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은행 직원이던 이종암은 공금 1만5백원을 들고 만주로 망명했다. 이로써 이종암은 의열단 창단 주역이 되었고, 결국 일제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옥중에서 운명을 앞둔 그를 일제는 풀어주어 집에서 타계하도록 했다). 이종암이 계속 은행 직원으로 살았더라면 그의 인생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이처럼 인생에는 시시때때로 어느 순간 '시작점'이 나타난다. 오늘도 그 시작일이다. (사진은 동생 이종범이 쓴 "이종암전"의 표지)
1519년 9월 20일 포르투갈 출신 항해가 마젤란이 에스파냐 산루카 항에서 세계일주를 향한 첫 발을 내디뎠다. 1875년 9월 20일 일본 운양호가 강화도에 무력 침공해 강제 문호개방과 식민화 야욕의 서곡을 노골적으로 공개 천명했다.
1945년 9월 20일 미군정청이 서울에 문을 열었다. 1946년 9월 20일 제1회 칸 영화제가 개막했다. 1971년 9월 20일 이산가족찾기 예비회담이 판문점에서 처음으로 열렸다. 1995년 9월 20일 제1회 광주비엔날레가 막을 올려 11월 20일까지 계속되었다.
1년 365일 중 어느 날을 막론하고 어떤 일이 시작되거나 누군가가 태어나지 않은 날은 없다. 모든 날은 다 누군가에게는 첫날이다. 뿐만 아니라, ‘나’와 아무 연관이 없는 듯이 여겨지는 하루 중에도 인류 개개인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 날도 많다.
앞에 거론한 9월 20일의 역사 중에도 그런 날은 하루이틀이 아니다. 마젤란은 세계일주 중 필리핀에서 죽었지만 온몸으로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증명한 그의 일행의 노력으로 그 이후 인류사는 바뀌었다. 그 바뀐 역사 속을 ‘나’가 살아가고 있다.
운양호로 시작되는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사는 지금으로부터 멀게는 150년가량, 가깝게는 1945년 이후 77년 전의 ‘옛’일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민초들이 살아가는 현실의 곳곳을 친일파 후손들이 장악하고 있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순국한 분들을 위해 조성된 '신성한' 국립묘지에도 반민족행위자들이 거드름을 피며 누워 있다.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이 있다. 마젤란 일행은 출항을 함으로써 지구를 한 바퀴 돌았고, 이산가족찾기 예비회담을 가짐으로써 남과 북에 흩어져 오랫동안 소식조차 알지 못하던 혈육이 만나게 되었다. 칸 영화제와 광주 비엔날레는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반면, 잘못된 시작으로 무수한 사람들을 고통의 늪에 밀어넣은 일들도 드물지 않았다. 일본제국주의의 한반도 강점은 미군과 소련의 한반도 진주를 낳았고, 이는 남북분단과 한국전쟁을 태생시킨 ‘악의 축’이 되었다. 그들은 양사언의 시조 “태산이 높다 하되”를 일찍이 학습한 것일까? 자신들의 무지막지한 계획을 무턱대고 밀어붙였다.
양사언의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라는 시조는 쉬운 내용, 순우리말 사용,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교훈을 담은 명품 시조이다.
그러나 양사언의 시조를 ‘하면 된다’ 류의 군대식 지침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세상에는 시작하면 안 되는 일들도 많다. (*)
이 글은 현진건학교가 펴내는 월간 '빼앗긴 고향'에 수록하기 위해 쓴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투고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