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관정 스님의 모습을 영원히 남기고 싶었다.
대안(노정용, 대안조형연구소 대표)
1) 관정 큰스님의 얼굴을 석고로 뜨다.
“중국에서 극락 다녀오신 큰스님이 오셨으니 친견하십시오.”
2002년 봄 어느 날 여래선원에서 연락이 왔다. 나는 이 특별한 초대에 아내 선주 보살과 함께 여래선원에 가서 큰스님께 인사를 올렸다. 중국 스님이라는 생각을 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 우리 얼굴과 좀 달랐고 골상이 특이하셨다. 얼굴에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계셔서 아주 편안한 인상을 받았다. 우리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정수기라는 것을 받았다. 무엇인지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업장을 소멸해 준다고 이해를 했다.
큰스님을 친견하고 올 때 「극락세계 유람기」와 「정토선 정의」를 받아가지고 집에 와서 읽어보았다. 이 세상 누구도 체험하지 못한 극락을 다녀오신 스님의 스토리와 그 수행법을 읽고 나서 바로 직업의식이 발동하였다.
‘이런 큰스님은 반드시 얼굴을 떠 놓아야 한다.’
나는 조소를 전문으로 하는 조형 미술가이기 때문에 중요한 분의 초상조각이나 불상을 제작하면서 구체적인 표현을 해야 할 때는 늘 자료가 부족해서 애를 먹는다. 그래서 ‘이런 분들이 살아 계셨을 때 미리 얼굴을 떠 놓았더라면 이런 고생을 안 할 터인데!’라고 생각할 때가 허다하였다. 이런 측면에서 앞으로 동상을 만들어야 하는 유명하신 분들을 반드시 생전에 데드마스크를 떠놓아야 한다는 것이 평소 내 생각이다. 그런데 극락을 다녀오시고 세상을 두루 살피시며 큰 교화를 하시는 분을 어찌 후에 성상을 만들지 않겠는가! 그런데다 국내에 계시지 않고 친견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자료 확보가 중요하여 관정 스님의 얼굴을 떠놓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스님, 다음에 관정 큰스님 오시면 어려우시더라도 얼굴을 뜰 수 있도록 말씀드려 주십시오. 앞으로 귀한 자료가 되고 유용하게 쓰일 것입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데요?”
“하는 김에 손과 발까지 하려면 한 시간쯤 걸립니다.”
“큰스님이 허락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 번 말씀 드려보겠습니다.”
2) 여래선원 점안식에서 성공
어느 날 여래선원에서 이런 요청이 들어왔다.
“여래선원에 모실 아미타부처님 한 분 조성해 주십시오.”
본디 여래선원은 참선을 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관정 큰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정토수행으로 바꾼 뒤 아미타부처님을 모시기로 한 것이다.
‘여래선원 아미타부처님은 어떤 모습이 될까!’ 나는 작품 요청이 오면 늘 먼저 어떤 상호를 가지신 부처님으로 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 하는 것을 먼저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여래선원 아미타부처님 요청을 받자마자 바로 한 모델이 떠올랐다. 바로 곡성 관음사 관음보살좌상이었다. 관음사는 백제 분서왕 4년(301년) 성덕보살이 전남 벌교에서 관음보살상을 모셔와 봉안하여 창건한 남한 제일의 백제 고찰이며 내륙 유일의 관음성지로서 그 가치가 크다. 6.25 당시 공비들이 오래도록 이곳에 남아 관음사를 기지로 삼자 이들을 소탕하기 위해 사찰에 불을 지르게 됐고, 그로 인해 국보 제273호로 지정되어 내려오던 고려조건물 원통전이 불타고 그 안에 보존된 국보 제214호 관음보살좌상이 불에 타 머리 부분만 남아 있다. 고대소설 심청전의 원류로 추정되는 「관음사 사적기」(심청 원홍장 설화)가 순천 송광사에 보관되어 있으며, 관음사는 문화재자료 제24호이다.
관음사에서 불두 부분만 남은 관음보살을 복원하여 750불을 조성하여 모시는 불사를 할 때 그 복원을 필자가 참여했기 때문에 그때 썼던 원형 틀을 가지고 있었다. 이 불상은 강한 인상을 주는 고려 불상이나 선적 요소가 강한 조선시대 불상과 다르고 삼국시대의 맛이 나지만 삼국시대와도 다르다. 심청이 중국에서 가져왔다고 하는 전설이 있지만 중국의 불상과도 다른 아주 독특한 이미지다. 아마 심청이 용궁에서 모셔온 것이 아닐까!
요청을 받은 뒤 두 달간 정성들여 아미타부처님을 조성하였다. 우선 여래선원이 좁기 때문에 불상을 감실에 넣은 형태로 설치하였다. 그리고 2002년 11월 1일 여래선원에서 점안식을 갖는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울러 기다리던 희소식이 왔다.
“이번 점안식은 관정 큰스님께서 직접 해주시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점안식을 마치면 큰스님의 얼굴을 뜰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필요한 도구를 준비하여 점안식에 참석하였다. 작은 공간이지만 많은 불자들이 와서 방은 물론 바깥에도 꽉 찼다. 관정 스님 점안식은 한국의 사찰처럼 화려하지 않았지만 진지하게 진행되었다.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아주 독특한 점안식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관세음보살 인도로 극락을 다녀오신 분인데 얼마나 잘 하시겠는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점안식을 마치고 참석자 모두에게 마정수기를 해 주시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나도 선주 보살과 함께 마정수기도 받았지만 내 머리 속에는 온통 큰스님 얼굴을 뜨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대중들이 가고 몇몇 분만 남았을 때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준비해간 재료를 가지고 정말 조심스럽게 정성껏 작업을 시작하였다. 먼저 콜드크림을 얼굴에 발랐다. 석고가 살에 붙지 않도록 하는 것으로, 특히 눈썹에는 많이 발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눈썹이 몽땅 빠지는 불상사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코에는 종이를 동그랗게 말아 숨을 쉴 수 있도록 넣어야 한다. 고무그릇에 석고와 물을 부어 반죽을 한 뒤 나이프로 조금씩 떠서 얼굴에 발랐다. 그렇게 시간은 많이 걸리지 않지만 꼼짝하지 않고 누워있어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잘 참아주셨다. 얼굴을 마치고 손과 발을 떴다. 키가 작으시기 때문에 크지 않은 손발이지만 손금과 발금이 굉장히 특별하셨다. 한 시간쯤 걸려 모든 작업을 마치고 스님 고생 하셨습니다? 라고 말씀드리니까 모든 일이 끝나고 얼굴을 닦으신 뒤 큰스님은 말씀하셨다.
“이런 일은 처음이지만 마지막이다. 다시는 하지 않겠다.”
그러자 제자들이 말씀 드렸다. 나중에 필요할 터이니 한 번만 더 하시죠! 그러자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아니 더 못하겠다. 이제부터는 내 얼굴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겠다.”
그래서 웃음바다가 되었다. 나는 작업을 하는 도중 고승의 얼굴과 손발을 마음대로 만져보는 영광을 가졌지만 정말 조심스러워 긴장했는데 마지막에 이렇게 웃음으로 끝나니 정말 마음이 편하고 좋았다.
나모아미따불
나모아미따불
나모아미따불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