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래서 끝까지 숨기나..' 드디어 찾은 발해 황후 묘를 중국이 끝까지 숨기는 이유 | KBS 역사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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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황후 묘지에 새긴 '동국'…"'당 지방정권' 주장 맞지 않아"
송고2025-09-05 17:42
https://www.yna.co.kr/view/AKR20250905147400005
동북아역사재단, 20여년 만에 발간된 효의·순목황후 묘지 분석울씨 등 새로운 성씨 확인…문왕 가족 관계 등 역사의 '빈칸' 주목"보고서, 당나라 영향 강조하기도"…향후 발해사 연구에 도움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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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의황후 묘지(왼쪽)와 순목황후 묘지(오른쪽)
'룽터우산(龍頭山·용두산) 발해왕실묘지: 1997, 2004-2005, 2008년 발굴보고'를 분석한 발표 자료에 실린 사진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우리 황제의 성스럽고 밝은 교화는 태양이 비추고 하늘이 임한 것 같고, 우리 황후의 현명하고 지혜로운 계책은…."(효의황후 묘지)
2004∼2005년 중국 지린성(吉林省)에서 발해의 흔적이 확인됐다.
발해시대 고분군 유적인 룽터우산(龍頭山) 일대에서 찾은 3대 문왕(재위 737∼793)의 부인인 효의황후, 그리고 9대 간왕(재위 817∼818)의 부인 순목황후의 묘지였다.
돌로 만든 묘지에는 무덤 주인의 생애는 물론, 발해의 역사도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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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황후의 묘지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5일 서울 서대문구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최근 중국에서 발간된 '룽터우산(龍頭山·용두산) 발해왕실묘지: 1997, 2004-2005, 2008년 발굴보고' 보고서의 주요 내용과 의의를 분석하는 학술회의가 열리고 있다. 사진은 묘지와 묘지 탁본을 확대한 것. 2025.9.5 yes@yna.co.kr
당시 발해인들은 당나라 즉, 중국과는 구분되는 '동국'(東國), '발해국'(渤海國)이라는 명칭을 쓰고 황제국의 체제를 갖췄다는 분석이 나왔다.
권은주 동북아역사재단 선임연구원은 5일 서울 서대문구 재단에서 열린 '룽터우산발해왕실묘지: 1997, 2004-2005, 2008년 발굴보고' 분석 보고회에서 이런 의견을 밝혔다.
권 선임연구원은 최근 중국에서 발간된 보고서를 확보해 내용을 분석하고, 묘지에 새겨진 글자를 1차로 판독했다. 조사·발굴 이후 20여년 만에 나온 보고서다.
효의황후의 묘비는 너비 52㎝, 높이 94㎝, 두께 28㎝ 크기로, 19행에 걸쳐 총 981자가 새겨져 있었다. 형식과 문양은 문왕의 딸이자 앞서 발견된 정혜·정효공주의 묘지와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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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고분군 발굴 보고서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5일 서울 서대문구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최근 중국에서 발간된 '룽터우산(龍頭山·용두산) 발해왕실묘지: 1997, 2004-2005, 2008년 발굴보고'의 주요 내용과 의의를 분석하는 학술회의에서 공개된 보고서. 2025.9.5 yes@yna.co.kr
순목황후의 묘지는 너비 34.5㎝, 높이 55㎝, 두께 13㎝였으며 141자가 확인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두 묘지는 775년과 829년에 각각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권 선임연구원은 묘지에 각각 새겨진 내용을 토대로 "효의황후의 성씨가 '울씨'(欎氏), 순목황후의 성씨가 '태씨'(泰氏)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울씨'라는 성은 흔히 알려진 사례가 아니다. 권 선임연구원은 선비·말갈계 발해인일 가능성을 언급하며 "고구려와 발해는 여러 종족이 모인 국가"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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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주 동북아역사재단 선임연구위원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5일 서울 서대문구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최근 중국에서 발간된 '룽터우산(龍頭山·용두산) 발해왕실묘지: 1997, 2004-2005, 2008년 발굴보고' 보고서의 주요 내용과 의의를 분석하는 학술회의가 열리고 있다. 사진은 권은주 재단 선임연구위원이 발해 황후 묘비 발견과 역사적 의미를 설명하는 모습. 2025.9.5 yes@yna.co.kr
묘지 내용은 역사적으로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권 선임연구원은 "두 묘지 내용을 보면 황제와 관련한 칭호가 나오고, 연호를 쓰고 있으며 중국과 공간적으로 구분되는 '동국' 의식이 확인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순목황후의 묘지는 명칭부터 '발해국'으로 시작된다"며 "당나라와 무관하게 국명을 표기한 것으로 '발해는 당나라의 지방정권'이라는 주장을 반박하는 근거"라고 봤다.
그러면서 "중국 학계에서 주장하는 이른바 '통일적다민족국가론'을 반박할 근거가 이번 묘지 발견과 연구로 확보됐다고 볼 수 있다"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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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고분군 발굴 보고서는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5일 서울 서대문구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최근 중국에서 발간된 '룽터우산(龍頭山·용두산) 발해왕실묘지: 1997, 2004-2005, 2008년 발굴보고' 보고서의 주요 내용과 의의를 분석하는 학술회의가 열리고 있다. 2025.9.5 yes@yna.co.kr
두 묘지는 발해 황실 가계도를 추론하는 데도 주요한 자료로 꼽힌다.
권 선임연구위원은 "무덤의 배치, 생몰년도 등을 고려하면 (문왕의 딸인) 정혜공주는 효의황후의 소생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발굴 조사 이후 20여 년이 지나 보고서가 공개됐으나, 연구가 더 필요한 부분도 있다. 효의황후 묘지에 적힌 '진릉대'(珍陵臺)가 대표적이다.
묘지에는 '그해 겨울 10월 24일 갑신에 진릉대에 천장(遷葬·무덤을 다른 곳으로 옮김)'했다는 문구(其年冬十月卄四日甲申, 遷葬於珍陵台禮也)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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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룽터우산 고분군
(서울=연합뉴스) 중국 지린성(吉林省) 허룽시(和龍市) 룽하이촌(龍海村)에 있는 발해시대 고분군 유적인 룽터우산(龍頭山) 고분군 중 2004∼2005 발굴작업에서 M3로 명명된 고분. [연합뉴스 자료사진]
권 선임연구원은 "기존에는 '진릉'을 고왕 즉, 대조영(재위 698∼719) 또는 무왕(재위 719∼737)의 능으로 추정했는데 최근 중국 학계에서는 지명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당대 문자 자료가 많이 남아있지 않기에 추가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진릉대와 진릉이 어떤 뜻으로 쓰였을지를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다. 아직 1차 판독만 이뤄진 만큼 추가 연구를 통해 일부 글자를 새롭게 읽을 수도 있다.
보고서는 발해사의 '빈 곳'을 채우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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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의황후와 발해 황실 가족 혈연 추정도
권은주 동북아역사재단 선임연구원 연구 자료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권 선임연구원은 "고왕·무왕·문왕·간왕 등 전기 발해 왕의 무덤 위치 비정, 발해 황제국 체제와 천하관 등 발해사 연구에 새로운 활력을 제공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조사·발굴 부분을 검토한 김은옥 한국전통문화대 강사는 "보고서에서는 중원 즉, 당나라의 영향성, 혹은 유사성이 자주 언급된다"고 짚었다.
그는 "그러나 고분군 내 각 구역의 무덤 구조나 축조 방식, 출토 유물, 와당을 비롯한 건축 재료 등 발해만의 특색을 설명한 부분도 많은 편"이라고 봤다.
그는 "연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통해 각종 편년을 연구하거나 다른 발해 고분군과 비교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 성과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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룽터우산(龍頭山·용두산) 발해왕실묘지 발굴 보고서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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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황후 묘지서 ‘동국’ ‘발해국’ 표현 확인… “中과 다름을 인식” 동북공정 반박증거 평가
2004년 중국 지린성 룽터우산에서 발견된 발해 효의황후 묘지(왼쪽 사진)에선 중국과 구별된다는 발해의 자기 인식이 담긴 ‘東國(동국)’(가운데 사진 점선 안) 표현이 확인된다. ‘발해국 순목황후 묘지명’(오른쪽 사진)도 발해의 황제국 체제를 보여준다. 사진 출처 ‘발해 용두산 왕실고분 발굴 보고서’2004년 중국 지린(吉林)성 허룽(和龍)시 룽터우산(龍頭山·용두산)에 있는 발해 왕실 고분군에서 발견된 효의황후와 순목황후 묘지(墓誌)에 ‘동국(東國)’ ‘발해국(渤海國)’ 등의 표현이 담긴 것으로 확인됐다. 발해인들이 중국과 자신을 뚜렷이 구분하는 인식을 지녔음을 보여주는 한편 ‘발해는 당나라의 지방 정권에 불과하다’는 중국 동북공정의 주장을 반박하는 증거로 평가된다.
권은주 동북아역사재단 선임연구위원은 5일 재단이 개최한 ‘발해 용두산 왕실고분 발굴 보고서의 주요 내용’ 보고회에서 “동국은 ‘해동(海東)’ ‘아방(我邦)’ 등과 함께 우리 역사에서 중국과는 지역적으로 구분된다는 인식의 표현으로 사용됐다”며 “발해도 이 표현을 썼다는 게 효의황후 묘지에서 처음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효의황후는 발해 제3대 왕인 문왕의 비로, 묘지엔 “덕은 동국에서 높고, 용모는 서시(西施)와 견준다”는 구절이 담겼다.
중국 측은 중국 정사가 고구려와 백제, 신라 등을 ‘동이열전(東夷列傳)’ 등에 편찬한 데 반해 발해는 ‘북적(北狄)’으로 분류했다며 발해사를 말갈의 역사로 본다. 하지만 이는 사서를 편찬한 중원의 인식일 뿐이라는 점이 이번 묘지를 통해 드러났다고 권 연구위원은 분석했다.
예컨대, 발해 제9대 간왕의 황후 순목황후 묘지는 아예 제목이 ‘발해국 순목황후 묘지명’이다. 권 연구위원은 “발해가 스스로를 중국 천하질서의 일원으로 인식했다면 ‘유당(有唐·당나라의) 발해’ ‘대당(大唐) 발해’ 등으로 썼어야 한다”며 “중국 측의 이른바 ‘통일적 다민족국가론’과는 배치되는 자료”라고 강조했다.
발해가 황제국 체제를 지녔음을 뒷받침하는 내용은 더 있다. ‘황후’라고 불렀을 뿐 아니라 순목황후의 죽음은 황제와 황후에만 쓰는 ‘붕(崩)’으로 표현됐다. 효의황후 묘지엔 “성조(聖朝)에 충성을 다했다”는 구절이 있다. ‘성조’는 통상 황제국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묘지를 통해 효의황후가 울(欎)씨, 순목황후가 태(泰)씨라는 점도 밝혀졌다. 발굴 보고서가 발간되자 효의황후가 중원계라는 해석도 나왔으나, 권 연구위원은 “희성(稀姓)인 울 씨는 북방계가 주로 사용하던 성 씨”라며 “효의황후는 선비나 말갈계일 것”이라고 했다.
중국은 1997∼1998년, 2000∼2005년, 2008년 룽터우산 일대에서 발굴조사를 벌였지만 보고서를 내놓지 않다가 최근에야 뒤늦게 간행했다. 이에 국내 학계 일각에선 ‘중국 당국의 기조와 맞지 않는 발굴 내용을 감추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보고서는 “해석은 우리와 다르지만 발굴 내용은 비교적 충실히 소개한 것으로 보인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김은옥 한국전통문화대 강사는 이날 보고회에서 “발굴 보고서는 발해 문화의 독창성과 함께 ‘당(唐) 문화의 영향’을 강조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석축묘, 횡혈식 석실묘, 천장의 구조 등 묘제(墓制)와 연화문 와당, 토기, 관식(冠飾) 등 유물은 고구려 문화와의 유사성이 확인돼 추후 관련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