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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드럼 연주자의 음악적 내면을 담은 앨범 - Fatherland – 주화준 |
낯선 청춘 |
보통 한 연주자가 자신의 이름으로 앨범을 만들게 되면 연주의 모든 중심을 자신에게 맞추게 된다. 예로 색소폰 연주자가 리드 앨범을 녹음한다면 그의 화려한 솔로를 중심으로 나머지 연주자들이 모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그러나 드럼 연주자의 리드 앨범은 좀 다르다. 한 두 곡이면 몰라도 악기 특성상 자신을 중심으로 모든 연주를 진행시키기가 어려운 것이다. 아트 블레키, 엘빈 존스 등 전설적인 드럼의 명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러한 한계에 아쉬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 이로 인해 오히려 앨범을 이끄는 드럼 연주자를 보다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사운드가 만들어지곤 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드럼 연주자 주화준의 첫 앨범 또한 마찬가지다. 사실 당신이 이 앨범에서 드럼 연주자 주화준을 느끼고자 한다면 템포와 상관 없이 심벌을 중점적으로 사용하면서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그의 연주에 아쉬워할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관점을 바꿔보기 바란다. 드럼 연주자 주화준의 앨범이 아니라 자신만의 사운드를 꿈꾸는 아티스트 주화준의 앨범으로 말이다.
그러면 드럼 연주자 이전에 탁월한 멜로디스트 주화준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어떤 경로로 그가 작곡을 하는지 모르지만 그가 만든 곡들은 모두 선명한 멜로디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멜로디들은 그가 작곡 단계에서 느꼈을 감성을 담뿍 반영하고 있다. 이것은 특히 발라드 계열의 곡에서 더욱 잘 느낄 수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앨범 타이틀 곡이기도 한 ‘Fatherland’다. 이 곡은 짙은 애상을 담은 멜로디가 제목과 어우러지면서 고향을 잃고 어쩔 수 없이 움직여야 하는 유랑자의 슬픈 운명을 생각하게 한다. ‘Grateful’은 어떠한가? 소박하고 차분한 멜로디가 따스하고 편안한 차(茶) 시간을 그리게 한다. 게스트로 참여한 임달균의 온화한 베이스 클라리넷 연주가 돋보이는‘Chrosst’ 또한 고독하면서도 달콤한 멜랑콜리를 담고 있다. 아마도 이들 곡들은 어떤 앨범이건 귀에 쏙 들어오는 멜로디들을 먼저 찾는 감상자들에게 큰 만족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된다.
상기한 곡들이 하나의 서사적인 흐름을 담고 있다면 ‘Renovatio’,‘Glatonic Vitra’, ‘The Day of Ascension’같은 곡에서의 간결한 멜로디들은 긴장을 생산하는 코드 체계와 맞물리면서 보다 자유로운 방향으로 연주가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테마의 역할을 한다. 실제 이들 멜로디를 머리 속에서 반복하면서 이어지는 솔로 연주를 듣는다면 화려한 모습으로 발전하며 보다 먼 곳으로 이동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곡의 구조상 그 먼 곳으로 떠난 멜로디는 자연스럽게 처음의 자리로, 그러나 처음보다는 충만한 상태로 돌아온다.)
그렇다고 내가 이 앨범을 멜로디 중심의 가볍고 감상적인 앨범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이 앨범에는 주화준의 또 다른 모습이 담겨있다. 연주자들의 적절한 배치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사운드를 구현하는 조율자로서의 모습이 그것이다. 그 결과 섬세함과 서정이 돋보이는
결국 주화준이 이 앨범을 통해 감상자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자신의 음악적 역량만은 아니었다. 그가 진정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작, 편곡 그리고 연주를 넘어선 무엇, 즉 자신의 음악적 내면이었다. 그 가운데 앨범 곳곳에 담긴 그의 서정적인 감성은 많은 감상자들의 공감을 얻을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불현듯 다시 듣게 되는 앨범으로 자리잡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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