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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연애] 이현주 - 시놉시스
KBS 드라마 스페셜 4부작,
<보통의 연애> 기획안
1. 기획의도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버리는 순간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배신을 하든, 죽든 혹은... 누구를 죽이든.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안다.
누구도 다시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내가 살던 세계는 무너졌고,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닌 것이다.
그러면 그 이후 나의 삶은... 어떻게 복구할 것인가?
그 방법이야 다 다를 수 있지만, 한 가지는 같을 것이다.
무너진 그 지점이 바로 출발선이라는 것.
그 순간의 진실을 직시하고 껴안아야 비로소 이후의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
껴안은 진실은 아플 것이고,
가까스로 잡은 사랑은 그 무게에 휘청... 흔들릴 것이며,
다시 시작된 일상은 여전히 외롭고 위태롭겠지만,
어쩌면 삶이란 원래 누구에게나 고된 것이다.
무겁고 고단한 삶을 등에 진 채
우리가 원하는 곳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채,
하루하루를 기꺼이 살아내는 것,
이것이 우리의 몫일 것이다.
2. 한 줄 요약
삶의 금 밖에 있던 남녀가
아픈 진실을 껴안고
삶의 금 안으로 들어오는 이야기.
3. 등장인물
김윤혜 (여, 25세) 관광 안내소 안내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폐지 모으기부터 양말뒤집기까지
온갖 부업으로 살아 왔다.
틈틈이 공부해 방송통신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수화를 특기로 지역 관광 안내소에 취직한 것이 7개월 전이다.
단정하고, 경우 바르고, 매사에 조심스럽게 발꿈치를 들고 산다.
속은 야무지고 뜨겁지만 겉은 조용하며 건조하고 냉랭하다.
사람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어 겉으로는 원만해 보이지만,
누군가 가까이 들어오려 하면 바로 가시를 내미는 고슴도치다.
동정 받는 게 가장 싫고,
싫은 소리는 듣는 것은 죽기보다 싫으며,
남에게 폐 끼치는 건 더 끔찍하다.
반듯한 외모에 똑똑한 모범생이었던 그녀의 삶은
7년 전, 아버지가 살인용의자가 되면서 길바닥에 패대기쳐졌다.
18살, 아버지는 도망가고 형사들이 집으로 들이닥친 그 순간
그녀는 단박에 알았다. 그녀에겐 미래도 행복도 없음을.
그리고, 사랑...
이제 자신은 누구에게도 사랑 받을 수도 사랑할 자격도 없음을.
그 후로 그녀는 담담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또래들이 누리는 평범한 삶에 대해 욕심이 생길 때마나
찬물을 끼얹으며 사는 중이다.
그녀가 누구 딸인지 동네 개도 알고,
이웃들은 안됐다 하면서도 다들 등을 돌린 지 오래고,
무엇을 하든 결국 살인자의 딸이라 좀 곤란하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녀는 아버지가 범인이 아니라고 믿고 있다.
형사들이 들이닥치기 전,
아버지는 자신 잘 못이 아니라는 말만 남기고 도망을 갔고,
사건은 아직 미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아직 살인용의자일 뿐 살인자는 아닌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절대 죄 안 짓고 잘 못 안 하고 살기 위해
신경이 곤두 서 있다.
‘이렇게 반듯한 나’를 낳은 아버지가 살인자일리 없다는 걸
증명하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안다.
자신 속에서는 아버지가 살인자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있음을.
아버지와 자신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늘 확인 하고 싶어서
자신의 잘못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주눅 들수록 빳빳이 고개를 쳐들고,
겁날수록 꼿꼿이 등을 펴고 걷느라,
사실은 매일매일이 고단하고 불편하고, 때론 깊이 아프지만,
한숨 자고 일어나면 다 괜찮아진다고 생각한다.
출근하고 퇴근하고 출근 준비하고 집안일 하고,
일주일에 한 번 사람들 없는 주중 새벽 성당에 가고
속상한 일이 있으면, 새벽에 새 밥을 잘 차려 먹으며 나아진다.
그런 그녀 앞에 그 남자, 재광이 나타났다.
그가 무심히 날린 직구에 빡! 심장을 맞는 순간,
툭, 스물다섯의 설렘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마주하기 싫은 진실이 정면 승부를 걸어온다.
한재광 (남, 27세) 여행서 작가
재수하던 중에 호주로 유학을 갔다.
공부가 끝난 뒤에 세계 여행을 하다 우연히 여행서를 쓰게 됐고,
지금은 그 바닥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작가가 됐다.
주로 외국에서 떠돌면서
책 낼 때만 잠깐씩 한국에 들어올 뿐이었는데,
엄마가 다치면서 이번엔 좀 오래 있을 예정이다.
특별히 멋 내지 않았지만 시크한 세련됨이 몸에 뱄다.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잡고, 아님 말고 싫음 그만이다.
겉은 무심한 듯 편하고 친절해 보이지만, 속은 차갑고 멀다.
적당한 거리감이 삶을 편안하게 하고,
주변과의 이질감이 아이디어의 배경이라고 생각한다.
무슨 일이든 관심을 한 번 가지면 오타쿠같은 면모도 보이나,
바로 싫증을 느끼는 편이라 오래 가진 않는다.
감이 아니다 싶으면 아예 시작을 안 하고,
시작했다가도 아니다 싶으면 바로 등을 보이는 쿨종결자로,
평소엔 집착 심한 엄마와의 관계도 데면데면 하지만,
7년 전 형이 살해된 후 마음을 잡지 못 하는 엄마가 부리는 고집과
히스테리는 완벽하게 외면하지 못 한다.
엄마와는 다르게 그는
살해된 형의 사건에 대해서는 무심과 외면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미 벌어진 일이고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일이므로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며, 시간이 다 해결해 줄 것이라 생각한다.
언제라도 떠날 준비가 돼 있는 그는
얼마 안 되는 짐도 상자에 주로 담겨 있으며,
주로 침낭에서 자고, 무엇을 걸기 위해 집에 못을 박아 본 적 없다.
삶에서 반쯤은 발을 빼고 사는 사람처럼
모든 일에서 언제나 한 발 떨어져 있으며.
크게 좋은 일도 싫은 일도 없고, 미래나 꿈에 관심도 없다.
특히 사랑 따윈 필요 없다.
가볍게 걸쳤다 벗어버릴 수 있는 농담 같은 연애면 모를까.
그런 그의 눈에 그 여자, 윤혜가 들어왔다.
그녀가 내민 발칙한 손을 쓱! 잡는 순간,
짠! 스물일곱의 진심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리고 아픈 진실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신미진 (여, 56세) 재광 어머니, 가정주부
자랑이자 기둥이자 위안이자 보람이었던 큰 아들이 살해당한 후,
자신의 삶 자체도 죽었다고 생각한다.
원래 부잣집에서 곱게 자라 이쁘고 좋은 것만 알았지
야무지지도 단단하지도 못 하다.
젊어 남편이 사고로 죽어 유산과 보험금으로
아들 둘 키우고, 아기자기한 것들 배워가며, 그럭저럭 살았는데,
아들이자 남편이자 친구요 희망이었던 큰 아들을 잃은 후
훨씬 더 히스테리컬 하고, 독설에 의존적이고 불안정하게 됐다.
여기저기 안 아픈 데가 없고, 다들 내 맘 같지 않고,
세상 모든 게 맘에 안 들며,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게다가 하나 남은 아들 재광은 애미 불쌍한지 모르고
밖으로만 떠돌고 곁을 주지 않아 늘 괘씸하고 섭섭하다.
그래서인지 재광에겐 도무지 정이 가지 않고 밉기까지 한데,
애증이 커갈 수록 집착도 커져 복잡하고 괴롭다.
지난 7년은 자식 죽인 범인에 대한 집착으로 살았다.
처음에는 도망간 범인을 잡는 일에 올인 해
해결사부터 무당, 신흥 종교 까지 미쳐 쫓아다니다
그나마 있는 재산마저 다 날린 후,
경찰서, 검찰청, 청와대까지 항의하기에 몰두하고 있다.
최근 경찰청에 항의 방문 갔다가 미끄러져 다리가 부러졌다.
답답한 마음에 찾아간 점집에서
범인이 가족들과 잘 살고 있다는 점쟁이 말에 눈이 뒤집혔다.
다들 말도 안 된다고 하지만, 너무 찜찜하다.
목발을 짚고라도 내려가서 이 두 눈으로 확인을 해야겠다.
그래야 비록 쪽잠이라도 좀 잘 수 있겠다.
할머니 (여, 65세) 윤혜 친할머니
정은 많지만 무뚝뚝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할머니로
아들이 사고를 친 후, 나무관세음보살만 중얼대며 살았다.
애비 어미 잘못만나 인생 망가진 금쪽같은 손녀가 불쌍해
없는 살림에 졸졸 따라다니며 힘닿는 데까지 맹렬 뒷바라지다.
모든 게 자신이 부족하고 자식 잘 못 키워 벌어진 일 같아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죄송하고 면목 없다.
냉랭한 이웃 태도에도 아랑곳 않고 뒤에서 동네 굳은 일 다 하고,
천덕꾸러기처럼 웅크리고 살면서도 꿋꿋이 보시에만 열심이다.
누가 볼까 맘 졸이면서도 밤이면 장독대 위에 정화수도
몰래 떠 놓고 빌 정도로 아들에 대한 그리움만은 놓을 수가 없다.
경자언니 (여, 35세) 이름 없는 까페 주인
주인 손님 구분 없는 동네 사랑방인 이름 없는 까페 주인으로
동네에서 돌아가는 일은 다 경자 언니 귀를 거친다는 소문이 있다.
친절하거나 부드럽진 않지만, 통 크고 터프하고 성격 좋아 보이나,
까페를 열기 전 과거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 미스터리한 여자다.
강목수 (남, 32세) 경자언니 남편
작업실에서 주로 작업을 하며 숨어 지내는 예술가다.
알고 보면 경자언니의 남편으로 말도 없고, 외모도 거칠고,
사람들 앞에 거의 나타나지 않아 구설수에 오르곤 한다.
한재민 (남, 당시 27세) 재광의 형, 예비 사법연수원생
수퍼 울트라 엄친아,
7년 전, 사법시험에 합격 후, 낯선 도시에서 살해 됐다.
권대웅 (남, 25세) 자동차 정비사
경은이 사는 집의 주인집 아들이자 초등학교부터 쭉 동창.
대웅의 무대포 짝사랑은 동네에 소문이 자자한데,
졸부 부모님은 며느리라도 멀쩡한 게 들어와야 한다고
윤혜만 보면 으르렁 펄쩍펄쩍이다.
주상아 (여, 30세) 재광의 여자친구, 출판 기획자
사람들과는 손해 안 보는 편한 관계,
남자와는 손쉬운 연애를 꿈꾸는 발칙한 유부녀다.
재광과는 꽤 오래전부터 연애를 했지만,
재광은 그녀를 딱히 말리지도 그렇다고 떠나지도 않았다.
김주평 (남, 47세) 윤혜 아버지, 막노동 (미장 기능공)
도망친 살인 용의자,
술을 좀 먹어 그렇지 미장 솜씨하나만은 끝내주는데다
착실하고 얌전해 젊어서는 꽤나 인기 있는 일꾼이었다.
어느 날 아내가 사고로 죽은 후 점점 술이 늘더니
나중엔 걷잡을 수 없는 동네 개망나니가 되고 말았다.
지지리 운도 없고 다 남 탓이라는 것이 고정 술주정 레퍼토리다.
대웅엄마, 베드로 신부님 (남, 40대), 강무성 형사 (남, 40대), 등등.
4. 주인공 배경
김윤혜
도망친 살인용의자의 딸 윤혜는 관광 안내소 수화 담당 안내원이다.
주로 장애인 학교에서 단체로 오는 관광객들에게 수화로 안내를 하고
가이드가 없는 날은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 단순하고 건조한 일이다.
쉬는 날은 출근 준비를 위해 빨래하고 옷 다리고 할머니 부업 돕다 자고,
그저 한 달에 일정하게 들어오는 수입만 있다면
이대로 혼자 늙어도 좋다 생각할 정도로 삶에 아무 욕심도 미련도 없다.
일주일에 한 번 성당에가 미사를 보고 고백성사를 하는 그녀,
‘이번 주에도 지은 죄가 없는데요.’ 그녀는 몇 년 째 같은 말을 고백하고 있다.
신부님께 대 놓고 죄 없다 할 정도로 자기 관리가 철저한 그녀.
덜 하얗거나 다림질이 조금이라도 잘 못 된 옷은 입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위반도 하지 않고, 욕도 안 하고, 누구와 싸우지도 않는다.
동네 머슴처럼 아무한테나 굽실대고 동네 궂은 일 다 하는 할머니한테
잔소리 하느라 목소리를 좀 높일 뿐 언제나 조용히 단정하게 사는 하루하루다.
그 흔한 연애? 잊은 지 백만 년, 버린 지 천만 년이라,
철들고는, 주책없는 설렘에 허둥댄 적도, 남들 다하는 짝사랑에 아파한 적도 없다.
최근 재계약 기간이 아직 남은 그녀에게 그만 두라는 통보가 날아왔다.
윗분이 바뀌셨는데, 전주를 대표하는 안내원이 범죄자의 딸인 게 불편하다 하셨단다.
박봉이 대접도 변변치 않고 발전도 없지만, 그만큼 지원자도 경쟁자도 거의 없고,
계약직이지만 재계약이 안 되는 경우가 없어 벌써 15년째인 선배도 있기 때문에
그녀에게는 정말 하늘이 내려준 직업이었는데 잘리다니, 이건 참사다.
여기에서마저도 밀려나면 이 동네서는 정말 갈 데가 없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을 구해 봤지만,
동네 개도 아는 살인자 딸에겐 아무도 일을 주지 않았다.
그나마 구청에서 배려해 임시로 하는 청소나 업무 보조 같은 일을 매년 3개월 정도
할 수 있었을 뿐 나머지 9개월은 할머니가 들고 오시는 온갖 부업들에 매달려야만 했다. 그나마도 부업을 주는 주인이 할머니 주는 걸로 퉁치고 눈감아준 덕이다.
그런 생활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이것은 부당 해고니, 일단 계약 기간까지는 버티자 결심한다.
7년 전, 형사들이 쳐들어와 아버지가 사람을 죽이고 도망갔다고 떠든 순간,
그녀의 삶은 쨍! 하고 깨져버렸다.
미래도 행복도 그녀의 삶에는 더 이상 없을 거라는 것을 바로 눈치 챘고,
사랑도 연애도 결혼도 축복은커녕 재앙이 될 것이라는 것도 그 날 깨달아버렸다.
하필이면 좋아하는 남자애에게서
‘너도 같은 마음이면 오늘 밤 호수로 나와 줬으면 좋겠다.’ 쪽지를 받은 날,
형사들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형사들에게서 참고인 조사를 받고 나와 경찰서 앞에서 울던 그녀는
문득 그 쪽지 속 약속을 지켜야한다는 생각에 호숫가로 뛰어 갔다.
멀리 가로등 아래서 흰 눈을 맞으며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그 애를 바라보다,
차마 가까이 가지 못 하고 그 쪽지를 버리고는 돌아서 뛰었다.
살인자의 딸은 그 애뿐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는 현실을
뼈가 시리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돌아선 그녀는 그대로 차가운 겨울 호수에 뛰어들었었다.
몸이 가라앉고 죽음이 현실로 다가오자 갑자기 무서웠다.
정신을 차리고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물에 젖은 코트가 점점 무거워져
몸을 뺄 수가 없었고 발버둥 칠수록 더욱더 가라앉기만 하던 순간,
끈 떨어진 오리배에서 떨어져 나온 튜브가 눈에 띄어 겨우 물에서 나올 수 있었다.
살아나긴 했으나 그 순간부터 무겁게 젖어 그녀를 물속으로 잡아당기던 코트가
늘 어깨에 매달려 있는 기분으로 살아야만 했다.
도망치면서 그녀에게 남긴 아버지의 잘 못이 없다는 말을 반석처럼 믿고 있으나,
눈 감으면 반석이 아닌 살얼음판에 발 딛고 있다는 두려움이 더 커지곤 한다.
그럴 때 마다 주먹은 더 꽉 쥐고 등은 더 꼿꼿이 편지 어느새 7년.
오래 전부터 주먹이 저리고 등이 결려왔지만 간신히 간신히 버티고 있었는데,
결국 일자리에서 쫓겨나게 돼 툭 무릎이 풀리려고 하던 그 날, 그 순간에...
그 남자 한재광, 찰칵, 그녀를 찍었다.
한재광
7년 전, 재광의 형은 사법 연수원 입소를 앞두고 낯선 지방 도시에서 살해당했다.
그리고 유력한 용의자였던 김주평은 도망을 갔고, 아직 잡히지 않은 상태다.
당시에 엄마가 원하던 대학에 떨어져 재수를 준비 중이었던 재광은
형의 죽음이 집안에 가져다 준 그림자를 견디지 못 하고 외국으로 유학을 갔다가,
여행서를 쓰는 작가가 됐고 당분간은 서울에 머물고 있는 중이었다.
담백하고 쿨한 성격과 독특한 감각으로 일에서는 인정을 받으나
연애를 포함한 사람 관계는 늘 겉돌기만 한다.
다짜고짜 전화해 집으로 재광을 불러들인 엄마는
또다시 히스테리를 부리며 범인을 찾아야 한다고 난리다.
홀로 된지 오래인 엄마는 범인을 찾는데 매달려왔고
재광은 그런 엄마가 질리지만 그렇다고 외면할 수도 없어 곤란하다.
형을 죽인 김주평이 죗값은 치루지 않은 채 여전히 어딘가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은
형의 죽음 못지않게 재광의 엄마를 괴롭히는 고통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경찰서, 경찰청, 청와대 등등에 항의 편지 쓰고 항의 방문하는 게 일인 엄마는
최근 경찰청을 급습하다 넘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엄마는 답답한 마음에 모처럼 찾아간 점집에서
범인 김주평이 가족들하고 버젓이 연락하고 산다는 이야기를 듣고,
벌써 심부름센터에 그 가족들에 대한 정보를 의뢰해 받아낸 상태였다.
엄마는 돈이 있었으면 심부름센터에 맡겼겠지만,
비용이 어마어마하니 못 맡기고 직접 가서 그 집을 살펴보겠단다.
김주평의 식구들은 아직 같은 집에 살고 있으며 딸은 근처에 직장까지 구해 다닌다며
죄 지은 놈은 있는데 벌 받은 놈은 없다고 가슴을 쳤다.
목발을 짚고라도 범인 살던 동네로 가서 두 눈으로 확인하겠다고 나서는 엄마,
진짜 갈 태세였다. 아니 120% 진짜 가신다.
재광은 그러시든지 하고 돌아왔지만, 다음날 자신이 대신 가보겠다고 했다.
엄마는 함께 가겠다고 했지만, 그는 혼자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엄마는 그럼 김주평 집을 일주일은 살펴봐야 한다고 했으나,
재광은 일단 가족 중 아무나 이틀만 따라다녀 보겠다고 하고 길을 나섰다.
재광은 엄마의 극성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김주평이 그 동네에 없을 것은 뻔했다.
대한민국 경찰이 뻘인가. 범인이 가족과 버젓이 살게 놔두게 말이다.
그냥 강형사에게 다시 한 번 수배 전단지를 만들어 붙여 주십사 부탁하고
김주평 가족 주변을 한 이틀 얼쩡대다 올라가면 될 것이다 생각하며 전주에 왔다.
사실 형의 사건에서 오래 전에 의도적으로 한 발을 뺐던 재광은
엄마가 가지고 있는 만큼의 분노나 고통은 느끼지 못 해 왔다.
다만 갑자기 형이 왜 그 낯선 도시에 내려갔는지... 를 가끔 궁금해 했을 뿐이다.
형은 엄마의 모든 것이었다.
몸 약한 엄마가 아이 못 낳을 것이라는 얘길 듣고 절망하다 얻은 귀한 아들이었다.
그리고 그 7년 후에 태어난 그는
생각지도 않게 임신 6개월이 지나서야 임신 사실을 알고 낳게 된 자식이었다.
형은 울트라 수퍼 엄친아의 전형이었다.
잘 생기고 키 크고 점잖고 착하고 게다가 성적은 전국 수석을 오가는 수재에
재주가 많아 그림도 음악도 운동도 다 잘 했다.
무난하게 서울대 법대를 가 그 해 최연소 사법시험 합격자였다.
엄마한테도 몹시 살가워 엄마는 어딜 가나 형을 끼고 다녔다.
비록 일찍 돌아가셨지만, 아버지 역시 형만 보면 입이 벙긋 벌어지시곤 했다.
반면 그는 그냥 그저 그런 아들이었다. 말 그대로 그저 그런...
형과 부모님이 한 가족이고 자신은 마치 그 가족의 행복을 구경하는 게
제역할인 듯 멀고 덤덤한 막내였을 뿐이다.
그래서 그런가, 늘 형이 멀고 어려웠다. 물론 나이차이도 있었지만 말이다.
그는 요즘도 가끔 생각한다. 형이 아니라 자신이 죽었어야 하는 것 아닌지...
신(神)께 아들 중 한 명을 반드시 재물로 바칠 수밖에 없었다면,
엄마는 분명, 완벽한 형이 아닌 모자란 자신을 선택했을 것이다, 아무 망설임 없이.
지난 7년 내내 그는 엄마의 눈길이 따라 다녔다.
‘차라리 너를 데려가시지...’ 신(神)인지 그에게인지 모를 깊은 원망을
차마 대놓고 표현하지 못 한 채 텅 빈 눈으로 째려보곤 하는 엄마의 슬픈 눈 말이다.
형 장례식 날,
엄만 재광 목소리가 형의 목소리랑 비슷하다며, 당분간 엄마라 부르지 말라고 했다.
엄마는 기억도 못 했지만, 재광은 그 후로 엄마를 신여사라 불렀다.
재광은 형이 죽은 도시에 도착해 강형사를 만나
전단지를 추가로 배포해 줄 것을 부탁한 후
김주평의 딸 김윤혜가 근무한다는 안내소에 주차를 하고 나오다, 그녀를 봤다.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그녀는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
사실 7년 전, 재광은 그녀를 딱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당시 대학교 1학년이던 재광은 엄마를 모시고 이 지역 경찰서까지 내려와야 했었다.
여러 가지 복잡하고 알 수 없는 일들이 차례로 지나간 후, 경찰서 앞서 바람을 쐬고 있는데, 교복에 코트를 입은 김윤혜가 참고인 조사를 마치고 나오며
강형사의 배웅을 받고 있었다.
그 날 그녀의 텅 빈 눈에 끌려 재광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따라가고 말았다.
갑자기 멈춰선 그녀가 돌아선 그 길 너머 호숫가엔 남학생하나가 쓸쓸히 서 있었다.
그리고 물로 뛰어들던 그녀. 재광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물끄러미 쳐다만 봤다.
처음엔 놀랐지만, 형이 죽었기 때문이 아니라 통곡하는 엄마 때문에라도 그녀 역시 죽어도 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허우적대면서 깊이 가라앉는 그녀를 보다
그냥 돌아서 와 버렸었다.
그 후로도 가끔 궁금했다.
뛰어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보면, 어두운 호수를 보면, 눈 맞는 가로등을 보면...
그 소녀는 그 때 살았을까? 아니면...
그리고 또 헷갈렸다.
그날 그가 그 호수에 버리고 온 것은 그 소녀일까 아니면 그 자신이었을까.
어쩌면 이곳에 내려오겠다고 결심한 것은
엄마가 그녀에 대해 이야기 하는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심부름센터에서 그러는 데 그 딸은 버젓이 직장에 다닌 댄다.’
엄마는 분노했지만, 그는 안도했다. 그 소녀가 살아있었구나.
그리고 그 소녀는 진짜로 살아서 지금 막 그의 옆을 스쳐지나간 것이다.
그 소녀 주변에 이틀을 얼쩡거리기 위해 재광은 전주의 걷기 여행 책을 기획한다는
거짓말을 짜내 안내소 문을 두드렸다.
안내소 도움을 얻는 데는 그의 명함과 작가 이력이면 충분했다.
당연히 그는 그녀를 콕 찍어 담당자로 지목했는데,
어라, 지목한 재광의 손을 그녀, 덥썩 잡아 당겼다.
5. 줄거리
<1부>
겨울 새벽, 성당 고백실,
곰곰 생각하던 윤혜, 담백하게 고백한다. 이번 주에도 역시 지은 죄는 없어요.
그럼 알지 못 하고 지은 죄에 대해 용서를 구하세요, 대답 하는 신부님.
윤혜, 입을 삐죽 내밀고는 성호 긋고 일어선다.
성당을 나선 윤혜, 쨍하게 추운 겨울 하늘 아래의 십자가를 빤히 보다가 자전거에 오른다.
오래됐지만 반질반질 손이 많이 간 단층집.
위풍이 있는지 바람 막느라 담요나 비닐 같은 것이 창마다 문마다 가리고 있다.
익숙한 순서대로 출근 준비를 하는 윤혜.
눈부시게 하얀 셔츠에 팔을 끼우다 두 줄로 슬쩍 나 있는 다리미 자국을 보더니,
인상을 살짝 쓰며, 얼른 다른 셔츠로 갈아입는다.
질척이는 눈에 흙에 어수선한 겨울 길을 낡은 자전거 타고 출근하는 윤혜,
골목을 쓸고 있는 할머니를 보자 우뚝 자전거를 세우고 노려보더니,
뭐라 한 마디 하려다 말고 다시 페달을 밟는다.
윤혜가 지나가자 할머니, 허리를 겨우 펴고는 그렇게 출근하는 윤혜의 등을 한참 바라본다.
문 열면 안내 데스크 있고, 앞 쪽엔 몇 개의 의자와 전단지 놓는 공간이 있고,
의자들 뒤로 작은 탕비실이 커튼으로 가려져 있는 아주 단출한 안내소.
제일 먼저 출근한 윤혜, 청소부터 컵씻기 까지 성실하게 일한다.
선배들 하나 둘 들어오고, 윤혜도 자리를 잡고 앉는데,
오계장 들어오며, 밖에 저 게시판 좀 어떻게 해 보지, 너무 너덜거리네, 한다.
선배1, 윤혜를 슬쩍 보더니, 제가 할 게요, 하고 일어나는데,
윤혜, 아뇨, 제가 가요, 하고 일어난다.
바람에 너덜거리는 게시판의 안내물들을 스테이플러로 하나 둘 고정 시키고 있는 윤혜,
그 중 한 장을 손으로 문질러 편편하게 펼쳐 잡더니 막막한 표정으로 한참을 쳐다보다는데,
오계장 종이컵에 커피믹스를 타 들고 나와 윤혜 옆에 선다.오계장, 미안한 얼굴로,
위랑 얘기가 잘 안 됐다, 아무래도 어렵겠다, 하는데,
윤혜, 들었는지 어쨌는지, 콩콩 스테이플러로 게시물 박아 고정시키고는 돌아선다.
오계장, 오늘 내로 정리해라, 기회 봐서 또 자리 마련해 보마. 하더니,
군청 마크가 달린 차에 올라타려다 말고, 게시판을 슬쩍 가리키면서,
미스 김, 의외로 독한 구석이 있어. 한다.
게시판 보면, 방금 윤혜가 제대로 붙인 살인 용의자 수배 전단지 보인다.
윤혜,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오계장의 차를 보다가, 시계를 보더니 안내소 안으로 들어간다.
전주 경기전 안, 비가 왔었는지 바닥에 물이 군데군데 고여 있다.
윤혜, 장애인 학교에서 온 한 무리의 학생들에게 수화로 안내 중인데 표정이 좋지 않다.
아까부터 저만치 떨어져 자신을 쳐다보는 남자(재광)가 신경에 쓰이기 때문이다.
남자, 마치 거리낌 없이 이 쪽 저쪽을 향해 셔터를 누르더니 마침내 윤혜를 찍는 것 같다.
윤혜, 확실하지 않아 한번은 참고 넘어가는데, 또다시 윤혜를 찍는 남자.
이번엔 카메라 렌즈와 정면으로 눈을 마주쳤다.
윤혜, 안내를 마치고, 자유 구경을 하라고 한 후, 또각또각 남자에게 다가간다.
바닥에 고인 물을 찍다가, 프레임 안으로 들어서는 윤혜의 발을 보고 고개를 드는 남자.
윤혜, 주저주저하다 큰 용기라도 낸 듯 남자에게, 저 찍었어요? 한다. 남자, 심드렁, 찍혔나...
윤혜, 자신을 찍은 사진을 지워달라고 하자, 남자, 싫은데요. 하는데 술 냄새가 난다.
윤혜, 어설프게 따지는데, 남자,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재광, 사진을 지워 줄 테니, 그럼 나랑 하루만 같이 다녀 줄래요?, 한다.
윤혜,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어 싶어 노려보자, 재광, 싫음 말고, 하고는 일어나 간다.
윤혜, 남자를 잡아 세우는데, 남자, 헛구역질하면서, 내가 속이 안 좋아서.. 하더니 화장실로 뛰어간다.
윤혜, 어이없이 남자를 쳐다보는데, 일행들 와서 이동할 시간 됐다고 알린다.
관광버스를 보내고, 터덜터덜 안내소 안으로 윤혜가 들어서자 모두들 쳐다본다.
아, 드디어 왔네. 저 분이 해 주셨으면 하는데요. 하는 남자 목소리.
윤혜, 뭔가 싶어 돌아보면, 아까 그 남자 재광이 오계장 앞에서 윤혜를 가리키며 서 있다.
윤혜, 당황하는데, 오계장, 윤혜를 불러, 오늘 오후에 이 분 좀 안내를 해라, 한다.
화장실 윤혜, 양치를 하고 있는데, 선배1, 들어오더니, 혹시 저 남자랑 아는 사이야?, 한다.
윤혜, 모른다 하자, 선배1, 서울에서 온 여행책 쓰는 사람이란다. 전주 걷긴지 뭔지 쓴다는데,
나름 그 쪽으로 유명한지 위에서 잘 모셔라 난리다. 안내원 필요하대서 베테랑 이 선배 붙여줬는데,
딱 잘라 거절 하고는 너 찍은 거다. 모르는데 그랬을 리가 있나? 한다.
윤혜, 아까 경기전에서 잠깐 봤다, 했더니, 선배1, 그럼 첫눈에 훅 갔나 보다,
드디어 김윤혜에게도 연애가 오는 구나 어쩌구 바람 넣는다.
안내소 앞마당, 재광 기다리고 있고 윤혜, 준비하고 나오면,
오계장 따라 나와, 작은 목소리로 윤혜에게 어쨌든 오늘까지만 나오는 것임을 확실히 한다.
윤혜, 대답 안 하고 저쪽을 보면, 재광, 게시판 이리 저리 둘러보다 윤혜와 눈이 마주친다.
윤혜, 불편한 마음을 감춘 채 전주 시내를 안내하는데, 재광의 태도가 영 불량하다.
설명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사진도 찍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사적인 것만 자꾸 묻는다.
그런 재광의 태도를 참고 또 참던 윤혜, 날이 어두워지자 그만 가자, 한다.
안내소 앞까지 돌아온 두 사람. 윤혜, 자전거에 오르는데,
재광, 뜬금없이 그 쪽 집까지 같이 가면 안 돼요? 하는 재광에게 대답 안 하고 돌아서 가려고 자전거에 오르는 윤혜.
재광, 윤혜 자전거 손잡이에 손으로 뜬 장갑이 붙어 있는 거 보고 한참 웃더니,
재광, 집이 어디냐, 전화번호가 어떻게 되냐, 찝쩍댄다. 윤혜, 지금 대체 뭐 하는 거냐, 그동안 댁 같은 관광객이 제일 힘들었다, 그 쪽 눈엔 안내원이 뭘로 보이냐! 하며 다다다닥! 따지며 쏟아 붓는데, 재광, 윤혜의 공격이 끝나자마자 피식 웃더니, 우리 내일도 만날래요? 한다.
기가 막힌 윤혜, 대답 안 하고 돌아서 가는데, 찌링찌링 벨 울리며 힘차게 달려간다.
재광, 윤혜의 달려가는 뒷모습에 대고 안 나오면 쳐들어간다! 어쩌구 하며 꼭 보자 한다.
집에 돌아온 윤혜, 세수를 하고 거울을 빤히 보는데, 재광이 자꾸 떠오른다.
숙소의 재광, 전화벨이 울리자 받더니, 알았어요, 이틀만이라니까... 집? 집도 꼭 봐야 하나?
알았어요, 알았어, 등등 딱히 알 수 없는 통화를 한다.
옆에는 윤혜 신상이 담긴 자료 서류봉투에서 삐죽이 나와 있고.
전화를 끊고 낮에 찍은 사진을 보는 재광, 윤혜의 사진을 한참 쳐다본다.
인서트. 추운 겨울, 교복 코트를 입고 막막한 얼굴로 서 있던 여자아이 모습 겹치고,
빤히 쳐다보는 모습이 찍힌 현재의 윤혜 사진이 보인다.
할머니, 밥 한 공기 떠 장롱 안 이불 사이에 넣고 나온다.
밥상을 차리고 있는 윤혜.
할머니, 같이 밥상을 차리며 윤혜가 처음 걸음마 하던 날 이야기를 하며 대견해 하면,
윤혜, 쌀쌀하게, 할머니, 그건 나 아니구 아빠 걸음마 떼던 날 얘기거든, 한다.
할머니, 알아, 알아 하더니 뭔 일 있냐? 하신다.
윤혜, 무뚝뚝하게 무시하더니, 참, 동치미! 하며, 그릇 들고 일어난다.
할머니, 당신이 떠오시겠다고 하는데,
윤혜, 왜 젊은 애 놔두고 노인네가 이 밤중에 동치미를 뜨러 가냐, 그 비굴비굴, 그것 좀 하지 마요, 제발! 하면 할머니, 미안타 하고, 윤혜, 또! 또! 하면서 야멸치게 타박 하고 나간다.
윤혜, 할머니 대신 동치미를 뜨러 나왔다가 담 너머 기척이 수상해 대문 열고 나갔다가
문 앞에 서 이쪽저쪽 둘러보고 있는 재광과 딱 마주친다.
윤혜, 어이없어 하면서 여긴 왜? 재광, 그 쪽 보러. 한다.
윤혜, 왜 날 보러? 재광, 봐야 잘 수 있을 것 같아서. 한다.
가슴이 쿵 떨어지는 윤혜, 집은 어떻게 알고 왔는지 물으려 하는데,
할머니, 나와 둘을 보더니 좋아라 하시며,
다짜고짜 밥 먹고 가라 재광을 집안으로 끌어들인다.
재광, 뻔뻔하게도 할머니를 따라 덥석 집안으로 들어간다.
밥 먹으라는 할머니의 권유에 저녁은 먹고 왔다더니,
집안을 휘휘 젓고 다니며 이 방 저 방 구경을 한다.
말리는 윤혜를 쓱 밀치더니 남자 손 필요한 일 하나를 쓱쓱 도와준다.
윤혜, 그런 재광이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언제 서울로 가냐 묻는 할머니에게 재광, 낼 모레 아침 일찍 하는데,
그릇을 정리하던 윤혜, 자기도 모르게 힘이 쭉 빠진다.
재광, 오래된 윤혜의 가족사진 본다.
한적한 바닷가인데, 어린 윤혜와 윤혜 엄마, 아빠 행복해 보인다.
윤혜, 아마도 제일 좋았던 시절인가 본데... 딱히 기억이 나진 않는다.
재광, 여기가 어디냐? 묻고, 윤혜, 그걸 모른다. 알면 한 번 가보고 싶긴 한데... 하는데,
재광, 윤혜를 빤히 쳐다보다 갑자기 몸을 확 돌려 외면한다.
재광을 바래다 주러 나온 윤혜, 갑작스런 재광의 제안에 한밤중에 덕진 공원에 가게 된다.
연못에 떠 있는 오리배를 보는 두 사람.
윤혜, 밤중이라 더 볼품없을 거다, 다른데 더 좋은데도 많은데... 하자,
재광, 오래 전 부터 한 번 와 보고 싶었다.
윤혜, 왜? 전에 와 본 적 있냐 하는데.
대웅, 나타난다.
대웅, 윤혜가 남자랑 차타고 한밤중에 덕진 공원에 가더라 소리를 친구들에게 들었다며,
이 남자 누구냐, 대번에 재광을 경계하기 시작하더니, 윤혜에게 까불지 말고 집에 가자.
걱정해 줄 때 들어라, 나 말고 너 데려갈 사람 없다 등등 익숙한 레퍼토리를 늘어놓자,
윤혜 짜증나고 무안해 어쩔 줄 몰라하는데,
재광, 그런 대웅을 살짝 약 올리고는 윤혜를 잡아 채 무사히 집까지 데려다 준다.
돌아서 가는 재광의 차를 말끄러미 바라보다 들어가는 윤혜.
골목을 빠져나온 재광의 차를 누군가 세운다.
재광, 당황한 듯 아, 강형사님, 하고 강형사, 아, 이거 곤란하게... 한다.
재광, 완전 낭패한 표정이다.
캄캄한 마당, 할머니는 장독대 위에 정한수를 떠 놓고 빌고 있다.
자려고 누운 윤혜, 심란도 하고 기분이 이상해 일어나 거울을 빤히 보다
서랍을 열어 그 안을 들여다본다. 낡고 늘어진 속옷들이 대부분이다.
다음날, 아랑곳 않고 안내소로 출근한 윤혜.
오계장, 윤혜에게 이러면 곤란하다, 반 애원이고
윤혜, 계약기간 남았다. 부당해고다 하면서 기간 끝날 때까지는 계속 나오겠다 고집 부린다.
고집 부리며 안내소 내근을 시작한 윤혜,
은근히 재광을 기다리는데 재광은 나타나질 않는다.
혼자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가던 윤혜, 문득 서점에 들러 재광이 쓴 책들을 찾아서 본다.
재광이 그린 일러스트 중,
지구의 중심까지 파고 들어가 그 안에서 잠을 자는 남자 그림을 빤히 보는 윤혜.
책을 도로 집어넣고 서점을 나간다.
나오는 길, 길거리 가판대에서 파는 액세서리를 보는 윤혜.
그 중 작은 귀걸이를 하나 집어 귀에 대 본다.
까페에 앉아 있는 재광과 상아.
상아, 재광이 진짜 책을 쓰려는 줄 알고 위에서 서포트 하라는 지시 받고 내려 왔다. 하자,
재광, 아직 결심한 건 아니고... 사실 뻥 친 거야, 그냥 좀 알아볼 게 있어서. 한다.
상아, 기왕 이렇게 된 거 그냥 책 쓰지? 하자, 재광, 안 쓸까 한다, 대답한다.
상아, 그럼 일러스트만이라도 해 줘라, 너 여기 협조 요청했단 얘기 듣고 꼭 성사 시키라고 나 보낸 거다. 재광, ... 봐서. 한다.
상아, 안 그럼 이거 다 뻥이라고 군청 관광과에 찌를 거다. 재광, 그러든지... 시큰둥.
반쯤 포기한 상아, 장소 리스트 내밀며 그럼 일단 사진만이라도 좀 찍어 넘겨주라, 한다.
재광, 스마트폰 만지작 거리며 리스트를 쓱 눈으로 훑더니, 여기 좀 알아봐주라, 하면,
상아의 스마트폰 딩동! 울리고 상아 열어서 보더니, 여기가 어딘데?
재광, 모르니까 알아봐 달래지, 한다.
지나가다 재광이 세련된 여자(상아) 와 까페에 마주 앉아 있는 모습을 본다.
확 실망한 윤혜 돌아서 가는데, 창 너머로 윤혜를 본 재광, 뛰어 나오더니,
미안하다, 안내소에서 잠깐만 기다려 달라 한다.
다시 까페로 돌아온 재광에게, 상아, 너 여자 생겼니? 재광, 여자는 무슨... 한다.
상아, 나.. 자고 갈까? 묻자, 재광, 좋을 대로. 한다. 상아, 여기 젤 좋은 호텔이 어딘가? 한다.
속상한 윤혜, 안내소로 돌아와 보니, 어느새 윤혜의 짐은 상자에 담겨 있다.
윤혜, 거부하자, 오계장, 정말 부탁이다... 자기 사정 좀 봐 달라, 한다.
오계장, 밖에 저 전단지 저렇게 딱 붙어 있는데... 윤혜, 대답 안 하고 서 있다.
문 열리고 재광, 들어서더니, 아, 오늘도 이 분께 안내 좀... 한다.
오계장, 물론입니다, 하더니, 일단 윤혜를 내 보낸다.
재광, 말 없는 윤혜를 차에 태워 전경을 찍어야 한다며 근처 모악산으로 간다.
왜 지구 중심까지 파고 들어간 남자는 거기서 잠을 자냐, 빠졌던 물은 얼마나 차가왔나 등등 연관도 없는 질문과 대답들을 띄엄띄엄하면서 좀 더 가까워진다.
모악산 입구, 윤혜, 게시판에 붙어 있는 살인 용의자 사진 본다.
재광, 커피를 뽑아 양 손에 들고 나온다.
윤혜, 그런 재광을 보자, 얼른 용의자 사진을 찢어 구겨 쓰레기통에 버린다.
구두를 신은 윤혜는 남고 재광 혼자 올라간다.
모악산 등성이. 혼자 올라가던 재광, 산의 이곳저곳 사진을 찍더니, 그냥 바위에 주저앉는다.
그렇게 한동안 앉아 산꼭대기를 쳐다보는 재광.
모악산 입구, 휴게소.
윤혜, 재광을 기다리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보더니 주머니에서 귀걸이를 꺼내 본다.
윤혜, 귀걸이를 귀에 걸어 보더니 도로 빼서 주머니에 넣는다.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윤혜, 담담하게 묻는다.
진짜 내일 아침 일찍 가는 거죠? 재광, 그렇다 대답하면,
윤혜, 그럼... 오늘 밤 나랑 잘래요? 하는데,
재광, 피식 웃 더니, 안 그래 보였는데, 의외로 막사네. 하며 좀 심하다 싶게 막말한다.
무안해진 윤혜, 차 세워달라, 여기 어디서 그냥 내리겠다고 고집 부리던 도중 차 미끄러져 가드레일을 받는다.
조금만 잘 못 움직여도, 떨어져 둘 다 죽을 위기지만 두 사람은 침착하게 겨우 빠져나오고,
마침 쏟아지는 비를 피하러 터널 아래로 들어간다.
머쓱하고 무안하게 앉아 있는 두 사람.
문득 재광, 죽는 게 안 무섭냐? 눈 하나 깜짝 안 하더라, 하자,
윤혜, 그러는 그 쪽도 전혀 아쉬울 거 없는 표정이더라 한다.
재광, 피식 웃고, 윤혜도 피식 웃는다.
재광, 카메라 고장 안 났나 확인하면서 찍은 사진들 돌려 보고 있다.
윤혜, 옆에서 같이 보는데, 대부분 빈 풍경 사진처럼 보인다.
그 중 빈 화면에 저 멀리 가는 여자 뒷모습 있는 사진을 보며,
윤혜, 왜 뒷모습만 찍어요? 묻는다.
재광, 어? 어떻게 알았아요? 다른 사람들은 백이면 백 다 대체 뭘 찍은 거냐 묻는데...
윤혜, 그래요? 금방 보이는데, 하면서 사진 다시 돌려 보며,
고인 물에 비친 누군가의 뒷모습. 까페 안에 앉아 있는 남자의 뒷모습 등...
풍경처럼 보이는 사진에서 교묘하게 걸려 있는 사람들의 뒷모습 찾아낸다.
그러다 카메라를 빤히 바라보는 윤혜 사진 나오고.
윤혜, 내 얼굴이 이렇구나... 하면, 재광, 서늘하지, 하더니, 뭐가 그렇게 겁이 나냐? 묻는다.
윤혜, 그러는 그쪽은? 재광, 윤혜를 빤히 쳐다보더니, 그 쪽을 미워할 수 없게 될까 겁난다.
윤혜, 왜 미워해야 하는데? 재광, ... 윤혜, 내가 자자고 해서요? 여자가 자자고 하면 안 되나?
재광, 대체 왜 나랑 자고 싶냐 묻자, 윤혜, 모르는 사람이니까 곧 떠날 사람이니까, 대답한다.
재광, 모르는 사람 곧 떠날 사람하고는 다 자냐? 묻자,
윤혜, 나 좋아한 거 아니었나, 묻는다. 재광, ...
윤혜, 아니었구나. 나는 당신 같은 사람이 겁난다. 장난삼아 호기심 삼아 흔들어 보는 사람. 하면서, 덕분에 꽤 오래간만에 흔들려 봤네요. 하고 재광을 보는데,
재광, 윤혜의 얼굴을 빤히 보고 있다.
윤혜, 당황해 눈 둘 곳 못 찾으면, 재광, 윤혜를 빤히 보다 양 볼을 잡고는 어쨌든 다행이네.하는데, 갑자기 손전등 확 비친다. 보면, 대웅이다.
대웅의 자동차 정비소에서 차를 고치게 되고, 사무실에서 젖은 몸을 말리고 있던 두 사람.
갑자기 대웅의 엄마가 들이닥쳐, 윤혜에게 대웅이 근처에 얼씬거리지 말라며
밖에 저 사진을 보고도 넌 뻔뻔하게 이러고 다니고 싶냐 난리를 친다.
맘 다치고 체념한 윤혜,
마침 정비소 외벽에 붙어 있는 용의자 수배 전단지를 가리키며 재광에게 말한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내가 고백하겠다, 이 사람이 우리 아빠예요.
재광, 그런 윤혜를 빤히 보더니, 알아요, 한다. 윤혜, !!!??
재광, 전단지의 피해자 이름을 가리키며 이어 말한다. 이 사람, 우리 형이거든요.
윤혜, 망치로 맞은 듯 쳐다보고 있으면,
재광, 묻는다. 지금 어딨니? 전단지 위 사진 가리키며, 김주평, 이 사람.
완벽하게 뒤통수 맞은 표정의 윤혜.
- 1부 끝.
<2부>
깊은 밤, 재광, 방바닥에 침낭 안에 들어가 잠들지 못 하고 뒤척이고 있다.
창밖으로 찌링찌링 자전거 지나가는 소리 들린다.
재광, 침낭에 들어간 채로 애벌레 처럼 일어나 콩콩 뛰오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면,
차가운 겨울 밤, 저 앞으로 배달 자전거 지나간다. 재광, 창에 기대선다.
인서트, 우리 형이거든요, 하는 재광의 말에 당황하던 윤혜 얼굴.
재광, 지금 어딨니, 김주평, 이 사람? 물으면,
윤혜, 당황하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도망갔잖아요. 몰라요? 한다.
재광, 포기하듯, 이럴 줄 알았다, 하더니, 빤히 윤혜를 쳐다보다 피식 웃더니 고개 돌린다.
윤혜, 그것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자꾸 따라다닌 거예요? 재광, 뭐... 말하자면.
뭔가 말하려다 분한 표정으로 입 꼭 깨물고 돌아서 가던 윤혜의 뒷모습, 추워 보였다.
재광, 맘이 안 좋다.
전화기 꺼내 전원 켜면 부재중 전화 연속으로 들어온다. 보면, 신여사(재광 엄마)다.
전화기 던져 놓고 도로 누우려 하는데 울리는 전화벨, 다시 신여사.
재광, 전화 받으면서, 몇 신데 안 주무시나, 신여사, 하면,
재광엄마, 대체 전화기는 왜 꺼 놓냐, 이러면 나 잠 못 자는 거 모르냐, 다다다 잔소리 끝에
어떻게 됐어? 물으면,
재광, 당연히 헛다리지요. 식구들하고 안 살아요. 그 딸도 어딨는지 모르는 것 같구.
재광엄마, 확실해? 재광, 확실해요. 애당초 점쟁이 말을 믿고 이런데 내려온 게 미련한 거다, 재광엄마, 확실한 거 맞아? 내가 직접 갔어야 하는데. 다리만 아니어도 내가 갔는데.
재광, 그러게요, 신여사 다리만 아니어도 내가 안 왔을 텐데요... 암튼 낼 올라갈게요. 강형사한테 얘기 잘 해 놨으니까, 좀 더 기다려 보시라구요, 한다.
전화 끊은 재광,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다, 던지고는 벌떡 눕는다.
한밤중에 자다 깬 윤혜, 굳이 찌개 끓이고, 밥 깔끔하게 새로 해 한상 차려 먹는다.
주무시던 할머니 일어나 나오며, 그러게 밥 먹고 자라니까...
윤혜, 대답 안 하고 단정히 밥만 먹는다.
할머니, 뭔 일이 있길래 또 이러냐.
윤혜, 여전히 대답 안 하고 밥만 먹으면,
할머니, 한숨 푹 자고 일어나 밥 한그릇 뚝딱 먹으면, 다 괜찮아지지... 하시고.
윤혜, 목이 막히는지 흠흠 하다가 동치미 국물 마신다.
재광, 숙소 안 침낭 속에서 뒤척이며 자고 있고,
윤혜, 설거지하고 있으면, 할머니, 담배 한 대 들고 쪽마루에 나와 앉아 달을 보고 있다.
아침, 재광의 숙소. 누군가 문 탕탕탕 두드린다.
겨우 일어난 재광, 문 열어 보면, 상아 서 있다.
재광, 도로 침낭 그대로 누워 또로록 굴러 이불 속으로 들어가면,
상아, 춥다, 하며 이불 속으로 따라 들어가 옆에 누우며, 넌 맨날 이놈의 침낭.
대체 왜 남들처럼 멀쩡히 침대에서 이불 덥고 못 자는데? 하는데,
재광, 대답은 안 하고 등보이며 떨어져 눕고, 상아, 그런 재광의 태도에 맘이 상한다.
상아가 사온 아침을 같이 먹던 재광,
서울 가겠다, 책 만드는 건 니가 알아서 하든지 말든지 해라, 한다.
상아, 일러스트는 해 줄 거지? 하면, 재광, 빤히 보다가, 알았어, 대신 우리 그만 하자, 하며 갑자기 덤덤하게 이별을 고하고, 상아, 왜? 너 여자 생겼니? 물으면,
재광, 아니, 근데 여자 생겼다 치고 헤어져 주라. 한다.
상아, 대답 똑바로 하라고 벌컥 화내지만, 재광, 여전히 덤덤하고 건조하게 반응한다.
상아, 나쁜 자식, 욕해 주고, 일어나 나가면, 재광, 따라 나간다.
숙소 앞, 상아, 이별 선물이다 하며, 종이쪽지 내민다.
재광, 받아 들고 펴 보더니, 이거 이제 필요 없는데. 하자,
상아, 미친 자식! 하며 화 난 채 차에 오른다.
부웅, 거칠게 출발하는 차 뒤에 대고, 안전 운전! 하고 외치는 재광 옆에 대웅 와서 선다.
보면, 저만치 수리 끝난 재광의 차 서 있다.
대웅, 상아 뒤꽁무니를 보면서, 누구는 밤새 엔진 빠개진 거 붙잡고 씨름 했는데,
누군 밤새 여자랑 씨름하고, 좋네. 한다.
재광, 밤 새 하실 거까지야, 급할 것도 없었는데, 업무 시간에 하시면 될 것을.
대웅, 여기서 물 흐리지 말고, 서울 빨리 가시라고 애 좀 썼다,
고생 헛되지 않게 얼른 타고 가시라. 한다. 재광, 가든 말든 내 맘이다, 하면,
대웅, 윤혜 고생 많이 하는 애다, 괜히 바람 넣다 뺐다 하면서 흔들지 마라, 애 힘들다, 하면,
재광, 애! 힘들게 하는 건 그 쪽 어머닌 것 같던데. 라고 받아친다.
대웅, 인상 팍 쓰고, 재광, 얼마냐? 묻는다.
재광, 안내소 주차장에 차 주차하고, 안내소 안을 기웃거려 보면, 윤혜 없다.
재광, 마침 오는 안내소 직원과 마주치고, 서울 간다, 도움 감사하다, 인사하고 간다.
재광, 서울로 가는 고속도로에 올랐다.
윤혜, 출근하면, 선배, 어쩐 일이야 늦게 오기도 하고.. 하더니, 서울에서 온 작가라는 사람 갔다, 한다. 윤혜, 순간 가슴이 철렁하며 아프다.
윤혜, 탕비실에서 천천히 물을 마시는데, 울컥울컥해 잘 안 넘어가는데,
주머니에 손 넣다가 뭔가가 만져져 꺼낸다.
보면, 귀걸이다. 윤혜, 그 귀걸이를 빤히 보더니 쓰레기통에 버린다.
재광, 운전해 가는데, 계속해서 지난 밤 또각또각 걸어가던 윤혜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7년 전, 경찰서 앞에 있다 뛰어가던 어린 여자아이(윤혜)의 뒷모습도 함께 떠오르고,
재광, 결국 차를 돌린다.
재광, 안내소 안을 들여다보면,
안에서 윤혜, 오계장과 그 윗분에게 압력 받고 있는 중이다.
윗분, 이번에는 주민들 동의서 및 서명까지 동원해 와서 반협박인데,
동의한 사람들 명단에는 동료 선배들도 있다.
윗분, 안내원은 전주의 얼굴인데, 아버지 일 때문에 좀 곤란하지 않겠냐, 설득 중이다.
윤혜, 입 꼭 다문 채 있다가, 아직... 우리 아빠가 살인자인 건 아니예요, 한다.
윗분들 모두 뭔소리?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는데, 재광, 조용히 들어선다.
윤혜, 들어서는 재광을 보더니 작지만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더 힘 줘 말한다.
다들 오해하고 계신데요, 사실 우리 아빠가 그런 거 아니거든요.
사람들, 어이없어 하는 표정 지으면, 윤혜, 아빠는 누명 쓴 거예요, 그래서 도망가신 거구요.게다가 아직 우리 아빠가 살인범이라고 재판을 받은 것도 아니구, 그냥 용의자인거 거든요.
살인 용의자는 살인자하고 달라요, 그러니까, 저한테 이러시면 안 돼요. 하더니,
겉옷 걸쳐 입고 나간다.
윗분, 어디가나! 하면, 윤혜, 점심시간인데요. 하며 쭈뼛쭈뼛 나간다.
윗분, 요즘 것들은 경우가 없어! 하고는 오계장에게 가능한 한 빨리 알아서 처리하라고 하고
나가면, 오계장, 몹시 곤란해 하며 따라 나가다,
재광을 보더니, 아직 안 가셨어요? 하며 더 곤란해 한다.
윤혜, 하염없이 걷고, 재광, 윤혜를 따라 걷는다.
윤혜, 돌아서 재광에게 왜 따라 오냐, 묻고,
재광, 잊었냐, 나 여기 그 쪽 감시하러 온 거다, 진짜로 김주평씨랑 안 만나나 확인할 거다. 하면서 따라 붙는다.
윤혜, 아빠 어딨는지 진짜 모른다, 지난 7년 간 소식 한번 들은 적 없고, 살았는지 죽었는지 조차 모른다. 라며, 그래서 속이 얼마나 타는지 이곳을 떠날 수 없어 얼마나 괴로운지를 신경질적으로 떠들면, 가만히 듣고 있던 재광, 밥이나 먹자, 한다.
윤혜, 싫다 고집부리지만, 결국, 한정식집 가서 한 상 펴 놓고 앉은 두 사람.
둘 다, 그 많은 반찬들 다 손도 안 대고 달랑 한 두 가지 반찬만 먹는다.
맛 진짜 없게 먹다가 결국 이렇게 큰 상을 받으면, 너무 불편하다면서 서로 끄덕끄덕 그리며
먹다 말고 나온 두 사람. 결국, 호빵 하나씩 물고, 안내소로 온다.
윤혜, 서울 갔다더니 왜 돌아 왔냐? 묻고,
재광, 궁금해서... 하더니, 봤으니 이제 간다, 하고는 차에 오르려는데, 윤혜, 저기요.. 한다.
재광, 돌아보면, 차의 사이드 미러에 비닐 봉투가 걸려 있다.
재광, 봉투 안을 보면, 찢어진 서류 봉투 안에 빛바랜 포장지에 싸인 네모난 물건이 있다.
포장지를 열어 보면 직사각형 상자가 나오고 뚜껑을 열고 보면
캔버스나이프 (유화 그리는 나이프)가 나온다.
손으로 깎은 손잡이에 ‘한재광’ 이라고 각인까지 새겨져 있는 나이프다.
재광, 갸우뚱 하며 보다가, 낡은 포장지를 살펴보면 ‘일민화방’ 이름이 새겨진 전용 포장지다.
재광, 윤혜에게, 이거 어딘지 알아요? 하면, 윤혜, 없어진지 꽤 됐는데... 한다.
윤혜, 근데 그게 뭐예요? 물으면, 재광, 유화 그리는 나이프다. 대답하다 문득,
인서트, 7년 전, 술 취해 들어와 엎어지며, 미술도구 이것저것 집어 던지며 짜증내는 재광,
캔버스 나이프 집어던지자 손잡이가 툭 부러지고,
재수, 방으로 들어오다 부러진 캔버스 나이프를 보더니 집어 든다.
재광, 꿍하고 앉아 있으면, 재수, 미대 준비해 봐, 이번엔 너 하고 싶은 거 해. 한다.
재광, 엄마가 그림은 죽어도 안 된다잖아요, 하면,
재수, 엄만 형이 잘 얘기 해 볼게. 하더니 부러진 나이프 흔들어 보이고는 나간다.
현재, 재광, 일민 화방에 대해 알 만한 사람 없냐? 윤혜에게 묻고,
윤혜, 안내소로 들어와 여기 저기 전화해 알아보더니,
이름 없는 까페로 가봐라, 하며 약도 그려 주려 하는데,
주변에 선배들, 일도 없는데 같이 모시고 가라 어째라 하면서 둘을 밀어낸다.
이름 없는 까페 안,
벽에는 온갖 낙서와 폴라로이드 사진들 다닥다닥 붙어 있고,
목공예, 금속공예, 그림들 같은 작품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어 어수선하다.
시인처럼 보이는 남자, 구석에서 가만히 책을 읽고 있고,
등산복 입은 남자, 커피 내리고 있다.
재광과 윤혜, 어정쩡하게 서 있으면, 등산복 남자, 아.. 일민 화방? 그게 언제 닫았더라?
하더니, 이봐, 김시, 저 사람이 시인이야, 윙크하곤, 일민 화방이 언제 닫았지? 하고 물으면,
구석에서 책 읽던 김시, 글쎄... 한 5년 됐나? 대답한다.
주인이 누구였냐는 재광의 질문에 김시, 타지 사람이었는데... 기억이 안 나네, 한다.
재광, 캔버스 나이프 보여주며, 이건 손으로 만든 거 같은데 혹시 보신 적 없냐, 물으면,
그러게 일민 화방에 손으로 만든 도구들이 꽤 있었다, 하면서,
나중에 경자 언니 오면 물어봐라 한다.
원래 이 까페 주인은 경자언닌데 서울에 볼일 보러 가서 내일 온다, 며
커피나 한잔 하고 가라고 한다. 재광, 그러마.. 하는데,
김시, 일어나 오더니 나도 한 잔 할까 하고는 직접 커피 내리기 시작한다.
재광과 윤혜, 자리 잡고 앉아 커피 한잔 마신다.
윤혜, 그래서 미대는 갔어요? 하고 묻고, 재광, 아뇨, 한다.
재광, 참, 어차피 내일까지 기다려야할 것 같은데... 안내 좀 더 하시죠. 한다.
윤혜, 어디를? 하면, 재광, 나가자 하고는 윤혜를 끌고 나간다.
재광, 윤혜를 차에 태우고 간다.
윤혜, 어디 가는데요? 어디 가는지 알아야 안내를 하죠. 하면,
재광, 일단가자, 하고는 차를 운전한다.
도착한 곳은 바닷가.
재광, 자신이 휴대폰으로 찍은 윤혜의 가족사진을 보여주며, 여기 맞죠? 한다.
윤혜, 주변을 둘러보더니, 진짜 찾았군요, 한다.
재광, 나도 놀랐어요. 확실히 여행책 전문 출판사라 사진만 갖고도 잘 찾는구먼. 한다.
재광과 윤혜, 얼마 만에 오는 바다냐, 마지막으로 누구랑 왔냐? 등등 묻다가,
윤혜, 여전히 아빠가 무죄다, 안 그랬다 확신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살짝 열 받은 재광, 그럴리가 하며 경찰이 제시한 증거들을 이야기한다.
윤혜, 그게 다 잘 못 된 거다, 아빠 떠날 때 아빤 잘 못 한 거 없다고 그랬다. 그 때 붙잡았어야 하는데... 우리 아빠가 원래 겁이 좀 많다, 난 아빠가 아니라고 확신한다. 떠들면,
재광, 윤혜를 빤히 보다가 가까이 다가가더니, 나랑 잘래요? 나랑 자고 싶어 했잖아요.
윤혜, 당황해 뒤로 물러서면, 재광, 윤혜의 얼굴을 잡으며, 너무 빠른가? 그럼 키스라도...
윤혜, 억지로 얼굴을 빼고는, 원망 담긴 눈으로 쳐다보면,
재광, 왜 못 하나? 속으로는 뭔가 캥기는 게 있으니까 그런 거 아니냐? 나 좋아하는 거 아니었냐? 나도 너 맘에 든다, 니 아빠가 아무 죄가 없으면 우리 키스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그 쪽이 부정한다고 살인이 아닌게 되냐? 그럼 형은 누가 죽였냐! 몰아붙이면, 윤혜, 원망이 가득 담긴 얼굴로 재광을 보다 팽 돌아서 간다.
재광, 따라가 팔 잡아당기면, 윤혜, 재광의 손을 뿌리치고 간다.
재광, 따라가면, 윤혜, 모래까지 집어 막 뿌리면서 못 쫓아오게 하고 뛰어간다.
다음날, 재광, 이름없는 까페 가는 길, 우연히 윤혜의 자전거를 본다. 장갑을 떠서 손잡이에 씌워놓았기 때문에 누가 봐도 한 눈에 윤혜 것임을 알 수 있다.
재광, 그냥 지나치려는데, 열쇠도 없이 길에 우두커니 서 있는 윤혜의 자전거가 안쓰러워
그 옆에 가만히 서서 지킨다. 찌링찌링 벨도 울려보고, 이리 저리 기웃대며 기다린다.
게임방에서 나온 윤혜, 재광을 보더니, 못 본 척 하고 자전거를 끌고 가려 한다.
재광, 열쇠도 안 잠근 채 이렇게 오래 밖에 세워두면 어쩌냐, 누가 훔쳐 가면 어쩌려고?
윤혜, 이거 내 건 거 온 시내가 다 안다. 살인자 딸 자전거를 누가 훔쳐가겠냐, 찜찜해서.
재광, 윤혜 따라가며 계속 말을 걸고 화해를 시도 한다.
재광, 이름 없는 까페 가는 길 잃어버렸다고 찡찡대고, 윤혜, 할 수 없이 같이 가주마, 한다.
재광, 윤혜에게 자전거 태워 달라고 하고,
윤혜, 싫다, 자전거는 그 쪽이 운전해라, 내가 뒤에 타마, 하는데,
재광, 자전거 탈 줄 모른다고 한다.
윤혜, 할 수 없이 자전거에 재광을 태워 꾸역꾸역 타고 가고,
뒷자리에 다소곳이 앉은 재광, 그런 윤혜를 보며 킬킬 웃으며 간다.
이름없는 까페에 도착한 두 사람.
재광, 경자 언니를 만나 일민 화방 주인이었던 사람을 묻는데,
경자 언니, 그렇지 않아도 김선생한테 들었는데, 타지 사람이라 기억이 안 난다, 한다.
재광, 실망하며, 돌아서 나오다 문득 다시 들어가더니, 벽에 붙어 있는 폴라로이드 사진들을 중 한 장의 사진을 뜯어 자세히 본다. 꽃을 든 손을 찍은 사진이다.
재광, 사진을 보여주며 경자 언니에게 이 사진 누가 찍었냐 묻는다.
경자 언니, 모른다, 오래 된 거고 사람들 아무나 찍어서 아무나 붙여 놓기 때문에... 한다.
재광, 사진을 가져가도 되냐? 묻더니, 들고 뛰어 나간다.
윤혜, 따라 나가고, 둘은 경찰서로 간다.
강형사를 만난 재광, 사진을 내밀며 설명한다.
사진 속 반지, 형 것이다. 엄마가 형 대학 입학 기념으로 직접 디자인해서 만들어 준 거다.
공방일 배운지 얼마 안 된 때라 잘 못 해서 여기 봐라, 땜질 자국 있는 거 이거 분명히 형 거다. 형이 늘 가지고 다녔는데 유품에 없어서 의아해 했었다. 그런데 사진이 찍힌 날짜를 봐라. 형이 죽은 지 2년 후다. 어쩌면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이 형의 마지막을 본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그 사람이 범인일지도 모른다.
강형사, 그럴 리 없다. 증거가 워낙 확실하기 때문에.
재광, 그 증거라는 거, 형이 김주평의 차에 치었다는 거랑,
형의 손톱 밑에서 김주평 살점이 나왔다는 거 정도인 거 아니냐? 그럼 형이 김주평과 몸싸움을 하고 도망쳤다가 다른 사람 손에 죽었을 수도 있는 거 아니냐. 한다.
강형사, 사망 시점이나 위치 등을 종합해 보면 다른 사람이 범인일 확룰 없다.
재광, 그리고 이거, 누군가 이걸 나한테 보냈다. 이건 형이 나주려고 7년 전에 산 건데,
아마 사고가 나면서 못 전해 준 것 같다. 그걸 아는 사람이 내게 전해 준거다. 그건 형을 아는 사람이 내가 여기 왔다는 것을 안다는 거고, 그건 여기에 산다는 거다.
그러니까 어쩌면 이걸 보낸 사람이 형을 마지막으로 본 사람과 상관이 있을지 모른다.
강형사, 알았다, 아무튼 조사 좀 해 보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두 분은 왜 자꾸 같이 다니냐, 묻는다. 재광, 뭐 문제 됩니까? 하면, 강형사, 지난번에도 말씀 드렸지만, 피해자 가족이 가해자 가족하고 다니면 우리로선 신경 쓸 수밖에 없습니다, 한다.
재광, 그런 걱정 안 해도 된다, 하고 잘 부탁 한다, 하더니 윤혜와 나온다.
경찰서를 나와서도 얼떨떨한 윤혜.
재광, 뭐 하냐, 안 돌아가냐? 하더니 다시 자전거를 태워 달라 한다.
윤혜, 자전거를 끌면서 아무 말 못 하고 곰곰 생각, 재광도 뒷자리에서 곰곰 생각한다.
공원을 지나던 윤혜, 갑자기 자전거를 세운다.
공원 지나면 이제부터 오르막 길이다, 난 못 태워 간다.
재광, 그럼 자전거를 가르쳐 달라. 윤혜, 지금? 재광, 지금.
윤혜, 재광에게 자전거를 가르쳐 준다.
꽈당 넘어지는 재광을 보며 웃으려고 하다가도 주변을 둘러보며 못 웃는 윤혜.
그래도 두 사람, 모처럼 즐겁다.
재광, 넘어지며 체인 빼 먹으면, 윤혜, 씩씩하게 고치기도 하고,
윤혜가 자전거의 뒤를 잡아주기도 하면서 열심히 자전거를 배우는데, 갑자기 비가 온다.
쫄딱 젖어, 자전거 끌고 뛰는 두 사람.
재광의 숙소까지 마구 뛰어와 숙소 앞에서 우뚝 멈춰 선다.
재광, 혹시 혹시 말이죠, 범인이 진짜 따로 있으면... 뭘 젤 먼저 하고 싶으냐?
윤혜, 곰곰 생각하다, 웃긴 거 보면 큰 소리로 웃고 싶다.
지금도 너무 웃고 싶은데 참고 있는 거다. 사람들이 욕할까봐. 대답한다.
재광, 그러냐? 뭐가 그렇게 웃기냐. 윤혜, 그쪽 머리, 2:8이다. 안 돼~ 만 외치면 될 것 같다.
재광, 픽 웃더니 그럼 요기서 조 문 앞에 갈 때까지 뛰어가며 웃자, 대신 고개 숙이고...
하더니, 2:8 제대로 만들어 안 돼! 안 돼! 한다.
윤혜, 웃으려다 머뭇거리면, 재광, 윤혜의 손을 잡아 당겨 뛰기 시작하고,
둘은 고개를 숙인 채 깔깔깔 웃고 뛰다,
숙소 앞에 멈춰 서서 고개 들고 마주 보며 웃는데, 재광의 엄마, 재밌어, 아들? 하며 서 있다.
화 잔뜩 난 재광의 엄마, 깁스해 목발 한 쪽 집은 채 걸어오더니, 윤혜 따귀를 철썩! 때린다.
엄마, 너 김주평딸이지? 당황한 윤혜, 재광의 엄마를 보더니 죄송합니다... 하고는 뛰어간다.
재광, 따라 가려는데, 엄마, 잡는다.
엄마, 오자마자 내가 처음 들은 얘기가 니들 붙어다닌단 얘기다! 하며 따지기 시작하고,
재광, 엄마를 숙소에 모셔다 드리고는 오해 마시라, 달랜다.
엄마가 깜빡 조는 사이 밖으로 나온 재광, 윤혜를 찾아다닌다.
문득 생각나 덕진 공원 유원지 쪽으로 뛰어간 재광.
7년 전, 윤혜를 따라 뛰던 그 길. 재광, 어린 윤혜를 따라 뛰면,
윤혜, 미친 듯이 뛰어 캄캄한 유원지 안으로 들어간다.
재광, 따라 가면, 윤혜, 우두커니 서 있는다.
현재, 윤혜, 유원지 호수 앞에 우두커니 서 있다.
재광, 다가가, 왜 또 뛰어들게? 한다. 윤혜, 어떻게 알았어요? 뛰어들었었던 거?
재광, 봤으니까. 인서트, 7년 전 윤혜가 호수에 뛰어드는 순간.
윤혜, 어떻게?... 재광, 따라왔었다. 그 날 경찰서 앞에서 봤다.
김주평 딸인 것 알고 나도 모르게 그냥 따라왔던 것 같다.
윤혜, 이제 알았다, 오리배 튜브 그거 그 쪽이 던져준 거였나?
물에 가라앉아 이젠 죽겠다 싶을 때 쯤 오리배에서 튜브가 하나 떨어져 나오더라.
그거 덕에 겨우 살았는데...
재광, 아니다.. 난 그 쪽이 가라앉는 거 보고 그냥 돌아서왔다. 그 땐 왠지 내가 당신을 살리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윤혜, ... 아... 그랬구나.
재광, 그 후로 어쩐지 나의 반은 죽 이 근처를 머뭇거리며 서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난 내 반쪽만 가지고 살아온 느낌이었다. 늘 궁금했다, 그쪽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죽었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실 여기 내려올 생각 없었다. 우리 엄마야 뭐 형 관련한 거라면 뭐든 다 하는 사람이니까. 근데 신여사가 그 쪽이 버젓이 직장 잡고 산다고 하더라. 다행이다 싶었다. 보고 싶었다, 진짜 살았는지. 살았다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윤혜, 그 날 물속에 빠졌을 때 죽자.. 했는데, 갑자기 살고 싶어졌다. 버둥거리기 시작했는데, 물에 젖은 코트가 너무 무거웠다. 아무리 벗으려고 해도 벗겨지지 않고, 물 아래로 자꾸만 잡아 당겼다. 그 후로 죽 그 물에 젖은 코트를 입고 사는 기분으로 살았다.
재광, 윤혜의 어깨를 가만히 잡는다.
재광, 만일 범인이 따로 있다면 난 제일 먼저 뭘 하고 싶은지 아나? 윤혜, ?
재광, 연애. 그 쪽하고. 남들이 하는 그런 보통의 연애.
윤혜, 가슴이 터질 것 같아 눈물이 핑 돈다.
서랍이 열리고, 재광의 형, 재수의 반지가 펜던트처럼 걸린 목걸이를 꺼내는 손.
보면, 경자언니다. 경자 언니, 그 목걸이를 가만히 보다 화장대 위에 내려놓더니,
클렌징크림을 얼굴에 바르고 지운다.
윤혜를 가만히 바라보던 재광, 우리 이제 어떡하니... 한다.
- 2부 끝.
<3부>
덕진공원 유원지 호수 앞,
우리 이제 어떡하니, 하더니, 윤혜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한다.
윤혜, 얼른 재광의 손을 피하더니 뒤돌아서서 속마음을 이야기 한다.
난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아빠가 왜 사람을 죽였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간다.
한 번 그 생각에 빠지기 시작하면, 헤어 나올 수가 없다.
그럴 때마다 아빠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아빤 잘못이 없다. 아빠 잘 못이 아니다...
그 말을 떠올리면 울렁대던 발밑이 좀 단단해 지는 것 같아 한 발짝이라도 뗄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두렵다, 정말 우리 아빠가 그런 거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재광, 그건 그때 생각하자, 네 말처럼 아빠가 진짜 범인라고 확인되면 그 때.
어쩌면 아닐지도 모른다, 그 반지를 갖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일지도 모르는 거다.
호수를 바라보던 윤혜, 아직도 나는 저 속에 빠져 있는 것 같아...
검은 호수를 바라보는 두 사람.
재광, 윤혜를 집 앞까지 바래다 준다.
정한수 떠놓고 빌던 할머니, 인기척에 가만히 계신다.
재광이 돌아서 가고, 윤혜, 그길로 성당으로 가 죄를 짓기 시작했다, 고백한다.
다음 날, 엄마와 재광, 경찰서에 앉아 있다.
강형사, 몹시 곤란해 하고, 재광, 엄마를 말리고 있다.
강형사, 수사상 비밀이라 말씀 못 드리고요, 어쨌든 다들 수사하고 있으니까 가 계셔라.
엄마, 못 간다, 버틴다.
엄마 끌고 경찰서에서 나오는 엄마.
엄마 밖에 세워놓고, 음료수 뽑으러 들어온 재광, 신참이 강형사에게 보고하며 밖으로 나간다.
신참, 그 사건 처음으로 신고한 사람 말입니다, 알고 봤더니 그 까페 여주인이던데요.
이거 우연치곤 좀 그렇지 않습니까? 강형사, 나가다 음료수 뽑는 재광을 보더니, 아차! 하는 표정 돼 신참한테 눈치 준다. 재광, 눈인사하고 간다.
재광, 이름 없는 까페에 와서 경자언니를 만나고 있다.
재광, 교통사고 현장을 제일 먼저 목격하신 분이라구요.
경자언니, 아무 것도 말씀 못 드린다, 하는데,
문 열리고, 강 목수, 난로에 넣을 땔깜 들고 들어온다.
강목수, 재광을 슬쩍 보더니 나가려고 하는데,
마침 들어오는 김시와 마주친다.
김시, 어이, 강목 오래간만이네.
강목수, 별 대답 없이 대충 인사하고 나간다.
경자언니, 그런 강목수를 안 보는 듯 신경 쓰고 유독 있다.
김시, 추운데 유자차나 한 잔 먹자 했더니,
경자언니, 유자청 가지러 가야한다며 나간다.
재광, 따라 나가려다 김시 앞에 앉는다.
재광, 여기 분들하고 친하신가봐요. 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묻자,
김시 강목은 직업이 목수라 강목이라 부르는데,
예전에는 꽤 잘 나가는 목공예가였다고 한다더라.
그러고 보니, 그 일민 화방을 초창기엔 강목이 운영했다더라. 하더니,
경자언니랑 애인 사이란 말도 있고, 헤어진 전 남편이란 말도 있고,
암튼 둘이 뭐가 있긴 있는데, 입 꽉 다물어서 더 안 캐묻고 있다, 한다.
재광, 강목은 어디 사는데요?
김시, 모악산 안쪽에 어디 산다던데, 가서 보면 아주 근사하다더라, 하는데,
경자 언니, 빈손으로 들어와 유자차를 만든다.
유자차 나오고,
재광, 불편하게 앉아 있다가 경자언니에게 다가가 묻는다.
혹시, 한재수라고 아세요? 우리 형인데.
경자언니, 가만히 있다가 불쑥, 네, 알아요. 한다.
재광, 깜작 놀라, 어떻게 아는데요? 여기 마지막 날 왔었죠? 하자,
경자언니, 네, 여기서 한참 앉아 있다 갔어요, 날 만나러 온 거였거든요. 하는데,
강형사 일행 들이닥치더니, 경자언니에게 임의 동행 요구한다.
경자언니 형사들과 함께 가고, 재광, 벙찐 채 서 있다.
윤혜, 버티며 안내소에 앉아 있고,
그 뒤에 오계장 역시 버티고 앉아 있다.
재광, 안내소로 찾아와 윤혜를 데리고 나가고,
선배1, 얘기 들었냐, 저 남자가 그 피해자 동생이란다, 한다.
정말? 하고 놀라는 오계장과 선배2. 말이 되냐, 어쩌구 하며 모여든다.
재광, 윤혜에게 형사들이 경자언니를 데려갔다며, 희망이 있을지 모른다, 한다.
윤혜, 부정탈까 차마 좋아하지도 못 하고, 아무 말도 못 하는데,
재광의 전화벨 울린다. 받으면, 강형사다, 어머니 좀 모셔가라고 한다.
재광 가고 나면, 대웅, 나타나 윤혜 옆에 앉는다.
동네 소문이 짜 하다. 어쩌려고 저 놈하고 이러고 다니나. 저 놈도 너 좋대냐?
윤혜, 아직은 내가 혼자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대웅, 정신차려라, 속없는 기집애. 진심으로 걱정도 되고 속상도 해 윤혜를 윽박지르고,
윤혜, 너는 니가 나 좋아하는 게 무슨 유세냐! 무슨 유세길래 짝사랑하는 놈이 이렇게 당당하냐? 난 짝사랑 해보니 말 한 마디 조심스러워 못 하겠던데 넌 뭐 잘났다고 이렇게 당당하냐!
세상에서 젤 힘없는 놈이 짝사랑 하는 놈인데 넌 뭐한다고 이렇게 뻗대고 나오냐,
웃기지 마라, 니 사랑은 사랑도 아니다, 내가 동정이고 만만해 보여 이러는 거다, 한다.
재광, 경찰서 가면, 엄마, 강형사 붙잡고 경자 언니 놓아주라고 사정하고 있다.
재광 엄마, 내가 아는데, 저 여잔 아무 상관없다.
강형사, 없는지 있는지는 우리가 판단한다, 하더니
마침 옆에 와 서는 재광에게 어머니 모시고 가라 한다.
재광, 엄마를 억지로 끌고 나오며, 신여사가 저 여잘 어떻게 아느냐, 한다.
엄마, 알 필요 없어! 하고는 신경질적으로 돌아간다.
재광, 엄마를 따라 가며, 대체 저 여자 누구냐! 소리 지르면, 엄마, 동네방네 다 떠들어라!
하고는 휭하니 택시 타고 가버린다.
재광, 까페로 간다 윤혜에게 문자 하고.
안내소로 돌아온 윤혜, 눈치 보며 앉아 있는데, 상아, 들어온다.
한재광씨 어딨냐? 글쎄... 아마 이름 없는 까페에 있을 거다 하자,
거기까지 좀 안내를 해 줄 수 없나 부탁한다.
윤혜, 상아와 함께 이름 없는 까페로 간다.
걸어가는 길 내내 윤혜를 살피는 상아, 뭔가 물으려다 말고 그냥 간다.
윤혜, 까페까지 데려다 주고 혼자 돌아가려는데 상아, 들어갔다 가라고 한다.
윤혜, 아니다 하자, 상아, 그럼.. 하고 까페에 혼자 들어간다.
윤혜, 그냥 돌아가려다 까페 화장실에 들러 거울 앞에 서서 머리를 다시 묶는데,
전화벨 울린다. 보면, 발신자 제한 표시 전화다.
윤혜, 화장실에서 나오며 전화 받는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계단을 내려가며, 한 번 더 여보세요, 하더니
한참을 가만히 있던 윤혜, 자기도 모르게 아빠? 하는데,
거의 동시에 어디가? 한다.
윤혜, 당황해 몸 돌려 보면,
재광, 완전 황당한 표정으로 얼음! 돼 서 있고, 윤혜, 완전 당황해 재광을 쳐다본다.
윤혜, 전화 든 채 재광을 쳐다보면, 재광, 못 들은 척 까페 안으로 들어간다.
미친 듯이 뛰는 윤혜.
집으로 가는 골목길을 숨이 턱까지 차라 뛰어 올라가고 있다.
문을 열고 급하게 들어선 윤혜, 할머니를 빤히 쳐다본다.
할머니, 그런 윤헤를 보더니 슬쩍 외면한다.
윤혜, 언제부터야, 언제부터 아빠랑 연락한 건데? 할머니, ...
윤혜, 전화왔었다구, 아빠한테. 내 전화번호 알려 줄 사람이 누가 있어, 할머니 말구.
할머니, 애비라고 자식 목소리 듣는 게 소원이라길래.
윤혜, 어딨대? 할머니, ... 대답 안 하고는 꿍 하며 돌아눕는다.
방에 들어와 휴대전화를 보며 멍하니 앉은 윤혜.
인서트, 재광의 황망한 눈.
그 날 저녁, 경자 언니 풀려나고, 재광, 경자 언니 근처를 배회하기 시작한다.
재광, 경자 언니 따라 산까지 들어갔다가 길을 잃는데 남자 그림자, 쓱 나타난다.
할머니와 저녁 식사를 하면서,
윤혜, 아빠한테 오라고 해라, 와서 떳떳하게 경찰 조사 받으라고 해라, 그 때 아빠가 집 나가면서 나한테 분명히 말했다, 아빠 잘 못 없다고. 아빠가 잘 못 한 거 아니라고. 그러니까 와서 조사 받으라고 해라... 할머니, 아무 대답 안 한다.
놀란 재광, 보면, 강목수다.
강목수, 재광을 데리고 작업실로 간다.
목공 작업실, 강목수, 차를 끓여와 재광에게 내민다.
강목수에게 재광, 캔버스 나프 내밀며, 이거 당신이 보낸 거냐, 한다.
그건 내가 보냈다, 하는 여자 목소리.
돌아보면, 경자언니다.
사건 현장에 내가 있었다. 역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재수씨가 택시에서 내리더니, 앞 쪽을 한참을 바라보다 갑자기 길로 뛰어들었다.
그러다 차에 치었고, 운전자가 재수씨를 태워 갔지만,
이건 바닥에 떨어져서 내가 챙겨 놨던 거다.
재광, 나한테 줄 건지 어떻게 알았나? 경자언니, 그건 그 전에 말했으니까.
재광, 형하고 어떤 사인데요? 경자 언니, 사랑했던 사람.
윤혜, 밥숟가락을 든 채 빤히 할머니를 보고 있다.
윤혜, 다시 말해 봐요. 할머니, 니 아빠가 한 짓 맞아, 내가 피 묻은 옷 다 태웠다.
윤혜, 어쩔 줄 몰라하며, 왜 진작 말 안 했어요?! 할머니, 너 또 물에 뛰어들까봐...
윤혜, 내가 물에 뛰어든 건 어떻게 알아? 할머니, 대답 안 하고, 윤혜, 절망에 빠진다.
재광, 멍한 얼굴로 작업실을 걸어나와 휘청휘청 어두운 산을 내려온다.
재광, 윤혜를 찾아오더니 무작정 태워서 서울로 간다.
말없이 운전만 하는 재광과 앞만 바라보는 윤혜,
재광, 윤혜를 자신의 오피스텔에 데려가더니, 여기서 하루만 놀자, 얘기한다.
윤혜, 재광에게 라면 먹자 한다.
재광, 라면 끓이는데, 윤혜, 자신은 다른 방식의 라면이 더 좋다며,
각자 따로따로 끓여서는 결국 바꿔 먹는다.
라면을 먹으며 tv를 오락프로를 보던 윤혜,
노래를 부르는 연예인이 노래방 점수를 받자,
혼잣말 하듯 난 몇 점이나 나올까 저렇게 노래를 부르면?
재광, 안 해봤냐, 한다. 윤혜, 노래조차 안 해 봤다 하자,
재광, 스카트 폰에서 노래방앱을 돌린다.
아는 노래 부르라고 하자, 머뭇거리던 윤혜, 애국가를 음치에 박치로 부른다.
다 부른 윤혜, 몇 점이냐, 묻자, 재광, 아... 점수를 매길 수 없다, 너무 못 불러서. 한다.
갑자기 정적이 도는 방, 윤혜, 그만 집에 가자한다.
재광, 낼 되면 서울 구경할 데 많다, 하룻밤 자고 딱 하루만 서울서 우리를 아무도 모르는데서 놀다 가자, 한다.
윤혜, 알았구나, 우리 아빠가 진범이라는 거. 우리 아빠가 한 거 맞댄다, 하며 겨우 말하면,
재광, 고개를 끄덕끄덕 한다. 윤혜, 절망하는 표정이다.
둘, 말없이 전주로 내려온다.
숙소로 돌아온 재광, 밤 새 못 자 눈 뻘게진 엄마, 온 몸이 아프다, 발가락부터 머리끝까지 안 아픈 데가 없는데 대체 어딜 갔다 왔냐 신경질을 부린다.
재광, 엄마, 자자, 하면, 엄마, 너도 이제 알았지?
재광, 안다. 엄마에게 알고 있었던 거냐? 다 알고 있었던 거냐?
엄마, 죽어도 안 된다. 니 형 이렇게 죽은 것도 불쌍한데, 그게 밖으로 알려지면 안 돼.
재광, 그건 그냥 형이 어떤 사람하고 사랑에 빠진 거다. 알려져서 안 될 것도 없고,
그냥 그런 거다. 설득하면, 엄마, 문득, 그럼 니 형 나 때문이란 거 너도 이제 알았지? 한다.
재광, 무슨 소리냐? 엄마, 형이 그 이상한 애인인지 뭔지 데려왔을 때 연수원이고 뭐고 다 때려치고 외국으로 둘이 떠나겠다고 했을 때 내가 그랬거든, 차라리 죽어. 너 죽으면 나도 따라 죽을 테니. 그랬는데 진짜 죽었어. 난 여태 못 죽었는데. 내가 죽으래서 죽은 거야. 차에 뛰어들었다잖아. 다들 그래, 니 형 재수가 차에 뛰어 들었다고. 어쩌면... 사고가 아니라...
재광, 벌벌 엄마를 부둥켜안고 있다, 뛰쳐나간다.
재광, 이름 없는 까페 문 두드린다.
경자언니, 나오면, 재광, 지금 우리 엄마한테 가서 당신이 본 거 정확히 말해라!
우리 형, 사고 아니었냐? 경자언니, ... 가서 기다려라, 숙소로 곧 갈 테니.
잠시 후, 경자 언니 재광과 엄마 앞에 앉아 있다. 경자 언니, 그건 사고였다.
엄마, 그런데 왜 차도로 갑자기 뛰어들었나. 하는데, 문 노크 소리 들리고 열어보면 강목수다.
엄마, 강목수 보자 바로 얼음! 뒤뚱대며 돌아앉고.
강목수, 제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못 들은 척 한다.
강목수, 그 날 전 이 사람이랑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고, 기차역으로 갔다.
재수는 제가 어쩌면 못 올지도 모른다... 포기했었던 것 같은데,
제가 역에 서 있으니까 급한 맘에 달려오다가 그만.
이 사람은 절 말리러 역으로 오는 길이었고.
엄마, 더 이상 듣기 싫다고 하고 두 사람을 나가라고 하더니, 갑자기 풀썩 꺾인다.
재광, 그런 엄마가 안쓰러워, 들었죠, 형은 그냥 사고였어요. 하자, 엄마, 운다.
엄마 잠들자, 재광, 윤혜에게 전화한다.
윤혜와 만난 재광. 형이 전주에 내려온 이유는 애인이랑 도망가기 위해서였단다.
윤혜, 뭔소리?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면, 재광, 우리 형 진짜 용감하지 않았냐? 사법 시험 합격한 것도 다 버리고 애인하고 도망가려고 했댄다. 윤혜, ...
재광, 우리도 도망갈까요? 윤혜, 대답 안 하고.
재광, 서로가 아는 게 어쩌니 했지만, 사실은 도망가고 싶잖아요. 윤혜, 대답 안 하면,
재광, 아빠, 형 이런 거 상관없이 우리도 도망갈까요? 하는데,
경찰차 가득, 현장을 덮쳐 아빠를 검거하는 장면과 교차한다.
경찰차 둘러싸여있고 경광등 번쩍이는 사이로, 수갑 찬 채 잡혀오는 아빠.
- 3부 끝.
<4부>
재광과 윤혜, 경찰서로 뛰어 들어오면,
할머니 조사 받고 나온 아빠 김주평을 붙잡고 울고 있다.
강형사, 말리는데, 할머니, 내 새끼요, 이런 놈이어도 내 새끼요, 하고 운다.
재광 엄마, 목발 집고 들어서고, 재광, 엄마에게 다가가 부축한다.
재광 엄마, 복도에 선 채 사무실 안쪽의 김주평을 눈이 시뻘개져라 노려본다.
강형사, 할머니를 진정시키고 김주평을 이송하기 위해 데리고 나오는데,
엄마, 다짜고짜 목발을 들어 김주평을 팬다.
김주평, 넘어지고, 엄마, 같이 넘어져 악착같이 패고,
형사들 말리고, 할머니 막아서고 재광까지 매달려 아수라장이 된다.
윤혜는 이 광경을 빤히 보고만 있다.
형사들이 말려, 엄마 떨어져 나가고, 형사들 넘어진 김주평 일으켜 세우려 하는데,
재광, 구석에 떨어진 주평의 신발을 집어 내민다. 주평의 맨발이 갈라지고 새까맣다.
윤혜, 그런 주평을 외면하고, 형사들, 주평을 데리고 나간다.
할머니, 엄마 앞에 무릎 꿇고, 조아리면,
엄마, 할머니에게, 죽어! 당신 아들도 죽어야 한다. 내 자식을 어떻게 했는데! 어떻게 했는데! 저 인간 죽어도 싸지. 아니 저 따위 쓰레기 같은 인간 열이 죽어도 내 아들 목숨 하나 값도 안 된다. 그 자식이 어떤 자식이었는데, 엄마 통곡하고, 할머니, 소리도 못 내고 울고,
윤혜, 허깨비처럼 걸어서 나간다.
재광, 따라 나가 그런 윤혜를 붙잡는데, 윤혜, 놔! 소리 지르고는 나간다.
윤혜, 결국 안내소에서 쫓겨나 짐 싸들고 나온다.
짐 싸들고 집에 돌아온 윤혜, 할머니가 면회 준비 하는 것을 보며,
이제 그만 해라, 인간도 아니다, 다 버리고 여기 뜨자, 안 뜨면 나 혼자라도 뜬다, 난리 치고, 할머니, 두 말 않고 나간다.
윤혜, 나가는 할머니 뒤에 대고, 난 죽어도 면회같은 거 안 갈 거다, 다신 안 볼 거다.
인연 끊고 살 거다, 한다.
주평을 면회하고 나온 할머니, 휘청 하더니 주저앉는다.
어떻게, 어떻게, 하며 병원으로 뛰어 들어가는 윤혜.
할머니, 중환자실에 누워 있고, 윤혜 망연자실이다.
의사, 뇌졸중이다, 아마, 깨어나셔도 오른 쪽 마비가 오실 거다,
현재로선 의식이 돌아오는 게 중요한데, 좀 더 두고 보자 한다.
대웅 뛰어 들어오고, 윤혜, 대웅을 못 본 척 한다.
대웅 엄마 찾아와 한바탕 난리를 치고 대웅을 끌고 나가려 한다.
윤혜, 난동부리는 엄마 끌고 나가는 대웅을 붙잡으며 아주 정식으로 이야기 한다.
똑바로 봐라, 이제 진짜로 나 살인자 자식이다, 이제 죽을 때 까지 난 살인자 자식인거고,
행여 내가 너랑 도망가 애 낳고 산대도 그 애는 할아버지가 살인자인거다.
대웅, 괜찮다, 하면, 윤혜, 난 안 괜찮다, 특히 네 엄마, 세상 모든 사람 중 살인자 자식에게 가장 모질 게 구시는 분이다, 내가 싫다, 하고는 절대로 다시는 날 찾아오지 마라, 너도 네 엄마도 다신 마주하고 싶지 않다, 한다.
대웅엄마, 분에 차 윤혜를 한 대 치려하면, 대웅, 엄마를 저지 하더니 모시고 힘없이 나간다.
재광, 윤혜를 찾아 병원으로 온다.
재광, 윤혜와 다니며 할머니 보고, 의사 만나고, 윤혜 밥 사 먹이고, 이런 저런 수발을 한다.
오가는 사람들, 그런 재광과 윤혜를 보며 수근 거린다.
윤혜, 이제 오지 마라, 재광, 할머니 서울 큰 병원으로 옮기자.
윤혜, 됐다. 재광,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옮기자.
윤혜, 신경 쓰지 마라, 어차피... 재광, 마음이 변했냐?
윤혜,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곧 변할 것이고,
재광, 난 아직 안 변했다, 변하면 알려주마. 그 전까지는 내 맘대로 하게 냅둬라. 낼 보자.
돌아가는 재광의 뒷모습을 윤혜, 맘 아프게 보고 있다.
재광, 숙소로 돌아오자, 엄마, 씩씩거리며 앉아 있다.
엄마, 재광에게 윤혜랑 뭐 하는 거냐, 묻고,
재광, 연애할 거다, 대답한다.
엄마, 재광의 따귀를 철썩 때리고,
재광, 세상에 딱 한 사람이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 하는 날 한 눈에 알아보는 사람,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내가 유일하게 이해가 되는 사람. 세상 금 밖으로 밀려나서 안으로 못 들어오는 사람들이다. 첫눈에 알아봤구, 이젠 못 돌이킨다! 들이 받는다.
엄마, 걔야 살인자 딸이니까 그렇다 치고, 넌 왜 넌 왜 금 밖에서 사는데!
재광, 왠지 모르냐? 형 죽었을 때 나도 죽었잖냐! 신여사가 죽였잖냐! 하더니 나가 버린다.
현장 검증날,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들고, 그 중에는 윤혜도 보이고, 경자 언니와 강목수도 보인다.
엄마, 강목수 보자마자 가라고 한다.
강목수, 있게 해달라고 하자,
엄마, 매몰차게, 넌 뭘 했니? 니 눈앞에서 재수가 차에 치었는데, 넌 뭘 했니?
강목수, 대답 못하자,
경자 언니, 저만 봤습니다, 그런데 차에 태우길래 괜찮겠지 했습니다.
엄마, 경자언니를 보더니,
몸쓸 년, 니 사랑 지키느라 내 자식 죽는 걸 두 눈 뜨고 보고만 있었구나.
경자언니, ...
엄마, 강목수에게 모질게, 그러게 하지 말라니까... 하더니,
그래 봐라, 널 사랑한 내 자식이 어떤 꼴로 죽었는지 똑똑히 봐라, 라며
강목수에게 독설을 내뱉고 간다.
재광, 엄마에게 자신이 볼 테니 보지 말라고 하지만, 엄마 직접 보겠다며 버틴다.
교통사고가 나는 현장,
쓰러진 재수를 들어 승합차에 싣는 김주평.
깨어난 재수의 목을 조르는 김주평,
땅을 파고 재수를 묻어 버리는 김주평.
실제 사건과 현장 검증이 교차 편집된다.
엄마, 주저앉아 혼절하듯 울고 있고, 강목수, 뒤돌아 외면한다.
재광, 울지도 않고 소리도 안 지르고 두 눈 부릅뜬 채 쳐다보고 있다.
윤혜, 차마 쳐다보지도 못 한 채 등지고 주저앉아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
전화벨 울린다. 겨우 받은 윤혜, 휘청휘청 일어나더니 자리를 뜬다.
병원, 할머니 위독하시고, 윤혜, 연명포기각서를 요구 받는다.
현장 검증 끝나고, 사람들 빠져 나간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윤혜,
우왕좌왕 미친 사람처럼 재광이 어딨는지 묻고 다닌다.
해질녘, 산 속 형이 죽은 현장,
재광, 혼자 남아 현장검증을 위해 파 놓은 흙 속에 누워 있다.
재광, 꾸역꾸역 목울음을 삼키다가 주먹으로 흙을 움켜쥐더니 일어나 앉는다.
무릎을 꿇은 채 울기 시작한다. 해는 지고, 재광의 통곡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윤혜, 멀리서 그런 재광을 보고는 힘없이 돌아 간다.
윤혜, 중환자실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
병원에 온 재광, 엄마가 쉬고 있는 응급실로 간다.
엄마 심부름으로 물 사러 매점에 온 재광, 기저귀를 사로 온 윤혜와 마주친다.
재광, 자기도 모르게 외면하면, 윤혜, 침착하게 받아들이는데,
재광, 다시 다가와 묻는다, 할머니는? 윤혜, 금세 눈에 눈물이 글렁한다.
병원 앞, 공원.
재광, 뭐라 할 말을 찾지 못 한고 서 있다가, 흙이 차갑더라, 한다.
윤혜, 재광을 쳐다보며, 아무래도 안 되겠네, 우리, 한다.
재광, 대답 못 하자, 윤혜, 돌아서 들어간다.
재광, 그런 윤혜를 미쳐 쳐다보지 못 하고 있으면,
걸어가던 윤혜 뒤돌아와 재광의 가슴을 때리며, 따진다.
윤혜, 대답 안 해? 정말 대답 안 해? 안 붙잡아? 나 진짜 안 붙잡아요?
재광, 그저 맞고만 서 있으면,
윤혜, 당신이 날 잡아야 내가 차죠. 내가 차마 면목이 없어서 어쩔 수 없어서 당신을 차는 걸로 해야지...
이렇게 당연한 듯 차이면 나 너무 비참하잖아요.
재광, 그런 윤혜를 잡아 당겨 안으면,
윤혜, 재광을 밀어내고 돌아서 병원 안으로 들어간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재광, 엄마를 모시고 서울로 간다.
병원 건물을 한 번 올려다보고는 그대로 돌아서 간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윤혜, 차마 울지도 못 한다.
서울에서 엄마 뒷바라지하며 원래의 생활로 돌아온 듯 보이는 재광. 그러나 쓸쓸하다.
전주에서 찍어온 사진을 바탕으로 일러스트를 그리는 재광,
그림 사이사이로 윤혜가 떠오르고, 쓰는 카피 마다 맘에 안 든다.
윤혜, 할머니 돌아가시고, 홀로 쓸쓸히 장례를 치른다.
대웅, 장례식장 근처를 맴돌기만 할 뿐 차마 들어가지도 못 한다.
재광, 회의 마치고 나오는데, 상아, 따라 나온다.
상아, 나 이혼할까? 재광, 그걸 왜 나한테 묻니?
상아, 너 때문에 할까 하거든. 재광, 우리 끝났어, 알잖아.
상아, 재미없다, 너. 하더니 돌아서 들어간다.
재광, 건물 밖으로 나오자, 대웅, 서 있다.
윤혜 할머니 돌아가셨다는 소식 전하고는 그냥 간다.
재광, 잠 못 이루다 전화를 받고 일어난다.
재광, 한 밤중에 나가려고 하면, 엄마, 자다 일어나 어디가려고 하냐, 묻는다.
재광, 대답 안 하면, 엄마, 걔 만나러 가냐, 한다.
재광, 아니다, 일 수정할 거 있다고 연락 와서 체크하러 간다 하며 나가려고 한다.
엄마, 못 믿는다, 걔 만나러 가는 거 맞다, 걔 노인네 돌아가셨다 소리 들었다.
재광, 아니다, 못 믿어도 할 수 없다, 하고 나가려 하면,
엄마, 못 가게 막으며, 니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냐, 난리, 난리, 치며 운다.
재광, 차라리 나였어야 했던 거 아니었냐? 형과 나 둘 중에 하나가 반드시 죽어야 했다면
주저 않고 날 택했을 거다.
엄마, 어떻게 그런 말을?
재광, 그 때부터 미안했다, 형이 아니라 내가 살아 있는 게.
그 때부터 늘 날 노려보는 것 같았다.
엄마, 아니, 노려보는 건 너였다, 마치 내가 형을 죽였다는 듯이,
넌 그 때 이후로 날 엄마라고도 안 불렀잖아.
재광, 그건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요!
7년 전 과거,
반쯤 넋이 나가 앉아 있던 엄마, 재광이 엄마, 부르자,
엄마, 갑자기 아주 반가운 얼굴로 돌아보더니,
갑자기 부른 사람이 재광이라는 것을 알고는 바로 얼굴 굳으며 한마디 한다.
너넨 왜 목소리도 똑같니? 당분간은 엄마 부르지 마.
재광, 노려보는 엄마를 쳐다보다가 머쓱해 돌아서 방으로 들어가면
엄마 혼잣말, 하필이면 왜 재수를...
엄마, 당황하며, 그건...
재광, 그 날부터 안 불렀는데, 한 번도 안 물어봤죠, 왜 안 부르는지...
엄마, 재광에게 그게 아닌데.. 그게 아닌데... 하며,
죽은 재수는 어쩔 수 없다 싶었지만, 살아있으면서도 내게 가까이 안 오는 너 때문에 얼마나 아팠는지,
지난날들 동안 자신이 얼마나 재광이 필요했는지... 를 이야기하며 운다.
재광, 엄마를 외면한 채 그대로 서 있다.
윤혜, 장례를 치르고 집으로 돌아와 멍하니 앉아 있다.
집으로 돌아간 윤혜, 할머니 담배를 하나 꺼내 드는데, 재떨이 아래 쪽지가 남겨져 있다.
보면, 할머니가 담배 은박지 뒤에 쓴 편지다. 윤혜, 꺼내 천천히 읽는다.
삐뚤빼뚤한 글자로 맞춤법도 틀리게 쓴 글이다.
‘윤혜야, 너는 조금도 나쁘지 안했다. 니 잘못 아니다, 잘 살어도 괜찬타.’
윤혜, 그대로 앉아 운다. 조금씩 큰 소리로 운다.
재광, 엄마를 재우고 일어나 나간다.
밤중에 일러스트 수정 및 확인 작업 하고, 아침에 나온다.
강형사, 전화해 형이 마지막으로 한 말이 뭐였는지 물어봐 달랬죠?
재광, 뭐라고 한 말이 있다던가요?
강형사, 글쎄, 확실하진 않은데, 아마도 기다릴텐데... 그랬던 것 같답니다.
멍한 표정의 재광, 차에 올라타더니, 결심한 듯 엑셀을 밟는다.
윤혜의 집에 도착한 재광, 윤혜를 만난다.
재광과 윤혜, 정식으로 헤어진다.
재광, 윤혜에게 너무 깔끔 떠는 성격이 부담스럽다,
윤혜, 여자관계 복잡해 보여 좀 그랬다,
재광, 베이글녀도 아니고,
윤혜, 욕심 많네, 직업이 불안정한 남자랑 연애하긴 좀 그렇지 않나, 스무살 애도 아니고.
재광, 그건 그렇다.
윤혜, 우리 헤어져야할 이유 너무 많다.
재광, 그러게. 등등 남들이 헤어지는 이유들을 대면서 재광과 윤혜, 잘 헤어진다.
운전해 서울로 올라오는 재광, 문득 전화기의 노래방 앱을 돌려 애국가를 부른다.
점점 더 큰 목소리로 애국가를 부르다, 문득 차를 멈춰 세우고,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있다.
자다 일어난 윤혜, 깊은 밤중에 새밥을 짓고 찌개를 끓인다.
양파를 썰던 윤혜,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서 있다.
싱크대에 수돗물은 똑똑 떨어지고, 밥은 끓기 시작하는데,윤혜, 여전히 그대로 가만히 선 채 고개 숙이고 있다.
절에서 형의 추도식을 하는 재광과 엄마.
추도식을 마치고 나오자, 문 앞에 강목수 서 있다가 목례를 한다.
엄마, 강목수를 빤히 보더니 못 본 척 지나간다.
재광, 강목수에게 술이라도 올리고 가시라 하고 엄마 따라 간다.
윤혜, 아빠 면회 중이다.
아빠, 여전히 자신이 잘 못 한 것이 아니라, 운이 없었다며 징징댄다.
음주 검사만 안 했어도, 난 그 사람 싣고 병원이 있는 시내로 들어올 생각이었다.
음주 걸리면 난 그 날로 끝인데, 우리 식구 뭐 먹고 살라고.
검문 피해 외곽으로 돌렸는데 그만 깨서 난리를 치는 바람에.
윤혜, 그만하시라. 이미 우리 식구는 끝났다.
그리고 어쨌든 아빠는 살인자고 난 살인자 딸이다.
앞으로 옥바라지 잘 하고, 면회도 종종 오겠다,
여기서 살인자 딸이라는 짐을 지고 내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두 눈 뜨고 보시라.
아빠가 지은 죄가 자식에게 어떤 벌로 남는지 보시라, 하고는 나온다.
아빠, 멍하니 나가는 윤혜를 바라만 본다.
윤혜, 대웅과 마주 앉아 있다.
윤혜, 대웅에게, 미안하다. 네 맘... 받아주지 못 해서.
너랑 안 되는 이유는 내 처지 때문도 아니고, 네 엄마 때문도 아니다.
그냥 내 마음이 안 움직여 그런 거다. 그러니 니 엄마 울 아빠 너무 원망 마라.
대신 고마웠다, 오빠처럼 니가 있어 사실은 든든했다.
대웅, 까분다, 하더니 마주보고 웃는다.
재광, 오피스텔에 침대가 들어온다.
그 위에 침낭을 얹더니, 그냥 뚤뚤 말아서 구석에 밀어 놓는다.
박스에 있던 짐들 하나둘 풀어 집을 꾸미고,
형과 찍은 사진 액자에 해서 세워 놓고,
벽에는 못 박아 그동안 모은 작품들을 하나씩 건다.
성당, 윤혜, 고백 성사 본다.
지은 죄 없으나, 미처 알지 못 하는 죄에 대해 용서를 구합니다.
신부님, 빙그레 웃는다.
성당 앞, 윤혜, 자전거에 올라타려고 하면, 신부님 나오다 묻는다. 어디가십니까?
윤혜, 안내소요, 부당 해고거든요. 계약 끝날 때까지는 어떻게든 버틸 겁니다, 나는 나거든요.
하고는 자전거에 오른다.
윤혜, 자전거를 타고 추운 겨울 아침, 쨍한 하늘 아래를 달린다.
찰칵! 소리 나서 보면, 재광, 사진을 찍고 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사람들의 앞모습이다.
- 끝.
첫댓글 비록 해품달로 인해 인지도는 별로 없었지만 재방으로 봤거든요 나름 재밌더군요
감사해요 보고싶었는데♥♥
감사합니다 잘볼께요!!
드라마의 감동이 여기서부터 시작점이네요^^ 감사합니다.