마음에 드는 코스를 우리 덕분에 완주한다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막에서 정상주를 대접하겠다고 한다.
비단 같은 누이의 갸륵한 마음 씀씀이에, 앞장서 한방 쏘려던 고사리님도 기회를 기꺼이 양보하고,
맥주와 동동주와 부족한 생수까지 거금 3만냥을 쾌척하는 탈레반누이!
(누이..! 내공만 강한 줄 알았더니 이렇게 쩐능(錢能)까지 하시니 매사가 시원시원~~ )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급조한 동.맥. 폭탄주의 알싸한 맛이 여기가 백운산 정상임을 실감케 하는 것 같다.
언제 지쳤던가 싶게 주막의 정상 파티는 잠시 화기애애한 순간이다.
이런 맛에 우리는 그 고단한 순간을 감내하면서 정상에 오르는 것일까?
이럴 때는 너나 없이 모두 하나가 되는 년넘들..!
우리 모두의 등산복은 이제 아래 위를 가릴 것 없이 물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땀이 뚝뚝 흐르니 오늘 하루의 강행군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대변해 주는 것 같다.
어쩌면 ‘살인 미수(?) 혹서(酷暑) 산행’이었다고 해도 손색이 없으리라...
늑대가 잡는 바람은 언제나 살인적(!)이라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늘 경계하면서 또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화기애애한 정상에서의 30분이 넘는 꿈 같은 휴식을 끝내고,
백운산 정상에 괴물처럼 우뚝하게 버티고 서있는 통신대를 비껴가며 광교산을 향해 출발(17:55)한다.
행복한 능선 길을 가볍게 오르고 내려 노루목 대피소를 지나고(18:25) 드디어 오늘의마지막 기착지인 광교산 정상,
시루봉에 오르니 해도 뉘엿한 오후 6시 33분이다.
서둘러 기념 촬영을 마치고 하산 방향을 정하는데 애초엔 경기대로 하산할 예정이었으나,
6km 가까운 길이라 2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니 일몰이 찾아오면 어두운 산길을 하산해야 할 것이다.
주변 지리에 익숙한 산행객의 조언대로 조금은 쉬운 길인 왼쪽 용인 수지 방향으로 하산 길을(18:42) 잡는다.
그러나 하산 길 역시 만만치가 않다.
아무리 짧다고 해도 1시간이 넘게 걸린다.
내리막 길이니 마음에 부담은 없지만 무릎에 무리라도 오면 하산 길이 더 괴로울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은 상태가 아주 양호하다.
1시간쯤 걸려 능선이 끝날 즈음 임도가 나타나고 전원 마을이 펼쳐진다.
오른 쪽으로는 공사 중인 고속도로의 높은 교각이 우뚝, 솟아있다.
계곡 물이 가파른 수로를 타고 흐르는데,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바로 알탕에다 몸을 던져 버리는
사랑스러운 우리의 막가파들...
그러나 나는 갈아 입을 옷도 없어서 아쉬운 대로 그저 참기로 하고, 그냥 도로까지 내처 걷는다.
드디어 오늘의 종점, 이름도 모르는 한적한 지방도로(19:45),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한다.
11시간 25분간의 대단원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다.
30km 가까운 사투도 이로써 종지부를 찍는다.
분당 미금역 4거리까지 8분에 한대씩 있다는 버스로 이동하기로 한다.
1진이 먼저 이동하고, 다시 2진까지 합류하여 어느 건물 2층에 올라 해물 찜과 전골을 미끼로
프레쉬 썸머(fresh summer)의 바다에 풍덩~ 뛰어든다.
뒤풀이 장소에 오랜만에 기꺼이 왕림하여 자리를 빛내주는 후세인의 구릿빛 얼굴이 더없이 건강해 보인다.
탈레반누이는 집에 일이 있어 자택이 있는 안양으로 먼저 떠나니 하루의 고단함을 함께
위로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너무 크다.
참으로 연구 대상의 대단한 내공을 지닌 신비스런 여인.....
회장님이 선창으로
“우리를~~”
외치고,
“위하여~~!!!”
모두가 악을 쓰며 화답을 하는데, 취기 담아 외치는 씩씩한 목소리에 11시간 반 동안
생사를 걸었던 혹서(酷暑) 산행, 살인미수(?)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참으로 요상하고도 불가사의한 현상이다!
역경을 뚫고 무사히 생환한 우리 막가파들...
이래서 우리는 또, 거부할 수 없는 늑대의 유혹에다 우리의 온몸을 던지게 되는 것일까...?
*후렴.
정말 모두다 수고가 많았습니다.
늘 초인적인 벙개 때문에 눈총과 질시와 흠모를 한 몸에 받는 늑대대장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하여
헤진 발가락에다 체기까지, 모든 악조건을 극복하고 긴 산길 완주하신 아싸회장님,
씹어대는 신발의 저주를 끝까지 물리치신, 처음 뵙는 바이크 송님,
물소 같은 뚝심의 사나이 파우대장님,
화수분 같은 지구력에다 바다처럼 넓은 가슴을 지닌 고사리님,
도대체가 하나도 힘들지 않다는, 불가사의한 입술 내공을 지닌 재주 많은 미남님,
안개꽃 같은 미소로 환한 에너지를 전해주는 일취월장의 내공을 선보이신 공기공기 총무님,
바람 같은 내공이 무언지 한 수 가르쳐주신 처음 뵙는 강화도(탈레반누이)님,
시간이 없는데도 기꺼이 청계 구간을 응원해 주신 꽃순누이님,
모두모두 수고 만땅하셨습니다.
아참,
그리고 마지막으로...
늑대대장!
앞으로도 계속 살인미수(!)로 우리를 괴롭힌다면 300여 우리 회원 모두를 동원하여
촛불 들고 시위하러 광화문으로 달려갈 거여~~~
머시라고~? 맹바기 꼴 나도 본인관 상관 읎다꼬??? 에효.. 늑때에겐 공갈도 안 먹혀~~~~
...... (하는 수 없이) .......
“정말 고생했어요~ 늑때님! ”
(앞으로도 쭈욱~ 늑대의 유혹은 계속될 것 같습니다....... )
하오고개(13:45)-중계탑능선(14:25)-출발(14:40)-우담산(15:00)-바라산 진입로(삼거리)-
고기리갈림길(15:45)-바라산(16:05)-출발(16:30)-고분재-백운산(17:19)-출발(17:55)-
노루목대피소(18:25)-광교산시루봉(18:33)-출발(18:42)-용인수지도로(19:45)
광교산 구간(하오고개~용인수지지방도로) : 6시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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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등반을 하는게 아니라 봉우리만 딛고 건너 건너 날으셨군요! 대단한 경공술입니다. 잘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