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로스 카스타네다는 자신의 책들에서 무당인 돈 쥬안에 대해 서술합니다.
돈 쥬안은 앎의 적들에 관해 설명합니다.
네 개의 적들입니다.
앎의 첫번째 적은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을 극복한 사람은 앎을 잃을 수 없습니다
다음 적은 명확입니다.
명확을 극복한 사람은 다음 적인 권력을 만납니다.
권력도 극복한 사람은 마지막 적을 만납니다.
이 적은 온전히 극복될 수 없습니다.
이 적은 고요에의 욕구입니다.
조금 더 설명하겠습니다.
가족세우기 일을 하는 사람들이 갖는 두려움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가장 두려워 합니까?
다른 사람들이 가족세우기 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말하는 것을 두려워 합니다.
여러분도 감지 할 수 있습니까?
제가 두려움을 가졌다면, 저는 이 일을 서술할 수도 그리고 전세계에 퍼뜨릴 수도 없었습니다.
이 두려움이 가장 널리 퍼진 두려움입니다.
이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아이로 머뭅니다.
다른 두려움은 의뢰인을 잃을가 하는 두려움입니다.
누가 이 두려움을 갖는다면, 영이 그를 새로운 인식과 모험으로 이끌겠습니까?
그러기에 가족세우기에서 결정적인 단계는 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제가 죽으면, 가족세우기에 무엇이 발생할까,
하면서 두려움을 갖습니다.
무엇이 발생하겠습니까?
제가 이 두려움을 갖는다면, 제게 무엇이 발생하겠습니까?
죽어도 기억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유산을, 영적인 유산을, 보호하려고 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영의 움직임에 있습니까?
새로운 인식에 그들이 열려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두려움은 여러 층을 갖습니다.
저는 아주 깊은 욕구를 갖습니다.
그러면서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저는 제가 잊게되는 욕구를 갖습니다.
그럼 저는 자유롭습니다,
온전히 자유롭습니다.
이게 앎의 첫 번째 적인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의 적을 극복한 사람은 앎을 잃을 수 없습니다.
두려움을 넘은 사람은 결정적인 단계를 건넜습니다.
그는 명확을 얻습니다.
두려움을 극복했기에, 그는 명확을 잃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명확이 다음 적입니다.
그럼, 무엇이 이 지식에서 옳고 그른지 확정되며, 모두 따라야 할 과정이 정해집니다.
명확이 확정되고, 정통이라고 명명됩니다.
그런 다음엔 앎은 더 이상 가지 않습니다.
모든 명확을 넘어 다음의 것인 새로운 그리고 더 큰 것을 향해 가면서,
그 적에 자신을 세우는 사람은 그 적을 극복합니다.
이 적을 극복한 사람은 여러 가지로 권력을 얻습니다.
이제 이 적을 극복하며, 권력을 단념해야 합니다.
컨트롤을 하지 않고 변화를 더 큰 힘에 맡기는 것입니다.
아주 축복의 상태입니다.
권력을 극복한 사람은 염려와 걱정 없이 삽니다.
더 큰 힘들에 의해 이끌려 안겨 가기 때문입니다.
이제 마지막 적인 ‘고요’에의 욕구입니다.
그 욕구를 저는 65살에 가졌습니다.
이 나이까지 저는 그 적을 극복했습니다.
-버트 헬링거-
첫댓글 나는 지금 어떤 단계일까? 두려움은 극복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