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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룡산 갑사구곡과 용산구곡
이땅엔 쌍곡구곡,갈은구곡,연화구곡,선유구곡,화양구곡,등등 구곡이라는 이름이 붙은곳이 참 많습니다. 중국 복건성 무이산 무이구곡에 무이정자를짓고 자연에 은둔했던 주자의 행적을 음모했던 이땅의 선비들이 주자를 흉내내어 웬만한 경승지마다 구곡이라는 이름을 지었던 탓이지요....
계룡산 갑사옆으로 흐르는계곡에도 구곡이라부르는 계곡이 있습니다 갑사구곡은 순종황제의 두번째 정비인 정효황후의 숙부인 윤덕영이 갑사계곡에 간성장이란 별장을 짓고 별장앞으로 흐르는 계곡을 구곡이라부르며 명소마다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집니다.
윤덕영은 1910년 경술국치 당시 어전회의 진행을 병풍뒤에 숨어 엿듣고 있다가 친일파들이 순종에게 합병조약에 날인할것을 강요하자 옥새를 치마속에 감추고 내놓지 않았던 정효황후를 위협해서 옥새를 강탈한뒤 순종에게 합병늑약에 옥새를 찍으라고 강요했던 문제의 인물이다.
그러니 그가 갑사구곡이라 이름붙인 계곡의 바위들은 구곡이라는 사대적인이름과 친일파손에 의해 시계졋다는 이중의 치욕을 겪고 있는 셈이다. 9곡이라는 수정봉에서 부터용유소까지 계곡을 더듬어 내려오면 윤덕영의 별장인 간성장이란 이름을 새긴 바위만 하더라도 너댓군데가 넘는다.
친일의 댓가로 자작이된 그는 이글자를 암각하려고 중국에서 각수(刻手)를 데려와 새겼다는 말도 있다. 이곳 뿐만아니라 갑사구곡의 수많은 암각들은 주역을 중심으로 불교와 도교의 삼교가 결합하고 천지인이 일체를 이룬 이곳이 세상의 중심이되고 씨앗이 되는데 언젠가 그씨앗이 터져 뿌리를 뻗어 우리나라의 국운이 크게 뻗어 나가라는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시키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내용이 하필이면 친일파 윤덕영에 의해 새겨졌다는 것은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그는 암각을 통해서 자신의 친일을 변명하고자 했던것일까요? 아니면 자기만족에 겨워 이계곡이 마치 자신이 사유지라도 되는듯이 멋데로 꾸미고자 했던것일까요?
한편 같은시대에 조정에서 고위직에 봉사하다가 낙향하여 계룡산기슭에 살며 또하나의 구곡에다 기록을 남겨둔 분이 계셨으니 그가 바로 권중면선생으로 단(丹)의 저자이시자 단학의 대가이신 봉우 권태훈선생의 부친이 된다.
해방의 그날을 표현 하고자 했던 용산구곡은 금잔디 고개를 사이에두고 갑사구곡과 같은시기에 만들어진 이상이다른 구곡으로 상신리 계곡에 하나의 용이 태어나서 부터 승천하기까지 하나의 드라마가 이루어지는 계곡으로 만들었다. 용의 일생을 통해 지금은 나라가 어지러운 지경에 빠졌지만 어려움을 딛고 나라를 되찾아가는 희망을 표현하고자 했던 구곡이 바로 용산구곡이다.
▣ 용산구곡
용산구곡은 그동안 산속에 묻혀있어서 그 의미는 고사하고 글자조차 초서체(草書體)와 고자(古字)로 새겨져 있어 판독과 해석이 어려웠었습니다.
그때는 미처 몰랐던 사실을 다시금 생각하고 공부해서 몇가지 더 알아낸 내용과
용산구곡에 대해 총정리하여 논란의 결말을 내고자 이글을 씁니다.
물론 결론을 내린다는 일이 과감하지만 무모한 일일 수도 있고, 또한 글자에 연연하여 담이니 소니 택이니 글자를 따지는 것은 소모성 논란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정확히 밝혀내야 할 용산구곡이기에, 또한 글자를 표기한 것이므로 반드시 맞는 글자는 있으므로 용산구곡에 대한 정확한 명칭에 대해 삼가 결론을 내려봅니다.
[용산구곡]
제1곡
제2곡 은용담 隱龍潭
제3곡 와룡강 臥龍岡
제4곡
제5곡 황용암 黃龍岩
제6곡 견용소 見龍沼
제7곡 운용택 雲龍澤
제8곡 비룡추 飛龍湫
제9곡 신용연 神龍淵
제2곡은 그동안 음용담(陰龍潭)으로 읽어왔으나, 제가 은용담(隱龍潭)으로 읽어 낸 이후로는 많은 분들의 동의하셔서 음용담이 아닌 은용담이 맞는 것으로 결론이 난듯 합니다.
그렇다면 용산구곡 중 문제가 되는 곳은 제6곡과 제7곡입니다.
(6,7곡외의 다른 곳의 글자 판독에 대해서는 더 이상 논란의 대상이 되지는 않을 듯 합니다.)
1곡부터 9곡까지 가운데 글자 용을 제외하고는 글자가 서로 중복되지 않도록 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의 견용대로 읽히고 있는 것은 제4곡에 유용대가 있으므로 어울리지 않습니다.
공주시 학봉리지(鶴峯里誌)를 보면 제6곡이 견용소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9곡의 글자 중 소(沼)글자가 들어와야 구곡 구성상 어울리기도 합니다.
따라서, 견용소가 맞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제 7곡은 그동안 운용담이나 운용소로 읽어왔는데, 운용담으로 보면 제2곡 은용담과 중복되고 운용소로 보면 제6곡 견용소와 중복이 됩니다.
담이나 소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다시금 글자를 살펴보니 운용택으로 보입니다.
1곡
丣學洞門(유학동문)
그동안 판독이 어려웠었는데, 곡(曲)자가 고자(古字)로 쓰여진 것에 착안해서 고자(古字)로 생각해보니 첫번째 글자는 유(酉)자의 고자(古字)입니다
유는 닭(鷄)을 뜻하며, 계룡산(鷄龍山)의 계자에서 뜻을 취한 듯 합니다.
(만약 첫번째 글자가 유(丣)자가 아니라면 개학동문(開學洞門)일수도 있습니다.)
3곡 와룡강 주변에 있는
자양산월동원만천 紫陽山月同圓萬川
백록담파영방사해 白鹿潭波盈放四海
첫 구절 마지막이 그동안 총천(总川)이냐, 만천(萬川)이냐 모호했었는데 그 의미는 총천이나 만천이나 서로 통합니다만, 이 문장에서는 고자(古字)를 사용하지 않았으므로 일만 만자가 적합합니다.
두번째 구절 마지막의 사류(四流)로 읽었던 것은 사해(四海)가 글꼴상이나 의미상이나 맞습니다. 이미 앞에 방(放)자가 나오므로 류(流)가 어울리지 않습니다.
여기부터, 용산구곡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상신리 입구길 옆에 놓인 돌 뒤에 용산구곡 제 1곡인 심용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용산구곡 제 1곡 심용문(尋龍門)
용이 알에서 깨어나 성장하여 승천할 때 까지 들어오는 문이랍니다.
1곡 바로 위에 취음동천.
제2곡 음용담(陰龍潭)
꿈틀거리는 용이 서서히 움직이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제3곡 와룡강(臥龍岡)
용이 서서히 움직일 채비를 하는곳으로, 용이 알에서 깨어나 백일 동안을 물속에 잠겨 있다가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곳입니다.
자양산월동원만천 - 자양산 높이 뜬 달이 만천을 비추고,
백록담파방사류 - 백록담의 물은 넘쳐 사방으로 흐르네.
탄금 - 주변경관이 아름다워 이 돌위에 앉아 거문고를 연주하며 인생의 노래를 불렀던곳입니다.
제4곡 유용대
四曲 유용대(游龍坮) 둠벙 앞쪽에는 꼭 거북이 모양의 바위가 있는데 부러운 눈으로 용을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맑은 계곡물과 노오란 생강나무꽃이 어우러진 모습에 발길이 떨어지질 않는다.
바로 아래 새겨진 각자 내용은
강과 산과 바람과 달은
한가한 사람이 주인이라~~~
여기서 한가한 사람이란
벼슬을 버리고, 자연과 산수와 더불어 유유자적하는
사람을 말하는 듯 합니다.
<권태훈씨가 새겨졌네요>
취음 권중면 선생은 단(丹)의 저자이자 단학의 대가인 봉우 권태훈씨의 부친이다.
五曲 황룡담(黃龍潭) 용은 백년을 땅에서 살다가 하늘의 부름을 받고 승천한다고 하는데 저쪽 둠벙 뒤에서 구름을 바라보며 하늘에 올라갈 계시를 은근히 기다리는 용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명월(글자 지워짐)(글자지워짐) 보감폐
7자 중 2자가 지워져서 마치 괄호넣기 문제 같기도 하네요
밝은 달이 ( )하니, 보석거울을 닫는다.. 이런 해석이 되는데요.
밝은 달이 떴으니, 달빛에 비친 호수가 맑고 밝아 굳이 경대로 얼굴을 옷매무시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말같습니다.
제가 괄호안을 채워본다면..
"밝은 달이 (맑은 계곡을에 비치니) 보석 거울을 닫는다."
옛날 귀한 거울은 거울을 접었다 폈다 하는 구조였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자를 닫을 폐로 읽었는데.. 한가할 한자 같기도 하네요.
그런데 거울이 한가해진다는 말은 의인화된 사물이라 해도 표현이 좀 어색한 듯 합니다 (펌)
5곡에 새겨진 임신년을 찾아보니 서기 1932년으로 일제치하 22년, 취음선생의 연세 77세때입니다. 취음선생은 1936년 돌아가셨으며 당시 81세였습니다(펌)
六曲 견룡대(見龍臺) 바위글자의 六자는선명하고 曲자는 희미하다. 견룡대 글자중 見 자만이 선명할뿐 용자는 희미하다. 소 밑에서 견룡대 방향으로 올려다 보는 모습도 아름답지만 견룡대에서 2개의 소방향으로 내려다 보는 모습이 더 아름답다. 용산구곡으로 들어선 용이 승천의 채비를 완성하고 2개의 소을 왔다 갔다하는 황룡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펌)
제7곡 운룡소(雲龍沼)
계곡으로 올라가면 둥그런 바위를 절반쯤 짜른 모습의 바위가 있는 곳이 제7곡인 운룡소(雲龍沼)이다.바위에 새겨진 운룡소라는 글이 희미해 잘못하면 지나치기가 쉽다. 운룡소 글이 새겨진 바위앞에는 좌대를 만들어 놓아 눈군가 수련을 쌓는 장소로 사용하고 있는 모습이다. 신비의 구름에 쌓여 서서히 승천을 하는 용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八曲 비룡추(飛龍楸)
제법 계곡폭이 좁아지고 물길도 많이 줄어든 모습이다. 운룡소를 뒤로 8곡을 향해 올라가는데 7곡에서 8곡도 멀지 않는 곳에 있다고 했는데 한참을 올라간다. 이상하다. 이곳쯤이면 있을법도 한데 자세히 살펴보지만 바위에 새겨진 글을 확인 할 수가 없어 몇 번을 오르내림 했는지 모른다. 포기하는 심정으로 천천히 오르는데 절벽 바위가 나오고 좌, 우측 전면에 글이 새겨진 바위가 있어 얼마나 반가운지 이 짧은 순간의 감격을 느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 같다. 가까이 다가가 확인을 하니 이런!!! 신룡연 이란글이 새겨져 있다 , 8곡을 지나쳐 9곡에 오른것이다.
다시 8곡을 향해 내려간다. 5분쯤 내려오니 계곡 가운데 등그런 모습의 바위전면에 한자글이 희미한 것을 발견한다. 제8곡인 비룡추(飛龍楸)이다. 올라오면서 보면 확인하기가 매우 어려워 그냥 지나친 것이다. 8곡은 내려가면서 확인하는편이 훨신 쉽다. 계곡 물만 확인 하면서 올라오느라고 바위 자체가 비룡추라는 사실을 몰랐다. 그저 감탄만 나올뿐이다. 내려가면서 보니 용 자체가 하늘로 향해 오르는 모습이다. 백년수도 끝에 승천하는 용을 사람들이 보고 <용이 하늘로 올라간다!!>소리치면 이내 땅에 떨어져 다시는 하늘로 못오르는 이무기가 되어 평생을 살아야하는 기구한 운명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九曲 신룡연(神龍淵) 용산구곡으로 들어온 용이 승천하고 남은 흔적이다. 신비롭고 때로는 거대한몸부림으로 폭풍이 치고 비 구름몰아치는 가운데 하늘로 올라가고 먹구름 사이로 햇살 이 내려 비치고 고요한 적막감이 이 신룡연의 조그마한 소에 담겨진 모습이다.
▣갑사구곡
갑사구곡은 새김이 깊고 정자로 씌여 있어 글자의 혼동은 없습니다.
각자는 뚜렷하나 글씨체는 용산구곡만 못합니다.
제1곡 용유소 龍游沼
제2곡 이일천 二一川
제3곡 백룡강 白龍岡
제4곡 달문택 達門澤
제5곡 금계암 金鷄嵒
제6곡 명월담 明月潭
제7곡 계명암 鷄鳴嵒
제8곡 용문폭 龍門瀑
제9곡 수정봉 水晶峯
(윤덕영의 생각을 알아보려 주역을 읽어 보았습니다.)
주역의 간(艮)괘는 멈추어야 하는 형국입니다.
주역 간괘의 내용을 살펴봅니다.
“간은 멈추는 것이니. 때가 멈추어야 하는 경우라면 멈추고, 때가 가야 하는 경우라면 가서, 움직이고 멈춤이 그 때를 잃지 않으면 그 도가 빛나고 밝을 것이다(간도광명)”
간괘의 상황에서는 어떠한 일을 해도 난관해 봉착해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난관에서 벗어날 때 까지 기다리면서 내실을 기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강점기가 간괘에 해당하는 시기입니다.
간괘는 그 형상이 위도 멈추어 있는 산이고, 아래도 멈추어 있는 산입니다.
첩첩산중이지요.
일제 강점기 시절 독립을 가로막는 산이 두개있었지요.
일본이라는 산과 그 뒤에는 미국이라는 산이 가로막혀 있었습니다.
(미국인 태프트와 일본인 카츠라 사이에 협약을 맺은 것이 있습니다.)
군자대에 새겨진 괘는 익(益)괘인데,
익괘를 상황을 이전하여 크게 확장한다고 해석한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수명이 다해 나라를 이전해야만 크게 확장한다고 인식했으나 현재 상황은 간괘로 멈추어서 난관을 벗어날 때 까지 기다리면서 내실을 기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아무리 매국노라고 해도 스스로의 논리는 있었겠지요. 국민들은 매국이라고 해도 본인은 방법상의 차이일 뿐 애써 애국이라고 위안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내용은 역사상에도 자주 발견되는 사실입니다.)
5곡 금계암 주변에는 간도광명(艮道光明), 은계(銀溪), 순화임원(舜華林園),
이 중에 일중석(一中石)이라고 새겨진 내용이 있습니다.
새겨진 모양도 특이하고 마치 수수께끼 같습니다.
전체적인 모양이 일(一)자와 중(中)자를 합한 모습입니다.
또한 이 문장의 핵심단어가 일중입니다.
일중석 (一中石)
갑생삼각 (甲生三角)
함삼위일 (函三爲一)
일관중심 (一貫中心)
윤집궐중 (允執厥中)
사십사구 (四十四口)
간산수석 (艮山壽石)
간옹명 (艮翁銘)
甲生三角
갑(甲)자에서 세개의 뿔이 생기니
갑 글자에 세 뿔이 생기면(위,좌,우) 일중(一中)을 합한 글자가 됩니다.(사진을 다시 봐주세요)
천지인 또는 유불선이 하나의 진원(眞源)이 됨을 표현한 듯 합니다.
函三爲一
셋을 함유하고 있으면서 하나가 된다.
반고가 지은 한서 '율력지'에 나오는 문구입니다.
태극의 원래 기운은 셋을 함유하고 있으면서 하나가 된다(太極元氣, 函三爲一)
천지인 셋이 결국 하나로 수렴됨을 설명함(삼위일체). 또한 유불선 합일 사상을 표현하는 듯 합니다.
간성장 건물이었던 전통찻집 주련에는 유불선을 하나로 합하여 큰 도가 나타나리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삼인법신화삼갑 三印法身化三甲
모니대계정토공 牟尼大界淨土空
청니현문삼청진 靑尼玄門三淸眞
중니만세태평중 仲尼萬世太平中
대도출현태일영 大道出現太一靈
(모니는 석가모니, 청니는 노자, 중니는 공자를 말하며 마지막 영(靈)자는 고어체 입니다.)
一貫中心
중심을 하나로 꿰뚫어서
允執厥中
오직 그 치우치지 않는 중심(중용)을 붙잡는다.
서경(書經) 우서(虞書) 대우모(大禹謨)편의
“인심(人心)은 유위(惟危)하고 도심(道心)은 유미(惟微)하니 유정유일(惟精惟一)하야사 윤집궐중(允執厥中)하리라”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인심은 오직 위태롭고 도심은 오직 미미하니, 오직 정밀하게 하고 오직 한결같이 해야 진실로 그 중용의 도를 붙잡을 것이다.)
순(舜)임금이 우(禹)에게 정치를 대행하게 하면서 부탁한 말입니다.
四十四口
일중(一中)의 전체 모양이 열 십(十)자 넷으로 이루어져 있으며(동서남북 방향의 열십자, 중앙의 교차부분은 ○표시를 해서 비웠두었음), 글자 사이의 입구(口)자가 역시 네개입니다.
艮山壽石
간산의 수석. 일중석이 새겨진 바위를 일컫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