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명의 시작 단계에서 보여지는 성인들의 그림이나, 시지각의 초기 단계에서 발생하는 어린이들의 무수히 많은 드로잉과 페인팅을 다루는 미술사의 기술과 미학적 조명에는 아직도 미해결의 해석학적 오류, 또는 변증법적 모순으로 남아 있는 해묵은 과제들을 도처에 남겨 놓고 있다. 관점을 달리할 때마다 새로운 국면이 발생하는 미술의 궤적은 역사 서술의 문제아일 뿐더러, 호흡을 지속하는 생물학적 대상이기도 하다. 미술사는 인간 역사의 살아있는 삶이며 흔적인 이유이다.
그들이 보여주는 표시ㆍpresentation와 표현ㆍrepresentation 속에는 문자그림ㆍcalligram과 철자의 유희ㆍanagram가 있으며, 다양한 형태의 그림퀴즈인 드루들ㆍdroodle과 수수께끼ㆍriddle, 퍼즐ㆍpuzzle화와 미로ㆍlabyrinth, 또는 일정한 의도 혹은 무의식의 관념까지도 내포하는 선묘화ㆍ doodling drawing가 있다. 또한 약화의 의미로 기술되는 썸네일 스케치ㆍ thumbnail sketch, 나아가서는 기괴한ㆍgrotesque 형상의 轉移를 보여주는 메타모르포즈ㆍmetamorphose 와 아나모르포즈ㆍ anamorphose 의 애니메이트한 형상의 그림들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그리고 한국(동양)의 佛畵와 俗畵, 民畵를 대할 때마다, 그것들은 原形의 전설처럼 우리의 마음을 무한의 초월성으로 설레게 한다.
왜냐하면 그 속에는 이미 만화의 에센스적인 요소를 충분히, 그리고 정확하고도 세련되게 포착하여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 곳에는 최근 만화의 修辭法이나 기법으로도 제기할 만한 가치와 속성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예를 들면 캐리커쳐ㆍcaricature, 캐릭터ㆍ character, 알레고리ㆍallegory, 유머ㆍ humor, 풍자ㆍstatire, 비평ㆍ critic, 패로디ㆍparody, 패스티시ㆍpastiche, 오마주ㆍ hommage 등의 형식이 그것이다.
【그림 1】Tassili n′Ajjer (Africa)의 <동굴벽화>; 머리에서 몸통, 사지에 이르는 인물의 전신 프로필은 대담한 생략과 과장을 보이는 세련된 캐리커쳐로서, 현대의 미술가들을 뛰어넘는 직관력과 자발성을 가진 카투닝(catooning: 만화로 표현하기)이다. ( Randall P. Harrison, 「The Catoon : Communication to the Quick」, Sage Comm Text Series, Vol. 7, 1981., 하종원 譯, 「만화와 커뮤니케이션」, 이론과 실천, 1989, p. 71)
【그림 2 】스페인 동부연안의 동굴벽화, <사슴사냥> : 급히 내닫는 사냥꾼과 사슴의 특징묘사가 두드러진 매우 역동적인 묘화의 벽화로, 한 마리의 사슴은 미완성이다. 진흙, 꿀, 동물의 혈액 등을 혼합하여 그림 (스페인 동부Huesca주로부터 서쪽으로 130km에 걸쳐 Cuenca주에 까지 이름). B.C. 40,000~10,000 년에 걸쳐 제작이 추정되는 동굴의 암굴 벽화이다(Antonio Beltran, 「Felskunst der Spanischen Levante」, Lubbe, 1982., p.36).
원형만화의 오래된 사례를 들자면 일찍이 아프리카【그림 1】 와 유럽 등지에서 발견되었던 선사시대의 동굴벽화【그림 2】, 이집트의 파라오와 귀족들의 묘지 벽화【그림 3】나 석회석으로 된 浮彫畵【그림 4-ⓐ,ⓑ】에서는 당대의 정형화된 양식에서는 일탈된 표현으로 현대적인 캐리커쳐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거나 오히려 세련된 표현을 보여주는 만화의 오래된 원형들이다.
【그림 3 】, <투트모시스 3세의 묘>; 파라오가 ‘아문’ 신에게 제물(향)을 바침. c . B.C . 1440년경 (카이로, 이집트 미술관). 프로필의 인물 묘사와 더블어 아이코닉 심볼의 서사구조는 글과 그림이 융합된전형적인 고대 이집트의 벽화 양식이다. (Mit einem Ausblick auf die Zukunft von Robert Jungk,「Caronik」: der Menschheit, Chronik Verlag, 1984, p. 46)
【그림 4 - ⓐ】, : 위엄을 갖춘 파라오의 변모라기 보다는 한 인간의 두상 프로필에서 나타나는 인간미를 두툼한 입술과 과장된 턱속에 담고 있다. 이는 곧 캐리커쳐이자 캐릭터의 시각적 전형이다. 석회석 浮彫, 높이 ; 14cm B.C. 1360 년경, 베를린 국립미술관, <이집트관>, (E. H. Gombrich, 「The Story of Art」, Phaidon, 1995, p.39)
【그림 4 - ⓑ】, <아큰아톤 왕과 왕비>, 제 18왕조 ; 왕자를 팔에 안고 어르는 왕과 공주를 무릎에 앉힌 왕비의 모습은 서민적인 부부의 면모를 그린 것으로 이채롭다. 현대의 텍스트 만화에서 보여주는 대화나 지문ㆍstage direction, 말풍선 등의 원형을 보여주는 좋은 선례이다. 석회석 浮彫. (Harold Spencer , 「The Image Maker」, Scribners , 1975 ., p 348)
【그림 5】, Egypt ,수도 카이로에서 남서쪽으로 400 km가량 떨어진 바하리야 오아시스의 중심도시 ( 바위티에서 1.6 km 쯤 떨어진 계곡)에서 발견된 미이라의 <데드 마스크>; 금으로 된 가면을 쓰고 화려한 모자와 어깨에 걸친 <板紙畵>를 앞에 차고 누워있는 평민(부호)의 주검이다. 이 판지화에서는 주인공의 생전기록을 수직의 장식 프레임 안에 화려한 채색과 더블어 전개하고 있다. c. A.D. 4~5세기 경(1999. 10월호「과학동아」, p. 42)
또한 각종의 장신구 또는 미이라에 그려진 板紙畵【그림 5】, 마야인들의 그림문자와 수리개념의 展開圖【그림 6-ⓐ,ⓑ】, 통일신라 초(A.D. 7세기 후반)의 金庾信 墓石의 <十二支神像>【그림 7】에서 우리는 시공을 넘어 초월성을 띤 캐릭터와 의인화된 수호신ㆍ Animal Guardian들을 대할 수 있다.
【그림 6 - ⓐ】, 멕시코 ; 마야족의 한달( 20일), 도상적 상징 수리개념의 아이콘. A.D 7세기 조각 (Georges Nataf 「Symboles, Signes et Marques」, Berg International, Paris, 1981.,김정란 譯, 「상징, 기호, 표지」, 1995, p. 251)
【그림 6 - ⓑ】, <코판의 돌기둥>D에서 나옴, 혼두라스, Maya 8세기, 이 패널(달력)은 고전 마야시대의 기념비에서 복사한 것이다. 맨 위 왼쪽의 그림문자는 수치를 가지지 않으나 오른쪽 사람의 모습은 14만 4천이라는 숫자를 나타내는 짐을 지고 있는데 이 숫자에다 9를 나타내는 사람의 얼굴의 값으로 곱해야 한다. 두 번째 줄은 7200×15와 360×5를 의미한다. 이 숫자를 다 더하면 140만 5천 8백이 되는데, 이것은 B.C.3113년에 시작하는 마야인의 캘린더 날짜를 세어 나갈때의 숫자이다. 그 날자는 A.D. 736년의 어느날이다. 인물은 모두 옆 얼굴을 보이고 있는데 그 연유는 신체의 각 부위(턱의 점, 고인 손, 앙상한 아래턱 또는 두건 등)에서 모두 숫자를 뜻하므로 평면 프로필을 유지시키고 있다. 오늘날 옴니버스형의 카툰, 연재 또는 서사만화의 내용과 형식을 취하는 카투닝의 원형으로 손색이 없다. (Marie - Louise von Franz, 「Time」, 윤원철 驛 , 「시간」평단문화사, 1986, p. 80)
【그림 7】경주. 김유신묘지석. <十二支神橡>. 浮彫탁본 : 의인화된 동물들은 각기 수호신상ㆍanimal guardian이 되어 그 역할을 다 하는 주술적인 캐릭터들이다. 하나 하나가 '포트폴리오'화 되어 현대인의 의장 감각에도 손색이 없다. 조선조에는 민화나 무속화로도 착색되어 누각이나 법당, 신전에 안치되기도 했다. 한국미술사상의 빼어난 걸작이다. (A.D. 8세기경.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4권,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3., p.213)
뿐만 아니라 A.D.11~12세기 경의 <트라쟌의 기둥ㆍTrajan's colum>【그림 8ⓐ,ⓑ】에서는 3차원의 필름 띠(부조ㆍ relief 기둥)를 통해 로마군의 정복사를 , <바이유의 태피스트리ㆍ Bayeux tapestery>【그림 9】는 70m에 달하는 1066년의 노르만 정복사를, 멕시코 원주민들의 <그림설화ㆍ Codex Nutall>에서는 아코디안 식으로 접히는 사슴가죽 위에 그들의 정복담을 각각 펼치고 있다.
【그림 8 - ⓐ】, Rome( A.D. 106 ~ 113년경 제작), 대리석, 기단석의 높이 ;127cm ( E.H. Gombrich, 「The Story of Art」, Phaidom, 1995., 백승길, 이종숭 共譯, 「서양미술사」, 예경, 1999, p. 122)
【그림 8 - ⓑ】, <트라쟌의 기둥> :로마군의 정복담을 부각한 나선형의 프리이즈는 하나의 연속된 애니메이트로서 군의 전략, 병기의 규모와 구조등을 상세히 기록한 3 차원의 필름 띠이다. 이는 곧 실재하는 공간속의 ‘원형만화’로서 시ㆍ공간적 이동을 병행하는 서사구조 이기도 하다. 浮彫(부분)畵. ( E.H. Gombrich, 「The Story of Art」, Phaidom, 1995., Ibid., p. 123)
【그림 9】Bayeux tapestery . (Norman conquest of 1066) , 아마길위의 양보실 자수 H:50.8 * W:70m, ( 바이유 시청 Hall) (H.W. Janson, 「History of Art」, harry N.Abrams. 1977, 김윤수외 역, 「미술의 역사」, 삼성출판사.1978, p.262)
한편 티?에서의 A.D .8~10세기 경으로 추정하는 <十象圖>, 중국 宋代 린지ㆍ 臨濟의 <普明>, 까꾸어안ㆍ 廓掩의 <尋牛圖>【그림 10】, <十馬圖>, <十牛圖>, 그리고 A.D.10세기 경 작자 미상인 高麗의 <普明十牛圖>【그림 11】는 10프레임의 목판화로, 道를 찾아 깨달음의 세계로 나서는 佛者의 覺悟를 그리고 있다.
【그림 10】, 확암(廓庵)의 <심우도ㆍ尋牛圖>; 佛國의 覺悟와 得道, 깨달음의 경지를 그림 佛畵이다. 사찰의 외벽에 그려진 10 패널의 그림으로 3차원의 실공간에 몸을 담은 만화의 원형이자, 텍스트만화의 '연속적 기능ㆍsequential function'을 보이는 선행하는 실예이다.(경북 금릉군 소재의 직지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4권, 한국정신문화 연구원, 1993, p. 172
【그림 11】고려시대, <普明十牛圖>, 木版ㆍwood-cut; 이 그림은 10개의 패널 속에 글과 그림을 병렬하여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긴밀히 유지하는 틀림없는 '텍스트 만화'의 원형이다. 일본의 <금수극화>보다 무려 200년이나 앞서 있음에도, 작자와 연대미상의 기록 부재로 말미암아 국제만화계의 공인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A.D. 10세기경 최열, 「한국만화의 역사」.열화당.1995. p.10)
이러한 글과 그림들은 그 후 사찰의 외곽, 즉 대웅전의 출입문을 제외한 3면이나, 법당의 내부에 벽화로 그리고 있는 엄연한 3차원의 현실공간에 그 처소를 두었던 것으로, 서사만화의 원형으로 볼 수 있다.
또한 12~13세기 일본 교토의 도바쇼조(鳥翼僧井)에 의해 그려진 <禽獸劇畵ㆍ Animal Scrolls>【그림 12-ⓐ,ⓑ】는 2권의 두루마리ㆍ roll형식을 갖추어 보이고 있으며, 그 속에는 의인화된 동물들이 등장하여 상징, 기호, 표지로서의 서사구조를 띠고 있고, 이를 일컬어 일본인들이 세계 최초의 劇畵ㆍ manga라는 주장은 곧, M. Horn의「The World Encyclopedia of Cartoons」(1980年刊)에도 수록이 되어 공인 받고도 있다.
【그림 12 - ⓐ】, 도바쇼죠(鳥익僧正) <금수극화ㆍ禽獸劇畵> 높이 12인치, 2권의 두루마리(roll), 12세기 후반.
【그림 12 - ⓑ】,윗 그림의 부분화, <개구리 대왕을 알현하는 원숭이>의 擬人畵, (Harold Spencer, 「The Image Maker」, Scribners, 1975, p. 576)
이처럼 원형만화ㆍProto Cartoon & Comics는 일찍이 그 형식과 내용을 다른 어느 예술 장르보다 선취하거나 공히 다루어 왔음에도 만화의 지위와처지는 예술사의 아웃사이더, 혹은 마이너리티가 되어 문학과 미술, 연극과 영화의 주변을 배회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물론 최근에 와서야 상황이 많이 달라져 있다고는 하나, 아직도 만화의 위상은 취약하고도 많은 미학적 약점이나 허점을 안고 있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 두 가지를 확인할 수 있다. 우선, 감상객과 독자를 비롯하여 소수 전문인들의 만화 매체의 속성에 대한 불신과 회의, 그리고 편견을 들 수 있다. 어째서 미술사의 흐름은 현실성ㆍreality과 추상성ㆍ abstraction을 주류로 했을까? 그로테스크와 풍자의 매너리즘, 패러독스와 유머의 항시적 표현을 경원시 했을까? 이 문제는 바로 현대미술 비평의 과제(R. Rausenberg)이기도 하고, 만화를 '표현매체로 상정해야만 하는 필연적 귀결이기도 하다.
또 하나는, 만화가들 스스로가 가벼운 <주제ㆍtheme>와 부담없는 <기술ㆍArt>의 '한계상황'을 자초한 그들의 편협성(E.H. Gombrich)을 목격하게 된다. 근대 이후, 어째서 만화가들은 유의미한 주제와 모티브를 취하지 않고, 폭력성과 선정성, 통속성과 상투성을 그려 왔을까? 이에 따라 작가의 독창성과 작품의 오리지날리티는 관심 밖의 것으로, 호사가들의 고급 취미정도로 여기게 되었고, '예술 의지ㆍkunstwollen'나 의욕은 경지와 반열에 대한 일탈심리로 반작용이 일어나지는 않았을까? 왜냐하면 그들은 타고난 공화주의자들이거나, 혹은 민중의 편에서 체제에 저항하는 논콘포미스트들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대중의 편에서, 마이너리티의 사회문화적 갈등을 적당히 해소하며, 그들의 취미와 기호에 영합하여 安心立命을 취하는 대중문화의 영웅(?)들이거나, 행위에 대한 보상의 유무로 행동을 결정하는 탤런트의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1960년대에 U. 에코는 만화를 일컬어 '가장 세련된 공업제품'이라 한 언급은, 근대 이후 150여년 동안 갖혀 지낸'텍스트 만화'의 시ㆍ공간적 속박을 잘 표현한 그럴듯한 말이다.
최근(1995년 이후)의 컴퓨터 모니터를 통한'디지털 만화'의 출현은 바로'텍스트 만화'의 2차원적 시ㆍ공간의 열람성과 보존성을 뛰어 넘는 그래픽 문법의 새로운 영역으로 전개될 공산이 크다. 이제야 비로소 만화 작가들은 <새로운 옛 것>과 <옛 것의 새로움>이라고 하는 저 곤혹스러운 미증유의 공간에서'예술 의욕'을 소진할 때 만이 현대 예술문화의 대안적 가능성으로 다가 설 것이다.
우리는 일찍이 역사적 사실의 기록으로부터 풍자와 유머, 비평과 해학의 서사구조를 갖는 벽화와 3차원적 조형물로부터 무수히 많은 캐리커쳐와 캐릭터들에 이르는 서양 만화의 원형을 보았다. 또한 佛畵와 민화, 속화, 초상화등이 건축물의 외벽이나 서첩, 화지 위에서 보여지는 동양 만화의 원형에서는 위에서 열거한 만화의 에센스적인 요인들(글과 그림의 결합방식, 텍스트와 이미지의 상관관계등)이 밀접하고도 긴밀하게 전개되고 있었음을 환기하고 주지해야만 한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시인하고 호응할 때, 우리는 진정으로 만화의 문호를 활짝 열어 제치는 혁신성과 풍요로움을 유지할 수 있으며, 인간의 감정과 감각을 다듬고 해소하는 마지막 시각예술의 표현매체로서 만화의 사회문화적 기능과 역할을 기대할 수 있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