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 새신자 교육을 하면서 구원이 얼마나 시급하고 얼마나 중요한지 성령님께서 제 가슴에 뜨거움을 주셨습니다. 저는 구원에 대해 가르칠 때 마다 알고 있는 성경구절이 생각납니다. 막9:48.....거기는 구더리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이 성경구절이 떠오르고 지옥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래서 천국과 지옥을 가르칠 때마다 막! 가슴이 뜨거워 한 영혼이라도 지옥에 보내서는 안 된다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을 항상 느끼고 있습니다. 이번 새신자 교육 제1과 “ 유일한 구원자 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면서 느꼈습니다. 지난 주 목우회 수련회기간 제 가슴에는 구원의 중요성에 대한 말씀이 머리에 떠나지 않고 스쳐 지나갔습니다.
함께 읽은 히브리서2:3을 보면 구원은 구원인데 큰 구원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수많은 구원의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출애굽사건이 대표적입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킨 구원이 민족구원이라면 성도 한사람 사람을 향한 개인 영혼구원이 시급한 구원입니다.
성경에서 구원이라는 단어가 476번이나 나옵니다...... “구원”이란 단어가 큰 구원으로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은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렸던 메시야로 통한 구원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아쉽게도 지금도 메시야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이 큰 구원을 누가 이루시고 성취하셨습니까?...... 메시야이신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 중에 최고의 선물이 독생자 예수를 우리에게 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선물인데 이 귀한 구원을 등한시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성도여러분!!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에 대한 교리에 대해 이떻게 말씀합니다..... 값없이 주신 은혜, 구원 이라고 했습니다.
롬3:24......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 엡2: 8......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이런 말씀들을 보면서 정말 은혜와 구원이 값이 없는 것일까?...... 성도여러분!! 가치 있는 보물을 감정을 메기는데 정말 귀한 보물은 감정가가 없어요 부르는 것이 값이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은 값을 메길 수 없으니까 값이 없는 거예요 구원이 싸구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초대교회 당시 성도들이 값없이 주신 구원을 받은 것에 감격 하는 것도 잠시뿐 시간이 지나서 너무 소홀히 생각하고 등한시 여겼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오늘 현대 크리스찬에게 질문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3박4일 동안 늘 함께 모인 목우회수련회 성도님께서 기도해주셔서 잘 참석하고 돌아왔습니다. 교회와서 친구부부가 하루 밤을 사택에서 함께 1박을 했습니다. 아침식사를 라고 커피가 생각이 나서 차를 한 잔 대접 해야 겠다 생각하고 얼마 전 처제가 녹차를 선물했는데 생각이 났습니다. 처제가 저에게 주면서 목사님! 이거 100만원짜리입니다. 말하면서 주더라구요 시누이가 하동서 사는데 전국에서 녹차전문가로 몇손가락 안에 들어 가는가 봐요 이름을 걸고 녹차를 만드니까요? 그래 주먹 만한 녹차한 봉지가 100만원이라하는데 저로써는 상상이 되지 않아요
그래! 아침에 친구내외를 대접한다고 방법도 모르는 녹차를 만들기 위해 부산을 떨었습니다. 그래도 격식은 아는지 집에 없는 것 같아서 교회주방에 녹차 잔 비슷한 걸 봤어요 잔을 가져와서 물을 끓여 붓고 녹차를 완성해서 한잔씩을 대접하는데 친구내외나 저나 녹차를 먹었으면 우와! 정말 100만원 짜리 녹차향이네 아! 이 맛이야 하며 고개를 끄떡이어야 하는데 모두다 무반응입니다........ 속으로 그랬습니다...... 늘 먹던 커피를 대접할 것인데......100만짜리 가치를 모르면 이런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주향성도여러분!! 내가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을 녹차 100만 짜리에 비교하겠습니까?
그러면 구원의 감격을 절제하지 마십시오...... 있는 그대로 받아드릴 때 성령님 오셔서 기름부어 주심니다. 은혜 주십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사실을 매일 매일 시인하며 살아야합니다.
롬10:9-10......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빌리 그래함 박사는 집회할 때마다 설교 후에는 올타 콜링(Altar Calling)이라고 해서 "구원으로의 초대"를 하여 초신자들을 강단 앞으로 불러내는 일을 하곤 합니다.
어떤 교인이 빌리그래함 목사님께 물었습니다. ...... "목사님은, 왜 매시간 이렇게 하곤 합니까?"라고 했더니 "예 나는 저 영혼들이 천당과 지옥, 생명과 멸망의 갈림길에 서 있는 모습을 볼 때에 마치 저 나이아가라 폭포나 그랜드 케년 절벽의 난간에 서 있는 철부지 어린아이를 보듯이 아찔한 느낌이 들곤 하기 때문에 매시간 물을 수밖에 없고 구원에로의 초청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영혼구원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시급한 것인가를 알고 매일매일 구원의 확신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이 시대에 살아가는 크리스찬들이 가져야 할 숙제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큰 구원을 등한시 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먼저....... 구원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1절.....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큰 구원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늘 들어왔던 말씀입니다. 구원에 대해 오늘만 들었습니까?....매일매일 말씀을 통해서 듣는 것이 구원입니다......그런데 이 구원을 등한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더욱 유념해서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목사로 통해 설교를 듣습니다......... 집에서는 말씀을 통독하며 개인이 읽습니다........ 성경공부하여 신앙을 성숙하여 나아갑니다.
그래서 매주 하나님말씀을 가까이 하는데 더욱 유념이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지난주 들었던 말씀이지만 오늘은 더 새롭게 귀를 기울리며 들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새신자교육때도 가르쳤습니다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은박이라든지 금박으로 좀 고급스럽게 하여 성도님들에게 공급하지만 엣날에는 주로 성경표지가 어떻게 되었는가하면 검정표지에 성경페이지에는 빨간색으로 물드려 출판되었습니다. 의미가 있는 것은 우리 죄가 성경책표지처럼 먹물같이 검은 죄인데 성경책페이지 빨간색처럼 예수님 보혈의 피로 구원받았다는 표시로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구원의 말씀으로 읽고 듣고 지키고 해야 합니다. 그래야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유념해서 듣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1절 하반절에 .... 흘러 떠내려간다고 했어요 말씀을 배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말씀의 배에 우리가 신앙의 밧줄을 메어야 합니다.
연평해전을 애국심을 가지고 본적이 있었는데 2002 6월 29일 월드컵때 일어난 사건입니다. 우리는 좋아가지고 온 나라가 4강 올라갔다고 달리법석인데 서해 연평도에서는 바다를 지키는 남, 북한 배에서 30분간 치열한 교전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전쟁시 선제공격을 할 수 없기에 북한의 동정을 살필 수밖에 없습니다. 당시 연평해전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남쪽을 향하여 계속 항진하는 북한 고속정을 보고 그냥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때 북한에서 먼저 선제공격을 하니까 당할 수밖에 없지요 뒤늦게 30분간 교전했는데 참수로호에 타고 있는 윤영하대위와 병사 6명이 죽고 20여명이 부상당했습니다.
사건이 종료된 후 사상자를 확인하는데 실종자가 있었습니다. 침몰한 배안을 수색하는데 침몰된 참수리호 배안에 조타수 한상국 하사는 부상중에 동료로 통해 자신의 몸을 키에 묶여 놓게하고 끝까지 방향키를 바로 잡으려는 몸부림을 치다가 결국 배안에서 순직하였습니다. .......... 이런 희생이 있었기에 더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참수리호와 함께 죽었지만 배의 방향을 잡으려는 몸부림이 우리에게 깊은 영적교훈을 제시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큰 구원의 말씀이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내 심령에 와닿고 부딪쳐야 하는데 그냥 흘러 떠내려 간다면 우리 영혼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붙잡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영혼이 삽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세속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성을 멸망하고자 하셨습니다. 천사들은 소돔성 멸망의 멧세지를 가지고 롯을 찾아 멧세지를 전했는데 롯의 사위들이 천사들이 하는 말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롯이 전한 말도 하나님 말씀인데 사위들이 하잖게 여긴 겁니다.
창19:14......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말씀을 농담으로 여긴 것은 말씀을 흘러 떠내려 보낸 것과 같습니다.
말씀 앞에 이런 태도가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롯의 사위들이 다 소돔과 고모라성이 유황불이 탈 때 함께 죽은 것입니다........ 말씀을 외면하고 농담으로 여겼기에 죽게 된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가 들을 말씀과 들은 말씀을 언제나 방해합니다...... 지금 말씀을 듣는 이 시간에도 듣기 싫게 만들고, 의심나게 만들고, 잊어버리게 만들고, 부인하게 만들고, 대수롭지 않게 취급을 하게 합니다.
2절 하반절에..... 공정한 보응처럼..... 말씀의 심판대앞에서 우리가 했던 대로 드려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늘 들었던 말씀 유념하고 사모합니까?....... 그냥 생각 없이 흘러 떠내려 보내며 무관심합니까? .......
노소영씨 하면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있습니다. 아버지 노태우 전 대통령, 어머니 김옥숙 여사, 남편 최태원 SK 회장 아트센터 나비 관장 이런 수식어가 따라다닙니다. 놀랍게도 새로운 수식어가 생겼습니다. 독실한 불교집안에서 '기도로 믿음의 가족을 일군 크리스천 노소영 아들 딸까지, 모두 믿음의 가족으로 이끌었다는 신앙의 소문이 인터넷을 타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노태우 전 대통령 내외분 병석에 있는데 이 어른들은 대통령 재임시 전국 사찰에 굵직굵직한 시주를 하는 등 독실한 불자로 소문난 분입니다. 그런데 극적으로 주님 품으로 돌아오는 회심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노소영씨가 기독교신문기자로 통해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데 저는 "교회를 들락날락한 지는 오래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한 것은 2005년부터였답니다. 신앙생활중에 예수님이 누군인지도 몰랐고 도대체, 예수님이 이해가 안 갔답니다. 마음에 뭔가 갈증이 있는데 교회를 가면 뭔가 안 맞기에 교회 갔다 나오고, 갔다 나오고… 반복하는 중에 어느 날 우연히 한 분을 만나게 됐답니다.
나와 전혀 상관이 없는 분이었는데 불쑥 다가오시더니, '나랑 같이 성경공부 해 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 성도님이 매주 저를 '멘토링(mentoring) 해줬습니다. 성경을 외워가야 했는데, 아주 무서웠고 성직자도 아니고, 유명하지도 않고, 조용히 섬기는 분이었는데, 이렇게 3년을 배우다보니,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확고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얼마 전 남편인 최태원 SK 회장이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아 교도소에서 나올 때 인터뷰를 하는데 성경책을 손에 쥐고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내인 노소영씨가 얼마나 기도하고 권면했겠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구원의 증거를 보여주는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언제 어느 때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구원의 확신을 가졌다면 이제는 체험된 신앙을 보여 주는 용기와 담대함이 있어야 합니다.
4절.......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베드로를 아십니까?......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아들입니다. 신앙고백의 모델입니다. 그러나 비자앞에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신앙이 들쑥 날쑥 했던 수제자입니다. 이런 베드로가 다시 회복된 것은 십자가와 부활을 믿고 오직 예수님을 위해 살았던 그가 구원에 대해 이렇게 초대교회에 증언 했습니다.
베드로 전서 3: 20......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구원 받은 자가 겨우 여덥명이라..... 우리 앞에는 구원받아야 할 사람이 우리 주변에는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를 출석하고 있다하여도 내가 구원받았는가 이 사실을 지나쳤다면 안타까운 심정으로 영혼 구원을 갈급하는 심정으로 기도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