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의미와 유래
곰사부 ・ 2023. 1. 1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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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국가의 수도라는 뜻을 가진 것으로 신라의 수도를 말하는 서라벌과 백제의 수도를 말하는 소부리에서 유래된 것이다. 의미는 큰 마을, 높다, 신령스럽다, 번성하다. 라는 의미를 가졌다. 이에 큰 산이나 큰 강이 위치한 곳을 수도로 삼은 역사적 사례가 많다.
환국의 수도 / 천산(BC 7197)은 안파견 환인이 건국한 환국의 도읍지이고 구족과 12씨족의 18국 연방국가 형태라고 한다. 안파견이 다스리는 우루국이 맹주국이며 우루국의 천산은 3,300년 동안 수도의 역할을 하였다. 키르키스탄의 알틴 아라산이라는 추정이 있으나 유물이나 유적이 발견되지 않아 정확한 근거는 없다.
조선국(배달국)의 수도 / 태백산(BC 3897)은 거발한 환웅이 환국을 계승하여 건국한 조선국(배달국)의 도읍지이다. 태백산 아래에 신단수가 있다고 한다. 맹주국의 지위가 청구국으로 넘어갈 때까지 수도의 명맥은 1,149년간 역할을 다하였다. 거발한 환웅의 부장 반고가 독립하여 신국을 세우고 반고 가한이라고 칭하였다. 수도의 이름은 신시라고 하였다.
청구국의 수도 / 갈로산(BC 2748)은 청구국(조선국의 제후국)의 수도이다. 청구국의 자오지 임금이 14대 환웅에 즉위하면서 맹주국이 되면서 조선국 연맹의 수도는 청구국의 수도가 도읍지가 되었다. 청구국의 수도는 갈로산이고 철을 생산하여 무기를 만들었다. 갈로산은 환웅정치가 멸망을 하는 날까지 415년간 수도(도읍지)로서 명맥을 이어갔다. 상징하는 동물은 구미호이다. 환웅의 자리를 놓고 경쟁한 헌원(반고의 후손)은 천독국의 임금이며 수도는 곤륜산이다. 상징하는 동물은 물소이다.
조선국(신시국)의 수도 / 송화강(BC 2333)은 임검(마지막 환웅 거불단의 아들)이 건국한 조선국의 수도이다. 당시에는 수도를 아사달이라고 불렀으며 빛나는 아침의 땅이라는 의미를 가졌다. 새로운 도시라고 하여 신시국이라고도 불렀다. 조선국(환웅정치)을 계승하지만 연맹국가 형태가 아닌 2개 부족(웅족, 호족)이 주류를 구성하는 단일국가 형태의 조선국(단군정치)을 개창한다. 송화강은 1,048년간 도읍지의 역할을 하였다. 욕살 고등의 아들 색불루(우현왕)가 22대 단군이 되었고, 천도하여 백악산(BC 1285)에 터를 잡고 수도로 삼았다. 백악산은 860년간 도읍지 역할을 하고, 조선국 멸망 이후에도 부여국(해모수)시대에 151년간 수도 역할을 하여 무려 1,011년간 명맥을 이어갔다. 구물 장군이 44대 단군이 되었고, 천도하여 장당경(BC 425)에 터를 잡고 도읍지로 삼았다. 장당경은 해모수에게 멸망하기까지 187년간 수도 역할을 하였다.
부여국의 수도 / 고리국(수도: 흘승골성)의 해모수가 기비(수유국)와 연합하여 조선국을 침공하여 천왕랑이라고 칭하였고, 대부여(북부여)를 건국하고 백악산(BC 238)을 수도로 삼았다. 이후 장당경(조선국의 수도)을 점령하고 고열가(47대 단군)는 항복하고 양위하여 해모수가 48대 단군이 된다(BC 232). 고두막(동명국) 왕이 한나라 군대를 몰아내었고, 졸본성을 수도로 삼고 국호를 졸본부여라고 칭하였다(BC 87). 고두막 단군이 대부여(북부여)를 병합하자 해부루 단군이 이주하여 가섭원을 수도로 삼고 동부여를 이어갔다(BC 86).
조선국의 수도 / 해모수에 반기를 든 기비왕(수유국)은 남하 하여 왕검성(왕험성, BC 231)을 수도로 하여 조선국이라고 칭하였다. 연나라의 위만이 허위로 망명하여 반란을 일으켜 기준왕을 몰아내고 왕검성(왕험성)을 차지한다(BC 194). 한나라가 침공하여 조선국을 멸망시킨다(BC 108). 조선국의 고두막 장군이 의병을 일으켜서 옛 땅에서 한나라를 물리치고 동명국(BC 87)을 건국하였다.
고구려의 수도 / 고주몽이 대부여의 단군을 계승하면서 국호를 고구려(BC 37)로 개칭하고 칭호도 태왕으로 바꾼다. 고구려는 고리국을 출신을 강조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태왕은 동부여(단군)와 차별화 하기 위해 바꾼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대부여의 집권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천도하여 국내성을 수도로 삼는다(3년). 국내성은 464년간 도읍이 역할을 하였다. 외적의 침공에 대비하여 위나암성(환도성)을 증축하여 전쟁시에는 임시 수도로 삼았다. 산상왕(209) 시기에는 환도성을 수도로 삼았다. 247년, 임시로 평양성(왕험성)에 천도를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평양성은 왕검성(왕험성)으로 패수(요하, 압록수) 동쪽에 위치한 옛 고조선 수도를 지칭한다.
427년에 장수왕이 평양성으로 천도하고 668년까지 241년간 수도의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이전부터 평양성은 제2의 수도 역할을 하였다. 32년에 호동왕자의 활약으로 낙랑국을 멸망시키고 낙랑국의 수도 장안성을 증축하여 평양성으로 불리었다. 호태왕(광개토, 391-413)시기에 평양성에 안학궁과 대성산성을 확충한 후에 천도를 한 것이다. 장수왕시기부터 평양성은 왕이 거처하는 제1수도가 되고 국내성은 제2수도로 바뀌었다. 246년에는 위나라의 관구검이 침공하였을 때에 평양성(왕험성)이 임시 수도로 역할을 하였다. 342년에는 환도성(위나암성)으로 천도를 하였다.이처럼 고구려는 의 수도는 국내성, 환도성, 평양성(왕험성. 서경), 장안성(평양성. 남경)이 임금의 거처(전쟁)에 따라 수도 역할을 하였다.
평양성 대동문
진국의 수도 / 마한, 변한, 진한으로 분립하기 전에 150여국으로 구성된 한반도 지역의 연맹 국가 형태를 통칭하여 불렀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 시기에 맹주국의 수도가 곧 진국의 도읍지였던 것으로 사료된다. 진국의 형성시기는 대략 기원전 5세기 경으로 추정되며, 금마국이 맹주국이었고, 금마국의 수도는 금강이었다. BC 194년, 연나라 위만에게 멸망당한 조선국의 지배계층이 바다를 건너 건마국을 건국하였다. 수도는 금강에서 인접한 익산이었다. 청동기 무기를 사용하였던 기준왕의 건마국은 맹주국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건마국을 마한을 대표하는 한왕이라고 불렀다. 일부 세력은 목지국(직산)과 소사벌(평택)지역의 월지국을 건국하였다. [한서]에는 마한의 왕을 한왕이라고 기록하였다. 당시에 한나라는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의 마한과 교류하였다는 점에서 건마국의 한왕일 가능성이 크다. [위서]의 위나라는 고구려와 전쟁을 하고 낙랑국과 교류하였던 것으로 보아 위나라가 지칭하는 진왕은 목지국(직산)일 가능성이 크다. 낙랑국과 마한은 국경을 접하고 교류가 빈번하였기 때문이다. 목지국이 월지국(소사벌)을 병합하고 성장하면서 맹주국(8년)이 된것으로 추정된다. 목지국의 수도 직산은 8년부터 346년(근초고왕에게 멸망)까지 338년간 도읍지였다.
서울(한강)
백제의 수도 / 고주몽 집단에게 밀린 소서노 집단이 남하하여 십제국을 건국하고 아리수(욱리하)를 수도로 삼고 위례성(하남시)을 건축하였다(BC 19). 아리수는 지금의 한강이다. 온조가 소서노 뒤를 이어 임금이 되었다(BC 18). 비류가 건국한 미추국(미추홀)은 1년 만에 십제국에 병합되면서 국호를 백제로 개칭한다. 마한의 원산과 금현성을 정복하면서 영토를 확장하고 월지국(평택)은 목지국(직산)에 병합된다. 아리수(한수)는 494년간 백제의 수도의 역할을 하였다. 고구려의 침공으로 475년에 백제는 웅진성(공주)으로 천도하였다. 538년에 성왕이 사비성(부여)으로 천도하여 국호를 남부여로 개칭하였다. 사비성(소부리성)은 멸망할 때까지 122년간 수도의 명맥을 이어갔다.
경주(서라벌)
신라의 수도 / 이전부터 사로국의 수도는 서라벌(경주)였다. 사로국은 진한의 소국으로 도시국가였다. 즉 서라벌이 국가이고 수도였다. BC 57년에 박혁거세가 사로국의 임금이 되면서 국가 성장이 나타나고 영토가 커지게 되었다. 석탈해가 권력을 잡으면서 국호를 계림국으로 개칭하였지만(65), 수도는 그대로 서라벌(경주)이었다. 지증왕이 국호를 신라로 개칭하였지만(503), 수도는 금성(경주)으로 이름만 다르게 불렀다. 이처럼 신라가 935년에 멸망을 할 때까지 금성(서라벌)은 수도의 역할을 992년간 이어갔다.
가야의 수도/ 김수로왕이 건국한 금관가야의 수도는 김해이고, 42년부터 532년까지 490년간 수도의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이전의 구야국이 도시국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존속기간을 추정하여 300여년을 더하면 790년간 도읍지 역할을 한 것이다. 이진아시가 건국한 대가야의 수도, 고령은 42년부터 562년까지 520년간 수도의 역할을 하였고, 대가야의 전신인 고령지역의 도시국가 반로국(반파국)의 존속기간 300여년을 합하면 820년간 도읍지 역할을 하였다. 김아로가 건국한 아라가야는 42-561년까지 519년 동안 함안이 수도였고, 전신인 변한시대의 염사국 존속기간 400여년을 포함하면 919년간 도읍지 역할을 하였다. 김벽로가 건국한 벽진가야(성산가야)는 42-561년간 성주가 도읍지였다. 전신인 벽진국의 존속기간 300여년을 합하면 819년간 수도 역할을 하였다. 김말로가 건국한 소가야는 42-554년 동안 512년간 고성을 수도로 하였다. 전신인 고자국의 존속기간 300년을 더하면 812년간 도읍지 역할을 하였다. 소가야는 고자국(고성), 고자미동국(사천), 고사포국(통영)을 정복하면서 국가로 성장하였다. 김고로가 건국한 고령가야의 수도는 함창(상주)이었고, 42-562년으로 520년간 존속하였다. 대가야와 인접하여 고령가야라고 붙여진 것이지 정확한 국명도 없다.
고려의 수도 /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고(918), 수도를 송악(개성)으로 천도하였다(919). 이후 고려가 멸망을 하고 1394년까지 474년간 도읍지 역할을 하였다.
송악
조선의 수도 /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1392), 수도를 한양(한수)으로 천도하였다(1394). 1910년 일본에게 멸망을 당하기까지 516년간 도읍지 역할을 하였다. 한수(한양)는 백제의 수도 기간 494년과 조선의 수도(도읍지) 기간을 더하면 1010년간 도읍지 역할을 하였다.
한국의 수도 / 1919년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고, 의병들의 활동으로 1945년에 광복하여 서울(한수)을 수도로 삼았다.
첫댓글 소중하고 유익한 내용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