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
땅地
물水
바람風이 시다
짧고
쉬운 시는
좋은 시가 될 수 없을까?
화두話頭가 되었다
2024년 9월
장일 김석
수심水深
김석
깊이가 있는 것은 그만큼의 슬픔 있다
소란 한번 피지 않고 고요히 흐르는 물
강물은 하류쯤에서
제 발치를 핥는다
허물
김석
낮에는 너무 밝아 보지 못했고
밤에는 너무 어두워 보이지 않았다
눈 감고 돌아보니 보인다
눈 뜨면 사라지는, 내 허물
천지(天地) 법문(法門)
김석 사행시집 『바위 속을 헤엄치네, 고래』 (2024, 서정시학) 는, 시와 선(禪)을 한축으로 꿰고 있으며, 천지를 법문으로 인식한다. 그의 말에 의하면 삼라만상은 선문답(禪問答)이다. 모순과 패러독스로 가득 찬 그의 세계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놀라운 비약과 파격을 보인다. 언어의 자가당착과 유희는, 불가능의 가능성으로 확장된다. 시비(是非)를 떠난 이런 놀라운 초월적 비유는, 시적 대상에 상상력을 마음껏 부여한다. 현대시에서 그의 모순어법은 시적 모호성에 접목된다. 어찌 보면, 기기묘묘(奇奇妙妙)한 행간은, 선가(禪家) 공안(公案)의 극치를 보인다. 물음의 띠를 비틀어 역설의 답으로 꼬아 붙인 간화선의 화두이기도 하다. 물음 속에 이미 답이 숨어 있고 그 답은 또다시 새로운 물음을 던진다. 마치, 장자의 제물론의 이야기처럼 “내가 나비의 꿈을 꾸고 있는지, 나비가 내 꿈을 꾸고 있는지 분별이 되지 않는” 호접지몽의 세계다. 뫼비우스의 띠에 올라타면 꿈은 현실이 되고 현실은 꿈이 된다. 원래 태어남도 없고 죽음도 없는 것이 ‘화엄 세계’가 아닌가. 화엄은 법계연기(法界緣起)다. 우주의 모든 사물은 그 어느 하나라도 홀로 있거나 일어나는 일이 없이, 모두가 끝없는 시공 속에서 서로의 원인이 되며, 대립을 초월하여 하나로 융합한다. 그의 시는 무진연기(無盡緣起), 상입상즉(相入相卽), 중중무진(重重無盡)의 불교 사상과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사대를 골수로 삼는다. 그의 시는, 산 자의 문을 열면 뒷문엔 죽은 자가 희죽 웃고 있다.
하여, 김석은 다시 묻는다. 화엄은 ‘현상과 본체’가 결코 떨어질 수 없는가? 과거 현세 미래는 한 몸인가, 아니면 각각 다른 셋 몸인가? 만법은 일즉다(一卽多)요, 다즉일(多卽一)의 세계다. 하나가 곧 전체, 전체가 하나이다. 상극을 버린 상생의 세계이자, 음양의 갈등을 흡수한 태극의 조화이다. 그의 시는 ‘둘로 나뉘지도 않고 하나에 집착하지도 않는 무이이(無二而) 불수일(不守一)’의 세계다. 하여, 삶을 비극으로, 죽음을 희극으로 형상화한다. 이번 김석의 4행 시집 『바위 속을 헤엄치네, 고래』(2024, 서정시학)는, 울림과 여운을 주는 수행자의 시다. 촌철살인의 시구를 벼린다. ‘비움’의 묘사와 ‘내면’을 성찰케 하는 힘이 있다. 그의 4행시는, 정형을 통해 정형을 뛰어넘는 초월을 꿈꾼다. “4행시는 오래된 시 형식이다. 들여다볼수록 만만치 않다. 한시의 절구와 서양의 4행 시집들을 들춰보고, 우리의 옛 4구체 향가들을 챙겨보”(이하석)면 절로 알게 된다.
“4행을 맞추는 게 억지스러울 수도 있고, 의도적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시의 행갈이 조절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긴말도 4행으로 토막 낼 수 있다. 그건 이미지의 문제고, 심리와 호흡의 문제다.”(이하석, 『희게 애끓는, 응시』 4행 시집) 그런 측면에서 4행시는 짧기 때문에 함축적이며, 다층적 해석이 가능한 것이 매력이다. 활짝 열린 행간보다 반쯤 열린 행간이 더 선명하고 강렬한 인상을 주듯, 4행시는 영원 속의 순간을 포착하고, 순간 속에서 영원을 발견케 한다. 김석 시의 관전 포인트는, 상징과 메타포, 직유와 환유를 찾아내 곱씹어 보아야 제멋이다. 그의 시는 의미 없는 것이 의미 있는 세계로, 의미 있는 것이 무의미로 치환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곳은 언어의 표면이 아니라 이면에 숨겨진 행간의 진실이다. 압축과 비약, 지성과 감정, 모순과 감각을 통해, 김석은 독창적 시각과 의도를 가진다. 시가 언어의 착란이라면, 선시는 의미의 모순이다. 세계의 본질은 순수할 때 비로소 심미안이 열리듯, 그의 시는 언어유희의 한 방식으로 요해(了解)된다. 김석의 시는 읽히지 않는 시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다가서는 재미의 시다. 현대인이 좋아할 만한 짧은 텍스트를, 직관적으로 드러내는 아포리즘 스타일과 겹쳐있다.(김동원 시집 해설 중에서)
시인의 말
이
가을
비움과
순수에
검은 먹으로
흰 꽃을 그리다
2024년 청도에서
박태진
부탁
박태진
산딸나무 중에서도 꽃이 가장 이쁜
미산딸기나무 한 그루를
앞뜨락에 안기며
잘 키워 달라고
부탁하였다
오래전
산에
아버지를
부탁한 적 있다
반지하
박태진
큰 소나무가 태풍에 넘어져 있는데
아무도 거들어 주지 않는다
몸뚱이 반이 비탈에 걸쳐 있고
뿌리도 반은 세상 밖으로 나와 있다
어쩔 수 없는 반이
세상의 반에게
침묵으로
질문하고 있다
박태진 시인은 순수하고 겸허한 본연의 마음자리를 지켜가고 있다. 경륜을 더해 가면서 중인衆人은 세속 물정物情에 물들고 나서기가 십상이지만, 시인은 이미 그 너머 공허와 적막의 지점을 보았을 것이다. 그의 언어는 삶에 대한 감동이나 새로운 발견의 감성을 깊이 녹여내면서도 더욱 범박하고 편안하고 단순해지고 있다. 이제 그의 시학은 무구無垢를 지켜내면서도 '비움'을 지향하고 있다. (엄원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